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을 뒤집어쓰면 부엉이랑 고양이가 되는 보쿠로이야기입니닷 >.<)9
쿠로오는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여권을 내려다보았다.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찍힌 증명사진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는데 설레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재밌겠다, 켄마. 그렇지?”
“별로..”
켄마도 마찬가지로 처음 외국에 나가보는 것이었지만 별로 기대되지 않는지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에게 있어서 이건 즐거운 여행이라기보다는 갑갑한 수련회에 가까울 것이다. 후쿠로다니 학원이 주축이 된 배구 캠프에서 전원의 합숙 겸 수학여행으로 중국행을 제의해 네 학교의 배구부 전원이 움직이는 터라 네코마의 3학년도 빠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연습조차 나오지 않으면서 이럴 때만 빠지지 않지. 치밀어오르는 욕지기 대신 입술만 질겅질겅 씹은 쿠로오는 뚱한 얼굴로 게임기만 내려다보는 켄마에게 대수롭잖게 말했다.
“너무 걱정 마. 학년끼리 따로 노느라 바빠서 별 터치도 없을껄.”
“응..”
“그보다 짐 챙겨야지!? 환전도 해야 한다고.”
의욕적으로 자신을 이끄는 쿠로오의 손에 매달려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얌전히 게임기를 끄고 주머니에 넣는다. 내심 기대가 되기는 되는구나 싶어 쿠로오는 속으로 조금 웃고 말았다.
새벽같이 학교에 모여 대절한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전날 밤 설레서 잠을 좀 설쳤더니 버스에서는 거의 기절하듯 잠든 상태였다. 코치님의 통솔에 맞추어 탑승 수속 카운터에 모여 있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흰색 져지와 누군가의 신나는 목소리가 들렸다. 헤이헤이헤이! 저런 기합을 지르는 녀석은 아마 도쿄 전체를 뒤져도 저녀석 혼자뿐일 꺼다.
후쿠로다니도 네코마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아서, 다들 졸음이 눈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보쿠토는 부은 눈꺼풀을 하고서도 오른손에 여권을 꼭 쥐고 쿠로오에게 종종 걸어왔다.
“쿠로오, 쿠로오! 여권 새로 만들었지? 보여주라!”
“오야. 갑자기 그건 왜?”
“사진 궁금해!”
뭐 별달리 숨길일도 아니라 쿠로오는 가방 겉주머니에서 여권을 꺼내들었다. 보쿠토는 대신이라는 듯 자신의 여권을 쿠로오의 손에 쥐어주더니 쿠로오의 여권 사진을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머리 넘기니까 모범생 같아.”
“너는 늘 머리를 넘기고 있으니까 별 차이 없겠네.”
그렇게 대꾸하며 여권을 이리저리 펼쳐본 쿠로오는 내심 놀랐다. 여권 사진이라 해서 최근 사진일줄 알았는데 아직 보쿠토가 초등학생일 때의 사진인지 조그맣고 눈이 큰 아이의 사진이 여권에 붙어있었다. 비자란이 거의 꽉 찰 정도로 도장도 잔뜩 찍혀있었는데 여권 만료일이 곧인걸 보면 어렸을 때 만든 여권인 모양이다. 쿠로오는 여권 사진속의 귀여운 꼬맹이와 눈이 퉁퉁 부은 현재의 보쿠토를 번갈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윽, 그렇게 쳐다보는거 왠지 낌새가 안 좋은데.”
“보쿠토 너 어릴때는 엄청 귀여웠구나..”
“뭐야 그거! 지금은 안 귀엽다는 뜻!?”
“뭐어..”
그것보다는 역시 어릴 때가 더 귀엽달까. 쿠로오가 빤히 여권을 쳐다보고 있자 보쿠토는 불퉁한 얼굴로 여권을 빼앗으려 들었다. 이리저리 피하면서 보쿠토를 약올리는데, 아마 나머지 두 학교가 때맞춰 공항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보쿠토는 단단히 토라져서 아마 사흘동안 쿠로오에게 말도 걸지 않았을 것이다.
비행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쿠로오는 그 짧은 사이에 보쿠토의 토라짐을 완전히 풀어버렸다. 아마 집과 학교를 떠나 낯선 곳으로 간다는 설레임도 한몫 했을 것이다. 홍콩은 가본 적이 있어도 중국은 처음이라는 보쿠토는 공항에 도착해 낯선 공기를 맡고는 방방 뛰다가 코치님께 지적을 받고 나서야 조금 얌전해졌다. 운동부 남학생들을 그것도 네 학교의 인원이나 관리감독해야 하는 코치님들의 신경도 조금 예민해진 것 같았다.
여행사 직원은 푸짐하고 인상이 좋은 아저씨였는데, 중국인이었지만 일본어 실력도 나쁘지 않아서 말을 의사소통에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해 짐을 풀고 식사를 하는 별것 없는 스케쥴이었는데, 기름 쩐내나는 만두 하며 요상한 향신료 맛이 나는 야채볶음은 도저히 못 먹어줄만한 것이었지만 밤에 컵라면 까먹을 계획을 짜며 시시덕거리기 바빴다. 학교별로 조를 나누긴 했지만 딱히 엄하게 나누어 관리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네 학교의 학생들은 적당히 나이가 맞거나 친한대로 조를 바꿔 붙어 앉을 수 있었다.
사건은 중국을 떠나기 전날 일어났다.
“오오. 여긴 어디야?”
“주천향이래. 가이드북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지역주민들이 자주 구경오는 관광지라는데.”
“경치 엄청나네. 신선이 사는 곳 같아.”
“정말 멋진 곳이죠? 각 연못마다 하나씩 전설이 내려오고 있답니다~”
워낙 큰 나라라 그런지 도시 외곽의 공원도 엄청나게 넓었다. 이 정도 규모면 일본에서는 국립공원이나 수목원으로 불리고 있었을 것이다.
산자락에서 뻗어져나온 야트막한 언덕과 너른 평지에는 수백개는 될 법한 연못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산에서 흐르는 계곡물이 고인다더니 그래서인지 연못물은 안이 훤히 비쳐 보일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관리되지 않은 연못에서 나는 물비린내도 전혀 없고.. 왜 유명하지도 않은 곳을 보러 아침 일찍 이동해야하나 했는데 다른 관광객의 방해 없이 새벽의 물안개와 이런 풍경을 즐길 수 있다면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것 정도는 감수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한참동안 가이드를 따라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거닐던 쿠로오는 졸려 죽겠다는 얼굴로 하품을 쩍 하는 보쿠토를 발견하고는 장난기 가득한 눈을 반짝 떴다.
“오야, 어제 잠을 잘 못 잤나봐?”
슬쩍 다가가 물으니 보쿠토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어리광을 부리듯 쿠로오에게 잠자리가 불편했다며 칭얼거렸다.
“어떻게 알았어? 첫날이랑 이틀째에는 괜찮았는데 어제는 베개가 너무 납작해서 잠이 안왔어..”
우와 진짜냐. 돌베개를 베고 자도 잠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보쿠토에게 이렇게 섬세한 면모가 있었을 줄이야. 쿠로오는 아 그런 거였구나.. 난 또.. 하고 의미심장하게 말꼬리를 늘리며 보쿠토를 힐끔 살폈다. 예상대로 보쿠토는 왜? 무슨 일이야? 하고 반문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이건 어제 우연히 들은 이야기인데 말야.”
아마 현대가 아닌 중세에 태어났다면 쿠로오는 이야기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쿠로오가 제일 자신있는 분야는 바로 괴담이었는데 네코마 고교 1학년 시절의 쿠로오는 수련회날 같은반 아이들의 절반이상을 밤을 설치게 만든 주범이었다. (2학년때는 너도나도 피하기에 바빴다.)
차분하게 목소리를 내리깐 쿠로오는 표정을 심각하게 다듬었다. 괴담이란건 특히 화자의 연기력이 중요했다.
“우리 숙소가..”
“숙소 왜? 바퀴벌레 나왔어?”
심각한 얼굴로 물어보는 내용 때문에 웃음이 터져나올 뻔 했다. 쿠로오는 씰룩이는 입꼬리를 끌어앉히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숙소에 십년 전.. 아니다. 역시 말하지 않는게 낫겠어.”
“왜, 왜왜!? 무슨 일인데 그래!”
묘한 분위기를 깔고 말할 듯 말듯 애를 태우니 보쿠토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쿠로오의 옷자락을 잡고 매달렸다. 일행을 통솔해 앞에서 주천향의 전설에 대해 설명해주던 가이드의 목소리를 비지엠삼아 쿠로오는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우리 숙소 엄청 낡았잖아? 원래는 철거하고 새 건물을 올릴 예정이었다는데 숙소로 리모델링 된 이유가 있다더라고.”
“뭐, 뭔데..!?”
보쿠토에게만 말해주듯 속닥거려도 그 목소리가 옆사람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다. 어느새 귀를 쫑긋 세운 채 쿠로오 주변으로 슬쩍 다가온 배구부원들이 숨을 죽이고 그 목소리에 집중하느라 쿠로오 주변만 유독 조용해진 상태였다.
숙소 건물은 지은 지 삼백년도 넘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겉은 고풍스러운 옛날 중국식 나무 건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방 안은 현대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단지 수도관을 매 방마다 설치할수는 없어서 화장실과 욕실은 한 층에 하나씩 있는 구조였는데, 화장실이 조금 낡은것이 합숙 인원들의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건물을 철거하려고 하면 자꾸 사고가 생겼다나봐.”
“헉, 설마 귀!”
“쉿! 조용히 해. 귀신들은 자기 이야기 하면 이야기하는 줄 알고 가까이 온다잖아.”
쿠로오가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자 보쿠토는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히익 기겁하며 쿠로오 옆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무섭긴 한데 호기심이 그보다 더 앞서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그, 그래서? 하고 더듬더듬 입을 열어 묻는다.
이건 뭐 껌이구만~
쿠로오는 속으로 장난스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해서 당시 점쟁이가, 비단을 제물로 바쳐서 제사를 지내면 사고가 멎는다고 했다나봐.”
“그, 그걸로 끝인거야?”
“음.. 사고는 멎었지만 건물을 철거하려고 하면 주변 들짐승이 죽고 불길한 일이 자꾸 생겨서 결국 뼈대는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대.”
“으아악, 괜히 들었어!!”
보쿠토는 귀를 막은 채로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를 꽥 질렀다. 이 녀석 원래 괴담에 약한 타입이었던가? 이렇게 통통 튀는 반응이라니 진짜 놀릴 맛이 제대로 나서 더 의욕이 생긴다. 쿠로오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작게 한 뒤 스산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밤 열두시 정각만 되면 숙소 화장실 어딘가에서 사르륵 사르륵.. 하는 소리가 들린다는거야.”
누군가가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정도로 다들 쿠로오의 이야기에 집중한 와중에 거의 숨이 넘어갈 것처럼 초조한 얼굴을 한 보쿠토가 팔로 스스로를 감싸안고 오들오들 떨었다.
“그게 딱 열두시라는 건 십년 전 이곳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그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아챘어. 사실 예전에는 전기등을 쓰지 않아서 밤 열두시면 정말 한밤중이잖아?”
“으으..”
“처음엔 자신이 잘 못 들은줄 알았지.. 하지만 어느날은 2층, 어느날은 3층에서.. 달빛마저 사라지는 어두운 시각이면 꼭 그렇게 뭔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는데, 어느날 종업원은 깨달은 거야.”
“뭐, 뭘..?”
“그 소리가 꼭 비단 스치는 소리 같았대. 귀신에게 바친 바로 그 비단 말이야..”
“히이익...!”
이제 곧 클라이막스다. 즉석에서 지어낸 괴담 치고는 다들 리액션이 나쁘지 않아서 쿠로오는 내심 뿌듯해졌다. 쿠로오는 긴장한 낯빛의 주변을 스윽 흩어보고는 힘주어 말했다.
“그래서 그 종업원은 고민하다가.. 그 소리가 들려오는 화장실 칸을 열어보기로 마음먹었어.”
“아, 안돼애..!”
“다행히 여러개의 칸 중 어떤걸 열어봐야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대.”
“왜!?”
“왜냐면.. 보였으니까. 화장실 칸 밑으로 사르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비단이..”
윽. 쿠로오는 시선을 발등으로 향해서 입꼬리를 꾸욱 일그러뜨렸다. 울듯 말듯 일그러진 보쿠토의 표정이 너무 웃겨서 저 얼굴을 보면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다.
“결국 종업원은 옆 칸에 들어가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기로 했어.”
“......”
보쿠토는 앞서 걸어나가는 일행을 따라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면서도 꿀꺽 침을 삼키며 손으로 팔을 쓸었다. 기분 탓인지 쿠로오의 눈동자가 아까부터 묘하게 서늘하고, 심지어 왠지 조금 추워진 것 같기도 했다..! 주천향에 대한 설명이 끝났는지 가이드는 본격적으로 공원 안쪽까지 안내해 연못에 읽힌 이야기를 얘기해주고 있었으나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마침내 작은 사다리를 디디고 일어서서 안쪽을 내려다보았어. 거기엔..”
클라이막스 직전에 말을 끊는다. 그리고 보쿠토가 눈을 마주쳐 오는 순간 쿠로오는 보쿠토의 팔을 덥썩 잡으며 와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악!!!!”
주변 사람들도 흠칫 놀랄 정도였지만 보쿠토는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기겁하며 제자리에서 거의 오십센치 정도를 펄쩍 뛰어 올랐다. 과연 에이스 스파이커다운 점프력!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다음이었다.
보쿠토의 경망스러운 비명에 쿠로오가 배를 잡고 웃는 사이 보쿠토는 펄쩍 뛴 그대로 바로 뒤에 있던 연못에 빠져버린 것이다. 풍덩! 하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시야에서 사라진 보쿠토에 쿠로오가 깜짝 놀라 연못가로 달려가자 물 속에서 갈색의 무언가가 요란스레 튀어나와 쿠로오의 얼굴과 거하게 박치기를 했다.
“으앗!?”
솜뭉치인지 곰인형인지 모를 것에 얻어맞은 반동으로 보쿠토가 빠진 연못 옆에 사이좋게 풍덩 빠져버린 쿠로오는 생각보다 깊은 연못에 당황했다. 물이 맑아 몰랐는데 키가 큰 편인 자신도 발에 땅이 닿지 않는 정도였다.
허우적대며 무어라 외치고 싶은데 물은 자꾸만 입으로 들어오지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 않지, 젖먹던 힘을 다해 간신히 소리를 질렀지만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처참하기만 했다.
“캬아아아옹!!!”
“몌에엫!!”
쿠로오, 아니 쿠로오였던 검은 고양이가 물에 빠진채 허우적대고 그 옆에선 부엉이가 젖은 깃털을 허우적대며-꼭 걷는 법을 모르는 부엉이 같았다- 쿠로오가 빠진 연못 주변에서 푸닥거렸다. 모두가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굳어있는 사이 들고 있던 게임기를 바닥에 떨군 켄마가 달려들어 쿠로오를 건져 올리자 물을 잔뜩 먹은 검은 고양이가 바들바들 떨며 켄마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보쿠토가 빠졌던 연못에서 주인 없는 옷가지만 둥둥 떠있는 걸 발견한 사람들이 기겁하며 외쳤다.
“보쿠토가 부엉이가 되어버렸어!?”
“쿠로가..”
모든 사람들이 경악하는 와중 주천향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대수롭지 않게 쿠로오가 빠졌던 연못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 이 분이 빠진 곳은 묘익천이라는 곳이다 해. 삼천년 전 고양이가 빠져죽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저 물에 들어가면 고양이가 되어버린다해!”
“그럼 보쿠토가 빠진 곳도..!?”
“저곳은 삼천년 전 부엉이가 빠져죽은..”
“그럼 어떻게 해요!? 둘 다 이대로 영엉 동물로 변해버리는 거에요??”
중국 5천년 역사의 신비로움을 이런 식으로 체험하게 될 줄 몰랐던 배구부원들은 완전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눈 앞에서 멀쩡한 두 사람이 고양이랑 부엉이로 변해버렸으니 충격이 오죽하겠느냐만은, 가이드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그들을 공원 초입의 관리사무소로 이끌었다.
“이렇게 하면 원래대로 돌아오게 된다 해!”
가이드가 한 일은 아주 간단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거운 욕조에 부엉이와 고양이를.. 그러니까 보쿠토와 쿠로오를 첨벙 던져버린 것이다.
“푸아!”
“뭐, 뭐야 이게!”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을때 둘은 다시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 연못이 수천년동안 내려오는 저주가 걸린 곳이며, 찬물을 뒤집어쓰면 다시 고양이가 되어버린다는 가이드의 말에 쿠로오는 아직도 현실감이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약간 넋이 나간 얼굴로 따끈따끈한 물속에 잠긴 손을 멍하니 들여다보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할 거냐는 감독님의 항의에 분명 주천향에 오기 전에 설명했으니 주천향에서 책임질 의무는 없다는 가이드의 말소리가 욕실에서 왕왕 울렸다.
“진정하라 해. 일상생활에 별 문제는 없다 해.”
“아니, 지금 저 꼴을 보고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나.. 진짜로 고양이가 되었던 거야?’
방금 전 분명 이 손 대신 까만 털에 뒤덮인 앞발이 있었는데.. 답지 않게 방황하는 쿠로오의 현실감을 일깨운 것은 비명처럼 내질러진 보쿠토의 외침이었다.
“나, 나 그러면 앞으로 바다도 놀러 못 가는거야!?”
“뭐?”
“찬물을 맞으면 부엉이가 된다며! 이러면 여자친구랑 물놀이하러 갈 수도 없잖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겁하며 한다는 말이 저거였다.
아니, 이상한 체질로 변해버려서 심난해 죽겠는데 제일 먼저 나온 말이 바다? 여자친구? 쿠로오는 어쩐지 어이가 없어져서 피식 웃으며 비꼬았다.
“하아? 그건 여자친구를 먼저 만들고 나서 고민할 문제 아냐?”
“우씨, 쿠로오 너.. 너 때문이야! 왜 거기서 그런 장난을 쳐서!”
“윽.. 그건 미안한데, 나도 너 때문에 빠져서 이렇게 된 거거든!?”
“그건, 그건... 흐윽, 흑... 난 이제 장가도 못 갈꺼야!!”
“야, 잠깐.”
씩씩대던 보쿠토는 울음을 참듯 이를 악물고 한방울 두방울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얼굴이 눈물에 완전히 젖고 나서야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내일모레 세상이 망할 것처럼 울어대는 보쿠토를 바라보는 쿠로오의 표정이 영 불편했다. 사실, 그런 식으로 보쿠토를 놀리지만 않았어도 이 사단이 일어나진 않았을 거란 건 쿠로오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쩔 줄 모르다가 보쿠토의 어깨를 위로하듯 툭툭 두들기자 더 서럽게 울어제낀다. 후쿠로다니 1학년과 2학년들은 그런 보쿠토를 위로하겠답시고 눈시울을 붉힌 채 달려와 보쿠토를 둥글게 감싸안고 괜찮아! 괜찮아! 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
참고로 욕실에 빠진 둘은 알몸이었고, 알몸의 두 남자를 둥글게 감싸안고 빙빙 도는 짓은 원시부족의 샤먼의식을 보는 듯한 괴기함마저 맴돌았다.
“쿠로, 여기.”
쿠로오는 켄마에게서 수건을 받아들고 나서야 그 원의 중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서럽게 울어대는 보쿠토와 다르게 그의 얼굴은 떨떠름해 보일 뿐 크게 당황한 것 같지는 않았다.
“괜찮아?”
“어째 너는 침착하네.”
“저 녀석이 옆에서 저러니까 놀란 것도 쑥 들어가버려서.”
욕조에 잠긴 채 눈물이 퉁퉁 부어버린 눈으로 딸꾹대는 보쿠토의 모습을 힐긋 쳐다본 쿠로오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쿠로오 너 때문이야! 하고 울먹이던 보쿠토의 목소리가 어쩐지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2차 > 하이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쿠로] 붱냥 1/2 !!!! ~ 4 ~ (0) | 2018.01.11 |
---|---|
[보쿠로] 붱냥 1/2 !!! ~ 3 ~ (0) | 2017.12.17 |
[보쿠로] 붱냥 1/2 ! -1- (0) | 2017.11.12 |
[보쿠로] 약해지는 계절 下 (0) | 2017.10.29 |
[보쿠로] 약해지는 계절 上 (0) | 2017.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