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limited Blade Works!”
"젠장!"
랜서는 곧 닥쳐올 폭음에 대비해 양 손으로 귀를 막고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곧이어 기관총이라도 쏘아진듯한 연속적인 폭음과 함께 벽이 엉망진창으로 흔들거렸다. 기분 탓인지 돌가루가 부스스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이 벽에서 탈출할 수만 있다면 내 잘빠진 엉덩이나 허벅지에 검 한 두자루가 박히는 것 정도는 관대하게 용서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두어번쯤 되뇌인 뒤에야 소음은 멎어들었다.
다행히 허벅지는 무사하다. 랜서는 다리로 땅을 몇번 디뎌 바닥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손을 벽에 댄 체 힘차게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크헉!”
그러나 당연히 금이 가 있거나 거의 부서졌을거라 생각한 벽은 굳건히 그의 상체의 자유를 구속한 채였다. 랜서가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위로 들어올렸지만 각도상 벽의 상태는 보이지 않는다.
설마 했지만 보구를 막아내고도 멀쩡한 벽이라니?
기가 막힌 건 벽 뒤의 아처도 마찬가지인지 그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식할 정도로 단단한 벽이군.”
“너 이자식!”
그 태평한 목소리를 듣고 랜서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릉 목을 울렸다.
“제 정신이냐!? 이런 좁은 미궁벽에 보구를 쏘는 새끼가 세상에 어디 있어!?”
“후, 약한 소리를 하다니. 너에게 화살막이의 가호가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벽에 낀 채로 피할 수 있을까보냐!?”
그건 화살막이의 할아버지가 와도 어떻게 해 줄 수 없을 거다. 그러나 아처는 랜서의 정당한 항의를 귓등으로 흘러보내며 태평하게 주제를 돌렸다.
“아무래도 뭔가 마법적인 조치가 되어있는 모양이군..”
“그걸 이제 알았냐!?”
랜서는 울화통에 속이 터져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화풀이를 하듯 괜히 게이볼그를 쥐고 벽을 내리쳤으나 당연하게도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영령의 보구까지 막아냈으니 그 방어력에 대해선 뭐라 더 말 할게 없지만은..
그때 발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벽에 다가온 아처가 벽을 살피려는 듯 주위를 서성거린다. 벽에 손을 올렸는지 가볍게 스치는 것조차 진동을 통해 전해지는 탓에, 랜서는 반사적으로 아처가 어떤 식으로 벽을 조사하고 있는지 상상해보았다.
왜, 그 늘 하는 그 포즈겠지.
한 손을 허리에 올린다든가 아니면 팔짱을 낀다던가. 아마 보구로 벽을 부수지 못해 박살난 자존심을 어떻게든 만회하기 위해 이게 보통의 벽이 아니라는 단서를 찾으려고 눈이 벌겋게 되어 있을 것이다. 아 젠장, 그 얼굴을 봐야 나중에 녀석을 실컷 비웃어줄 수 있을 텐데..
“벽에 메세지가 떠올랐군.”
“뭐!?”
“혹시 그쪽 벽에도 떠 있나?”
“설령 떠있다고 해도 나는 확인 못 해.”
척추뼈 두어개 정도를 부술 각오라면 가능하지만, 메세지를 확인하는 댓가로 하반신 마비나 행동불능이 되어버리다니 너무 잔혹한 페널티다.
랜서는 말 소리가 잘 들리도록 상체를 쭉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뭐라고 쓰여 있는데?”
“이 벽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군.”
“오 뭔데! 얼른 말해봐!”
역시, 미궁의 난이도에 비해 지나치게 단단한 벽이라고 생각했는데 정해진 방법만 따르면 탈출할 수 있는 시스템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제 탈출이 코앞이라며 싱글벙글한 랜서의 얼굴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처의 저음은 냉혹한 진실만을 전달했다.
“벽에 갖힌 채로 절정에 도달해야 한다.”
“......뭐?”
“마스터를 불러오지. 이곳에서 대기해라.”
“잠깐잠깐잠깐잠깐!!!!!!!”
랜서의 절박한 부름에 몇 발자국 멀어졌던 아처의 기척이 다시 가까워졌다. 랜서는 발작적으로 외치며 손으로 벽을 마구 밀었다. 당연하지만 꿈적도 하지 않는다.
“마스터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그렇군. 일주일이 되도록 우리가 오지 않으면 자살해라, 랜서. 칼데아에서 다시 보는 편이 낫겠지.”
“무슨 불길한 소리를! 게다가 마스터를 불러온다 해도 이 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냐!?”
대군보구를 맞고서도 멀쩡한 벽이다. 당연하게도 마술적 간섭에 대한 방비도 완벽할 것이고, 되다 만 마술사인 마스터가 온다 해도 뾰족한 해결책을 내기 힘들 거다.
그러나 아처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글쎄.. 령주를 써서 절정에 도달해라, 하고 명령한다면 벽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겠나.”
“인간이냐..!?”
혈관에 피 대신 쇠라도 흐르고 있는 것 아닌가 이 녀석!?
령주를 그런 야망가같은 명령에 쓰라는 것부터 어이가 없는데 그걸 또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 진짜 변태같은 점이다. 저 자식, 안 그런 척 하면서 나한테만 심한 소리 한다고..! 진짜 악질이다.
랜서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저런 조건을 달아놓는다면 뒤에서 메세지를 읽어 줄 동료가 없는 상황에선 진짜로 굶어죽을 때까지 벽에 매달려있을 수밖엔 없을 거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 벽에 대고 자위라도 하는 이상성욕자가 아닌 이상은 말이다.
한 명은 벽에 떠올라있는 글씨를 읽으며, 또 한 명은 벽에 끼워진 채로 묘한 침묵이 통로를 채웠다. 그 가운데 랜서는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도와라 아처.”
“설마.”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반문하는 아처의 목소리를 들은 랜서는 새삼스러운 수치심에 이를 악물었다. 그나마 벽이 가로막고 있어 이쪽의 표정이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냥 손 좀 빌려줘! 거시기 잡고 좀 흔들어주면 되잖아!? 자주 하지 않냐, 너?”
“남을 함부로 자위도구처럼 쓰지 말아라! 그리고 하지 않는다!”
“하, 그래? 나도 내 소중한 곳을 너같이 경험 없는 녀석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고!”
“지금 뭐라고-”
“네놈 손에서 가버린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해! 그렇지만 벽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이 그것뿐이라고 네가 방금 말하지 않았냐..”
처음엔 짜증이 나서 언성이 높아졌지만 계속해서 말하다보니 정말로 목소리에 힘이 빠져 우울하게 말을 끝맺었다. 젠장.. 제기랄.. 어쩌다가 이런 곳에 남사스럽게 갖혀서, 궁병 놈 앞에서 엉덩이나 씰룩거리고 있으면 안 되는가..
“우리 둘이 이곳에 있다면 남은 멤버는 마스터와 마슈, 그리고 캐스터 뿐이다. 근접 전투가 제대로 가능한 인원이 없다고.”
“......”
“이딴 함정이 있는 미궁에 마스터가 단독으로 떨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솔직히 말하면 이러고 있는 시간도 아깝다.”
제 마스터라면 끔찍하게 챙기는 놈이니 분명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뭔가 반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벽 뒤의 아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느릿하게 새어나오는 아처의 말소리에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사정하는 걸로 끝날 일이 아니다.”
자신이 한 말에 별달리 토를 달지 않는다는 건 아처도 충분히 자신이 그린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조심성이 많은 녀석이니 자신이 상정한 것보다 더 세세하게 예상해두었을지도 모르지. 그런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미적지근하게 굴고 있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랜서는 침을 꿀꺽 삼키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너.. 벽에 써 있는 문장, 끝까지 다 안 읽었지.”
“...100초다.”
“뭐?”
“100초 내내 끊기지 않고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이 벽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랜서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100초..? 그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더라? 사정할 때 반짝 느껴지는 그 감각을 100초간..? 그럼 100초 내내 사정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끊기지 않고?
“무슨 미친.. 조건이야!? 사정을 100초간 하라는 뜻이냐? 무리야 아무리 반신이라도 무리야! 소변도 아니고, 그렇게는 못 해!!”
넋을 잃은 채 중얼거리기 시작한 랜서의 얼굴은 안쓰러울 정도로 절박하게 변해 있었다. 불가능한 조건을 달아 두다니, 이 던전은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거냐!? 아처 녀석은 어디 한 군데 끼지도 않고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잖아! 형평성을 맞춘다면 저 궁병 녀석의 머리통도 어디 벽이라든가 천장에 쳐박혀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랜서가 입에 거품을 물 기세로 외친 것과 반대로 아처의 분위기는 아주 차분했다. 그는 작게 혀를 차더니 발로 벽을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무슨 방법인데. 미안하지만 나에게 약은 안 들어.”
“약은 아니다. 드라이 오르가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드라이, 뭐?”
“네가 말하는 사정이란 건 그저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라는 뜻이지.”
“엥..? 그게 무슨 소리야.”
아처는 랜서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랜서는 방금 전 궁병의 한숨으로 땅이 일센치정도 밑으로 가라앉았을 거라고 확신했다.
뜬금없이 아처에게 성교육 강의를 듣고 만 랜서는 의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게 다 진짜냐고 스무번 쯤 반문했다가 ‘미심쩍다면 더이상 방법이 없다’며 멀어지는 아처를 간신히 붙잡았다.
“아니, 그렇지만 갑자기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도.. 정액이 나오는 근원같은데를 자극하는데 왜 엉덩이 구멍에 뭔가를 넣어야 하는 건데?”
“왜냐하면 배꼽 옆에 구멍을 뚫어서 장기를 직접 자극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
짜증이 나는지 거의 으르렁거리듯 대답하는 아처의 목소리에 랜서는 입을 다물었다. 같은 질문을 열번쯤 했으니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난데없이 던전 한 가운데서 엉덩이에 손가락이 쑤셔넣어질 위기에 처한 건 나라고!?
랜서가 대답 대신 입술을 우물거리자 마치 그 광경을 보기라도 한 듯 아처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건 이해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마스터를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나.”
“하아.. 빨리 찾아와.”
100초간 느끼라는 말도 안 되는 문장이 벽에 써 있을 줄 알았겠나.
정말로 마스터가 령주로 자신에게 100초의 오르가즘을 명령해야 하는 건가. 랜서는 자존심이 와장창 무너져버린 텅 빈 눈으로 아무것도 없는 통로를 바라보았다. 손에 들린 게이볼그가 오늘따라 요사스럽게 붉다. 자해는 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마스터의 령주에도 벽에서 탈출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그때 문득 랜서는 마스터와 연결된 마력의 흐름이 급변한 것을 알아차리고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바로 근처에 있던 아처도 느꼈는지 그가 얕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건, 전투인가!”
“령주도 하나 소모되었다. 적어도 캐스터나 마슈 둘 중 하나는 마스터와 접촉했군.”
상황이 바뀌어 여유가 사라졌다.
미궁 어딘가에 있을 마스터와 마슈를 찾아 적을 제거하고 다시 여기로 돌아와 남은 령주를 사용해 벽에서 탈출한다?
이미 하나의 령주를 사용한 마당에 남은 두 획의 령주를 아낄 여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치 않는게 좋다. 그렇다고 어디에 있는지 모를 마스터를 찾아 둘이 찢어지는 건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랜서가 각오를 다지고 아처를 부르기 위해 고개를 들어올린 순간, 아처의 손이 랜서의 엉덩이를 덥썩 붙잡았다.
“히익!”
“이렇게 된 이상, 우는 소리는 그만둬라 랜서! 속전속결로 벽을 탈출해서 마스터를 찾는 거다!”
“큭, 좋아! 와라..!”
기세 좋게 대답한 랜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나마 자유로운 양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누군가가 보고 있을 리는 없지만은 도무지 민망해서 얼굴을 그냥 들 수가 없었다. 아처가 양 손으로 엉덩이를 주물대는 감촉은 정말로 낯설었다.
캐릭터 붕괴와 설정 붕괴는 디폴트로 깔고 있습니다 캐릭터 붕괴와 설정 붕괴는 디폴트로 깔고 있습니다 (중요해서 두번 말함)
3,4편은 성인인증이 필요해 포스타입에 업로드됩니다.
뭅뭅뭅 3편 >> https://thedloc.postype.com/post/2150803
뭅뭅뭅 4편 >> https://thedloc.postype.com/post/2176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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