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보쿠토 x 갬블러 쿠로오
※ 조직폭력배의 묘사는 상상에 기반한 것으로 상당부분 미화될 수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리베리타는 남미대륙 남동쪽 포클랜드와 아르헨티나 사이에 위치한 환락과 무법의 도시다. 정식 명칭은 리베리타 항구로, 1900년대 초반 구리가 풍부하게 매장된 광산이 개발되어 번창하던 곳이었다.
그것이 과거형인 이유는 간단하다.
리베리타 항의 구리맥이 말라버린 것이다. 그 대신 황철석 광맥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을 금광으로 착각한 사람들에 의해 리베리타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자본이 몰려들고 도시는 뜨내기와 꿈을 안고 골드러쉬에 휩쓸려온 사람들로 들끓었다.
그러나 채굴한 광석이 금이 아닌 황철석임이 밝혀지면서 리베리타에 급격히 몰려들었던 자본은 빠르게 말라들었다.
리베리타에서 더 이상의 채굴이 어렵다고 판단한 투자회사는 재빠르게 발을 뺐으나 그러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줄어든 일자리에 도시를 떠나는 노동자도 있었으나 모든 것을 버리고 왔기에 돌아가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다.
두 면은 바다로, 두 면은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이 은밀한 도시에 먼저 손을 뻗친 것은 시칠리아에서 발생하여 19세기 말 미국 이민과 함께 아메리카 대륙으로 세력을 확장한 마피아였다.
당시 마피아들은 미국 금주법을 틈타 밀주를 들여올 거점도시로 리베리타를 장악하기 시작했는데, 약 이십여년 뒤엔 마피아뿐만 아니라 온갖 무법집단의 요새가 되어있었다.
그 변화가 가속된 것은 1970년대 들어 미국이 발호한 리코 법으로, 더이상 미국에서 기반을 두고 활동하기 어려운 조직들의 이해가 모여 리베리타 항을 철저히 은폐하기 시작했다.
공권력의 손이 미치지 않은 무법자들의 낙원, 무력집단의 이익 속에서 철저히 유린당하는 남미의 작은 소도시는 지구상의 온갖 쓰레기들을 담고 있음에도 겉으로 보기엔 극히 온화한 기후의 다른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도시의 주민들은 죄다 도박중독, 마약쟁이, 창기, 건달, 총기밀매업자, 알콜중독에 변변찮은 인간군상들이다. 당연한 일이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이런 미친 도시에서 살아가느니 위스키를 들이마시고 관자놀이에 총알 한방 박아넣고 말겠지.
도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공권력이 아니라 총과 힘을 가진 무력집단들이었다.
러시아의 블러드마피아, 홍콩의 삼합회, 멕시코의 시날로아 카르텔, 시칠리아의 갱까지, 철저히 그들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돌아가는 도시에서 쿠로오는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굽히며 사는 법을 익혔다.
원하는 것을 가지기 전에 미리 포기하는 습관을 배웠다.
총 없이 어두운 골목을 혼자 걸어서는 안된다는 지식도, 이 곳에서 사람노릇을 하기 위해선 기꺼이 손을 더럽혀야 한다는 마음가짐도 익혔다.
하긴, 쿠로오도 위의 인간군상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타입이다. 그는 이 도시에서 포커를 쳤다.
~리베리타 항의 검은 고양이~
쿠로오 테츠로라는 이름은 남미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건 같은 고아원에서 유년기를 보낸 켄마도, 야쿠도 마찬가지였다. 쿠로오는 아마도 자신들이 태어나기 전 이곳에 팔려오듯 자리잡은 창기들의 국적이 일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비슷한 시기에 이곳에서 태어나버린 그들은 어쨌든 꾸준히 서로를 위하며 이 도시에서 살아남았다. 그들이 열여섯이 되던 해 삼합회와 카르텔의 갈등에 고아원이 불타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어느 정도 살아갈 만 했다. 아무리 막나가는 자들이라도 별다른 명분 없이 고아원을 건들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그들이 살던 고아원의 부지가 땅값이 오르기 전의 이야기였다. 도시에서 몇 없이 제 기능을 하는 곳-성당과 은행이다-중 한곳의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런 성당의 사람들도 이미 불타버린 고아원을 다시 지어줄 수는 없었다.
이토록 살기 퍽퍽한 도시의 쿠로오가 기를 쓰고 살아남으려하는 이유는 별 것 없었다.
희망, 어쩌면 절망보다도 더 질이 나쁜 것들이 쿠로오와 고아원 동기들의 머리 한 구석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밖은 이곳보다 훨씬 살기 좋대.
이 도시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죽을까봐 마음 졸이지 않고 제대로 살 수 있어.
고작 배로 한 시간, 비행기로 이십분만 가도 멀쩡한 바깥세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건만 이런 도시에서 제대로 된 교통수단을 기대하는 건 지나친 사치였다. 실제로 제대로 된 뒷배가 없는 사람이 배를 탔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아프리카의 해적노예로 팔리거나 원양어선의 노리개가 되는 건 물론이고 심하면 내장을 죄 털리고 남은 몸뚱아리는 갈치와 백상아리의 먹이가 되기 일쑤였으니까.
물론 안전한 교통수단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은, 그건 지나치게 비쌌다. 제대로 된 후원자가 지원해주지 않는 이상은-보통 이곳의 후원자란 불법무력집단을 뜻한다.- 꿈도 꾸지 못할 만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고 하던가. 떠날 수 없으면 적응하는 수밖엔 없었다.
쿠로오는 이 도시에서 카드를 만졌다. 한 마디로 도박꾼이란 소리였는데, 술집만큼 많은 수많은 도박장에서 쿠로오의 검은 머리칼을 찾아볼 수 있는 날은 별로 없었다.
‘이른 나이에 비명횡사 할 일 있나.’
쿠로오는 주로 인터넷으로 포커를 쳤다.
켄마가 이 도시를 떠나기 전 조립한 컴퓨터 두 대와 한달에 $100이라는 거금을 내고 옆 건물에서 끌어온 랜선이 쿠로오의 밥벌이 수단이었다.
게임에서 번 인터넷머니를 사이트에서 다시 환전해 통장에 입금한 돈을 꼬박꼬박 저축하면서, 쿠로오는 언젠가 이 도시를 뜰 만큼의 돈을 모으기를 기대하며 바짝 엎드려 살았다.
너는 재능이 있어.
쿠로오에게 포커를 가르쳤던 과일가게 할아버지의 말이었다. 어쩌다 한몫 잡아 가게를 열었지만 그 사람도 정말 답 없는 인간 말종이었다. 도박으로 자식에 아내까지 팔아먹고 술독에 빠져 허우적대더니, 심심하다는 이유로 과일가게 상자를 옮기던 쿠로오에게 포커를 가르쳤다.
그 노인의 말에 의하면 타고난 포커페이스에 손가락이 길어서 타짜로 살면 대성할 것이란다.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잘 나가던 꾼이었는지 침을 튀기며, 천금을 주고도 못 배울 수업이라고 그는 늘 으시대었다.
한번 앉으면 십만 달러 오십만 달러씩 마구 벌어들였다고? 쿠로오는 속으로 웃기지 말라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꾼이 이런데서 과일장사나 하고 있을리가 있나.
쿠로오는 겉으로는 와아! 진짜 대단하다! 하고 놀라는 척 하며 그의 비위를 맞췄다. 과일가게 할배의 비위를 맞추는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고작 상자 드는 일로 먹고살기에 리베리타는 지나치게 살벌한 도시였고, 그가 제대로 된 꾼이 아니든 맞든 재주는 하나라도 많은게 좋았다.
무엇보다 쿠로오가 자신이 가르친 기술을 곧장 흉내내거나 하면 껄껄 웃으며 썩기 직전의 사과나 오렌지 같은것을 얹어주기도 했던 것이다. 사실 그땐 그게 제일 기뻤다. 그래서 허벅지나 허리를 슬슬 문지르고 쓰다듬는 역겨운 손길까지 참아가며 포커를 배웠는데, 과연 쿠로오에겐 재능이 있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도저히 쿠로오에게 가르칠게 없어진데다 이기지도 못하게 되었다는걸 깨달은 노인은 상처입은 자존심을 달래고자 다시 도박판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기껏 노후자금으로 마련한 과일가게가 날아가고, 간 크게도 마피아 앞에서 장난질을 치다가 어느 날 사라졌다. 아마 바닷속에 던져지지 않았을까? 쿠로오는 심드렁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도 노인은 가기 전에 쿠로오에게 제대로 가르침을 주고 떠났다.
그날 이후 쿠로오에겐 한가지 철칙이 생겼다. 살고 싶으면 도박판에서 함부로 돈을 따지 말 것.
쿠로오가 인터넷으로 포커를 치기 시작한것도 사실 그것 때문이었다. 얼굴을 맞대고 돈을 따기에 이곳은 지나치게 여유가 없는 곳이었다. 제대로 된 뒷배를 가진 타짜가 아니면 도박판에서 함부로 돈을 따가는 일은 엄두도 못 내는 일인 것이다.
그래도 포커라는게, 그리고 쿠로오가 주 종목으로 삼는 홀덤이란 게임이 사실 카드놀음이라기보단 머리싸움과 눈치싸움에 더 가까운지라 쿠로오는 가끔씩 도박판으로 가서 감을 살려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도박을 하되, 돈을 따가지 않기로 한 것인데.. 가끔 도박판에 나타나 칩을 휩쓸어갔다가, 어 하는 사이 죄다 뱉어내고 짤짤이 칩만 흔들며 돌아가는 특이한 행태로 오히려 유명해져 버렸다.
아니, 독보적이라도 봐도 좋을 정도의 유명세였다.
어느 정도냐면 불운의 아이콘인 검은 고양이가 그의 별명이 될 정도다.
쿠로오 테츠로라는 이름보다 리베리타 항구의 검은 고양이라는 별명이 훨씬 유명하기도 하고.
아, 그녀석? 실력은 있는 것 같은데, 끗발이 없더라고.
그야 어쩔 수 없지? 검은 고양이잖아?
늘 그런 식이니 도박판을 관리하는 조직에서도 쿠로오가 나타난다해서 긴장하거나 하지 않았다.
가끔 진짜 조직에 속한 꾼들에게서 칩을 따거나 하면 그런 쿠로오의 실력을 눈여겨보았다가 전속 타짜로 일하라는 권유를, 아니 강요를 몇 번 받기는 했지만 쿠로오는 납작 엎드리며 살살 빠져나가곤 했다.
‘저는 이상하게 칩을 따고나면 긴장해서 제 실력이 안나오거든요.’
게임이란게 자신이 땄다고 그대로 냉큼 테이블을 떠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아무리 조직에 속해있다 해도 그건 카지노의 매너가 아니었고, 쿠로오의 유명한 습관을 아는 갱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쿠로오를 놔주곤 했다. 그렇게 쿠로오는 이 도시에서 도박으로 먹고 사는 사람 치고 유일하게 조직들의 손을 타지 않은 유일한 갬블러가 될 수 있던 것이다.
“젠장...!”
쿠로오는 욕설과 함께 카드를 집어던지듯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그대로 테이블에 엎어졌다. 그와 당시에 쾅! 하고 테이블을 주먹으로 치는 소리, 그리고 와르르륵 쌓아둔 칩이 무너지는 소리가 동시에 귓가에 맴돌았다.
카드 오픈과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쿠로오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떨 일어나 양 팔로 쿠로오의 칩을 쓸어갔다.
“미친! 투 페어 하이로 이겼어!”
“아깝다, 블랙 캣!!”
“으, 으하하하!! 이게 다 내 돈이라고!!”
쿠로오는 테이블에 얼굴을 처박은 사이 억지로 분하고 억울한 표정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숨을 오래 참으면 격정을 참는 것처럼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거칠어지기 때문에 자주 쓰는 수법이었다.
쿠로오가 부들부들 떨다가 고개를 와락 들어올리자 누구의 짓인지 머리 위로 얼음이 녹아 차가워진 럼주가 쏟아져 내린다. 볼을 따라 흐르는 럼주를 혀로 햘작이고는 감질나는 갈증에 옆 자리에서 요란을 떠는 녀석의 잔을 빼앗아 원샷해버렸다.
“~!!”
공업용 알콜의 냄새가 나는 싸구려 위스키였지만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마셔버린다. 크으, 하고 마신 잔을 머리 위로 탈탈 털어 잔을 테이블 위로 던졌다. 그러나 잔을 빼앗긴 쪽은 기분이 나쁘지도 않은지 으하하하, 하고 대인배처럼 웃을 뿐이다.
아아, 그래.. 관용은 지갑에서 나오지. 쿠로오가 가졌던 칩의 대부분을 쓸어갔으니 한방에 약 삼만 달러 가까이 벌어들인거나 마찬가지다. 쿠로오와 마지막까지 테이블에 남아있던 남자의 동료인지 이봐 페르난도, 검은 고양이에게 한잔 쏘라고!! 하고 기세 좋게 쿠로오에게 술을 가져오라 시킨다.
쿠로오가 미간을 찌푸리고 젖은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쓸어올리자 엎어진 유리잔과 인디카 한 병이 턱턱 놓였다. 제기랄, 한방에 돈을 그렇게 벌었으면서 사는게 고작 에일 맥주 한 병이라고?
쿠로오는 표면에 이슬이 맺히지도 않을 정도로 미지근한 맥주 뚜껑을 날리고 그대로 병나발을 불었다. 쿠로오의 테이블 주변에 있던 구경꾼들은 이내 흥미를 잃고 하이에나처럼 다른 구경거리나 잔돈 부스러미를 찾아 떠나갔다.
멍하니 주변을 힐끔거리던 쿠로오는 자신의 앞으로 칩을 몇 개 던진 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봐, 수고했어, 블랙 캣.”
“하?”
“‘운’이 안 좋았네, 안 그래? 하필 내가 K를 쥐고 있어서 말이지!”
“......”
운이 좋지 않았다, 라는 건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일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상대는 리베리타의 블랙 캣, 카지노에서 제일 불행한 사나이일 테니까.
마지막까지 비등비등하게 다투다 막판에 고작 하이로 승패가 결정된 아슬아슬한 상황이 아니면 사실 쿠로오가 있는 테이블에 이렇게 구경꾼이 몰릴 일도 없었다.
사실 그는 실력이 좋다. 그건 도시 안에 흩어진 카지노의 그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였다. 그의 불운이 제대로 움직이기 전까지는 무섭게 칩을 따다가- 갑자기 불운이 움직이는 순간부터 그 칩은 속절없이 쿠로오의 손을 떠난다.. 그러니 사실 그때의 쿠로오는 누구와 붙어도 이기기 힘든 상태가 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해주면 나야 고맙지만.’
쿠로오는 대답 대신 남자가 던져준 칩을 주워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지노를 나서는 뒤에서 블랙캣을 위하여 건배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쿠로오는 말없이 중지손가락을 올리고 그곳을 나섰다.
리베리타 항구는 가상의 도시입니다!
블랙 라군의 로아나프라를 모티브로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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