“서번트 아처. 소환에 응해 찾아왔다.”
“서, 성공했어!!”
“드디어 아처 클래스의 서번트에요!!”
소환과 동시에 당시의 지식을 주입하는 서번트 시스템은 확실히 편리한 기능이었다. 덕분에 아처는 소환되어 마스터를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칼데아의 독특한 상황에 대해 빠르게 수긍할 수 있었다.
단발 길이의 머리칼을 옆으로 묶은 어린 마스터는 현재 지구에 남은 유일한 마스터 적성의 일반인이었고, 그녀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인류사 그 자체.
서번트 소환 의식에 참가했던 다른 연구원-현재 인리보장기관 칼데아의 치프이자 의료스텝인 로마니라고 자신을 소개했다.-은 소환 후의 마스터에게 마력의 불안정이나 신체적 이상이 진찰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
새롭게 칼데아의 전력이 된 서번트에게 기관을 소개시켜 주는 것은 마스터와 그녀의 첫번째 서번트의 역할이었다.
“칼데아에 아처 클래스의 서번트 수가 적은가?”
“에미야 씨가 첫번째 아처 서번트에요. 아~ 그동안 제대로 된 원거리 공격수단이 없었는데 이제 든든하네요!”
“어쌔신이나 캐스터에게 부담이 좀 줄겠는데? 다행이야.”
갓 소환된 상태라 바로 마스터의 전력이 되기엔 힘든 상태였지만 그녀는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의 서번트를 빠르게 안정시키는 방법이 있는 듯 했다. 궁금한 것은 꽤 있었지만 마스터는 새로운 영령의 등장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된 작은 특이점들을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기에 아처는 궁금증을 뒤로 미뤄두었다.
“이쪽은 칼데아를 운영하는 스텝들과 영령들이 머무르는 생활동. 중앙동과 연결된 통로는 3개지만 2개는 현재 폐쇄중이라 열려있지 않아.”
“우리가 방금 지나온 게 유일한 통로인 건가.”
“맞아!”
전투에 관련된 곳을 먼저 소개시켜 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다. 그리고 아처는 남는 게 방이라며 자신에게 방을 하나 내어주는 마스터의 결정에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을 해보였다. 외부와의 연결이 끊어진 곳에서 한정된 자원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배정한다면 영체화가 가능한 영령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것은 낭비가 아닌가?
“음.. 그건 그렇지만 영령의 소환을 유지하는 데에는 내 마력 대신 칼데아의 전력이 소비되고 있거든.”
“흠.”
마스터의 설명이 더해지자 애매했던 칼데아의 구조가 조금 더 확실히 파악된다.
풀어 얘기하자면, 서번트가 수면도 취하고 식사도 하면서 소비되는 마력을 줄여주는 편이 칼데아로써는 더 이득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 거라면 더 이상 사양할 수는 없다. 아처는 고개를 끄덕여 마스터의 호의를 받아들인 뒤 부엌의 위치를 물었다.
*
부엌과 의료동 등의 위치를 안내받고 이어 다른 서번트들이 있다는 중앙동으로 다시 이동했다. 과거 여러가지 실험을 위한 곳이었는지 아주 넓고 튼튼한 공간이 있어 서번트들이 대련을 하거나 기술을 가다듬는 용도로 쓰고 있다고 했다.
한발자국 정도 앞서 걷는 마스터와 그녀의 서번트가 웃는 소리가 어린 새처럼 경쾌하다.
인류 최후의 성배전쟁일지도 모르는 무대 한 복판에서 듣기엔 지나치게 풀어진 느낌이지만, 현재 그가 있는 곳은 전장이 아니라 그저 대기실일 뿐이다. 그녀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 으레 그러듯 긴장감 없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그보다 아처는 아직 익숙치 않은 칼데아의 시스템에 사고를 집중했다.
이번 성배전쟁의 시스템은 여러모로 독특했다. 레이시프트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 전투를 이어나가는것도, 이번 서번트 소환의 목적도 전부 지금까지의 성배전쟁과는 달랐다. 매 성배전쟁마다 룰이 조금씩 바뀌는 건 공공연한 정설이라지만 지금까지의 기억과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게다가 서번트들은 거의 강제적으로 인간다운 식사와 수면을 강요당한다. 거기에 지금까지 적으로 만났던 서번트들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힘을 모아야 하는 상황. 필수적으로 팀워크가 필요할 것이고.. 과거 단 한 기의 서번트조차 조절하지 못한 마스터가 수두룩했건만 이곳의 유일한 마스터는 각기 개성 넘치는 서번트들을 조율해야만 한다.
아처는 눈 앞에서 걸어가는 마스터의 등을 짠하게 바라보았다. 저 작은 등에 지나치게 많은 것이 얹어져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아! 여기야.”
타이밍 좋게 걸음을 멈추며 마스터는 전면이 검은 유리로 된 벽 앞에서 패널을 터치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벽이 투명화되면서 안쪽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한창 대련 중인지 두 기의 서번트가 거리를 두고 대치중이었다.
그리고 아처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랜서..?”
잊을 수 없는 서번트다.
선명한 적색의 직선이 그리는 죽음의 가시가 가슴을 꿰뚫은 순간 일상과 괴리되기 시작한 한 소년의 시야에 잡히던 인영.. 그 주인을 여기에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아처가 나직하게 중얼거린 목소리를 들었는지 마스터가 경쾌하게 답했다.
“쿠 훌린과 알던 사이야? 혹시 생전에 연이 있었다든가.”
“앗, 그렇다면 아처, 아니 에미야 씨도 얼스터의..?”
“이름은 일본식인데..! 설마 전생자라든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순식간에 일본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한 얼스터의 전사로 몰릴 뻔한 순간을 지나고 아처는 간신히 마스터를 진정시켰다.
“진정해라. 그와 인연이 있던 것은 이전의 성배전쟁에서다.”
“이전의 성배전쟁에서? 대단하네.”
“흠?”
“이전 성배전쟁에선 잘해봐야 서번트가 열 기도 소환되지 않았다고 들었거든. 수많은 영령들 중에 같은 성배전쟁에서 만났던 서번트를 칼데아에서 다시 만나다니.”
“......”
그럼 쿠 훌린도 에미야를 알고 있는 건가?
마스터가 작게 중얼거린 말에 아처는 푸른 창병의 등에 시선을 고정하고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그건 자신이 확신할 수 없는 문제였다.
모든 소환의 기억이 영령에게 이전된다면 넘치는 정보량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보통은 아주 인상적인 몇몇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영령에게 남겨진 기억은 없었다.
전투광인 그가 기억을 남길만한 순간이라면 세이버나 버서커를 상대한 순간이겠지. 딱히, 자신과의 전투가 그에게 있어 새로운 경험이었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그보다 기억하던 것과는 의상의 형태가 조금 다르다. 어깨 위를 완전히 덮던 쇠로 된 어깨갑주는 조금 더 소형화되었고 얼추 갑옷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이전의 형태와 달리 지금의 옷은 피부에 매끄럽게 달라붙는 타이즈를 입은 것처럼 전신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위를 손으로 쓸면 피부가 그대로 느껴질 것 같은데 저 얄팍한 것이 제대로 갑옷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
마침 랜서와 상대 서번트의 대련이 격해지면서 마스터는 잔상을 남기는 붉은 창과 은색 검날의 궤적에 시선을 완전히 빼앗겨 말수가 줄었다.
그를 상대하는 것은 ‘라이더’라고 불린 어린 소녀였다. 외견으로 남을 평가하는 버릇은 없지만 거대한 대태도를 들고 있는 모습이라 미리 클래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세이버라고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몸놀림은 가볍고 민첩해서 쿠 훌린의 속도감있는 장창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는다.
보는 것만으로 공부가 될 만한 좋은 대련이었지만 아처의 시선은 푸른 갑주의 남자에게 머물러있었다. 그 눈에 보이는 것은 어느 익숙한 교정, 그리고 자신을 향해 찔러지던 붉은 가시의 장창.
아처가 잠시 과거의 잔상에 젖은 사이 대련이 마무리되자 마스터가 문을 벌컥 열더니 그의 손목을 덥썩 잡아 대련실 안으로 이끌었다.
“잠깐만, 마스터!”
생각보다 행동에 거침이 없다. 아직 무슨 말을 하며 재회의 인사를 해야 할지 생각해두지도 않은 아처는 답지 않게 당황하며 기세에 휩쓸렸다.
“쨔잔! 오늘 소환된 새 식구야!”
“하아..”
어떻게 말릴 틈도 없었다. 다른 서번트들의 시선이 모이자 아처는 마스터를 타박하는 대신 작게 헛기침을 하며 무난한 인삿말을 골랐다. 적대관계가 아니니 진명을 밝혀야 하나. 명성 자자한 대영웅들에게 소개하긴 부끄러운 이름이지만 괜히 숨기는게 많은 녀석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갈 필요는 없다.
“나는..”
“호오? 클래스는?”
아처가 어렵사리 입을 여는 순간 랜서가 툭 하니 던지듯 물었다. 그의 물음에 순간 당황해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데, 다행히 그 순간 마스터가 대신 대답했다.
“클래스는 아처! 드디어 우리 칼데아에도 원거리 공격과 보조가 가능한 고급 인력이 생긴 거라구!”
“오! 그럼 드디어 오염된 거리에 도전할 수 있겠는데!”
아처는 모르는 어느 전장의 이야기를 하는 랜서와 마스터를 눈앞에 두고 자조했다.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졌음에도 그가 막상 자신을 몰라본다고 생각하니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이런 것에 일일히 당황하다니, 나도 아직 멀었군.’
표정을 관리하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자 랜서와 대련하던 자그마한 소녀가 슬쩍 근처로 다가왔다. 똑바로 바라보기 민망할 정도로 헐벗고 있었지만 본인은 건강한 육체를 드러내는데 거부감이 없는 모양인지 당당하기만 했다.
“본인은 우시와카마루라고 합니다. 혹시 이름을 여쭈어도 되는지?”
“아처로 소환된 서번트, 에미야. ..입니다. 그보다 우시와카마루라면 설마 고죠 대교의..”
“맞소이다! 생전의 나를 알고 있다니, 혹시 어느 장군 밑에 있던 장수인지 알 수 있겠소?”
“아니 그..”
역사책에서나 보던 인물을 눈앞에 두고 아처는 식은땀을 흘렸다. 세이버의 정체를 알고 나서 영령에 대해 쓸데없는 편견은 모두 거두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만큼은 침착하기가 힘들다.
설마 그 미야모토노 요시츠네가 노출증으로 의심되는 너구리 컨셉의 소녀로 소환되다니!?
랜서와의 재회에서 얻은 충격을 일격에 날리는 엄청난 쇼크였다.
*
칼데아에 소환되어 랜서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의기소침하고 만 아처는 그가 기억하던 것보다 친근한 랜서의 태도를 깨닫고 처음엔 의아했다.
그가 기억하던 랜서는 아처의 성격이나 사고방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그와 만나면 곱게 헤어진 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둘이 만날 때마다 일이 순탄하게 굴러갈 일이 별로 없다. 마이너스의 행운에 마이너스의 행운을 더해 봤자 더 바닥으로 치달을 뿐인지,
그러나 칼데아의 상황은 다른 성배전쟁과는 달랐다. 레이시프트를 하면 언제든지 싸울 적수가 있고, 다른 서번트들은 적이 아니라 인류사의 소각을 막고자 하는 동료들이다. 무엇보다 이번의 마스터는 랜서에게 상대방을 죽이지 않는 싸움이나 그의 긍지에 맞지 않는 명령을 강제하지도 않는다. 확실히 그는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텐션이 살짝 올라 있었고 또 너그러워 진 것 같기도 했다.
새로운 영령의 합류를 축하하는 저녁식사시간에 살짝 겉도는 아처의 등짝을 팡팡 내리치며 먼저 말을 건 것도 그였다.
“어이, 거기 형씨?”
벽에 등을 기대고 시끌벅적한 서번트들 사이에서 깔깔 웃고 있는 마스터를 바라보던 아처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그와 만나 창끝을 겨누었을 때와 꼭 같은 발음이었다.
아처의 동요를 알아채지 못한 그는 아처의 눈길을 받는 둥 마는 둥, 그의 옆에 서서 똑같이 벽에 등을 기대고 한 손에 들고 있던 갈색의 유리병을 입에 대고 꼴깍 술을 삼켰다.
그렇게 잠시 이쪽을 힐긋힐긋 쳐다보는듯 하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연다.
“그, 미안한데 어디의 영령인지 알 수 있을까? 혹시 실례인가, 이거?”
아처는 미안한지 약간 머쓱한 표정의 랜서를 놀란듯 쳐다보다 피식 웃었다. 벌써 두 번째, 아니 세 번째의 질문인가. 당연하지만 묻는 투가 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아일랜드의 빛의 왕자라는 위명에 비하면 하잘것없는 남자지.”
“켁. 어차피 같은 칼데아에 소환된 영령끼리 그런 거 비교할 때냐?”
“그런 의미가 아니라.. 미안하지만 원전이라고 할 것도 없는지라.”
“흐음?”
랜서가 의아한듯 쳐다보는 눈길에 아처는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으쓱 올렸다. 적의나 탐색이 아닌 랜서의 눈길은 상상보다 더 거리낌이 없었다. 팔을 뻗으면 손이 닫는 거리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도 랜서는 경계심을 꼬깃하게 접어두어서, 괜히 아처가 몸 둘 바를 모르고 스스로 팔짱을 낀 손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솔직히 말하면, 설레어서 입꼬리가 주체가 안 되고 있었다.
마창을 다루는 반신의 영웅이 적이 아닌 동료로써 이렇게 거리낌 없이 말을 걸다니!?
그는 세이버를 경애하듯 아처는 한 때 남자로써, 그리고 후대를 걷는 자로써 쿠 훌린을 동경하고 있었다.
어떠한 때도 자신의 감정과 신념에 일절의 흔들림이 없으며 어떤 시련 앞에서도 등을 보이지 않고 살아가는.. 쿠 훌린이라는 남자를.
어쩌면 그가 이전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잘 된 일이다.
자신을 기억한다면 분명 첫인상은 최악이겠지. 차라리 제로부터 꾸준히 친밀도를 쌓아간다면..아처의 가슴에서 무언가가 모락모락 부풀어갔다.
“그럼 질문 하나 더, 마스터 말을 듣자 하니 나를 알고 있다던데.”
“아아. 그것 말인가.”
“혹시 너-”
아처는 고개를 단호하게 끄덕거렸다. 생전부터 남몰래 품어왔던 감정. 그렇다. 남자로써 한 남자의 등을 보며 언젠가 닿고 말리라 결심하게 만든 순수한 마음..
“생전부터.. 팬이었다.”
“응?”
“악수해다오.”
“하?”
팬심이었다.
FGO 칼데아 시공이고.. 칼데아의 구조에대한것은 모두선동과날조입니다(흑
스토리 순서라든가 그런것도 모두 날조,, 이것은 날조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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