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두 달쯤 뒤, 쿠로오는 보쿠토의 끈질긴 구애를 받아들여 정식으로 교제를 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이것저것 재어 보고 승낙을 한 것이었는데 남들이 보기엔 갑작스러운 발표였던 모양이었다. 쿠로오는 선배가 아깝다며 우는 배구부 후배들에게 흐뭇하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짜식들..!
“진짜요!?”
“뭐.. 보쿠토 녀석 성격도 괜찮고.. 배구할 땐 가끔 멋있잖아?”
“말도 안 돼! 선배가 훨씬 아깝다구요!!”
“헤에.. 쿠로오 네 이상형이 배구 잘하는 사람?”
“꼭 그런건 아니지만.”
둘의 연애는 순조로웠다.
애초에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취미나 성격이 모나지도 않았고, 스킨십도 거침이 없었다.
가끔 분위기를 타서 벤치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는 쪽쪽거리며 연습방해를 할 때 외에는 연애와 부활동의 선도 칼같이 지키는 편이었다.
쿠로오가 반신반의한 느낌으로 보쿠토와 사귀기로 한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주 순탄한 연애라고 볼 수 있었다. 보면 볼수록 귀여운 데다가 노란 눈망울에 쿠로오 좋아해! 라고 써붙이고 쳐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비죽 튀어나왔다.
길을 가다가 손등이 스치면 조심스레 손가락을 잡아와서, 웃으며 보쿠토의 손바닥을 꽉 잡아주는 것은 쿠로오의 몫이었다.
손 잡는건 부끄러워 하면서도 전화로는 잘도 부끄러운 말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귀고 나서부터 자기 전에 조금씩 통화를 하는건 일과가 되었는데, 새삼 보쿠토의 조근조근한 목소리가 듣기 좋은 음역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보쿠토가 의외로 인형뽑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가방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인형을 다 스스로 뽑은 거였다니. 쿠로오의 가방에 하나둘씩 증식한 인형은 모두 보쿠토가 쿠로오에게 뽑아준 것들이었다.
그야말로 깨가 쏟아지는 연애였다.
연습이 없는 주말에 소파에 누워 보쿠토가 선물한 추리소설을 읽던 쿠로오가 문득 입을 열었다. 물컵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던 켄마의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었다.
“있잖아. 보쿠토 말이야.. 보다 보면 귀엽다?”
“......”
“잠깐만 켄마, 뭐야 그 시선. 나 상처받을 것 같아.”
“아니,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요샌 키스할 때 슬쩍 엉덩이도 만지더라?”
“들어간다.”
“켄마 너무해!”
“쿠로 네 연애 사정까지 알고싶지 않아..”
“나는 자랑하고 싶다고!”
이런 걸 부원들이나 반 친구들한테 얘기할 수는 없잖아!
쿠로오가 켄마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래서 켄마는 쓸개를 씹은 표정을 하면서도 쿠로오의 옆에 앉아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기 시작했다.
어디서 데이트를 했고, 뭐를 먹었고. 요즘은 보쿠토 덕분에 살이 2키로는 찐 것 같다며 투덜대던 쿠로오는 대뜸 물어오는 켄마의 말에 볼에 식은땀을 매달았다.
“그래서, 섹스 할꺼야?”
“갑자기 돌직구네..”
“졸업할 때까지는 안 돼.”
“아버지냐.. 뭐, 나도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보나마나 내 쪽이 다리를 벌려야 할 것 같으니까.”
“흐응.”
켄마는 네가 참으로 그러겠다 싶은 표정으로 쿠로오를 빤히 쳐다보다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쿠로오는 켄마를 더 잡지 않고 소설책으로 눈을 옮겼다, 응 뭐. 졸업할 때까진 참아야지. 참아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
‘켄마는 참 머리가 좋단 말이야..’
쿠로오는 그 켄마의 반응을 떠올리며 묘하게 웃었다.
영화관 안에서는 액션 영화 특유의 폭발음이 한창이었고, 쿠로오의 손은 바짝 긴장한 보쿠토의 허벅지를 슬슬 쓰다듬고 있었다.
애초에 신체 건장한 남학생 둘인걸? 키스는 고백받은 그 날 해치웠고 그동안은 옷 위를 터치하는 데에서 멈추었지만 보쿠토도 쿠로오도 은연중에 좀 더 진도를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보쿠토가 한참 인기 있는 히어로영화를 예매해왔고, 영화관에 들어오기 직전에는 화장실에서 몰래 진하게 키스를 나누고 왔다.
쿠로오는 부러 보쿠토 쪽을 쳐다보지 않고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보쿠토의 허벅지를 주물거렸다.
‘쿠, 쿠로오!’
보쿠토가 작게 외쳤지만 들리지 않는 것처럼 콜라를 쭈욱 빨았다.
버스에서 성희롱 하는 아저씨가 된 기분인가.. 작게 키득거리며 보쿠토의 사타구니 안쪽으로 손을 슬슬 옮기는 쿠로오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이내 보쿠토의 소중한 주니어 근처까지 손을 뻗은 쿠로오의 목울대가 긴장으로 꿀꺽 움직였다.
만져 버리면, 돌이킬 수 없겠지? 오늘 보쿠토네 집이 빈다고 했던가?
기대감과 두려움, 그리고 흥분이 적절히 뒤섞여 가슴이 아지랑이처럼 설레었다.
마침내 눈을 질끈 감은 쿠로오가 보쿠토의 주니어가 있을 자리를 손으로 약하게 움켜쥐었다.
“......!”
그러나 보쿠토의 다리 사이에서 쥐어진 것은 허전한 허공 뿐이다. 쿠로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보쿠토의 다리 사이를 확인하자, 보쿠토의 손이 쿠로오의 손목을 잡아챘다.
‘여기 영화관이잖아, 쿠로오!’
‘어, 어...’
귀까지 빨갛게 붏인 보쿠토는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쿠로오의 손을 붙잡아 깍지를 꼈다. 쿠로오의 손을 바짝 끌어당기는 폼이 그쪽도 몸이 달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지금 나갈래?’
‘아, 아니. 영화 보고...’
‘그럴래?’
어쩐지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멍한 눈으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쿠로오의 머릿속은 혼돈과 파괴로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왜 비어 있는데?’
쿠로오는 다시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손의 감각은 정상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거시기는 대체 어딜 간건데?’
쿠로오의 눈동자가 복잡하게 일렁거렸다.
*
멍하니 보쿠토와의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쿠로오는 그날 밤 잠을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그럴싸한 가절과 심증이 머릿속에서 엉망으로 뒤엉켰다.
첫 번째 : 생식기가 없다.
두 번째 : 내가 착각했다.
세 번째 : 내가 만질 줄 알고 미리 엉덩이 사이에 끼워뒀다.
네 번째 : 생식기가 너무 타이니해서 손으로 쥐어지지 않는다.
첫번째 가설은 수인적으로 비논리적이다. 일단 보쿠토 남자잖아? 인간이든 수인이든 남성이라면 모름지기 다리 사이에 두둑한 성기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설마 그 힘으로 남장여자는 아니겠지..
두 번째 가설도 회의적이다.
쿠로오는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뽕을 맞은 상태도 아니었다.
하물며 손으로 공을 만지는 스포츠를 하고 있는데 다리 사이의 감촉을 착각할 리는 없었다.
세 번째는..
‘인간인가 그거.’
아무리 사람의 거시기가 해면체의 조직을 지녔다고 해도 그런 묘기를 부리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부엉이 수인의 성기가 고무처럼 늘어나는 성질을 지녔다면 모를까..
하지만 그런 기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못 들었는데.
그렇다면 역시 제일 높은 확률은.. 네번째 가설인가.
“큽...!”
쿠로오는 세면대 앞에서 손바닥으로 입을 막고 눈시울을 붉혔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내 애인이.. 6.9센치 미만이라니!
쿠로오는 학교에 등교하고 나서도 멍한 눈으로 수업시간 내내 보쿠토의 미니멀한 주니어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수업시간 자신도 모르게 노트에 보쿠토의 거시기 사이즈를 추정하던 공식을 계산하던 쿠로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샤프를 손에서 떨구었다. 내가 대체 왜 이런 흉측한 계산을..!
쿠로오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속으로 외쳤다.
‘내 머릿속에서 나가!’
나가지지 않았다.. 코끼리를 떠올리지 마십시오. 라고 말하면 저절로 코끼리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고 마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합동연습이나 혹은 데이트를 위해 보쿠토를 만나면 자꾸만 보쿠토의 다리 사이로 시선이 향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하곤 했던 스킨십도 어색해지고 말았다. 스스럼없이 보쿠토의 엉덩이며 가슴을 만지던 손길에 묘하게 브레이크가 걸리고 마는 것이다. 쿠로오 스스로도 느낄 수 있는 변화였으니 보쿠토는 오죽하랴. 쿠로오는 자신의 뺨을 짝짝 치며 평소랑 똑같이 하자! 하고 스스로를 다잡았지만 보쿠토는 예전의 쿠로오와는 다른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말았다.
‘정신 차려 쿠로오 테츠로! 수인은 거기 크기가 다가 아냐!’
하지만 넣어지는 입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시점에서 보쿠토의 큐트한 사이즈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긴 했다..
‘요즘은 도구도 많이 나오잖아! 남자가 귀여우면 됐지!’
성교로 인한 쾌감만이 교감을 위한 도구는 아니니까, 괜찮다. 쿠로오는 이런 상황이 되고 나서야 자신이 스스로의 생각보다 보쿠토를 훨씬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된 사랑의 깨달음이었다.
헤헤 얼른 대운동회 가서 회지를 쓸어오고싶네여~!~! 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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