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마1/2 au보쿠로입니다>.<!
찬물에 닿으면 그렇게저렇게 변해버리는 이야기에요!!
“오오, 저것, 저것은 혹시 스카이 트리?!”
“그럴 리가 있냐.”
도쿄 외곽에 정차한 버스에서 내린 카라스노 고교의 배구부가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미야기와는 다른 도쿄의 공기를 마시고 눈을 빛냈다.
미야기와 그다지 다를 것도 없는 교외의 풍경인데도 단순히 도쿄라는 것에 흥분했는지 눈동자를 반짝이며 주변을 둘러보는 게 꼭 처음 가는 길로 산책을 나온 강아지 같아 산만해 보이기보다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교문 밖으로 뛰쳐나갈 기세의 니시노야와 타나카의 뒷덜미를 잡아 진정시킨 다이치는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가르쳐준 곳은 분명 이 곳이 맞는데 아직인가?
방금 전까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곧 데리러 나오겠다고 했던 쿠로오 테츠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별처럼 반짝반짝한 눈동자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히나타가 오른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저희는 어디로 가요?”
“아, 잠깐 기다리면..”
“먀아-”
조금 기다리면 네코마의 주장이 데리러 올 것이다, 라고 말하려던 다이치 대신 왠 고양이가 불쑥 대답했다. 히나타와 야치가 꼭 쌍둥이처럼 똑같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발그레한 볼로 고양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앗, 하는 얼굴로 뒤늦게 시미즈가 야치의 뒤를 쫓았다.
“고양이~ 귀여워라!”
“......!?”
그러나 바로 고양이 앞에 주저앉아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기 시작하는 야치와 달리 히나타는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흠칫 놀라더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로봇처럼 빳빳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왠 고양이람?”
“왜 그래 히나타?”
심상치 않은 히나타의 반응에 다이치와 스가마저도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워올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보다 먼저 앞서 달려간 타나카와 노야가 고양이를 발견하더니 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 심지어 그 츠키시마마저 당황한 얼굴로 안경을 슥 들어올렸다.
“아니 이 고양이.. 너무..”
“헉.”
“너무.. 닮았는데요.. 그 분이랑..”
“웨옹~”
히나타의 말에 긍정하는 뜻인지 아니면 반박하는 뜻인지 고양이가 길게 울었다. 다이치는 얼빠진 얼굴로 고양이를 내려보며 입을 벌렸다.
대체 누구와 닮았다는 건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니, 이건 못 알아볼 수가 없겠는데!?
그 독특한 헤어스타일에 사람 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초리까지.. 네코마 배구부의 주장, 쿠로오 테츠로를 쏙 빼닮은 검은 고양이는 경악에 빠진 카라스노 일동의 앞에서 여유롭게 애~옹 하고 길게 울었다.
“하필 검은(쿠로) 고양이..”
“앗, 움직인다.”
고양이는 꼭 무어라 말하듯 그들 앞에서 웨옹애옹하고 웅얼거리니 찬찬히 학교 안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직 충격의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다이치가 그 여유로운 걸음걸이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 꼬리를 탁탁 양쪽으로 치더니 어서 따라오지 않고 뭐하냐는 듯 뒤를 돌아보고 재촉하듯 울음소리를 냈다.
“뭐지..?”
“따라오라는거 아니에요?”
“그런 것 같긴 한데.”
‘고양이의 보은’도 아니고 고양이를 따라가서 대체 뭘 어쩌라고? 하지만 그 고양이의 제스처는 너무나 명확해서 도저히 다른 걸로 착각할 수가 없었다.
당황한 다이치의 반응에 스가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턱을 까딱 움직였다.
“일단 가보자. 가봤자 학교 안인데 뭐. 이상하면 다시 돌아오면 되고.”
“그리고 뭣보다 애들이 고양이를 다 따라가버렸어.”
“아앗! 일학년들이 어느새!?”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홀린 어린이들도 아니면서 그새 고양이를 따라 1학년들과 2학년들이 저 멀리로 멀어져버렸다.
다행히 고양이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뛰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닌 종종걸음으로 막힘없이 코너를 꺾고 건물을 가로질러 가는데 사람 걸음으로 따라 걷기 딱 좋은 속도였다.
그렇게 학교 안쪽 체육관에 도착한 고양이가 먀아~ 하고 길게 울며 카라스노 배구부 일동을 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어, 진짜 체육관..?”
“배구공 소리가 나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둘러보자 합숙에 참가하는 각 학교의 배구부들이 워밍업을 하는 중인지 서로 자유롭게 공을 만지고 있었다. 네코마 감독님과 코치님을 만나러 간 우카이 코치님도 없이 어색하게 쭈뼛대는 그들을 발견한 건 네코마 배구부의 부주장을 맡고 있는 카이 노부유키였다.
슬슬 그들이 도착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서 와. 쿠로오와 만났지?”
“아, 안녕! 그런데 쿠로오는 못 만났는데 어쩌지..?”
“응?”
카이가 무슨 소리냐는듯 고개를 갸웃 움직이자 다이치가 황급히 뒤를 이어 말했다.
“쿠로오가 데리러 나오겠다고 했는데 우리가 그냥 와버렸거든. 역시 엇갈린 건가!”
“어라, 그럼 여긴 어떻게 온 거야?”
“그건요! 여기 이 고양이가, 앗! 없어졌어!”
“아아~ 그럼 괜찮아.”
카이는 무슨 일인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싱긋 웃었지만 히나타와 카게야마는 고양이가 언제 사라졌는지 왜 알아채지 못했냐며 투닥투닥 다투기 시작했다. 스가가 소매를 걷고 나서 그 둘을 떼어놓자 카이가 간단하게 합숙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후쿠로다니 배구캠프는 관동의 학교 네곳이 연합해서 모인 곳이야. 우리 네코마 고교와 후쿠로다니 학원, 신젠, 우부가와..”
워밍업이 끝난 뒤에는 돌아가면서 게임을 하고, 진 팀은 벌로 플라잉으로 코트 한 바퀴.
네 개의 학교 모두 최근 5년 안에 전국대회 진출 경험이 있는 강자들이며 특히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에이스 스파이커인 보쿠토 코타로가 있는 후쿠로다니 학원은 전국 레벨의 강팀이었다.
“우와, 저 사람이 바로..!”
“우시와카랑 같은 레벨의 스파이커!”
“우시지마는 세 손가락이잖아, 바보야!”
세터가 올린 공을 시원하게 내려치고 신기한 구호를 외치면서 -헤이헤이헤이!!- 어깨를 가벱게 휘두르는 것만으로 뭔가 보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박력이 있었다. 가볍게 내리친 것 같은데 공이 부딪힌 바닥에서는 히나타가 있는 힘껏 내리쳐도 나지 않는 소리가 났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카라스노 배구부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펄쩍대며 뛰던 보쿠토가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을 밟고 앞으로 쭉 미끄러졌다.
“에엑!?”
무슨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지는 만화 속 인물처럼 우당탕 넘어져 벤치에 올려두었던 물병들이 그 위로 우르르 쏟아졌다. 하필 물에 적신 수건을 냉장고에 넣어두기 위해 물병 뚜껑을 죄다 열어둔 상태라 보쿠토 코타로는 엎어진 상태 그대로 찬물을 왕창 뒤집어써야 했다.
이럴 수가! 십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콩트적 슬라이딩이라니! 거기에 물까지 뒤집어썼다. 아프지 않을까 걱정되기 보다는 그 체면을 어쩌면 좋지 싶은 마음에 다들 어쩔 줄 몰라하는데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보쿠토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으악! 하고 외치자 왠 부엉이가 푸드덕 날아오른 것이다.
츠키시마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깊은 산 속도 아니고 이런 도심에서, 밤도 아닌 낮에 부엉이라니!?
“아악! 또 변했어!”
“보쿠토 날지 마! 깃털 떨어지잖아!”
“호우우-!!”
거기에 저 부엉이를 보쿠토라고 부르고 있잖아!? 다이치가 대체 무슨 상황이냐는 듯 카이를 쳐다보자 카이가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곤란한 얼굴로 말을 골랐다.
스가가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람이 부엉이가 됐어..!?”
“대, 대단하다! 역시 다섯 손가락..!”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하하하, 신기하지?”
그때 뒤에서 느긋한 목소리의 미성이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렇게 기다렸던 쿠로오 테츠로가 문가에 서서 웃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젖어서 축 내려앉아 있었는데 평소의 닭벼슬 머리와는 다른 위압감이 있었다. 야치가 슬그머니 시미즈의 뒤로 숨자 쿠로오는 꼭 아는 사람 대하듯 한 손을 들어 살랑살랑 흔들었다. 정말 성격 좋구나 이 녀석.
다이치가 몰래 혀를 내두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쿠로오는 느긋하게 보쿠토를 턱짓으로 가르키며 말을 이었다.
“작년에 중국에 갔다가 저주를 받았거든. 그래서 찬물만 뒤집어쓰면 저렇게 되어버려.”
“저렇게라면.. 부엉이로 변한단 말이야?”
“신기한 저주네.”
“아~ 그랬구나. 힘들겠다.”
“우리 삼촌도 저주에 걸려서 반년째 부채로 변해계신데..”
“헤엑, 진짜요!? 몰랐어!”
체육관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부엉이는 마침내 붙잡혀 후쿠로다니 배구부 매니저의 손에 제압당했다. 날지 못하도록 날개를 꾹 누르고 있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부엉이가 가슴털을 부풀리며 억울하다는 듯 호우호우 하고 울었다. 그 틈에 열심히 빗자루를 쓸면서 보쿠토가 뿜어낸 깃털을 치우는 후쿠로다니 배구부를 보던 카라스노 배구부들은 ‘저주에 걸리면 주변인들이 힘들지~’ 라고 말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는데, 쿠로오는 그 모습을 보며 재밌다는듯 킥킥 웃었다.
그때 문가에 서있던 새로운 인물들을 알아차린 듯 부엉이의 목이 휙 돌아가더니 동공이 동그랗게 커졌다가 세로꼴로 또 느릿하게 좁아들었다. 부리부리한 새의 눈이 이쪽을 쳐다보는 것도 엄청난 박력이라 야마구치와 야치는 동시에 어깨를 흠칫 떨었다.
“뭐, 저주 치고는 귀엽지만 말이지.”
“일상생활에 무리는 없대?”
“뭐, 예고없이 찬물을 뒤집어쓰는 상황이 얼마나 있겠어~”
어깨를 으쓱 올리며 말을 잇는 쿠로오가 방심한 사이 부엉이, 아니 보쿠토가 자신을 들고 있던 매니저에게서 벗어나 푸드득 하고 날아올랐다. 아 좀! 하고 짜증내는 부원들을 무시하고 페트병 하나를 하나 낚아챈 뒤 순식간에 다가오는데 멀리서 볼때에는 작다고 느꼈던 것이 날개를 펼치니 무슨 독수리도 아니고, 엄청나게 커서 날갯짓 한번으로 단숨에 저 넓은 체육관을 가로질렀다. 그야말로 눈 한번 깜빡할 새에 문가에 도착한 부엉이는 꽥! 하고 기합 비슷한 소리를 내지르더니 그대로 쿠로오의 머리 위로 페트병을 내던져 찬물을 부어버렸다.
어찌나 날렵한지 미처 쿠로오가 피할 틈도 없었다. 다이치는 물에 빠뜨린 솜사탕처럼 순식간에 쪼그라든 쿠로오를 보며 비명처럼 소리를 악 질렀다. 물에 젖어 널부러진 옷가지 사이로 작은 앞발과 익숙한 고양이의 얼굴이 그 안에서 쏙 튀어나왔다.
“너, 너도냐!?”
“아앗, 아까 그 고양이!!”
“하하하, 꼭 남얘기하듯 말하네 쿠로오는.”
이젠 놀랍지도 않은 카이가 하하 웃자 몸을 부르르 털어 물기를 뿜어낸 검은 고양이가 꼬리를 빳빳히 세우더니 부엉이를 향해 하악질을 했다. 그러자 부엉이는 그에 대답하듯 창가에 앉아 뻐기는 표정으로 날개를 퍼득거렸는데, 잽싸게 카이를 타고 올라간 쿠로오가 점프해 달려들자 몌에엫! 하고 비명을 지르며 쿠로오와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난데없이 시작된 맹금류의 부리와 고양이의 발톱이 난무하는 자연 생태계의 다큐멘터리! 두 사람, 아니 두 마리 다 덩치가 큰 맹수는 아니었지만 그 기세가 제법 사나워 저대로 둬도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였다.
히나카가 넋이 빠진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과, 과연 도쿄..! 대단하다!”
“아니 이 경우엔 도쿄가 대단한게 아니지!”
“싸우고 있어!”
“앗, 날아올랐다. 저러면 쿠로오 씨가 불리한거 아냐?”
바닥에 널부러진 쿠로오의 옷을 정리하는 카이를 도와 얼른 쿠로오의 신발을 주워든 다이치가 그것을 카이에게 건넸다.
고마워, 하고 가볍게 응답한 카이가 운동화를 받아들며 씩 웃자 다이치는 그새 깃털을 정리하고 연습을 재개한 체육관 안쪽을 쳐다보았다.
“다들 익숙한가보네. 별로 놀라지도 않는걸 보면.”
“작년 후쿠로다니 배구 캠프 MT에서 저렇게 된 거거든. 둘 다.”
“원래대로, 그러니까 사람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
“전혀? 금방이야. 뜨거운 물을 뒤집어쓰면 바로 돌아오는걸.”
“아하.”
특이한 저주다. 불편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우리를 체육관까지 데리고 온 걸 보면 겉모습은 바뀌어도 속은 그대로인것 같은데 말이지.
부엉이와 고양이의 혈투는 후쿠로다니 배구부 부주장이 나와 그 둘의 뒷덜미를 들어올리고 나서야 종식되었다. 카이는 벤치에 쿠로오의 옷과 신발을 올려두고는 카라스노 배구부에게 손짓했다.
“저 둘을 샤워실에 밀어넣고 나서야 본 연습이 시작될 테니까, 그 틈에 짐정리 하고 체육복으로 갈아입는게 좋을거야. 탈의실로 안내해줄께.”
“오, 고마워.”
“히나타! 이쪽이야!”
멀어지는 두 야생짐승들을 쳐다보던 히나타가 후다닥 달리며 이쪽을 쳐다보던 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켄마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고는 벤치에 축축하게 놓인 쿠로오의 옷에 시선을 고정했다.
쿠로오가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면 고양이로 변하는 웃기는 체질이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생각치도 못했던 일이 발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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