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미라+대위
“나 여행이란거 처음 가봐.”
진모리의 여상한 말에 대위와 미라는 모리를 쳐다보았다가, 이내 서로를 마주보았다.
다른 아이였다면 에이 설마, 라고 가볍게 받아칠 것을 진모리가 말하니 그 성장배경을 아는 둘로썬 말의 무게가 달랐다.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는?”
“안 갔어.”
그 시간엔 그냥 집에서 수련했다고 말하는 진모리는 태연했다.
“어차피 친한 애들도 없었구- 아, 할아버지랑 산 폭포에서 정권 연습하러 간 적은 있었는데.”
그건 여행이 아니라 수련이잖아. 유미라는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하여간 특이한 녀석이었다. 첫 만남땐 스스럼없이 다가오길래 분명 친구라든가 잔뜩 있는 아이인줄 알았는데, 어쩔 때 보면 사람 사귀는게 서툰 아이처럼 행동한다.
대위는 고속버스의 티켓을 진모리에게 내밀며 씩 웃었다.
“그럼 우리랑 가는게 첫 여행이네.”
“아.. 그런가?”
“재미있게 놀자.”
“너희랑 함께라면 분명 좋을꺼야!”
기특한 말을 하는 진모리의 뒷통수를 쓰다듬어 줄까 하다가, 유미라는 척 하고 허리에 팔을 올렸다.
“휴게소의 버터감자맛을 아직 모른단 말이지? 이거 안 되겠네!”
“버터감자? 대위가 한 밥보다 맛있어?”
“어.. 음.. 그렇게 물으면..”
음식 이야기가 나오자 진지해진 진모리의 표정 앞에서 유미라가 당혹해하자 한대위가 피식 웃으며 진모리의 어깨를 툭 쳤다.
“원래 여행하면서 먹는 음식은 맛없어도 맛있는거야.”
“뭐야 그게?”
“어, 어쨌든! 호두과자라든가 휴게소 어묵이라든가! 다 나름의 매력이 있는 거니까! ”
일단은 버스 안에서 먹는 삶은 달걀부터! 라고 유미라가 외치며 바로 앞의 매점으로 뛰어들어가 구멍 숭숭 뚫린 망에 담긴 달걀과 접은 종이 안에 든 소금을 들어올렸다. 한 대위는 물 한병을, 진모리는 커다란 천하장사 소세지를 골라들고는 셋은 나란히 버스 승강장으로 향했다.
“근데 우리 어디로 가는거야?”
진모리의 물음에 유미라와 한 대위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비~밀!”
“경주.”
한 대위의 입에서 튀어나온 생소한 지명에 진모리는 흐음 하는 반응이 전부였지만 유미라의 반응은 꽤나 익사이팅했다. 바나나껍질이라도 밟은 것처럼 앞으로 주욱 미끄러진 유미라는 왈칵 짜증을 냈다.
“경주!? 나 거기 수학여행으로 두 번이나 갔어!”
“난 세 번.”
“근데 왜 거길 가!”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수도꼭지라도 발동할 기세로 유미라가 으르렁대자 한 대위는 진모리와 눈을 마주치곤 씩 웃었다.
“진모리는 처음이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갔다가 길을 잃을수도 있고.”
“그건..”
“그리고 셋이 함께라면 어디든 재밌을거라고 보거든.”
담담한 말에 괜히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진 유미라였지만 애써 풀어지려는 입가를 다잡았다.
“흥! 이번만 봐준다.”
새침하게 말하며 유미라는 승강장을 향해 성큼성큼 발을 내딛었다. 짧은 스커트를 입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내 대장부의 걸음걸이였다.
진모리는 와하하 해맑게 웃으며 유미라! 발걸음 소리가 고릴라 같아! 라고 외쳤다가 고속도로 터미널 한 복판에서 월광검법 무검식을 온몸으로 견뎌내고야 말았다.
아이돌 AU
“야, 야. 한대위 깨워봐.”
“으음...”
“대위야아아아 일어나아아~”
흔들흔들이라는 귀여운 의성어로 표시하기엔 좀 강하게 누군가가 대위의 어깨를 잡고 강하게 흔들었다. 해골이 털리는 감각에 한 대위가 어슴푸레 눈을 뜨자 승합차 문이 열리며 차 안쪽으로 찬 공기가 훅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옷깃을 여미며 다시 눈을 감자 이번엔 아예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자신의 옆구리를 팔로 감싸 끌어당겼다.
“으랏차!”
“진모리!!”
무지막지하게 자신을 차 밖으로 끌어내린 진모리 덕분에 대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반쯤 바닥에 질질 끌려가다시피 걷자, 눈 앞에 탁 트인 푸른 바다가 시야에 가득 찼다.
“벌써.. 도착했어?”
맹하니 묻는 한 대위의 말에 대답한 건 아직도 한 대위의 허리에 팔을 두른 진모리가 아니라 운전석에서 나오는 백승철이었다.
“벌써가 아님. 여기까지 오는데 차로 네시간 걸렸음. 이러다 점심 스케쥴 못 맞출지도.”
멤버중 유일하게 운전면허가 있는 녀석이라 강제로 기사노릇을 한게 맘에 안드는지 불퉁한 모양새였다.
개인 스케쥴로 저녁까지 촬영하다 온 한대위를 배려해 자게 해주긴 했어도 왠지 토라진 것 같아서 한대위는 수고했어. 하고 백승철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애들아, 빨리 와.”
일표의 말에 진모리가 달려나가며 한대위는 얼결에 같이 끌려가고 말았다. 몰랐는데 앞엔 벌써 일표형과 제갈택이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중이었다.
“곧 일출이야.”
“오늘 해 볼수 있대?”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늘 날씨는 맑을 확률 80%에 습도도 낮음. 이런 날은 뚜렷하게 해를 볼 수 있음.”
위키피디아도 아니고 칼같이 튀어나온 백승철의 대답에 진모리가 우와- 하고 감탄했다.
바다 저편이 달군 쇠처럼 점차 붉어져가는 걸 보고 한대위는 작게 중얼거렸다. 코가 시렵고 손발이 차가웠지만 볼에 와닿는 바다내음 섞인 찬 바람이 기분나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사람도 없고 좋네.”
“프라이빗 비치니까 당연하지. 허락 없이 들어오면 다 죽여 버릴거야.”
한대위의 중얼거림에 대답한건 제갈택이었다. 어쩐지 새해 첫날 일출 보는데 사람이 너무 없다 했더니 개인 해변이었나.. 아니 그보다 새해에도 저 사나운 말버릇은 여전하다.
몇 년간 함께 해서 말만큼 심성이 나쁜 녀석은 아니라는걸 알고 있기에 대위는 목도리를 추켜 올리며 피식 웃고 말았다.
“해 완전히 다 뜨면 소원 크게 외치기 할까?”
둥근 해의 머리 부근이 바다 위로 넘실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꽤 유치한 박일표의 제안에 진모리는 좋아! 라고 크게 외쳤고 백승철은 소원이라..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걸핏하면 일표형의 말에 태클을 거는 제갈택조차 오늘은 얌전했다.
“대위야, 소원 뭐 할 거야?”
“음.. 생각중이야. 넌?”
“우리 2집 앨범 대박나는거랑, 너 하는 방송 시청률 뛰는거랑, 우리 팬클럽 회원들 다 복받는거랑..”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아가며 말하는 진모리의 모습에 대위는 푸스스 웃음을 머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박일표도 웃음 섞인 목소리로 모리를 타박했다.
“모리야, 소원은 하나만 비는 거야.”
“엑? 진짜?”
“응. 나처럼.”
“형 소원은 뭔데?”
박일표는 생긋 웃으며 제갈택을 쳐다보고는 들으란 듯 말했다.
“형의 올해 소원은- 제갈택 노래가 제발 심의에 무사히 통과하는 거야.”
“아, 씨발. 시비 거냐?”
“아니면 작사가를 따로 쓰던가..”
“썅, 내 소원은 박일표 제명이다.”
제갈택이 으르렁대며 살벌한 소원을 내뱉자 즉시 백승철이 태클을 걸어왔다.
“무리임. 우리 팬덤의 절반을 장악한 박일표 팬덤이 떨어져 나가면 우리도 망함.”
“하하, 내가? 네가 대마초 하다가 먼저 탈퇴당하는게 아니라?”
“아, 시발! 진짜 담배인줄 알았다니까!!”
제갈택이 일표를 한 대 치기라도 할 것처럼 몸을 들썩이자 한대위는 급히 제갈택의 어깨를 안아 못 튀어나가게 막았다.
유독 일표 형한테만 가시를 세운다니까 이 녀석은.. 막상 일표형이 진심으로 화내면 어쩔 줄 몰라하는게.
대위가 제갈택을 진정시키는 사이 나머지 셋은 태연하게 와~ 갈매기다~ 조개다~ 하며 평화롭게 바다를 거닐었다. 그리곤 해가 완전히 바다에서 몸을 떼어낼 때가 되자 알아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소원 정했어?”
진모리의 말에 한 대위는 호- 하고 손을 코앞으로 모아 입김을 불며 대답했다.
“음.. 지금 당장 생각하는 건 좀 따뜻하게 해 달라는거? 추워서 아무 생각도 안 나.”
백승철은 어이 없다는 듯 한대위 너 지금 핫팩 네 개 붙였지 않음? 하고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추운데. 빨리 해가 떠서 소원 말하고 차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진모리는 깜짝 놀라며 그러면 안돼! 하고 한대위의 손을 잡았다.
“내가 따뜻하게 해줄 테니까, 얼른 소원 빌어!”
한대위가 응? 하고 대꾸하기 전에 진모리는 입고 있던 야상의 자크를 밑으로 쭉 내리고 한대위를 향해 양 팔을 벌렸다.
일표와 제갈택, 백승철의 시선이 흥미진진하게 한대위에게 가서 꽂히고 있었다.
“이건 또.. 공식석상에서라면 한바탕 난리가 날 만한..”
“진모리 저 새끼 저거 또 저러네..”
모리는 멀뚱히 자기를 쳐다보는 한대위에게 다가가 대위의 언 손을 자신의 야상 안으로 집어넣었다. 야상 안으로 자신을 포옹하게 하자 따뜻한 등의 체온에 한대위의 표정이 풀어진다.
모리는 따끈따끈한 손바닥을 대위의 양 볼에 찰싹 갖다댔다. 얼음을 만진 것처럼 차가웠다. 빨갛게 언 귓불을 양 손으로 조물조물하자 백승철이 혀를 차며 핸드폰을 가져다 대고 둘의 투샷을 요란하게 찍어댔다.
“해 떴네.”
“저희 2집 대박나게 해주세요!!!”
메인 보컬답게 우렁찬 진모리의 목소리가 텅 빈 해변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박일표는 그 목소리에 와하하 웃더니 양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두 번째로 외쳤다.
“우리 팬들에게 좋은 일만 생기게 해 주세요!! 그리고 제갈택 노래 좀 봐 주세요!!”
“사장이 내가 작곡한거 멋대로 박일표에게 가져다가 가사 붙이라고 하지 말게 해주세요!! 시발!!!”
그에 질세라 나란히 제갈택이 꽥꽥 외쳤다.
“ㅇㅇ모터스 올해엔 상장되길.. 그리고 텍사스 유가 정상화..”
대체 무슨 투자를 하고 있는건가.. 백승철은..
볼에 와닿는 따뜻함에 한대위가 멍하니 해를 바라보는데 진모리가 작게 속삭였다.
“대위야, 소원 안빌어? 네가 마지막이야.”
“음..”
거기서! 아하핫, 택이 너, 아육대에서 나 한번도 못 잡았지? 내가 맘만 먹으면!!
어느새 제갈택과 박일표는 이 너른 해변을 배경으로 나잡아봐라 놀이라고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작게 열리는 한대위의 입에 진모리와 백승철만 주의를 기울였다.
“내년에도 다 함께 이렇게 왔으면 좋겠어.”
“흐흐, 그 소원 나 찬성.”
“내년엔 핫팩 더 붙이고 오는 게 좋을 거임.”
“그냥 이불을 가져올래.”
박일표와 제갈택을 뒤로하고 셋은 먼저 차로 돌아갔다. 오분만에 안오면 두고갈꺼임. 이라며 살벌한 소릴 하고 차의 시동을 켜는 백승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년 일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지만.”
“음?”
“우리 일 잘 되면 내년엔 하루 휴가 내서 여행 오는것도 좋을 것 같음.”
“아! 그거 좋다.”
“사장님이 허락해줄까?”
“택이네가 대주주니까, 정 안되면 택이한테라도 부탁해보는게 좋을 듯.”
“그러자! 제갈택!! 이리 와 봐!!!”
내년 부탁을 벌써 하려는지 진모리가 차 문을 벌컥 열고는 소리내서 제갈택을 불렀다.
그는 의리없이 먼저 차로 돌아갔다며 투덜대면서도 박일표와 나란히 돌아와 차에 앉았다.
“있지, 승철이가 그러는데 내년엔 아예 하루 휴가내서 여행가자고.”
“흠. 괜찮네.”
“사장님이 된다고 하실까?”
일표가 대위와 똑같은 말로 염려스런 표정을 짓자 진모리의 입가가 씩 올라갔다.
“그러니까 택이한테 부탁하는거지! 너 대주주지?”
“...내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대주주인건 맞는데.”
그러더니 힐끔 박일표를 쳐다보며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리더 씨가 고개 숙여 부탁하면 뭐.. 말 해볼수도 있고~”
“어차피 여행은 내년이니까, 그때까지 고개 숙이게 만들어 보시던가.”
생글생글 웃으며 대꾸하는 박일표의 얼굴에 호오 하며 제갈택이 볼에 십자마크를 띄워올렸다. 그 광경을 잠에 들기 직전 몽롱한 눈으로 쳐다보던 한대위는 이내 스르륵 곯아 떨어졌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또 자냐?”
“대위는 겨울잠을 자는거야.”
“대위는 생일도 겨울인데 겨울에 왜 이렇게 약할까..”
“어쨌든! 진짜 내년엔 꼭 여행 가기야 우리!”
어쩌면 와글와글 떠드는 목소리가 듣기 좋았을수도 있고, 잠시의 짤막한 여행이 마음에 들었을수도 있다. 한대위는 자신의 머리를 어깨에 살짝 내려놓는 손길을 느끼며 이내 깊게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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