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저쪽의 큰 일학년이 소문의 그 백사자야?”
“그런가 보네요.”
“흐흥. 아직 어려서 그런가! 키만 멀대같이 크잖아!”
길쭉한 키에 비해 마른 팔다리를 본 보쿠토는 아직 힘은 덜 붙었겠는데! 하고 남의 후배를 이리저리 평가하고 있었다. 뒤에서 그런 보쿠토의 머리에 손을 올려 꾸욱 누른 쿠로오가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야? 오자마자 우리 사랑스런 일학년들의 기를 죽일 셈?”
“아! 무거워! 쿠로오!”
“안녕하십니까. 쿠로오 씨.”
“그래, 아카아시 너도 오랜만이다.”
“한가하게 인사하고 있을 꺼야!? 진짜 무겁다고!”
보쿠토가 두 팔을 퍼덕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고 나서야 쿠로오는 보쿠토의 머리를 짓누르던 손에서 팔을 떼냈다. 진짜 아팠는지 눈가에 눈물이 글썽한 보쿠토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왜그래! 나 여기서 조용히 있었는데!”
“부엉이의 조용함의 기준은 대체 뭐냐? 저쪽까지 다 들렸거든요~”
쿠로오가 일학년이 서 있는 곳을 턱짓하자 군기가 바짝 든 일학년들이 빠릿하게 자세를 바로했다. 역시나 러시아 혼혈이라는 그 백사자 수인만이 쿠로오를 바라보며 헤벌쭉 웃고는 팔을 한들었다.
보쿠토는 그 모습을 보고는 쿠로오라도 한번에 저 대형 육식 수인을 상대로 서열을 잡기는 무리였구나 하고 납득했다.
짐승으로써의 본능을 버리는 대신 인간의 이성을 받아들인게 수인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수인들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했다. 초식 소형짐승인 토끼의 후손과 대형 육식짐승인 호랑이의 후손들을 밀실된 공간에 함께 두면 토끼수인들은 보통 호흡곤란이나 공황장애등의 증상을 호소하기 마련이었다.
물론 해당 예는 극단적이었다. 토끼는 수인들 중에서도 특히 야생성이 많이 남아있는 데다가 불특정 다수와 함께 있을때는 저런 증상도 극히 줄어들곤 했다.
보쿠토는 짐짓 삐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의태했으면서 힘은 엄청 좋아..”
“응? 아무리 노력해도 의태가 안 된다고?”
“으윽, 아, 아니거든!”
보쿠토는 정곡을 찔린 얼굴로 거하게 부정을 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아카아시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고, 보쿠토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팔꿈치를 따라 돋아난 깃털들이 체육관 위로 나풀나풀 떨어졌다.
보쿠토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의태가 잘 되지 않는 종류의 수인이었다. 쿠로오는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을 숨기지 않고 얄밉게 웃었다.
“이제 일년만 있으면 졸업인데 그 전에는 할 수 있게 되려나, 캡틴?”
“요, 요즘은 딱히 의태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라고! 네가 너무 열심히 의태하고 다니는 편이잖아!”
“어쩔까나~”
유연하게 걸어 보쿠토를 지나친 쿠로오가 고개를 뒤로 돌려 보쿠토를 쳐다보았다.
“아무튼 올해의 네코마를 무시하면 큰일 날 걸?”
“딱히 네코마를 무시한 적 없는데. 까다롭고.”
보쿠토는 뚱한 얼굴을 지우고 당연하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특히나 쿠로오의 블로킹 쪽이 짜증난달까, 가끔 완전히 파악했다는 얼굴로 킬 블록을 해오면 그 보쿠토라도 가슴 한켠이 선득해져왔다.
그러나 보쿠토의 대답이 의외였는지, 쿠로오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흐흥 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네코마의 선수들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카아시는 슬쩍 보쿠토에게 말을 꺼냈다.
“제법이시네요.”
“응? 뭐가?”
“아니.. 됐습니다.”
*
기본적인 피지컬을 기르는 훈련을 오전에 실시하고, 오후에는 서브와 리시브 연습, 그리고 진이 쭉 빠진 저녁에는 연습게임을 한다는 혹독한 훈련이었다.
합숙이 처음인 일학년들이 죽어가는 얼굴로 헥헥거리면 쿠로오는 때로는 토닥이면서, 때로는 귀를 잡아당기면서 일학년들을 독려했다.
주장 완장을 찬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워낙에 사람을 챙기는 성격이라설까, 네코마의 분위기는 작년과 확연히 달랐다.
“뭐랄까- 올해의 네코마, 뭔가 분위기가 좋네.”
“응, 그렇지?”
주전의 대부분이 3학년인 후쿠로다니와 다르게 네코마는 팀 구성에 초보인 일학년들을 끼워 팀을 바꿔가길 주저하지 않았다. 보쿠토는 그런 네코마의 일학년들중 제일 큰 둘을 예의주시 하는 중이었다.
둘 다 키도 크고.. 결정력이 모자란 네코마의 단점을 보완할만한 스파이커로 키우려는 걸까?
밝은 은회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1학년의 머리를 약하게 쥐어박으며 리시브 자세를 가르키는 쿠로오의 등을 쳐다보던 보쿠토의 옆에서 말소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사실 작년 네코마 3학년은 좀..”
“재수 없었지.”
“응. 노린내나 풍기면서 다니고말야.”
코노하의 말에 보쿠토는 인상을 팍 구기며 고개를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육고기를 주식으로 삼는 짐승 수인들에게는 묘한 노린내가 났다. 인간들은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는 미세한 향이고 불쾌감을 줄 정도의 악취는 아니지만 그닥 향기롭지 않긴 했다.
수인으로 변화하면서 야채와 곡물을 섭취해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가끔 육식짐승의 수인같은 경우 자신의 노린내를 꼭 자랑하듯 풀풀 풍기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지 조상자랑을 하고 싶으면 동물원에라도 들어갈 것이지, 말은 안했어도 우리 3학년들도 싫어했다니까.”
“맞아.. 아!”
맞장구를 치던 보쿠토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작게 소리를 질렀다.
코노하와 아카아시가 동시에 보쿠토를 돌아보자 제법 심각한 얼굴로 턱에 손가락을 올린 보쿠토가 외쳤다.
“그러고 보니, 쿠로오는 노린내가 별로 안나!”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하는 코노하의 반응에 보쿠토는 벌떡 일어나 쿠로오 가까이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근처를 맴돌며 코를 킁킁대자 네코마의 부원들이 희한하다는 눈으로 보쿠토를 쳐다보았다.
네코마 근처로 오니 노린내가 나긴 하는데, 작년에 비하면 희미한 수준이었다.
쿠로오는 보쿠토가 킁킁대는 것을 보며 허, 하고 웃었다.
“이누오카, 소개하마. 너희 동종이다.”
“에엣!? 보쿠토 씨, 늑대견 수인이셨습니까!?”
“당연히 농담이지.”
시무룩해진 이누오카가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자 쿠로오는 뭔가를 찾는 것처럼 제 주변을 빙빙 도는 보쿠토의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어이,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음- 그게!”
어색하게 웃으며 뒤를 돌아본 보쿠토는 잠시만 기다려봐! 하고는 쿠로오의 목덜미로 얼굴을 바짝 붙여 코를 킁킁거렸다.
섬유유연제 향기와, 약간의 땀 냄새. 불쾌감은 커녕 기분이 좋은 향기였다.
얼굴을 슬쩍 들자 당황한 쿠로오의 얼굴이 가까이에 있었다. 보쿠토는 인간처럼 둥근 귀와 둥그런 송곳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태해서 그래?”
“뭐, 뭐가.”
“쿠로오 너한테는 누린내가 안 나! 오히려 향긋하네.”
눈을 반짝이며 산만한 덩치의 남학생에게 향긋하다고 외치는 보쿠토 코타로.(18세, 부엉이 수인, 후쿠로다니 배구부 캡틴)
더 가까이 다가와 쿠로오의 머리카락 사이로 코를 부비는 보쿠토의 양 손이 쿠로오의 허리를 꽈악 껴안았다. 쿠로오는 질색하며 보쿠토의 이마를 뒤로 쭈욱 밀어냈다.
“비비지 마, 기껏 정리한 머린데.”
“이게?”
“시비 거냐?”
“근데 정말로 냄새 좋은걸. 누린내도 안 나고..”
이쯤 되니 민망해서 얼굴이 홧홧해질 지경이었다. 반나절동안 코트에서 이리저리 구르느라 분명 땀 범벅일 텐데 부리가 콧물로 막히기라도 했나..
“쿠로오 씨는 고기보단 생선파거든요~”
“생선을, 킁, 먹으면 누린내가 덜 나?”
“떨어져서 말 해!”
연습이 끝날 때까지 쿠로오 옆에 딱 달라붙어 있을 기세던 보쿠토는 쿠로오에 의해 팔꿈치의 깃털을 한움큼이나 뜯기고 나서야 눈물을 글썽이며 떨어져 나갔다.
민망함에 붉어진 목덜미를 숨기려는 것처럼 뒷목을 손으로 감싼 쿠로오가 코노하에 의해 질질 끌려가는 보쿠토를 쳐다보며 하악질을 했다.
의태하지 않고 귀와 꼬리를 내놓았더라면 털을 잔뜩 세우고 꼬리를 부풀렸을 것이다.
번뜩번뜩하는 눈동자는 가끔 보면 섬짓하다. 외관으로 수인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 맹금류에도 불구하고 보쿠토는 처음 본 누구나 아.. 수리부엉이. 하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자기주장이 강했다.
원래 부엉이란 건 조용한 동물 아니었던가.
쿠로오는 체육관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보쿠토를 흘겨보며 얼빠진 일학년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
“생선을 주로 먹는 육식동물은 뭐가 있을까?”
“음.. 고양이?”
“소형종 말고!”
얼결에 정답을 맞춘 코미였지만 보쿠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쿠로오 별로 무서운 타입도 아닌데, 1학년이랑 2학년이랑 꽉 잡은거 보면 분명 중형 이상일꺼야~ 그치?”
“확실히.. 의태를 해도 분위기란게 있지.”
그때 휴대폰으로 뭔가를 이리저리 검색하던 사루쿠이가 화면을 보이며 말을 받았다.
“재규어 아닐까? 아마존에 사는 재규어는 물고기를 사냥해 먹기도 한다던데.”
“재규어라면 표범? 아, 진짜 그럴싸하네!”
곧 쿠로오의 모습에 둥글고 보송보송한 표범의 귀와 꼬리를 접붙혀 상상한 보쿠토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어울려, 어울려! 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헤이헤이헤이! 표범이라니 뭔가 섹시하잖아!?”
거하게 헛다리를 짚었지만, 보쿠토와 다른 후쿠로다니 멤버들은 꽤나 그럴싸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착각 속에서 시간은 흘렀다.
*
바야흐로 겨울이 간 뒤의 봄이었다.
보쿠토에겐 그저 시간상의 흐름일 뿐이지만 쿠로오에게는 꽤 실제적인 위협이 다가오는 때이기도 했다.
고양잇과의 수인들은 다른 수인들보다 특히 발정기에 예민했기 때문이다.
짐승처럼 아무렇게나 소변을 누고 컁컁 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리 자제력이 강한 고양이 수인이라도 호르몬이 제멋대로 날뛰어 봄철에 일주일정도는 끙끙 앓았다.
‘..이런.’
골든위크 합숙의 마지막날, 잠에서 일어난 쿠로오는 묘한 감각에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힘없이 축 처진 고양이 귀와 꼬리가 무방비하게 드러나 있었다.
“늦잠 잤네, 쿠로오.”
“마지막이라 지쳤어?”
멍하니 이불위에 앉은 쿠로오 주변으로 이불정리를 시작한 야쿠와 카이가 한마디씩 던졌다.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려던 쿠로오는 회음부와 허리를 저릿하게 만드는 묘한 감각에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와버렸다, 발정기.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이 발정기를 조절하는 호르몬제를 처방받는 것은 불법이었다. 대신 진료내역서를 제출하면 수입일수를 인정해 주었는데, 쿠로오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골든위크를 통째로 날려먹지 않은건 다행이었지만 뒷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미안하지만 나 조퇴해야겠다.”
“어? 왜? ...아, 혹시?”
화장실에 다녀온 켄마는 평소와 달리 의태를 푼 상태의 쿠로오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용히 다가와 쿠로오 옆에 쪼그려 앉은 켄마가 말의 앞뒤를 잘라먹고 작게 소근거렸다.
“벌써..?”
“올 때가 되긴 했지.”
“집에 데려다줄께.”
“아니, 넌 마무리 다 하고 와.”
켄마가 벌떡 일어나 쿠로오의 가방을 챙기려들자 쿠로오는 그런 켄마를 만류했다. 눈썹을 스윽 들어올린 켄마가 뒤를 돌아보자 쿠로오가 그의 어깨를 도닥거렸다.
“주전 세터로써 첫 연습시합이잖아. 마지막까지 연습에 참가해.”
“그럼 너만 데려다주고 바로 올께.”
“나 택시타고 집에 갈꺼야. 진짜라니까?”
쿠로오는 혹시 몰라 두둑하게 들고 온 지갑을 들어올리며 켄마를 설득했다.
켄마는 잔뜩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이럴 때의 쿠로오가 얼마나 완고해지는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후다닥 짐을 챙긴 쿠로오는 네코마타 감독님께 달려가 몸상태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조퇴 허락을 받아냈다. 운동장에서 보쿠토를 만나기 전까지는 꽤 순조로웠다.
~(ㅇㅅㅇ)~이종~교배를~해라~(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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