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로다니와 네코마의 합동 연습은 보쿠토와 쿠로오가 각 팀의 주장이 된 날부터 급격히 잦아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학생의 자치권이 강한 후쿠로다니 쪽에서 강하게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고, 도쿄 수위의 강팀과의 연습게임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네코마 쪽은 왠만하면 요구에 응하는 편이었다.
그 날도 주말 이틀을 통째로 후쿠로다니와의 연습에 투자하기로 한 날이었다.
골든위크 후 첫 합동연습이니 빠릿하게 군기가 들어갈 만도 하건만 쿠로오의 안색은 영 심란했다. 그도 그럴것이, 단 2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보쿠토의 방문을 다섯번이나 받은 것이다.
‘오늘은 또 뭔데..?’
‘피자헛 신상 피자! 전에 네가 맛이 궁금하다고 했잖아! 얼른 먹어봐!’
올 때마다 기름진 음식을 가져와서는 쿠로오가 음식을 입에 대는 것을 확인하고 신난 얼굴로 돌아가기를 세번째쯤 된 날, 쿠로오가 보쿠토를 붙잡고 너 뭔가 나한테 잘못한 거 있냐, 솔직히 말하면 다 용서해주겠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고 보쿠토는 방긋방긋 웃으며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잘못은 사실 저 녀석이 아니라 내가 한 게 아닌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쿠로오는 보쿠토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를 헬쓱한 얼굴로 네코마의 부원들을 인솔해 후쿠로다니 체육관으로 들어섰다.
한 학교에 체육관이 한개도 두개도 아닌 세 개나 있는 이 부유한 사립고의 시설은 네코마와 비교할 바가 안 됐다.
쿠로오는 윤이 반짝반짝 나는 바닥을 만족스럽게 쳐다보고는 부원들에게 워밍업을 지시하자
조금 늦게 도착한 보쿠토와 후쿠로다니 멤버들이 체육관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쿠로오~!”
“여어..”
팔을 휘휘 흔들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보쿠토의 기세에 쿠로오는 손을 가볍게 살랑 흔들고는 슬적 뒷걸음질을 쳤다. 이유 없이 자꾸 먹을 걸 가져다주면, 마녀의 집에 도착한 헨젤과 그레텔같은 기분이 되어버린다고..
“이거 먹을래?”
“또?”
보쿠토는 잠시만! 하고는 져지 주머니에서 초콜릿 바를 꺼냈다. 편의점에서 흔하게 파는 포장지가 아니었다.
“이번에 아버지가 스위스 출장 다녀오시면서 사오신 건데..”
말을 하면서 투박한 손으로 초콜릿의 포장을 요령있게 뜯어낸다. 네모난 초콜릿의 귀퉁이를 뚝 부러뜨려 먹어봐! 하고는 쿠로오의 입가에 초콜릿을 가져왔다.
“......”
이 녀석 화장실 갔다가 손은 씻었겠지? 잠시 보쿠토의 손을 쳐다본 쿠로오는 입을 작게 벌려 초콜렛을 받아 먹었다. 오물오물 혀위에 두고 굴리자 약간 쌉쌀하면서도 카카오의 풍미가 강한 고급스러운 단맛이 입안을 채웠다. 쿠로오는 자신도 모르게 맛있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치? 맛있지?”
“응.. 진짜 맛있네.”
보쿠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활짝 웃더니 쿠로오의 손에 초콜릿 바를 쥐어주곤 맛있게 먹어! 하고 외치며 맞은 편의 벤치로 후다닥 뛰어갔다.
그런데 이거 진짜, 혼자 먹기 아까울 정도로 맛있잖아? 손에 들린 포장지를 기억해두려는 것처럼 손에서 이리저리 굴리던 쿠로오는 옆으로 다가온 켄마에게 초콜릿 한 조각을 떼어주었다.
“먹어봐, 이거 진짜 맛있어.”
“아니 난..”
“아, 하세요.”
미간을 구긴 켄마의 입에 거의 억지로 초콜렛을 물려주자 켄마가 쿠로오를 힐끔거리며 초콜렛을 씹었다.
“맛있긴 한데..”
“그치? 이거 스위스에서만 파는 걸까..”
쿠로오는 작게 한조각 잘라 자신의 입에 넣었다. 아껴 먹고 싶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저건 어떻게 할꺼야?”
“뭐가?”
켄마가 턱짓으로 가르킨 곳을 돌아본 쿠로오는 황당한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눈을 끔벅거렸다.
털썩 주저앉은 보쿠토가 배신감 가득한 눈으로 쿠로오를 울먹이며 쳐다보고 있었다. 잘은 들리지 않지만 왜 그걸 나눠주는거야! 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녀석인데 갑자기 왜 저래? 쿠로오는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 뭐야. 저녀석 왜 저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데?”
“방금 쿠로오 네가 보쿠토 씨의 구애를 거절했잖아.”
“...나 이해할 수 없는 단어를 들어버린 것 같은데.”
그리고 이어지는 켄마의 말에 쿠로오는 얼빠진 얼굴로 말을 더듬댔다.
“왜 후쿠로다니 주장이 쿠로 너한테 수작을 걸고 있어?”
“나..?”
숫제 콧물까지 찔끔 흘려가면서 이쪽으로 달려나오려는 것을 코노하와 와시오가 있는 힘껏 막고 있었다. 쿠로오는 자신도 모르게 보쿠토와 손에 들린 초콜렛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보쿠토가..?”
“응.”
“나한테...?”
“몰랐어?”
쿠로오는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몰랐다.
당황스러웠지만 일방적이었던 호의의 정체를 알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보쿠토가 연습에 참가하며 쿠로오 쪽을 힐끔거리는 동안 쿠로오는 휴대폰으로 부엉이 수인에 대해 간단히 검색을 시작했다.
‘부엉이 수인의 발정기는 평생 한번 오며 이때 반려자를 정한다. 발생 시기는 성인이 된 뒤 12월~1월사이의 겨울에 오지만 개인차가 있으며 남성의 경우 반려자에게 음식을 물어다 주는 습성이 생긴다..’
아. 이거다.
쿠로오는 그동안 껄쩍지근했던 보쿠토의 행동의 정체를 알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단순히 나랑 교미하고 싶었던 건가..
‘잠깐만.’
물 흐르듯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에 쿠로오는 자신도 모르게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각해보니 그냥 쉽게 넘어갈 만한 게 아니잖아!?
평생 한번 오는 발정기라면 이건 그냥 사귀자 수준이 아니지 않나!?
쿠로오가 땀을 뻘뻘 흘리는 사이 어영부영 시간은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다. 마침내 팀원들로부터 자유를 얻었는지, 보쿠토가 쿠로오의 손목을 잡고 밥 먹으러 가자! 하고 크게 외치며 식당으로 달려나갔다. 자신의 등을 힘내라는 듯 쳐다보는 후쿠로다니 팀원들의 눈길이 쿠로오의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대체 여기서 어떻게 더 하려고? 그러나 보쿠토는 더 했다. 보쿠토는 쿠로오의 맞은편에 앉아 점심으로 나온 햄감자 크로켓을 산더미처럼 쌓아주고 쿠로오가 점심을 꾸역꾸역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만 덜 친한 사이였으면 이지메라고 불려도 손색 없는 짓거리였다.
“보쿠토.”
“응? 왜?”
“그만 쳐다보고 밥이나 먹어.. 체할 것 같아.”
“소화제 먹을래!?”
“그만 쳐다보라고!”
쿠로오는 젓가락을 쥔 손으로 식탁을 강하게 내리쳤다. 두 학교의 부원들이 숨을 죽이고 둘을 쳐다보는 와중 보쿠토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는 고개를 휙 저었다.
“싫어!”
“하?”
“내가 준 거, 쿠로오 혼자 다 먹을 때까지 감시할 꺼야!”
설마.. 이것도 그 부엉이 수인의 습성인가.
쿠로오는 켄마에게 초콜렛을 나눠주고 나서 받은 그 배신감 서린 눈빛을 떠올리며 눈을 데굴 굴렸다.
“알았어, 알았어. 나 혼자만 먹을께.”
“아무도 나눠주면 안 돼.”
“그래. 너한테만 조금 나눠줄께.”
“나한테도 주면 안돼! 네가 다 먹어야 돼!”
보쿠토는 전에 없이 강경했다.
쿠로오는 그러십니까.. 하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급식판 위에는 아직도 크로켓이 세개나 남아 있었다. 미안하지만 이걸 지금 먹으면 백 퍼센트 구토하고 만다. 쿠로오가 처량한 얼굴로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말꼬리를 길게 늘여 물었다.
“진짜 나 혼자 먹어야 돼..?”
“큭.. 내가 싫으면.. 다른 애들한테 나눠줘도 돼...”
쿠로오의 얼굴을 마주하고 만 보쿠토는 초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식탁으로 흐물흐물 무너져 내렸다. 얼굴을 팔로 감싸고 엎드려버린 보쿠토의 뒤로 아카아시가 필사적으로 X를 그리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아니, 나는 네가 싫은게 아니라.”
“내가 싫지 않아!?”
“그러엄~ 그냥 남겨뒀다가 조금 있다 먹으려고 그러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보쿠토가 눈을 반짝이며 그럼 식당 아주머니한테 싸 달라 그럴께! 하고는 식판을 가지고 룰루랄라 배식대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