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미님(@icefly) 님과 같은 세계관+캐릭터 능력을 공유해서 쓴 능력자물+군대물입니다!
※ 날조 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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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암. 소릴 죽일 생각도 없어 입 밖으로 거하게 하품을 한 쿠로오는 언제나처럼 이 시간에 문을 열고 나오는 켄마의 반질반질한 뒷통수를 보며 인사했다.
“안녕, 켄마.”
“응.”
긴 다리로 성큼 걷자 금새 켄마와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옆으로 가 서자 평소보다 엉망으로 뻗친 머리카락을 확인하듯 힐끔 눈길이 얼굴에 닿는다. 데구르르 구른 눈동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밤새 잠을 잘 못잤어? 라든가, 혹은 머리카락이 왜 그래? 라든가.
하지만 이내 귀찮다던가 혹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다든가 하는 식으로 생각하며 입을 다물고 말겠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적부터 켄마와 지내왔던 고로 그걸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복도는 한적했다. 다국적 SPCT 소속 대능력자부대 네코마 지부의 인원이 적지 않다는걸 생각하면 의아한 일이지만, 그들이 걷는 복도는 지하 7층. 조교(정식 명칭은 부대 관리행정겸원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인 켄마와 부대의 대장인 쿠로오, 그리고 몇 없는 행정직원과 4급고위직들의 숙소만 있는 곳이었다.
지하 6층의 식당을 지나 5층으로 가야만 부대원들의 숙소가 나오므로 아침훈련시간의 복도는 여즉 고요했다.
“여 대장!”
“오늘 아침 메뉴 꽁치에요!”
“켄마씨 좋은 아침~”
6층으로 진입하자마자 봇물이 터지듯 와르르 하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놀라운 과학력 놀라운 방음기술이로다.
지하임에도 탁하지 않은 공기와 높은 천장, 밝은 내부는 이 지부에 윗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때려박았는가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였다. 물론 그 돈의 8할이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 주로 처발렸지만 말이죠.
식판에 밥과 반찬을 덜어 앉자 맞은편으로 켄마가 시리얼 한그릇이라는 단촐한 식사를 가져와 앉는다.
“뭐야 켄마. 아침은 든든히 먹으라고.”
“배 고프지 않아.”
어김없이 쿠로오의 입에서 잔소리가 튀어나갔다. 옆 자리에 앉은 부대장 카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까닥 움직여 인사했다. 거봐, 카이도 역시 저 아침밥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아뇨. 딱히.
“아침은 황제처럼 먹으라잖아~? 적어도 밥이라도 먹어. 시리얼로는 필요한 포도당이 모자르다고!”
“싫어.”
아침 식사 시간에 으레히 벌어지는 일이었고, 별달리 특이한 점도 아니었다. 아침기도라도 챙기듯 쿠로오는 늘 켄마에게 제대로 아침밥을 먹으라 잔소리를 하곤 젓가락을 들곤 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본 쿠로오는 모든 대원이 식당에 와있는걸 확인하고는 가볍게 주위를 환기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자! 주목!”
그렇게 외치며 박수를 한번 짝. 크지도 않는 소리였지만 그 행동 하나에 식당 안의 말소리가 멎었다. 흠. 쿠로오는 제법 만족스런 얼굴로 비죽 웃은 뒤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 정규일정 전에 강당에서 프리젠테이션 생겼습니다~ 지각하거나 불참하면 이 쿠로쨩이 스물 네시간동안 화끈하게 데워줄꺼야?”
뼈가 삭고 근육이 파열된다는 탈 인간급 개인훈련을 지나치게 감미로운 단어로 포장하는게 아니냐는 종류의 항의가 욕설과 함께 쿠로오에게 빗발쳤으나, 쿠로오는 여유롭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 올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뭐에여? 오늘 무슨 일 있어여?”
발랄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으며 켄마의 옆자리에 앉은 것은 팀에 합류한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신입의 목소리였다.
네코마 부대본부의 위치가 동아시아인 탓에 팀내 인종의 80%가 아시아인이었지만, 개중 리에프는 드물게도 녹색 눈의 슬라브족 유전자를 진하게 타고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혼혈이라는데, 아시아쪽 유전자를 잡아먹기라도 한건가.
아? 그러고 보니 오자마자 험한 꼴 보게 생겼네. 쿠로오는 말없이 눈을 접어 웃으며 옆자리의 카이에게 말을 툭 던졌다.
“오늘 신입 제대로 간수해 와?”
“네, 네.”
“어라 뭐에여? 질문한건 난데 왜 대답은 카이 씨한테!?”
*
아침식사는 오전 8시에 종료된다. 30분의 준비시간 뒤 보통 8시 반부터 정규훈련시간이 시작되곤 했는데, 오늘은 영화감상이나 연말 망년회에서나 개방되던 강당으로 팀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켄마와 쿠로오는 단상 위 벽을 가득 채운 거대 모니터에 노트북을 연결하며 하나둘씩 들어오는 팀원들을 일일히 확인했다.
“이누오카는?”
“배탈나서, 의료실 들렀다 온답니다~”
“어이고야.”
마지막으로 이누오카가 엉거주춤 강당으로 들어서자 이내 헤드셋 마이크를 쓴 쿠로오가 뇌쇄적인 포즈로 강당 위에서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참고로 키 187의 건장한 근육질 남자가 그런 포즈를 취해봤자 지각자 입장에선 지옥의 문지기 이상으로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네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탓하는건 아니니까 얼른 앉아.”
마이크를 켠 채로 말하는 바람에 강당 안의 대원들이 대놓고 박장대소를 하며 웃어제껴 이누오카의 귀가 새빨개졌다. 마지막 팀원마저 제대로 앉은걸 확인한 쿠로오는 씩 웃으며 손에 든 리모컨을 깔짝 움직였다.
간밤에 쿠로오를 수면부족으로 몰아간 이유가 드디어 팀원들에게 실체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화면이 일렁이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짧은 글자가 모니터를 채웠고, 이내 강당은 아까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통한과 절규에 휩싸였다.
“으아악!”
“어쩐지 이번 분기에 조용히 지나간다 했다!”
분노와 광란의 도가니에서 마치 태풍의 눈처럼 유일하게 조용한 곳은 켄마와 카이,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버리한 신입 리에프가 앉은 곳 뿐이었다. 뭐에여? 무슨 일이에여? 다른 팀원들의 격한 반응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리번거리던 리에프가 켄마에게 물었다.
“합동훈련.”
“그리고 합동평가지.”
별다른 정보도 없는 짧은 한마디에 카이가 얼른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합동.. 훈련 평가?”
리에프가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자 삐이- 하고 마이크와 스피커가 튀기는 소리가 작게 나더니 곧 쿠로오의 낮은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자. 다들 신나서 들뜬 건 알겠는데 이러다 이 대장 벌써부터 가는 귀가 먹겠어~(우 하고 야유하는 소리.) 조용, 조용. 지금 방금 예쁜 손가락 한 새끼들은 조금 있다가 나랑 오붓한 개인훈련을 가진다. 일단 중요한건 보다시피 이번 분기의 제물로 우리 팀이 뽑혔다는거지? 으응? 우리 팀은 뭐, 평소대로만 하면~ 문제없지만?”
유들유들한 쿠로오의 목소리에 팀원들이 의자나 책상을 두들기며 환호나 욕설 등을 내뱉었다. 피식 웃고 만 쿠로오는 이내 키보드를 두들겨 다음 화면을 모니터에 출력했다.
“그래도 일단 우리와 함께 불운한 상대팀 정보를 한번 긁어봤다. 후쿠로우다니. 일명 후쿠로(올빼미) 부대.”
이내 화면이 전환되고 검은 바탕에 올빼미의 갈색 얼룩깃털을 닮은 앰블럼이 둥실 떠올랐다. 상대팀의 정보라는 소리에 강당은 금새 조용해졌다. 같은 SPCT 소속이라지만 의료부대나 지원부대가 아닌 같은 대능력자부대와는 이런 식의 합동훈련이나 몇 없는 합동임무, 혹은 본인이 특이한 능력자라 다른 팀으로 파견임무를 가야할 때 외엔 마주할 일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능력자들의 자세한 능력은 본인과 상부를 제외하면 기밀에 부쳐진다지만 사람 사는 곳에 비밀이 어디 있겠는가. 훈련 전에 알음알음 상대팀의 정보를 모아 대비하는 건 이 부대에서 각 팀 대장들의 능력의 척도로도 평가되곤 했다.
“예전에 이 팀이랑 합동훈련 해본 적 있는 사람?”
쿠로오의 말에 몇몇 대원들이 웅성이며 거수했다. 2년 전 쿠로오를 중심으로 부대를 재정비하기 전부터 있었던 노련한 부대원들이었다.
“이쪽도 마찬가지지만, 이 팀도 몇년 새 팀원이 꽤 많이 바뀌었어. 능력자들도, 팀 분위기도 확 바뀌었지. 요새 실적표 보면 알잖아?”
그리고 이어 화면에 출력된 것은 SPCT의 부대별 임무실적표였다. 참고로, 외부반입은 물론이고 팀원들에게도 공개가 불가능한 자료였지만 쿠로오는 거침이 없었다. 화면이 나옴과 동시에 헛기침을 하며 CCTV에 대고 먼지털이를 털어대기 시작한 청소직원의 협조 덕분이었다.
“우리 팀이 요인경호, 암살, 백업 등에 특화된 것과 달리 이쪽은 정면돌파를 위주로 하는 공격력 강한 팀이다. 자아 봅시다~ 요 2년새 이 부대가 거쳐간 코드 오렌지가 네 번! 돌파, 몰살, 인질구출, 그리고.”
‘섬멸.’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만 본다면 네코마 팀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경험치를 가진 팀이었다.
집중하는 팀원들의 표정이 제법 마음에 드는지 쿠로오는 신이 나서 키보드를 움직였다.
“팀 분위기가 바뀐 건, 2년전 사이커들이 대거 교체되면서. 아마 우리 팀에서도 최근에 이 팀하고 몇 번 합동임무라던가 나간 사람 있지?”
그 말에 켄마를 비롯한 몇몇이 손을 들어올렸다. 우와! 진짜에여!? 리에프가 눈을 반짝이며 켄마에게 상체를 훅 숙이다가 카이에게 주의를 받고 얼른 자세를 바로했다.
“후쿠로부대 대장이 꽤 유명인사지. 뭐, 왜 이런데서 썩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알려진 능력은 신체강화. 단, 일반적인 신체강화를 떠올리고 대응하면 당한다. 거기 리에프!”
갑작스런 쿠로오의 지적에 리에프가 힉! 하고 어깨를 움츠리며 하악질하는 맹수처럼 눈을 치켜떴다. 또 뭔가 싶어 리에프에게로 강당의 시선이 죄 쏠렸다. 나, 나 아무 짓도 안했는데여!?
“네 염력으로 강철을 찢을 수 있겠어?”
“에? 찢는다고요?”
얼떨떨하게 제 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르킨 리에프가 고민하더니 다시 물었다.
“어.. 훈련할때 쓰이는 철근중에 제일 큰 사이즈 기준으로요?”
“아아. 그거.”
참고로 리에프가 말하는 것은 콘크리트 고층건물을 지을때 건축자재로 사용하는 H빔이었고, 미터당 무게만도 300킬로에 버금가는 녀석이었다. 리에프는 염력으로 구부리는건 가능한데 찢는건 좀.. 이라며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이 하기 힘든 일이란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팀 대장은 준비운동 없이 한번에 훈련빔 2개를 찢어낸다. 보통 근거리 신체강화능력자라면 원거리 싸이코키네시스에게 약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이놈이 모가지를 딴 테러리스트 숫자를 생각하면 생각이 바뀔껄? 최대한 접근하지 않도록 공략해야 할꺼야.”
그리곤 시선을 아래로 내려 묘하게 불퉁해진 리에프를 보며 씩 웃어보였다.
“갓 태어난 새끼고양이 주제에 올빼미 대장을 잡는다는 기대도 안한다. 단, 우리 팀의 유일한 싸이코키네시스인만큼 한번 정도는 정면충돌하게 될 수도 있다는걸 염두에 두라고.”
엑. 정면충돌? 저희 저 부대랑 싸워여? 당황한 리에프의 목소리에 카이가 말없이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댔다. 나중에.
“이어서 그쪽 넘버 2. 이 사람도 위험하지. 사실 대장이 그렇게 활개를 칠 수 있는게 바로 이 부대장의 능력 때문이야. 혹시 같은 임무 뛰어본 사람?”
쿠로오의 말에 켄마를 비롯한 몇몇이 어물어물 손을 들었다. 그러나 방금 전과 달리 거수한 손에 힘이 없는게, 이유를 묻자 함께 임무를 하긴 했는데 무슨 능력인지 정확히 파악이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 역시 장난 아니라니까. 켄마. 혹시 파악했어?”
“진동. 음파.”
“이야. 흔한 능력은 아니지? 심지어 어떤 식으로 능력이 발현되는지도 모르는데. 단지 방출형이라 한번에 다수를 무력화시킨 전적도 있다고 하니, 최대한 조심할 수밖에.”
쿠로오는 그렇게 말하며 리에프의 옆에 앉은 카이에게 눈을 맞추었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웃는다. 진동파를 조절하는 능력자라면, 카이의 능력과 상성이 좋다.
쿠로오는 두어명 가량의 능력자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사흘 뒤 합동훈련을 대비하기 위한 단기 집중코스-참고로 강당 안은 지옥도 예고편이라는 중얼거림으로 가득 찼다.-에 돌입함을 당당하게 선언했다.
“리에프. 그리고 아까 그 놈들. 그리고 소대장들도 남아서... 어허. 거기 저새끼 저거 도망치네? 카이. 잡아와.”
으악! 나 아니라고! 하는 처절한 목소리와 함께 카이의 손에 뒷덜미가 잡혀 질질 끌고오는 대원을 본 쿠로오의 입가에 성격 나빠보이는 특유의 미소가 씨익 하고 걸쳐졌다.
“마침 잘 됐다. 네가 리에프 상대 좀 해야겠다.”
“네? 저요?”
리에프는 갑자기 튀어나온 저 이름에 눈을 동그랗게 떴고, 카이의 손에 매달린 타케토라의 입에서는 앓는 한숨이 터져나왔다. 합동훈련 D-3일째의 아침이었다.
*
SPCT는 세상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초능력자들의 부대였다. 처음의 설립목적은 초능력을 이용한 범죄와 전쟁의 억제였으나 애초에 기업재단에서 차출한 자본이었다.
전쟁억제도구의 탈을 쓴 사이커 집단이 단지 겉모습을 빌릴 뿐인 용병회사 그 자체로 변해버리는데는 채 몇년의 기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초능력자든 일반인이든 의뢰인이 누구라도 돈만 있으면 가리지 않고 일을 받는다. 제멋대로 태어나는 사이커들을 모아 만든 부대, 일반 군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화력의 그들이 몸값이 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응 뭐. 일단 월급이 빵빵하니까 말이지.’
두시간 가량의 짧은 비행이었다. 착륙장 너머로 보이는 사파이어빛 바다를 보고 감탄할 틈도 없이, 마치 여름을 방불케 하는 강한 햇살에 쿠로오는 눈썹을 찡그렸다. 거의 적도 가까이로 내려온 것 같은데.. 지도상엔 별다른 이름이 없을 이 섬에는 SPCT의 최첨단 실전훈련건물과 장비가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야쿠씨, 짐 너무 적은 거 아니에여!?”
“너야말로 고작 일주일 묵는데 짐이 왜 그리 많냐. 어차피 실내복이라던가 생필품은 기본제공된다고.”
“아 그건 아는데..”
“그럼 무슨 짐을.. 만화책!? 돌았냐!?”
너 지금 수련회로 착각하는거 아냐!? 뒤에서 야쿠의 손에 리에프가 귀를 잡히고 힝힝 앓는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야단스러운 소리를 귓드응로 흘리며 앞으로의 훈련을 담당할 직원에게 간단히 스케쥴을 확인받고 팀원들을 숙소로 밀어넣었다. 참고로 켄마는 합동훈련대상이 아닌, 훈련 서포터 업무를 배정받은고로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다른 층의 숙소로 이동했다.
순간이동능력자인 켄마의 경우 평소엔 네코마 부대 소속으로 되어 있지만, 일년의 삼분지 일은 타부대로 파견을 갈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까지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능력자는 세계에서도 몇 없을 능력이다. 암살임무에 있어선 무엇보다 귀중한 능력이었고, 그가 부대에 소속된 것 만으로도 임무의 위험도가 달라지는 사이커였지만 그런 만큼 이런 합동훈련시엔 서포터 업무로 빠져버리곤 했다. 상대팀의 페널티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 켄마가 없으니 외로운걸.”
부대의 대장이라는 특혜라봤자 연봉이 조금 더 높고 이럴 때 독방을 쓰는 것 뿐이었다. 특실이랍시고 제법 넓은 화장실과 응접실이 준비된 방에 쿠로오는 휘익, 짧게 휘파람을 불고는 가져온 몇 안되는 짐을 대충 풀었다. 어차피 훈련은 일주일, 오래 있지도 않을 것이고 매일 일과가 끝나면 두통에 절어 기절하듯 잠들기밖에 더 하겠나 싶었다.
훈련소에서 준비한 훈련복은 당연하지만 쿠로오의 사이즈에 정확히 맞았다. 아마, 쿠로오의 발톱이 자라는 속도조차 쿠로오 본인보다 더 정확히 알고 있겠거니 싶다. 오. 이거 우리 팀 컬러잖아.
그래봤자 기본제공되는 디펜시브 훈련복에 왼쪽 가슴에 팀 앰블럼을 달아둔 것 뿐이지만, 뭔가 이런 걸 입으면 진작에 다 소진된 줄 알았던 승부욕이라는 녀석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야외 연병장에 하나둘씩 흩어져 벌써부터 훈련을 시작하는 녀석들을 모아 집합시키자 탁 트인 착륙장에 막 소형 여객기 하나가 착륙하고 있었다.
귓가를 때리는 쩡쩡한 데시벨에 누구 한명 눈살을 찌푸리며 귀를 막을 법도 한데 쿠로오나, 혹은 다른 팀원들은 거기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저 녀석들이 그 유명한 후쿠로 부대라 이거지. 사흘간 관자놀이가 빠개질 정도로 혹사당해, 훈련을 빙자한 괴롭힘을 받았다고 믿고 있는 리에프의 눈동자에 잔뜩 긴장한 기색이 너울거렸다.
“헤이헤이헤이!”
고요하리만치 긴장한 네코마 부대의 분위기를 산산조각 낸 것은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고무공처럼 통통 튀어오른 한 남자였다.
“오옷!? 바다잖아!? 해수욕 할 수 있으려나-!?”
“저흰 여기 관광온게 아니라 훈련하러 온 겁니다. 보쿠토 대장.”
“모처럼 임무도 아닌 곳에서 바다에 온건데 너무 깐깐한거 아냐!?”
회색인지 흰색인지, 거뭇한 머리카락이 섞인 머리를 힘껏 세워올린 남자는 분명 대장이라고 불렸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쿠로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게 ‘그’ 부엉이란 말이지..”
작지 않은 목소리라 쿠로오 곁의 팀원들도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찌 보면 대놓고 들으라 말하는 것도 같았다.
어째, 조금 별론데? 이쪽은 합동훈련이랍시고 잔뜩 긴장해왔는데 임무도 아닌 훈련에 긴장할 필요 없다는 식으로 나오면 말이지~
진짜로 기분이 나쁘긴 한건지, 평소와 같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웃는 쿠로오의 목소리에 팀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라? 이 쪽이 이번에 우리 상대인가?”
부산스레 짐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던 후쿠로의 대장이 각 맞춰선 쿠로오와 네코마 부대를 발견한건 금방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와 쿠로오를 발견하고는 탐색하듯 눈을 반개해 눈썹을 쓱 들어올렸다.
“어라~”
“오야오야~”
그 짧은 사이에 뭐가 통한건지 둘의 눈동자 사이로 전류가 통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느라고, 그 당시 옆에 있던 대원은 그렇게 증언했다.
‘그때 도망쳤어야 했는데..’
“내가 후쿠로다니 부대의 대장, 보쿠토 코타로다!”
“이쪽은 네코마 부대의 쿠로오 테츠로라고 합니다.”
거만하게까지 보일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남자가 힘차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손날을 세워 팔꿈치 아래로 낮추고 앞으로 내미는 그 자세는 만국공통으로 통용되는 제스처였고, 쿠로오는 거의 반사적으로 웃으며 오른손을 마주 내밀었다.
“잘 부탁합니..”
여유롭게 흘러나오던 쿠로오의 목소리가 멈췄다. 손아귀를 부술 듯 전해져오는 힘에 뿌득. 쿠로오의 턱과 어금니에서 뭔가 수상쩍은 소리가 난다 싶더니 보쿠토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이것 봐라?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그 표정에 쿠로오의 승부욕에 화악 불길이 일었다. 그러나 보쿠토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눈 앞의 이 검은 고양이처럼 유연한 남자가 싸우는 방식이 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쿠로오는 어깨를 움츠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누가 봐도 아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아야야..! 신체강화계가 너무한데?”
“엇,”
앓는 소리를 내며 손을 빼낸 쿠로오가 다분히 과장된 얼굴로 오른손을 털었다. 진짜 조금만 더 버텼으면 손가락 뼈가 나갔을지도 모르겠다며 우는 소릴 했다. 어째 징징거리는 것 같은데 어색하지도 않고 참 자연스레 말을 뱉는다.
쿠로오는 보란 듯 보쿠토의 손자국이 벌겋게 남은 손을 얼굴 위로 들어올렸다. 이렇게 솔직하게 아파할줄은 몰랐던건지 후쿠로의 대장, 보쿠토 코타로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미, 미안!”
“뭐~ 괜찮습니다. 설마 대장이나 되는 사람이 제 능력 하나 조절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능력을 휘둘러 대는 건 아닐테고?”
보쿠토의 사과가 튀어나오자 아픈 척은 어디로 갔는지 이를 드러내고 한쪽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는 쿠로오의 앞에서 어쩔 줄 모르던 보쿠토의 얼굴이 쩌적 굳었다. 우와. 우리 대장님 완전 악역 같아여.
“이 넘치는 혈기는 아꼈다가 훈련할때나 쓰는게 좋을 것 같네~”
보쿠토가 어버버 말을 더 잇지 못하는 사이 쿠로오는 싱긋 웃으며 보쿠토의 볼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는 팀을 인솔해 한발 먼저 훈련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얄밉게도 먼저 갑니다? 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뭐, 뭐...!”
“흐음. 저 사람이 그 유명한 네코마의 대장이군요.”
“뭐야 저거어~!!”
뒤늦게 뒤에서 버럭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쿠로오는 담 약한 사람의 심정지를 유발할 수 있는 얼굴로 후후 웃을 뿐이었다.
보쿠토는 뒤늦게야 그 아픈 척이 연기인데다가, 제 능력 조절도 못하는 얼간이 사이커라는 욕을 들었다는 걸 깨닫고 방방 뛰었지만 이미 떠난 버스였다.
“젠장, 느물거리기나 하고..!”
“확실히 보쿠토씨보다 몇배는 어른스럽군요.”
“뭐라고오!?”
저랑 같이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탐미님..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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