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에 빠졌던 쿠로오는 손에 자꾸 땀이 차는 감각에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보쿠토 이 녀석은 왜 갑자기 내 손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고 있는 거지?
그때 쿠로오가 깨어난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보쿠토가 쿠로오의 이름을 작게 불렀다.
꿈의 밑바닥까지 가라앉아있던 의식이 서서히 올라오고, 잠든 것도 깨어난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서의 부름이었다. 대답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그 사소한 게으름의 댓가는 규칙적인 숨을 내뱉으며 자는 쿠로오의 입술 위로 내려앉은 보쿠토의 입술이었다.
‘???’
눈을 감고 있었지만 콧날과 마주닿는 보쿠토의 코와 축축한 감촉으로 미루어 보아 입술이 확실했다. 발바닥의 모래처럼 끈질기게 남아있던 선잠이 순식간에 달아나고 눈이 번쩍 뜨였다.
아쉽게도 쿠로오가 눈뜨기 직전에 보쿠토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했는지 방 밖으로 후다닥 도망쳐버렸다. 아주 웃긴 얼굴을 볼 수 있었을텐데 현장을 잡지 못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이 닫히고 쿠로오는 침대 위에서 어이없는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렸다.
‘대체 뭐지?’
그냥 호기심인가? 아니 그보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을 이런 식으로 날리게 되다니.. 보통 사람이 자고 있으면 깨워서라도 물어봐야 할 중대한 사안 아닌가 이거?
잠시 눈썹을 찌푸린 채 보쿠토에게 한소리를 하기 위해 기다리던 쿠로오는 시간이 꽤나 지나도 보쿠토가 돌아오지 않자 긴장을 풀고 침대에 편히 누워버렸다.
졸리고 목이 결리다. 매일 보쿠토가 자는 베개에 얼굴을 처박고 자기는 미안하니 대신 이불을 끌어안고 거기에 얼굴을 파묻었다.
간신히 진정한 보쿠토가 돌아왔을 땐 이미 쿠로오가 다시 잠든 뒤였다. 쿠로오의 달라진 자세에 흠칫 놀랐지만 잠결에 자세를 바꿨는지 아직 잠에서 깨진 않았다. 보쿠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슬쩍 침대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았다.
잠든 님의 얼굴만 보고 있어도 좋을 때.. 라고 하기엔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혹여나 쿠로오가 깰까 컴퓨터에서 나오던 영화도 꺼버린 보쿠토는 삼십분 뒤 꾸물꾸물 쿠로오의 옆자리에 자리잡고 누웠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쿠로오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보쿠토, 지금 몇 시야?”
“응? 으으... 잠깐만.. 휴대폰이.”
“하아암.. 벌써 아홉시 넘었네.”
야식 겸 저녁으로 돈까스 배달을 시켜 먹고, 플스로 게임을 하다가 다시 새벽에 잠들 때까지 쿠로오는 보쿠토의 도둑키스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보쿠토의 침대 아래 이불을 펴고 잠들기 직전에서야 문득 그것이 떠올랐는데, 이미 잠든 보쿠토를 깨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쿠로오는 그저 궁금증을 가지고 잠들 수 밖에 없었다.
‘착각했나..? 아니면 꿈이라든가.’
착각이라면 민망하고, 꿈이라면 더 어이가 없다. 쿠로오는 속으로 피식 웃다가 그것을 머리 한구석에 치워놓고 베개를 끌어안았다.
만약 그게 진짜라면 보쿠토 쪽에서 반응이 있겠지. 뭐든 별로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았다.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쿠로오의 그때 그 기억이 착각이나 꿈은 아니었다.
증명하고 말것도 없이 눈을 감고 누워있으면 보쿠토가 다시 뽀뽀를 했다.
보쿠토 이 자식.. 생각보다 뻔뻔한 녀석이잖아..?
거의 상습범 수준으로 몰래 입을 맞추는 것도 꽤 대담해져서는 자는 사람의 입술을 우물우물 빨아대질 않나, 판판한 가슴 위에 손을 올려서 주물러대질 않나 놀람의 연속이었다.
두번째인가 세번째의 도둑뽀뽀때에는 입술을 깨물길래 반사적으로 눈썹을 찡그렸더니 우당탕탕 넘어져서는 거의 한시간동안 방에 들어오질 못했는데.. 요새는 아주 마당에 파묻은 개껌을 찾아 씹는 리트리버처럼 전투적인 자세였다.
이대로라면 아주 혀도 넣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로오가 보쿠토의 집으로 다시 찾아들어온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미 전기세 걱정 없이 펑펑 틀어지는 에어컨의 맛을 본 다음에 그 만두찜통-이라고 쓰고 집이라 읽는다.-으로 다시 기어들어가는것도 정말 못 할 짓이었다.
두번째 날에도 씻고 나른하니 잠에 들었는데, 또 자는 이의 동의를 구하는 그 어떤 행동도 없이 보쿠토가 뽀뽀를 했다. 머리를 뉘인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이걸 대담하다고 해야 하나 생각도 없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반쯤 들었던 잠도 번쩍 깬 쿠로오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보쿠토의 멱살을 잡아채지 않은 것은 꽤 단순한 이유였다.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일어나서 뭐라고 말하지? 왜 뽀뽀했냐고 물어봐야 하나? 왜 그동안은 얌전히 있었냐고 물으면 또 거기에는 뭐라고 대답하지? 아니 그보다 딱 잡아떼면.. 딱히 증거도 없고..’
그렇게 첫번째와 두번째를 그냥 넘겼더니 세번째 쯤 되어서는 새삼스럽게 일어나서 따져묻기도 뭐하게 됐다.
‘에라, 몰라. 전기세 대신이라고 치지 뭐.’
더 생각하기도 귀찮고, 별다른 변화 없이 단지 자는 사이 몇 번 입술을 문대는 것으로 친구사이를 파토낼 정도로 쿠로오는 야박하지 않았다.
의외로 보쿠토의 반응은 평소와 같았고 대신 에어컨이 오기까지의 3주간, 거의 보쿠토네 집에 세들어 사는 수준으로 들락거리면서 점점 과감해지는 보쿠토의 도둑뽀뽀만 속으로 카운트하고 있었다.
다행히 집에 에어컨이 설치될 날은 점점 다가와서, 이 페이스 대로라면 혀를 집어넣기 전에는 집에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혀를 넣으면 이렇게 모른 척 하기도 힘들다고.’
*
“아, 더워..”
밖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고, 입구쪽에 걸린 둥근 시계는 밤 아홉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열대야인지 해가 자취를 감춘지가 오래인데도 땀은 식을 줄을 몰랐다.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자 체육관의 2층 불이 꺼지며 어두워진다. 입구 옆의 비상등만 켜진 채 어두워진 체육관에 앉아 있자니 어쩐지 이대로 자라고 해도 잠들 수 있을 것 처럼 나른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잠시 쉬자.
계단을 두칸씩 밟아 내려오는 보쿠토의 발소리를 들으며 쿠로오는 그대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달이 아주 크고 밝았다. 이제는 불 꺼진 체육관 안보다 바깥이 밝아 그림자가 거꾸로 만들어진다. 눈을 감고 있자니 아예 바닥으로 전해지는 발걸음의 진동이 더 크게 느껴졌다. 창문이며 비품실까지 체육관 전체의 문단속을 마치고 쿠로오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던 보쿠토는 설마 벌써 자는건 아니지!? 하고 외치면서 얼굴 옆에 털썩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뭐야~ 오늘도 완전 방전됐네.”
“바람이 시원해서.”
“밤이라 그런가봐. 낮에는 바람도 더운데.”
공기도 오랜 더위에 지쳤는지 축 처져 묵직했지만, 누워있다보면 아주 미약하게 바람이 불어서 머리카락 끝이 약하게 살랑거렸다.
“덥다가 시원해지면 뭔가 몸이 나른~ 해지잖아.”
“그래서 우리집에 와서 맨날 자는거야?”
“봐주라, 진짜 불가항력이거든.”
“블로킹 연습도 한시간밖에 안 해줬으면서~!”
그렇게 자는 사이 사리사욕도 잔뜩 채웠으면서 놀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게 눈 가리고 아웅하는것 마냥 웃음이 나왔다.
물론 내가 그걸 알고 있다는 티를 낼 수는 없지만. 쿠로오는 눈도 뜨지 않은 채로 손을 휙휙 흔들고는 딱 5분만 누워있겠다고 중얼거렸다.
손을 옆으로 옮겨 더듬더듬 보쿠토의 종아리를 더듬다 그 위로 머리를 올리자, 아예 다리를 쭉 뻗고 상대적으로 살집이 있는 허벅지에 머리를 올려준다. 너무 높은데다가 베개에 비하면 딱딱했지만 지금은 딱히 까다롭게 굴고 싶지 않았다.
더위에 달아오른 몸이 적당히 식어가고, 바람은 딱 좋게 불고 보쿠토는 조용하고 아주 완벽한 상황이었다.
난데없이 이마에 내려앉은 보쿠토의 습격, 그러니까 쿠로오가 잠들었다고 생각한 대담한 도둑 뽀뽀만 아니었어도 어쩌면 그대로 잠들어버릴 수도 있을 만큼이나 편안했다.
“.....어?”
쿠로오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다. 평소처럼 모른척 눈을 감고 있지 않았던 건 장소가 장소였기 때문이다. 아니, 아무리 밤이라 해도 학교는 좀 아니지?
보쿠토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아차 한 것도 사실이었다.
동그랗고 노란 눈동자와 마주한 쿠로오가 예상한 보쿠토의 반응은 첫째, 더듬거리면서 변명하다가 도망친다. 둘째, 안색이 새파래져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셋째, 벌떡 일어나서 바닥에 머리통과의 충돌을 선사한다 정도가 있었는데, 보쿠토는 전혀 의외인 반응을 해왔다.
생각해보면 의외성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몰래 뽀뽀를 해 대면서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자신을 대하던 것도 그렇고, 애초에 첫번째부터 이마도 아니고 입술에 도둑뽀뽀를 한 것 자체도 의외였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은 왜 몰래 이러고 있었지?
“잠 깼네?”
보쿠토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해왔기 때문에 쿠로오는 말을 잃었다. 달빛에 비친 음영이 드리운 그 얼굴이 꽤 잘생겨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잠깐만, 말을 잃을 정도의 미모라는 뜻이 아니라 정신 산만한 부엉이같은 리액션을 기대했던 터라 말문이 잠깐 막혔던 거다.
“어어.. 확 깼다.”
멍하니 대답하고 부스스 일어나 앉자 보쿠토가 실실 웃는 낯을 풀지도 않고 엉덩이를 바짝 붙였다. 퍼스널 스페이스를 대담하게 침입해오는 기색에 언짢은 얼굴을 할까 고민하는 사이 보쿠토의 오른손이 쿠로오의 턱 아래를 살짝 받치고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쯥, 하고 약하게 입술을 빨아올리는 감각에 눈꺼풀을 움찔 떨자 고개를 옆으로 틀어 능숙하게 아랫입술을 물었다.
‘어?’
보쿠토는 그동안 쿠로오가 잠들지 않았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은게 분명했다. 얌전한 쿠로오의 반응을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이 녀석이 그래서 날로 대담해졌구나. 입술을 이렇게 물고 빨면서 어떻게 내가 잠에서 깰 거란 생각도 못 하지? 가 아니라 쑥쓰러워서 눈 감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는거 아냐!
이 자연스러운 손동작은 쿠로오가 자신의 키스를 피하리라고는 생각치도 않는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쿠로오는 늘 생각이 많은 타입이었지만 보쿠토의 얼굴이 반대쪽으로 기울어 더 가까이 왔을땐 더 생각을 잇지 못했다.
방심해 벌어진 잇틈 사이로 혀가 낼름 들어와 젖은 살덩이를 이리저리 굴리고 빨았다. 쪼옥, 쪼옥 하고 남사스런 소리가 나면서 뒷목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혀 밑에서 자꾸만 침이 솟는 느낌이 들어 침을 꼴깍 삼켰더니 보쿠토는 아예 양 손으로 쿠로오의 양볼을 감싸쥐고 쿠로오의 혀를 제 멋대로 씹었다.
“후, 하...”
어느새 감긴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마찬가지로 볼이 상기된 보쿠토가 젖은 입술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눈을 마주치다가 씩 웃었다.
“잠 깼으니까 여기서 조금만 더 있다 가자.”
“...그럴까.”
불 꺼진 체육관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키스를 했다. 혀를 쓰기 시작했으니 뽀뽀라는 귀여운 어감으로 부를 수는 없고, 입맞춤이라는 점잖은 단어도 어울리지 않았다.
보쿠토는 쿠로오와 마주보듯 옆으로 누워서 종아리로 한창 장난을 치다가 슬금슬금 허벅지 위의 유니폼 바지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말랑한 엉덩이살을 손으로 만지작대기 시작했다. 손길은 파렴치한 주제에 누가 봐도 기대감에 가득 차있는 얼굴이라, 쿠로오는 그 얼굴을 보고 속으로 망했다.. 하고 중얼거릴 수 밖에는 없었다. 예감이 딱 왔다. 앞으로 이 녀석에게 단단히 코가 꿰이고 말 거라는 그런 예감 말이다.
쿠로오의 집 거실 에어컨은 다음날 바로 설치되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갈때 댈 조악한 변명거리도 없어졌지만 쿠로오는 뺀질나게 보쿠토의 집을 드나들었다. 왜냐하면 거실 한복판에서 보쿠토와 쪽쪽대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으니까. 비단 상대가 보쿠토가 아니라도 그건 부모님께 큰 실례다..
더위를 핑계로 쿠로오가 현관문을 두드리면, 에어컨을 미끼로 쿠로오를 제 구역으로 끌어들인 보쿠토가 의기 양양한 얼굴로 그를 덥썩 붙잡아 볼에 쪽쪽 뽀뽀를 했다.
만족스러울 만큼 이마와 볼과 코에 뽀뽀를 내려앉히면 싫은 것처럼 얼굴을 피하지만 적극적으로 밀어내지 않는 쿠로오를 양팔로 꼬옥 끌어안는다.
‘일년에 사계절이 모두 여름이면 좋겠다. 그럼 매일 우리집에 올 텐데.’
그런 귀여운 욕심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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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앞두니 글쓰는것도 재밌고 게임도 재밌고 화장실청소도 재밌네요 젠장....(....)
호로록 써서 마무리는 ? 싶은 느낌의 글이지만... 가볍게 읽어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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