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 죽겠다!”
“여기 찬물 있어요~!”
오전 연습이 마무리되는 시간, 다섯 학교의 배구부원들은 땀투성이 몸을 이끌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차피 정규 수업이 아닌 합숙이라 점심시간도 길어서 다들 식당으로 가기보다는 조금 쉬다가 천천히 밥을 먹으려는 것이다.
“눕지 말고 일어나.”
시원한 바닥에 널부러진 카라스노 배구부들을 한명씩 챙겨 앉히는게 주장이 아니라 꼭 잔소리하는 엄마 같다. 쿠로오는 생글생글 웃으며 다이치에게 다가갔다.
“좀 쉬다가 식당 갈꺼지? 점심시간 두시까지니까 그 전까지만 오면 돼.”
“이 옆건물 2층이랬나?”
“맞아. 샤워실도 개방되어 있으니까. 여분의 옷이 있으면 씻고 옷 갈아입어도 되고..”
“아하.”
“쿠로오~!! 샤워하자!”
“싫,”
쿠로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 위로 패트병을 기울인 보쿠토가 호탕하게 웃었다. 다이치는 곤란한 얼굴로 웃으며 제 발치까지 쪼그라든 쿠로오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분명 싫다고 하지 않았나..?
“같이 멱 감자!”
거절당할거라 생각하지도 않는지 먀아옹.. 하고 울며 유니폼 사이를 빠져나오는 고양이의 뒷덜미를 덥썩 들어올린다. 다이치에게는 조금 있다가 보자! 하고 손을 흔들며 쿠로오와 함께 수돗가로 가더니 져지와 티셔츠를 훌렁훌렁 벗어제끼고 찬물을 뒤집어 써 부엉이로 변했다.
수돗가에서 시원한 물을 맞으며 목욕하는 두마리 짐승을 보니 이곳이 지금 도쿄가 맞나 싶었다.
“아, 고마워요..”
“뭘~”
발치에 널부러진 쿠로오의 옷가지를 주워올리고 있자니 네코마의 세터가 다가와 그것을 받아들고 고개를 꾸벅 숙여보였다.
켄마라고 했던가..? 그는 할말이 있는 듯 바로 떠나지 않고 살짝 머뭇대다 입을 열었다.
“별로 놀라지 않네요.”
“응?”
“쿠로오.. 주장이 저렇게 변하는 거요.”
켄마의 시선은 수돗가를 점령하고 멱을 감는 고양이와 부엉이를 향해 있었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그 밑에서 날개를 퍼득거리며 부리로 안쪽을 긁더니 호우호우 하고 짧게 우는 보쿠토 옆에서 쿠로오가 추임새를 넣듯 웨오옹 하고 울었다.
겉만 고양이라는 듯, 시원한 물 위에 느긋하게 잠겨 그루밍을 하는 게 그렇게 편하고 익숙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한참 그렇게 씻던 둘은 슬슬 지루해졌는지 거의 싸우는 것처럼 격하게 물장구를 치기 시작했는데, 제법 사나워 보이지만 이미 둘이 진짜로 투닥거리는걸 본 뒤라 그저 귀여워 보이기만 했다.
“뭐, 우리 삼촌도 반년째 비녀로 변해계시는걸. 앞으로 2년은 더 남았어. 오히려 저 정도면 귀여운 저주 아냐? 단순히 좀 특이한 체질일 뿐이잖아?”
“아.. 삼촌분은 괜찮으시구요?”
“괜찮아, 업무상 재해로 처리되어서 보험금도 나왔고.”
“다행이네요.”
“하하, 그런데 저 둘 저 상태로는 말이 통하는 건가? 꼭 대화하는 것 같네.”
“대화 된다던데요. 쿠로오 말로는. 우리 말도 다 알아듣구요.”
“오.. 그렇구나.”
대화하는 와중에도 보쿠토와 쿠로오의 물장구는 점점 더 격해졌다. 어라.. 분명 처음엔 귀여웠는데 슬슬 말려야 하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가 되자 다이치는 초조한 얼굴로 켄마를 돌아보았다. 이미 수돗가엔 아직도 보쿠토와 쿠로오가 신기한 1학년들이(대부분이 카라스노였다)옹기종기 모여 그 둘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저거, 진짜 싸우는 것 같은데..”
“아.. 동물로 변하면 활동량이 많아져서 더 활발해져요.. 피가 날 정도로 할퀴는게 아니면 괜찮아요.”
“그, 그렇구나..”
그런 다이치를 안심시키듯 둘은 금새 싸움을 멈추고 몸을 부르르 떨며 물기를 털어냈다. 눈치 빠른 네코마의 1학년 리베로가 수건을 가져다주자 두 짐승, 아니 두 사람은 거기에 몸을 파묻고는 찰싹 붙은 채 햇볕 아래에서 고롱고롱 낮잠을 즐기기 시작했다.
와.. 저건 부럽네.
“점심 먹으러 안 가세요?”
“아.”
저 둘을 구경하느라 점심시간이 30분이나 지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다이치는 그제서야 체육관에 남아있던 부원들을 챙겨 식당으로 이동했고, 켄마는 그 뒤에서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수돗가로 걸음을 옮겼다. 쿠로오에게 가는 것 같았다.
*
“저, 궁금한게 있는데요.”
문화충격과 상식파괴의 골든위크 합숙 이후, 카라스노는 후쿠로다니 배구 캠프 여름 합숙에서도 여전한 둘을 만나고 그게 꿈이 아니었구나.. 하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들은 여전히 배구를 열심히 하고 있었고 또 찬물을 맞으면 고양이나 부엉이가 되곤 했고 다른 네 학교의 학생들은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 넘기고 있었다.
“흐음? 꼬맹이는 어떤 질문을 하려나?”
“뭔데? 뭔데?”
쿠로오는 물병만 받아든 채 마시지도 않고 긴장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히나타를 보며 제법 상냥한 얼굴로 웃었다. 카라스노의 1학년들은 궁금한게 많기도 하지.
그만큼 욕심도 많아서, 밤 늦게까지 남아 하는 연습에도 눈을 빛내며 참가하는게 사실 기특해보였다.
“찬물에 들어가면 변하는 체질,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구만.”
보쿠토는 푸핫, 웃으며 그런게 왜 궁금하냐고 물었지만 히나타는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을 더 크게 치켜뜨며 그치만 궁금해요! 하고 솔직하게 외쳤다. 뭐,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당연히 배구에 관련된 질문일꺼라 생각했는데 의외랄까..
“완전 편해! 재밌고!”
“아무래도 힘들지~”
둘은 동시에 대답하고는 또 놀란 눈으로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보쿠토는 설마 쿠로오가 그런 대답을 할 줄 몰랐다는 듯 충격 받은 얼굴이었다. 꼭 배신이라도 당한 얼굴인데 저거?
“쿠로오 설마 지금까지 힘들게 지내왔단 말야!? 어째서!?”
“너야말로 이런 체질 싫다고 펑펑 울어댈 때는 언제고 좋대?”
쿠로오의 놀림에 보쿠토의 얼굴이 쉽게 달아올랐다. 입술을 깨물며 우물거리는게 확실히 부끄러운 기억이긴 한 모양이다.
“그, 그래도 지금까지 나한테 불편하다는 얘기 한번도 한 적 없었잖아!”
“물어는 봤냐.”
“아니면.. 어.. 혹시 자주 고양이로 변해있지 않아서 장점을 깨닫지 못한 건 아닐까?”
“흐음?”
“나도, 부엉이로 변해서 나는 법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별로 재미없었거든!”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 올리자 보쿠토는 안절부절하는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그리고 난, 이 체질로 변하고 나서 지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우와! 대단해요!”
뭐가 그리 놀라운지 히나타가 펄쩍 뛰어올랐지만 쿠로오와 아카아시는 거의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당당하게 얘기한다 해도.. 딱히 그 체질이 아니어도 지각하지 않을 수 있잖아!?
“막, 학교까지 날아올수도 있나요!?”
“엣헴, 교과서는 미리 사물함에 두고 캐비넷에 교복이랑 유니폼을 미리 갖다두면 맨몸으로 날아와도 문제없어!”
“그럼 얼마나 걸려요?”
“음.. 비만 오지 않으면 3분! 그날 바람이 별로 좋지 않으면 5분 정도!”
“우와아아... 대단해요! 부엉이 너무 멋져요!”
그의 반짝반짝한 눈동자 세례를 받은 보쿠토는 잔뜩 들뜬 얼굴로 헤이헤이헤이! 외치며 히나타와 함께 방방 뛰었다.
그러다 문득 뭔가가 떠올랐는지 쿠로오 앞으로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쿠로오 너도 등교할때 변해서 오면 편하지 않아?”
“고양이가 달려 봤자 전철보다 빠르겠냐.”
“앗.. 어.. 음.. 고양이가 되어서 전철을 타면!?”
“그럼 고양이로 변하는 건 좋은 일이 하나도 없어요?”
급했는지 아무말이나 지껄이는 보쿠토 바로 옆에서 히나타가 어쩐지 서운한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어쩐지 히나타 뿐 아니라 츠키시마와 리에프마저 궁금한지 옆에서 기웃대는 통에 아무거라도 좋으니 좋은 점을 쥐어짜내야 했다. 잠시 손가락을 턱에 대고 으음.. 뜸을 들인 쿠로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낮잠 잘 때 좋아.”
“네?”
“사람의 삼십분은 짧지만 고양이의 삼십분은 꽤 길거든. 빈 교실에서 햇살 받고 있으면 따끈따끈해서 엄청 기분 좋고~”
“낮잠을 자요? 어쩐지 의외네요.”
“고양이는 사실 엄청나게 잠이 많은 동물이더라. 나도 이 체질이 되고 나서야 안 거지만.”
“헤에.”
“확실히 교탁에 엎드려 자는 거랑은 수면의 질이 다르다니까. 아~ 자고 나면 꽤 컨디션이 좋아져서, 요새는 일부러 시간도 내고 그래.”
“헤이헤이헤이! 거 봐! 역시 좋은 점이 있다니까?”
어쩐지 안심한 얼굴로 그렇게 외치는 보쿠토를 보며 피식 웃고 만 쿠로오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체육관 안의 인원들을 쭈욱 둘러보았다. 그렇게 흩어봤자 본인을 빼면 고작 다섯일 뿐이지만.
“그건 그렇고.. 이제 쉴 만큼 쉬었지?”
“윽.”
“오야? 리에프 넌 리시브 연습이다.”
“왜 저만요! 저도 블로킹 연습 하고 싶은데!”
“그건 네가 네코마의 1학년이기 때문이지?”
웃는 얼굴로 리에프의 귀를 잡아당긴 쿠로오가 제3체육관 한 구석으로 리에프를 잡아끌자 아카아시는 피식 웃으며 배구공을 쥐었다. 적어도 한시간은 더 보쿠토에게 토스를 올려주어야 풀려날 수 있을 것이다.
카라스노의 두 일학년들도 보쿠토의 스파이크를 막기 위해 네트에 서서 긴장한 얼굴로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
어째서인지 그런 보쿠토의 신경은 온통 네트 뒷편의 쿠로오에게 쏠린 상태였지만,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2년동안 보쿠토 옆에서 그를 봐온 아카아시 뿐이었다.
‘또 뭐가 문제지?’
방금 대화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지 평소답지 않게 쭈뼛대는 기색이었다.
뭐가 그리 신경쓰이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아카아시는 속으로 고개를 가로질렀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저런 기색이면 적어도 삼십분은 어르고 달래야 본론이 나올 것이다.
“시작합니다.”
“어? 어.. 으응..”
아카아시는 ‘이번’에는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 같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티가 나는 사람이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리고 약 한달 뒤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면 진작에 그 머릿속을 낱낱이 내뱉어 놓으라고 추궁했을 텐데 하고 깊은 후회를 하게 된다.
마감에 성공하면 1월 부산붱온에 책을 들고 갑니닷~!
실패하면 1월 대운으로 미뤄집니다...ㅠ0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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