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미님(@icefly) 님과 같은 세계관+캐릭터 능력을 공유해서 쓴 능력자물+군대물입니다!
※ 날조 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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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코마 지부의 강당보다 두배는 더 넓은 강당에 앉아 대기하자 문이 열리며 후쿠로부대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앞장서 걸어오는 후쿠로부대 대장을 발견한 쿠로오가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자 예상대로 빡친 얼굴의 보쿠토가 벌떡 일어나 다가오려다 옆자리의 부대장에게 뒷덜미가 잡혀 씩씩거리는 모습이 꽤나 볼만했다. 쿠로오가 목 안으로 크큭, 소릴 죽여 웃자 카이가 그게 그리 재밌냐는 눈으로 쿠로오를 쳐다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합동훈련, 합동평가라곤 하지만 사실 예산전쟁이라고 하는 편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지도 모른다. 부대에 편성되는 예산은 보통 임무 성공률에 따라 달라지는 편이었고, 네코마 팀은 확실히 다른 부대에 비해 예산편성이 적은 편이었다. 암살, 요인경호 등 자잘한 임무가 잦은 것이 그 때문이었는데, 합동평가에서 나쁜 성적을 거두면 그 쥐꼬리만한 예산조차 절반 이상이 뭉텅 잘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앞에서는 중년의 남자가 합동훈련의 커리큘럼을 소개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미 대장에게 배부된 유인물로 왠만한 사항은 파악하고 있었다.
앞의 이틀간 이루어지는 이론평가는 패스. 실전위주의 저 팀에게 질거란 생각도 들지 않고 이긴다 해도 점수배정이 크지 않다. 중요한건 그 뒤 이틀동안 이어지는 무투&사격훈련펑가에 마지막 이틀을 장식하는 실전평가다.
무투와 사격은 우리 부대도 꾸준히 훈련하고 있다. 물론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겠지. 실전훈련에서 제일 중요한건 개인이 아니라 팀 단위의 전략. 앞선 닷새간의 평가에서 최대한 상대 부대의 능력을 알아내고 대비하고 그에 맞는 작전을 짜려면.. 쿠로오는 벌써부터 지끌거리려는 관자놀이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다행히 유명세에 비해 단순한 사람 같은데 말이지.’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겨있던 쿠로오의 눈동자가 데굴 옆으로 굴러가 보쿠토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리곤 그의 호박색 눈동자와 눈이 딱 마주쳐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치켜뜨고 말았다. 곧 여유롭게 웃으며 입술을 내밀어 키스를 날려주고, 그에 보쿠토의 얼굴이 질색하는 표정으로 바뀌는 걸 보며 키득거렸지만 순간적으로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쪽을 대체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거지? 그리고 왜 내가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거지? 쿠로오의 목 뒤로 식은땀이 비죽 솟았다. 괜히 후쿠로 부대로 불리는게 아닌건지, 마치 어둠속에서 사냥감을 물색하는 부엉이처럼 오싹한 시선이었다. 소리없는 날갯짓에 흔적없는 시선. 쿠로오는 부러 시선을 강단 위로 고정시키며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쉬울 리 없지.’
방심할 수가 없었다.
*
“웨이~”
“크으윽..!”
훈련 사흘째. 앞선 이론평가 결과를 확인한 두 대장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일반상식, 응급의료, 생존지식 등 몇가지 과목의 각 부대별 평균점수는 120점 만점에 84.3점vs37.1점이라는 두배에 가까운 점수차이로 네코마 부대의 압승이었다. 실전평가에 비해 배점이 낮다지만 이렇게 차이가 나면 무투평가에서의 근소한 차이 정도는 커버가 가능할 정도였다.
확연히 기분이 좋아보이는 쿠로오의 미소에 네코마 부대원들은 나직하게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요 이틀간 훈련소를 매운 두 대장들의 기싸움은 조금 섬세한 부대원들이 신경쇠약을 호소할 정도로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실실 웃으며 턱을 올려 보쿠토를 내려보던 쿠로오의 얼굴이 굳은 것은, 주먹쥔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씩씩거리던 보쿠토가 이내 우오! 하고 기합을 빡 내지르며 외친 소리 때문이었다.
“헤이헤이헤이! 기죽지 마! 실전에서 만회하자고!”
“어라, 원래 꿈을 크게 갖는 타입? 귀엽네.”
“하아? 뭐, 틀린 말도 아니지 않나?”
“무슨 말이신지.”
“뭐어. 네코마 부대의 공격력이 SPCT미달이라는 것 정도? 애초에 몇년간 코드 오렌지를 한번도 겪지 않은 부대는 그쪽밖에 없다고 하고?”
쩌억, 하고 쿠로오를 비롯한 네코마 부대원들의 자존심에 균열이 갔다. 크리티컬이다. 즉시 흉흉해지는 분위기를 알아채지도 못한 건지 보쿠토는 제법 과장하는듯한 포즈로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뭐어~ 켄마라는 사이커 없이 네코마 부대가 얼마나 굴러갈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한데!”
후쿠로 부대에서 피식 하는 웃음소리와 야유가 튀어나왔다. 보쿠토가 그에 호응하듯 크게 웃어제끼고, 쿠로오는 한걸음 성큼 걸어 보쿠토의 정면에 마주보고 섰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간신히 치켜올린 채였다.
“어라라? 벌써 해피에 취하기라도 한 거 아냐? 지나치게 행복한 꿈을 꾸는데?”
얌전하고 부드러운 내용을 담았지만, 쿠로오의 목소리는 마치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것마냥 낮게 깔렸다. 듣는 귀가 오싹해질 정도다. 보쿠토는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의 쿠로오에게 한발자국 더 다가섰다. 코가 맞닿을 정도로 바짝 붙자 훈련소 내의 긴장감이 팽팽해졌다. 보쿠토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씨익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쪽이야말로 첫날 오른손에, 멍 들었지?”
보쿠토의 오른손이 까딱 움직이고, 짐승처럼 번들거리는 그의 눈동자가 쿠로오의 오른손을 흩었다. 검은 장갑 안에 감싸인 쿠로오의 손이 움찔 떨렸다.
흐응~ 하고 묘한 웃음소릴 낸 보쿠토의 눈이 가늘어졌다. 짧은 휴식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고, 보쿠토는 먼저 걸음을 옮겨 부대원들과 함께 무투평가장으로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첫날의 수모를 되갚아 준게 신나는지 히죽히죽 웃는 얼굴을 숨기지도 않은 채였다.
“......”
팔짱을 낀 그 상태 그대로 망부석처럼 남은 쿠로오의 뒤에서 부대원들이 작게 웅성이다 곧 야쿠가 리에프의 등을 떠밀었다.
싫어여! 무섭단 말이에여! 가서 상태만 좀 보고 와!
“저기.. 쿠로, 씨, 딸꾹.”
억지로 떠밀려 쿠로오의 팔을 툭 치며 그의 얼굴을 확인한 리에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심지어 딸꾹질까지 하기 시작하는게, 사람이 아니라 메두사를 처음 본 호메로스라도 되는 반응이었다.
쿠로오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리고는 분명 평소와 같은 톤으로 말을 내뱉었는데,
“하하.. 이번 무투평가. 결과 봐서 개인훈련으로 입원하기 싫으면.. 알지?”
“예!!!”
그 여느 때보다 절박하고 우렁찬 대답이 들려왔다.
*
무투평가 마지막 날, 훈련 나흘째의 아침이었다.
두 대장이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하는데 밑의 부대원들이 하하호호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 부대처럼 아침부터 식당을 뒤엎으며 패싸움을 시작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쿠로오 테츠로의 스타일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타케토라! 묵사발을 내 버려!”
“제이크! 너만 믿는다!”
우우우! 사이킥 능력을 배제한 무투시합일 뿐인데 링 바깥을 둘러싼 관중들의 열기는 뜨겁다 못해 열렬할 정도였다. 책상에 앉아 시험지나 깔짝일 때와 달리, 몸으로 하는 무투평가기간이 되자 두 부대의 분위기는 뜨거운 냄비처럼 과열되기 시작했다.
슬슬 훈련소의 의료팀이 바빠지는 시기도 이때부터다.
1:1 무투대련에 타케토라의 상대로 나선 것은 레게머리를 가진 중동쪽의 부대원이었다. 쿠로오는 몇미터 떨어진 곳에서 박스에 앉아 팔짱을 낀 채 그 시합을 보다 제쪽으로 다가오는 보쿠토를 발견하고는 버릇처럼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라? 실전부대 대장님 아니십니까?”
보쿠토는 뭔가 초조한 표정으로 그 얼굴을 쳐다보더니, 젠장, 하는 소리와 함께 제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그, 너 말이야!”
무슨 소릴 하려는 건지 삿대질까지 하며 자신을 가리키는 그의 행동에 쿠로오는 정면의 대련-을 빙자한 싸움판-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채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쿠로오.”
“엉?”
“쿠로오, 혹은 차라리 네코마 대장이라고 불러주시죠. 이름 없이 부를 정도로 친하지 않잖아요? 보쿠토 대장님?”
그렇게 딱 잘라 말하며 쿠로오는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보쿠토는 눈썹을 찡그려 위로 들어올리곤 불퉁한 얼굴로 툭 내뱉었다.
“그럼 쿠로오. 넌 화도 안나? 적 앞에서도 그렇게 웃어?”
“흐음?”
“그렇게 열받게 웃고 다니는거 말이다! 여유로워보여서 마음에 안 들어..!”
“오야, 이 상냥한 미소를 보고 열이 받다뇨?”
“애초에! 내가 그런 식으로 말했는데 덤비지도 않고! 실실 웃기나 하고!”
그 말에 쿠로오의 미소가 찌그러졌다. 덤벼? 덤비라고 그딴 소릴 지껄인 거였단 말인가.. 그럼 전세계에서 탑클래스인 신체강화 능력자한테 주먹이라도 쥐고 덤벼줘야 했다는 건가. 대체 누구 좋으라고?
쿠로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고는 양 손을 어깨 위로 살짝 들어올렸다.
“제가 상냥한건 하루이틀일이 아니랍니다.”
게다가 진짜 적도 아니고 단순한 합동훈련일 뿐인데 일일히 열받는것도 웃기지 않나? 이어지는 쿠로오의 말에 납득이라도 한 건지, 보쿠토는 하. 하고 숨을 내뱉고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가 무어라고 입을 열려는 찰나, 쿵 하고 제이크의 인영이 무너지면서 타케토라가 우오오오!! 다음!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링 주위의 네코마 부대원들에서 으어어! 하는 괴성과 함성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어느새 귀신처럼 나타난 의료반이 콧등이 내려앉아 안면에 피칠갑을 한 제이크를 데리고 이동하고는, 후쿠로 부대에서 한 남자가 나오려다가-
“잠깐, 내가 나간다!!”
쿠로오는 바로 옆에서 빼액 내지른 보쿠토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았다.
능력이 신체강화라더니 목청도 커지나!? 쿠로오의 시선은 물론이고 대련장에 있던 두 부대원들의 시선이 보쿠토에게 꽂혔다. 쿠로오는 어째 꽤 재미있어질꺼라 생각하며 다리를 한번 꼬았다.
‘능력을 제한하고 무투로만 싸우는것도 자신이 있다 이건가.’
타케토라의 능력도 신체강화계였다. 다만 그 수준이 보쿠토에 미치지 못했고 그 능력을 제대로 써먹기 위해선 인간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쓰러뜨리는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타케토라의 무투실력은 네코마 부대내에서도 한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때 태평하게 그런 생각을 하던 쿠로오의 손목이 확 당겨졌다. 방심하던 차에 얼결에 링 위로 끌려온 쿠로오가 당황한 얼굴로 링을 둘러보자 어느새 링밖으로 나간 토라가 팔찌 한쌍을 내밀며 기합을 내질렀다.
“네코마! 필승!”
“갑자기 내가 왜 링 위에 올라오게 된 걸까나.”
“대장님! 꼭 이기십쇼!!”
“쿠로씨! 화이팅이여!”
“하아..”
방심한 사이 끌려나와 난데없이 대장전이었다. 쿠로오는 반쯤 체념한, 반쯤 피곤해 죽겠다는 얼굴로 양 팔에 팔찌를 철컥 찼다. 곧 작은 기계음과 함께 팔찌는 손목에 딱 맞게 줄어들었고, 붉은 램프가 깜박이며 머리가 약간 답답해져왔다.
특수자기장이 흐르는 링 위에서 이 팔찌를 끼면 일시적으로 사이킥 능력이 제한된다. 물론 그 시간은 채 한시간도 되지 않을정도로 짧았지만 대련을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두통을 떨쳐낸 쿠로오가 뒤를 돌았다.
“갑자기 왠 대련이신지?”
“처음엔 짜증나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리 못돼먹은 녀석은 아닌거 같아서 말야! 대련 한판으로 깔끔하게 정리하자!”
쿠로오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싫은 타입이네? 제멋대로에 자기중심적이고, 뭣보다 저 눈동자가 마음에 안 든다. 일방적으로 갈등과 화해를 얘기하는 주제에 저 눈동자는 마치 속을 꿰뚫는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나도 그랬던가 납득해버리는 묘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인간관계든 임무든 은밀하고 부드럽게 상황을 조절하는게 익숙한 쿠로오에게는 정 반대의 타입이었던 것이다.
“보쿠토 대장!! 뭉개버려요!!”
“능력 못쓰는 강화능력자는 *밥이지! 쿠로오 대장!!”
링을 둘러싼 열기가 어느때보다 뜨거워진 가운데 자신만만한 얼굴로 허리에 손을 짚은 채 선 보쿠토가 오른손을 까딱 움직였다. 명백히 한 수 양보하겠다는 제스처다. 체급 차이도 그리 나지 않는데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선공 양보?”
“아아. 뭐 이 정도는-”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달려든 쿠로오의 손에 보쿠토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찰싹- 하고 가볍고 경쾌한 소리가 나고, 보쿠토는 멍하니 자신의 볼에 손을 올렸다. 아프진 않았다. 아프지는 않았는데-
“양보 고마워, 체리.”
얄밉게 웃으며 손가락을 살랑 움직이는 쿠로오는, 막 뺨싸대기를 맞은 보쿠토에게서 한발작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네코마 부대 쪽에서 요란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온다. 역시 도발의 달인! 체리보이! 혹시 우는 거냐!! 푸하하학!!! 와 진짜 빡치겠닼ㅋㅋ!!!!!
옆으로 돌아갔던 보쿠토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 쿠로오의 정면을 바라본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자신을 쳐다보는 기세에 쿠로오는 방금 전 보쿠토의 흉내를 내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와 보시던가? 그리고 제대로 열받아 직선으로 내질러오는 보쿠토의 주먹을 가볍게 피하며 쿠로오는 이빨을 드러내 웃었다. 오야, 이 판 이겼네.
*
“빌어먹으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제 앞의 펀치머신을 압축기에 짓눌린 폐품꼴로 만들어버린 보쿠토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버럭버럭 악을 썼다. 쾅쾅, 보쿠토가 발을 바닥에 내려칠 때마다 특수합급으로 만든 타일에 균열이 갔다. “보쿠토 대장, 그만두세요. 훈련소 기물파손으로 예산 깎여요.”
“젠장할!! 그 요괴 고양이가!!!”
보쿠토는 입 밖으로 괴성을 내지르면서도 예산삭감이 무섭긴 한 건지 발을 구르던 행동을 멈추고 대신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폭주하지 않는게 용하다 할 정도로 보쿠토는 제 분을 이기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눈동자가 희번뜩한게 상태가 그리 좋지만은 않아보인다. 아카아시는 작게 한숨을 내쉬곤 팔 안에서 얇은 노트북을 꺼냈다.
“너무 분해하지 마십시오. 쿠로오 대장은 확실히 강했으니까요.”
“내 앞에서 그녀석 이름 꺼내지도 마!!”
버럭 외치며 아카아시에게 삿대질한 보쿠토는 이내 다시 분에 못이겨 몸부림을 쳤다. 내가, 지다니, 그 요괴 고양이한테..!!!
“그건 반칙이야!!!!”
“시끄러워요. 대장.”
노트북의 전원을 키고 영상을 띄운 아카아시가 다시 보쿠토를 불렀다. 대장, 대련영상 확인하시겠습니까? 싫어-!!!!!
아카아시의 고막을 터뜨릴 작정인지 버럭 외친 보쿠토가 씩씩 숨을 내쉬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거 보면, 진짜 못 참을것 같다고..!
이러다 없던 고양이 알레르기라도 생길 것 같은 거부반응에 아카아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대장. 사이킥을 제외한 쿠로오 대장님의 벤치프레스 기록은 140kg입니다. 제 말뜻 아시겠습니까?”
“제길, 어? 어.. 그거밖에 안 돼?”
보쿠토는 멍한 얼굴로 고갤 들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키는 자신이 조금 작았지만 몸은 확실히 자신에 비해 호리호리하긴 했다. 대신 그 큰 키에 비해 굉장히 유연했고 반응이 재빨랐다. 확실히, 공격이 묵직하다기보단 날카로운 느낌이 더했던 것 같기도..
“보쿠토 대장의 기록보다 20kg가량 못 미쳐요. 순수근력으로 따지면 대장이 위. 그뿐만 아니라 다른 대련기록을 보면 쿠로오 대장의 기술이 훌륭하긴 하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대장을 가지고 놀 정도는 아니에요.”
“그럼 뭐야.”
“대장이 흥분해서 앞뒤 가릴 것 없이 날뛰었다는 뜻이죠.”
“큭...”
보쿠토는 입술을 깨물고 끙 앓더니 이내 아카아시의 옆자리에 털썩 와 앉았다. 제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도발에 그대로 홀랑 넘어가 무대포로 공격하다 관절기에 당하고 간신히 벗어났지만 발차기 한방에 그대로 넉다운. 제대로 된 공격 한번 성공시키지 못하고 당해버렸다. 덕분에 이후 부대의 분위기는 완전 반전되어, 무투평가의 결과도 네코마 팀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가져갔다.
“실전평가에서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어요. 보쿠토 대장, 이대로 지고만 있을 겁니까?”
“아니! 그 자식은 내가 잡는다!”
“그럼 영상 재생하겠습니다.”
역시 대장 부엉이 조련에는 부대장이 최고라니까! 그렇게 웃는 부대원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아카아시는 키보드를 다닥 조작해 영상을 틀었다.
선공을 양보한답시고 여유를 부리다가 싸대기를 맞는 장면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마에 핏줄을 세우고 이빨을 갈았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아카아시가 분석하는 요괴 고양이-쿠로오-에 대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함이었다.
“이후 대장의 공격이 완전 단순해졌잖습니까. 쿠로오 대장님이 보이는 빈틈에 그대로 따라붙고, 봐요. 대비한 것처럼 팔 걸어서 무릎 뒤를 가격하는게..”
“끄응..”
“이때도. 평소라면 보쿠토 대장 이렇게 훤히 보이는 페이크에 걸려들지 않죠. 그런데 이때 쿠로오 대장이.. 어라, 뭐라고 말한건가? 여기선 잘 들리지 않는군요.”
“체리라서 그런지 공격에 힘이 없다고.. 적당히 꼭지 따줄테니까 항복하라고..”
“그래서 그 도발에 그대로 돌진하신겁니까..”
“짜증나잖아!!!”
“하아.. 예에.”
쿠로오는 그대로 달려든 보쿠토의 다리 사이로 자신의 다리를 끼워넣고, 반보로 가볍게 보쿠토의 뒤로 돌아 보쿠토를 쓰러뜨려 물 흐르듯 완벽하게 암 트라이앵글 초크로 보쿠토의 대동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교과서에 실려도 될 정도로 깔끔한 기술이었다.
팔로 보쿠토의 목과 팔을 감싸 자물쇠로 잠그듯 압박하자 화면 속의 보쿠토의 얼굴이 붉어지며 이마에 핏줄이 불뚝 일어선게 보였다. 한쪽 팔은 쿠로오의 허벅지에 눌려 바닥만 쾅쾅 때리고 있었고, 그 영상을 보는 보쿠토의 주먹에 뿌득 힘이 들어갔다.
“이 기술도, 평소라면 금새 풀어낼 수 있었을겁니다. 벤치 프레스 기록이 차이가 나니까요. 그런데 한참동안 갈피를 못잡고 허우적거렸죠. 이때 이미 데미지가 누적되어 버린거에요.”
“......”
화면 속에서 쿠로오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보쿠토는 영상 안의 자신의 팔찌가 점점 빨리 명멸하는 것을 확인하고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저때 팔찌가 없었다면 그대로 날개를 꺼내버릴 뻔 했어. 쿠로오의 말을 들은 직후, 보쿠토가 괴성을 지르며 쿠로오의 초크를 떨쳐냈고, 데굴 구른 쿠로오가 날렵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낭패한 얼굴로 팔을 털었다.
아, 저때 자신이 조금만 더 냉정했더라면 이길 수 있었을 텐데. 보쿠토의 주먹이 꽈악 쥐어졌다. 지금 보니 쿠로오의 헛점도, 자신의 바보짓도 훤히 보였다.
보쿠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릴 한번 털어낸 후 그대로 쿠로오에게 돌진해 태클을 걸었다. 물론 쿠로오는 순순히 잡히지 않았지만 마침내 손아귀에 쿠로오의 팔을 잡아채는데 성공했다. 저때, 보쿠토는 방심하고 있었다. 벤치프레스 수치를 듣기 전이지만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완력이 약한 상대라는 걸 알아챈 것이다. 중심을 잃어 휘청대는 쿠로오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다른 손으로 주먹을 쥐고 이겼다! 라고 생각한 순간-
보통 킥이란 건 펀치에 비해 리치가 긴 기술이다. 강력한 만큼 초근접거리에선 쓸 수 없는 기술인 것이다. 그래서 보쿠토는 쿠로오의 한 팔을 봉인하고 한 팔을 무효화시킨 뒤,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려들어온 쿠로오의 발차기에 방심해 그대로 턱을 내 줄 수밖에 없었다.
“이건 태권도입니다. 합기도나 무에타이와는 다른 기술이에요. 타격점을 머리 위로 잡아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초근접 킥이죠. 보시다시피, 제로거리에서도 이정도 위력이 나옵니다.”
이미 쿠로오의 관절기에 당해 제 컨디션이 아니던 보쿠토는 쿠로오의 그 발차기에 그대로 넉다운이 되어버렸다.
풀썩 쓰러진 보쿠토를 두고 뒤로 가볍게 뛰어 어깨를 으쓱인 쿠로오가 천천히 엄지를 들어올리더니 척, 하고 엄지를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화면 안의 씩 하고 그 특유의 얼굴로 눈웃음치며 무어라 빈정거리는 얼굴에(주변에서 튀어나온 환호성에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보쿠토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그대로 앉은 벤치를 퍽, 하고 내리쳤다. 의자가 부서지지 않는 게 용했다.
“내일 실전훈련.. 고양이는 내가 잡는다!”
“예, 예. 부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처럼 흥분해버리면 될 것도 안될꺼라구요.”
“두번 실수는 안 해.”
보쿠토는 그렇게 말하며 아주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딴에는 침착하고 여유로운 얼굴인 척 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나 흉흉하게 빛나는 눈이 도무지 제정신으로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제 할말만 하고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가버리는 보쿠토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쉬던 아카아시가 노트북을 챙겨 일어나자 앉았던 긴 벤치가 와르르 소리와 함께 무너져내렸다.
“하.. 예산..”
오타 있을수 있습니다 오타지적 환영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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