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보쿠토 x 갬블러 쿠로오
시칠리아 스텔라와 흑사회 후쿠로다니의 전쟁이 후쿠로다니의 승리로 끝났으며, 그들이 관리하던 업소를 인수한 것에 대해서는 쿠로오도 잘 알고 있던 참이었다. 그 정도 정보야 비밀도 아니었으니까. 일단 쿠로오가 놀다가 끌려온 그 카지노도 지금은 후쿠로다니의 세력권 밑에 있던 곳이고.
“지금까지는 관리하던 업소가 다 고만고만한 데라서.. 사실 이렇게 큰 곳은 내가 직접 보고 해야한다고 하더라고. 직접 시찰도 하고~”
“아하..”
“그런데 지금까지 도박이라곤 룰렛이나 우노UNO같은 것밖에 안해봤단 말야.”
“우노는 도박이 아니라 보드게임이지.”
“돈 걸면 도박이지 뭐, 암튼 그래서 배우려는 것도 있고!”
그렇다면 카드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좀 배워야 하는게 아닌가? 쿠로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카드만 나에게 배우고 다른 건 다른 선생을 초빙하려는 걸지도 모르지.
쿠로오가 대충 수긍하는 모양새로 고개를 끄덕이자 보쿠토가 추욱 고개를 늘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녀석들이 카드를 쳐..”
“녀석들?”
“수질관리위원회라고, 으, 사실 이게 정식 명칭은 아닌데, 큼직한 카지노 오너들이 모이는 소규모 모임이 있거든?”
‘큼직한 카지노 오너 = 마피아 보스’ 란 공식을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올린 쿠로오의 손이 순간 멈칫 굳었다. 보쿠토는 하아~ 하고 한숨을 푹 쉬며 투덜거리듯 말을 이었다.
“이제 나도 오너가 되어서 거기 안 낄수가 없는데, 카드를 못 치면 그 테이블에 끼워주질 않는단 말야!”
“카드 종목은 혹시 알고 있어?”
“몰라. 그냥 카드 좀 치나? 하더라고. 아카아시를 대신 보낼수도 없고.. 으으으.”
카드라고 하면 보통 홀덤, 그 다음이 세븐포커다. 족보는 크게 다르지 않고 단지 카드를 돌리고 공유하는 카드가 있는지 아닌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었다.
이렇게 세세하게 카드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털어놓을 줄은 몰랐던 쿠로오는, 다음으로 수업은 어떻게 진행하고 싶은지, 일주일에 얼마나 수업을 할 예정인지 등에 대해서도 물었다.
수업날은 그때그때 시간 날 때마다 오게 될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대답 밖에는 들은 것이 없었지만..
“그럼 마지막으로.. 예전 선생님들한테는 진도를 어디까지 나갔어?”
“기억 안 나!”
확실해서 좋네. 쿠로오는 피식 웃으며 카드를 한장 한장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클로버 10, J, Q, K, A 총 다섯장의 카드를 주욱 늘어놓자 보쿠토의 시선이 밑으로 데굴 굴렀다. 마지막 에이스까지 꾹 눌러 놓은 쿠로오가 입을 열었다.
“이게 바로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쉬.”
“호오?”
“진짜 기억이 안 나나보네.. 이게 포커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강한 패야. 먼저 족보부터 배운 뒤에 카드 만지는 법부터 가르칠 테니까.”
“아냐, 이건 알아. 그러니까.. 같은 무늬에 제일 높은 카드들이 나온 거잖아.”
“맞아. 같은 무늬가 연속되어 나오는게 플러쉬에, 연속된 숫자가 나오는게 스트레이트.”
“응, 응.”
“홀덤이나 세븐포커나 일곱장의 카드를 놓고 그 중에 다섯장의 카드로 패를 맞추게 되는데..”
쿠로오는 테이블에 놓였던 카드를 다시 회수에 착착 섞고는 다시 보쿠토와 자신 앞에 카드를 놓았다.
각자 앞에 네장의 카드를, 그리고 둘 사이의 빈 공간에 다섯장의 카드를 엎어놓은 쿠로오가 날렵한 손으로 카드를 한장한장 뒤집어 무늬를 드러내보인다.
“홀덤같은 경우는 내가 가진 네장의 패 중 두장, 그리고 바닥에 놓인 다섯장의 카드 중 두장을 뽑아서 셈을 하게 되는데.. 일단 카드 받는 순서는 나중에 보고 오늘은 족보만 외워보자고.”
마침내 자신 앞의 마지막 카드까지 엎은 쿠로오는 보쿠토 앞의 Ace카드부터 한장씩 톡톡 치며 말을 이었다.
“자아, 여기 보스.. 가 가진 카드를 보면.”
“보쿠토로 괜찮아.”
“좋아 보쿠토? 이거랑, 이거까지 하면.. 이게 바로 백 스트레이트 플러쉬.”
“어라? 숫자가 너무 작은거 아냐?”
“에이스 카드를 기준으로 양 옆이 가장 높은 패라고 생각하면 쉽지.”
“같은 무늬의 A, 2, 3, 4, 5가 백 스트레이트 플러쉬..”
보쿠토가 입 안으로 족보를 종알거리며 외우는 시늉을 하자 쿠로오는 씩 웃었다.
생각보다 성실한 학생인데?
“반면 내가 만들어진 패를 보면.. 에이스가 없는 그냥 스트레이트 플러쉬지. 쥘 수 있는 카드패중 세번째로 강한 패지만 백 스트레이트 플러쉬엔 지는 카드야.”
쿠로오의 목이 칼칼해지도록 족보와 카드 놓는 법을 설명하고 나자 한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보쿠토는 그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적당히 추임새를 넣으며 퍽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어설프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모양새가 잡혔다 싶자 뒤에서 인기척 하나 없이 시로후쿠가 불쑥 튀어나왔다.
“시간 다 되었는데요.”
쿠로오가 흠칫 놀라자 보쿠토가 아쉬운 얼굴로 카드를 내려놓았다. 벌써 수업이 끝이야? 하고 듣기 좋은 말도 한다.
쿠로오는 카드를 샥샥 정리하며 보쿠토와 메이드가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일반적인 메이드는 아닌지 부엉이회의 보스라는 사람과 반말을 하고 있다 저 사람.
그러다 보쿠토가 뜬금없이 쿠로오에게 말을 툭 던진다.
“쿠로오, 아카아시가 컴퓨터는 넣어줄 순 없지만 4층 서재는 개방해줘도 된대.”
“네? 아, 응?”
“심심해한다고 해서.”
“아..”
쿠로오는 살짝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팔을 위로 들어 시원하게 기지개를 편 보쿠토가 하품을 쩍 하며 아쉽게 중얼거렸다.
“재밌었는데, 다음에 오면 룰 다 까먹어버릴 것 같아!”
“내가 다시 설명해주면 되지.”
쿠로오는 아카아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키득거렸다. 머리를 쓰는 일을 싫어한다 그랬던가.
“그래서.. 다음 수업은 언제쯤이죠, 학생?”
“최대한 빨리 올께! 아,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보쿠토가 장난스레 눈썹을 휙 들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옷, 잘 어울리네!”
“어라, 설마 이것도..?”
“그럼 다음에 봐!”
하하하 하고 호쾌하게 웃어보이더니 뒤를 따르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건물을 나서버린다. 쿠로오는 자신의 옆에서 말없이 보쿠토를 배웅한 시로후쿠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이 옷도..”
“보스가 허락했어요.”
아니, 돈도 많은 사람들이 왜 지네 보스 옷을 가져다 나한테 입히고 난리야!?
세탁실로 들어갔다는 쿠로오의 옷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매일 침대 위에 포장도 뜯어지지 않은 옷을 올려두길래 그것을 입고 있었는데 설마 그게 원 주인이 있던 것이었을 줄이야. 쿠로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약하게 투덜거렸다.
“보스 취미가 새 옷 사서 옷장에 처박아 두기인가보지요?”
“그 나이대 청년들이 입을 법한 평범한 옷이잖아요.”
“그야, 그건 그렇지만.”
“대신 입어주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지긋히 처다보는 눈길은 네가 감히 기분이 나쁘다고 해? 보스의 옷인데? 하고 질책하는 느낌이 들어 쿠로오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을 수 밖에 없었다.
3층으로 돌아와 이젠 꽤 익숙해진 방으로 들어가자 미리 갖다둔 것인지 간단한 야식이 차려져 있었다. 쿠로오는 냉장고 안에서 맥주를 한캔 꺼내어 바삭한 나쵸와 건더기가 듬뿍 든 과카몰레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티비도 켜지 않고 나초 부서지는 소리를 멍하니 들으며 입에 든 것을 씹던 쿠로오의 머릿속으로 처음부터 상당히 친근하게 다가왔던 보쿠토와의 첫만남이 스쳐지나갔다.
‘친구가.. 없나?’
과하게 친근하게 다가오긴 했지. 쿠로오는 소파에 등을 푹 기대어 나뭇결이 그대로 보이는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하기사 직업(?)을 보면 또래 친구가 없을만도 하다. 그래서 그렇게 말을 낮추라고 한 걸까? 그래봤자 내가 그 사람의 친구가 되어줄 수는 없을 텐데. 쿠로오는 어쩐지 보쿠토가 약간, 아주 약간 가엽게 느껴졌다.
그래도 난 친구는 있지. 다른 도시에 있지만.. 1년 뒤면 만날 수도 있고.
입지도 않을 편한 옷을 사고, 카지노를 둘러보기 위해 카드를 배우는 선생이 동갑이란 사실에 기뻐하고, 그리고 아이처럼 웃는다.
어찌나 잘 웃는지 그 얼굴만 보자면 이 도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세력가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쿠로오가 두 눈으로 부엉이회가 만들어낸 시체를 똑똑히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도.
‘친구가 되어줄 수는 없지만, 조금 편하게 대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이곳에 온 지 겨우 사흘째의 일이었다.
==============
'2차 > 하이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쿠로] 리베리타 항(港)의 검은 고양이 8. (0) | 2017.08.03 |
---|---|
[보쿠로] 리베리타 항(港)의 검은 고양이 7. (0) | 2017.07.26 |
[쿠로른 계절합작/보쿠로] 바보부엉이 (0) | 2017.07.15 |
[보쿠로] 리베리타 항구의 검은 고양이 5. (0) | 2017.07.08 |
[보쿠로] 오베론 3. (0) | 2017.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