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해. 다들 자고있을 테니까.”
쿠로오와 보쿠토는 어두운 고아원 안쪽의 복도를 살금살금 지났다.
유령만 안 나오다 뿐이지, 어쩐지 적막하고 차가운 것이 슬리데린의 기숙사와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쿠로오는 발끝을 세워 3층의 작은 방으로 보쿠토를 안내했다. 책상 하나와 작은 책상, 그리고 옷장 하나로 꽉 차버리는 아주 좁은 방이었다.
보쿠토는 방으로 들어서며 자신도 모르게 코를 킁, 하고 한번 훌쩍거렸다.
쿠로오 냄새. 여기가 진짜 쿠로오의 방이구나. 많이 볼 것도 없는 작은 방이지만 이 곳이 쿠로오의 방이라는 이유만으로 굉장히 새삼스러워졌다.
“여기 잠깐 앉아있어, 욕실에서 수건에 물을 묻혀올 테니까..”
쿠로오는 속삭이듯 중얼거리곤 방을 소리없이 빠져나갔다. 보쿠토가 어정쩡하게 바닥에 앉아 방을 둘러볼 짧은 시간이 지난 뒤 쿠로오는 금새 방으로 되돌아왔다.
“쿠로, 풉!”
보쿠토가 자신도 모르게 반색하며 벌떡 일어나는 순간 따끈한 물에 적셔진 수건이 보쿠토의 얼굴을 폭 덮어버렸다.
보쿠토가 화들짝 놀라 손을 들어올리는 순간 쿠로오의 손가락이 수건 너머로 보쿠토의 얼굴을 꾹꾹 눌러 닦기 시작했다.
보쿠토는 얌전히 앉아 쿠로오가 제 얼굴과 손을 꼼꼼히 닦아주는 것을 멍하니 내려보았다.
‘왠지 상냥하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몰래 따라왔다고 잔뜩 화낼 줄 알았는데.. 보쿠토가 상기된 얼굴로 쿠로오를 올려다보자, 보쿠토의 거칠어진 손끝을 수건으로 문지르던 쿠로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 보시다시피 나 고아야.”
“으응..”
“그래서, 널 초대할 수 없었고.”
보쿠토는 자신의 손끝에 시선을 고정한 쿠로오에게로 눈길을 던졌다.
쿠로오의 목소리는 높낮이가 거의 없었고 그래서 얼핏 듣기에 무덤덤하게 느껴졌다.
화가 난 기색은 아니었다.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쿠로오의 말이 애매하게 끊겼다. 잠시 뒷말을 기다리던 보쿠토는 어쩔 줄 모르다가 간신히 외쳤다.
“미안해, 나 집에 얼른 돌아갈테니까..! ”
“이 추위에, 빗자루를 타고? 네가 아무리 잘나가는 추격꾼이라지만 보온 마법도 없이 그러는건 자살행위야. 가다가 얼어죽을껄.”
“겨울도 아닌데 고작해야 감기정도겠지.”
보쿠토는 강한 척 코웃음을 치며 어깨를 으쓱했지만 쿠로오는 짐짓 엄한 목소리로 보쿠토를 밀어붙였다.
“말 끝까지 들어 바보야. 오늘은 내 침대에서 몰래 재워줄테니까, 내일 날이 밝기전에 떠나. 아침 정도는 챙겨줄 수 있으니까.”
“응?”
“좁지만 낑겨 자면 둘이 못잘것도 없으니까, 들어와.”
보쿠토는 눈을 깜박였다. 침대에 누운 쿠로오가 이불을 들어올려 매트리스 위를 손바닥으로 약하게 팡팡 치며 보쿠토를 부르고 있었다.
“어서.”
거절하려고 했는데.
보쿠토는 홀린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춥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이불 안쪽은 이상하게도 따스했다. 보쿠토는 자신도 모르게 후우, 하고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었다.
“너 혹시 아직 추워? 몸이 차갑다.”
“아니, 괜찮은데..”
“교복 구겨져서 어쩌냐..”
“그것도 괜찮아! 빨면 되지!”
뭐 다 괜찮대. 쿠로오가 목을 울려 키득키득 웃자 코에 맞닿은 쿠로오의 어깨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보쿠토는 어쩐지 쿠로오를 껴안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것처럼 손이 근질근질해져 쿠로오의 허리를 양 손으로 꽈악 껴안아 제 품에 닿았다. 어리광을 부리듯 콧날을 쿠로오의 목과 어깨 사이로 끼워넣은 보쿠토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쿠로오는 보쿠토가 춥다고 생각한 건지 등 뒤로 팔을 둘러 이불을 목끝까지 덮어주었다.
그리고 쿠로오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나 말야. 처음엔 내가 고아란거 딱히 숨길 생각이 없었어.”
“으응..”
“그런데 이야기하다 보니까 어쩌다보니.. 이야기를 할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야 하나.”
“아.....”
“고아라고 했을 때 다들 어쩌면 좋냐는 식으로 날 쳐다보는것도 사실 좀 맘에 안들고.”
“.......”
“이렇게 되고 나니 왜 숨기려고 했더라 싶네.”
“쿠로오..”
보쿠토는 쿠로오의 어깨에서 얼굴을 떼어내 그를 마주보았다. 쿠로오의 다정한 갈색 눈동자가 동그랗게 놀란 보쿠토를 담고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예쁜 표정..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쿠로오는 작게 중얼거렸다.
“날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게 잘 자, 하며 눈을 감는다. 보쿠토는 새빨개진 얼굴에 열이 나는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쿠로오의 등 뒤로 얽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너무 좋아, 쿠로오가 너무 좋아.
보쿠토는 입밖에 낼 수 있었더라면 진작에 수십번쯤 외쳤을 문장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나도 고마워, 네가 나를 만나러 호그와트까지 와줘서 너무 고마워..
보쿠토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그 얼굴은 제법 비장해보였다. 베개에 누운 쿠로오는 눈을 다시 뜨고 의아한 표정으로 보쿠토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있잖아 쿠로오.”
“응?”
“우리 어머니는 나를 낳고 돌아가셨대.”
뭐? 쿠로오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묻어났지만 보쿠토는 코를 한번 훌쩍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 그럼 매주 소포 보내주시는 어머니는..”
“응. 새엄마. 그리고 나, 사실 아홉 살이 될 때까지 마법은 하나도 못 썼어.”
“.....?”
“보통 순수혈통의 마법사들은 대여섯살만 되면 유아용 지팡이를 가지고 놀거든. 나 처음 마법 쓴 날에 혼자 몰래 울었다? 영영 마법을 못 써서 집에서 버림받을 줄 알았거든.”
쿠로오는 보쿠토의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말에 멍하니 눈을 깜박거렸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늘 자신감에 넘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보쿠토라고 생각했었다.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호그와트에 오지도 못했을 거고, 너도 못 만났을꺼 아냐.”
“......”
보쿠토는 쿠로오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고, 그 웃음에 쿠로오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얼굴로 입을 살짝 열었다 닫았다.
“지금.. 나한테 비밀 이야기 한거야?”
평소와 달리 어색한 문장이었다. 보쿠토는 자신의 치부를 들켰을 때보다 더 불안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쿠로오를 내려다보고는 응! 하고 대답하며 히죽 웃었다.
“그냥 나도 쿠로오의 비밀을 알았으니까, 나도 하나 말해주고 싶었어.”
“바보냐. 그런건 억지로 말하는게 아니거든?”
“억지 아닌데? 그냥 난 쿠로오가 나에 대해서 잔뜩 알고 있으면 좋겠어!”
“웃기는 녀석.”
어두운 속에서도 보쿠토의 노란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다.
쿠로오는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고는 보쿠토의 어깨를 잡아 끌었다. 눕기나 해. 라고 말하듯 약한 손짓에 보쿠토는 순순히 침대에 등을 눕히고, 얼른 몸을 돌려 쿠로오 쪽으로 돌아누웠다.
쿠로오의 숨결이 볼에 닿아 간지러울 정도로 가까이 붙은 보쿠토는 보채듯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린 서로 비밀을 하나씩 공유한거지? 그렇지?”
“그러네.”
선선히 나온 긍정의 말에 가슴이 끓는 물이 담긴 냄비처럼 자꾸만 달그락거렸다. 언젠가 이 물이 흘러넘쳐서 쿠로오의 발끝을 적시면 쿠로오도 날 다시 봐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간신히 멈췄던 눈물이 비죽 나올 것 같았다.
마음만 같아선 밤 새도록 자는 쿠로오의 얼굴을 하염없이 쳐다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보쿠토와 쿠로오는 어린 짐승처럼 서로를 껴안고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먼저 잠에서 깨어난 것은 잠자리가 불편했던 보쿠토였다. 보쿠토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는 멍한 얼굴로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평소와 달리 딱딱한 매트리스에 구겨져 잔 덕에 등이 뻐근했지만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린 쿠로오가 바로 옆에 누워있다는 사실은 퍽 고무적이었다.
“도련님, 이렇게 불편한 곳에서 주무시다니..”
물론 일어나자마자 들은 것이 집요정의 목소리라는 건 아쉬웠지만.
아마 쿠로오와 보쿠토가 잠에 빠진 뒤 이곳에 도착해서 차마 보쿠토를 깨우지 못하고 밤새 서서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보쿠토는 침대 옆에서 자신을 부르는 집요정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한 뒤, 실실 웃으며 쿠로오의 어깨로 얼굴을 가져가 작게 쿠로오를 불렀다.
“테츠~”
“우....”
“일어나. 응?”
쿠로오의 등 뒤를 덮듯이 껴안은 보쿠토가 쿠로오의 뒷목에 이마를 붙이고 얼굴을 비볐다. 입으로는 일어나라 하지만 사실은 쿠로오를 놔주기 싫은 것처럼 등을 눌러, 쿠로오가 비켜,, 라고 웅얼거리며 눈을 꿈벅거렸다.
아 젠장, 새벽같이 일어나서 보쿠토 녀석을 보내려고 했는데 창문 밖은 해가 이미 진작에 떠오른 상태였다.
“으, 지금 몇시야?”
“한.. 아홉시쯤 됬을라나?”
“망했네.. 우리 고아원 외부인 출입금지란 말이야.”
“아, 그건 걱정마! 집요정이 왔거든!”
집요정? 그 말에 고개를 돌려 확인하자 언제 온 건지 방문 앞에 우물쭈물한 기색으로 서 있던 집요정이 고개를 푹 숙였다.
“..순간이동으로?”
“응!”
방학 때마다 보쿠토를 데리러 오던 집요정이라 익숙한 얼굴이었다. 집요정은 품 안에 가지런히 접힌 보쿠토의 망토와 그의 빗자루를 든 상태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보쿠토는 아직 잠이 덜 깬 멍한 얼굴로 싱글벙글 웃으며 쿠로오에게 대뜸 물었다.
“나 가끔 여기 놀러와도 돼?”
“안돼. 알바 있어.”
“알바가 뭔데?”
“편지해.”
쿠로오는 그렇게 말하며 기지개를 쭈욱 펴고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편지로는 쿠로오를 볼 수가 없잖아! 볼을 불퉁 부풀린 보쿠토가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쿠로오의 방문을 똑똑 노크했다.
이크! 하고 부산스레 일어난 쿠로오가 보쿠토의 등을 떠밀었다.
“일단 집에가서 편지해!”
“쿠로오, 잠깐만!”
“주- 주인님이 기다리고 계셔요! 작은 주인님!”
“아직 이동하지-”
팟!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보쿠토와 집요정은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쿠로오는 어깨를 으쓱 올리고는 문을 열었고, 방 안을 슬쩍 흩은 켄마가 그에게 물었다.
“...갔어?”
“응. 도와줘서 고마워 켄마.”
“아침 먹어.”
제 할말만 툭 내뱉고 돌아가는 켄마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쿠로오가 천천히 뒤를 따랐다. 보쿠토가 올까? 안올까? 아마 오겠지. 어쩌면 오늘 밤 당장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문득 뒤를 돌아본 켄마가 입을 열었다.
“꿈 꿨어?”
“어?”
“아니, 웃고 있길래.”
내가 그랬나? 쿠로오는 머쓱한 얼굴로 제 입가를 문질렀다. 내가 보쿠토를 떠올리면서 웃고 있었나.. 하긴, 워낙에 유쾌한 녀석이니까.
쿠로오는 잠시 눈곱도 떼지 않고 제 방에서 쫓겨난 보쿠토를 떠올리며 키득거리다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 올리곤 발을 다시 움직였다.
아직은 역치 미만의 감정이었다.
※ 역치 : 생물이 외부환경의 변화, 즉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
둘은 사랑을 하고잇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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