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늘어지게 늦잠을 자던 쿠로오는 뭔가가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인상을 쓰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툭툭툭, 빗방울 소리 같기도 하고 나뭇가지가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한게 묘하게 자꾸 신경을 긁었다.
‘으으..’
그래도 당장 잠에서 깰 정도의 소음은 아니었다. 눈을 감고 버틴 보람이 있는지 어느새 소음은 멎었다. 그러나 다시 서서히 잠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쿠로오를 비웃듯, 바닥에 놓인 휴대폰이 부르르 진동하며 전화의 착신을 알렸다.
“여보세.. 켄마? 왠일이야?”
[쿠로, 일어났어?]
“자고 있었는데.. 왜?”
[창문. 확인해봐.]
창문? 쿠로오는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졸음이 채 떨어지지 않은 얼굴로 비척이며 책상 위 창문으로 다가가자 어쩐지 익숙한 실루엣이 불쑥 튀어나왔다. 퍼덕퍼덕하고 낯익은 날갯짓 소리는 덤이다.
“호우우-!”
“뭐야.. 아까 그거, 너였냐.”
쿠로오의 창문을 두들겨 댄 것은 도심 속에서 찾아보기 힘든 수리부엉이었다.
덩치도 왠만한 강아지 저리 가라 할 만큼 큼직해 위협적일 법도 한데, 동그란 눈 하며 깨끗하고 보송보송한 깃털, 그리고 목에 맨 스카프가 아주 깜찍했다.
..사실 스카프를 두른 건 단지 귀여움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비교적 흔한 동물인 고양이가 되는 쿠로오와 달리 보쿠토는 부엉이로 변해버리게 되는데, 왠 수리부엉이가 주택가 근처에 출몰하기 시작하면서 천연기념물을 보호한답시고 119가 출동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즉 저 스카프는 사람이 키우는 티를 내어 함부로 야생동물 보호센터에 전화하는 것도 막을 뿐더러 불시에 사람이 되었을 때도 꼭 필요한 부위만큼은 가릴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갑자기 여긴 왠일이야?”
창문을 열고 보쿠토를 안으로 들이자 녀석은 꼭 사람처럼 두 발로 저벅저벅 걸어 책상 위로 자리잡고 앉았다. 또 전철타기 귀찮다고 변해서 온 거겠지. 전에 이 녀석이 벗어두고 간 옷이 있으려나... 아직 세수도 하지 못한 얼굴로 그렇게 묻자 보쿠토는 작게 호우웅.. 하고 울더니 침대로 폴짝 점프했다.
쿠로오는 더 묻지 않고 보쿠토를 덜렁 들어 품에 안은 뒤 그대로 다시 침대에 누웠다. 따끈따끈하고 보송보송하다. 좋은 향기가 나는 보드라운 가슴 깃털을 뭉개듯 손가락을 넣어 슬슬 긁어주자 기분이 좋은지 눈이 감겨서는 소리 없이 부리를 열었다 닫았다 한다.
‘요즘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보쿠토가 단순하긴 해도 이유 없이 어리광을 부리는 녀석은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 동물로 변하는 체질을 공유하는 사이인만큼, 남들은 알기 힘든 여러 애로사항을 전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당사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보쿠토의 행동은..
열에 아홉은 스트레스 때문이다!
동물로 변하게 되면 사고가 단순해진다는 건 유경험자인 보쿠토와 쿠로오가 동시에 인정하는 사실이다. 내가 쿠로오 테츠로이며 사실은 사람이고 잠깐만 이런 몸이 되었다는 인식이 사라지는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식욕이나 다른 단순한 충동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가만히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서 고양이가 어째서 밤마다 우다다 날뛰곤 하는지 본의 아니게 체감하고 있었다.
물론 그에 따른 장점도 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생각이 복잡해질 때 동물로 잠깐 변했다가 돌아오면 잡생각이 깊게 가라앉고 오래 명상이라도 한 것처럼 머리가 명료해지는데 그건 꽤 쾌적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가끔 아무 생각 없이 뒹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고양이로 변한 채로 기분 좋은 부분을 잔뜩 맛사지받고 노골노골 해져서 하릴없이 골골거리고 싶을 때라든가.
하지만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이렇게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서로에게 뿐이라, 쿠로오는 보쿠토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 묻는 대신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가슴팍의 포근한 솜털을 실컷 매만지고는 양쪽 날갯죽지 안쪽을 손가락으로 주물주물 맛사지 해주다가, 깃털이 난 방향으로 길게 긁어주자 부엉이는 갓 찜통에서 나온 찹쌀떡처럼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렸다. 쿠로오의 가슴 위에 엎어져서는 양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 새액 새액 잠든 부엉이를 만지작대던 쿠로오도 어느새 눈을 감고 수마에 몸을 맡겼다.
품 안에 이렇게 따끈하고 부들부들한 것을 안고서는 더 버티는 것도 무리였다.
*
“으.. 보쿠토..?”
“헤이헤이헤이!”
쿠로오는 퍼덕이는 날갯짓에 눈을 감고 얼굴을 세차게 지나는 바람을 마주했다. 베개 위에 앉아 발가락으로 요령 좋게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사람을 깨우는 게 완전 부엉이가 다 된 모양이다. 날갯바람이 그치고 나서야 쿠로오는 침대를 빠져나왔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전 열시가 훌쩍 넘은 상태였다.
“나 좀 씻고 올께..”
늘어지게 하품하며 그렇게 말하자 보쿠토는 얼른 쿠로오의 목깃에 달라붙어 화장실까지 그대로 따라들어왔다. 떼어내지 않은 건 보쿠토가 왜 욕실로 가고 싶어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칫솔에 치약을 묻혀 입에 물고 샤워기를 드니 욕조 안에 얌전히 들어선 보쿠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쿠로오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
“호, 호우!”
그 반질반질한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순간적으로 옛날 할머니댁 마당에 있던 검은 눈의 순한 강아지가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쪼그려 앉아 욕조 바닥에 앉은 부엉이의 머리를 쓰담쓰담 문지르자, 보쿠토는 그 손길을 옆으로 피하며 불만스레 부리를 딱딱 부딪혔다.
“재촉하긴.”
피식 웃으며 온수로 레버를 조정해 샤워기를 틀자, 귀여웠던 부엉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익숙한 얼굴이 쪼그려앉은 눈높이까지 불쑥 솟아올랐다. 물에 젖어 축 처진 머리를 한 보쿠토에게 샤워기를 건네주었더니 넉살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샤워기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바스 타월에 바디샴푸까지 펌핑하고 있는 걸 보아하니 물에 젖은 김에 샤워까지 하려는지 아주 여유 만만이다.
보통 사람이 보았다면 꿈이겠지 하며 자신의 볼을 꼬집었을 기상천외한 상황인데도 둘은 태연하기만 했다. 사실, 이런 체질이 된지 1년이 넘어가는데 찬물을 맞을 때마다 놀랐다가는 심장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쿠로오, 나 옷좀 빌려줘!”
“조이따 끄애우애(조금 있다가 꺼내줄께.)”
치약거품을 볼 한가득 머금은 쿠로오가 뭉개진 발음으로 대답하며 시선을 세면대로 고정했다. 먼저 씻고 싶었는데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욕실을 점령해 버렸다.. 이를 닦고 방에 돌아와 서랍을 뒤졌다. 분명 예전에 저 녀석이 벗어두고 간 속옷이 있었는데? 자신의 것과 섞일까봐 따로 놔두었는데 찾아보니 내 속옷인 것마냥 다른 것들과 함께 얌전히 접혀있었다. 감쪽같아서 깜빡 입어버릴만큼 기똥찬 은신술이었다.
적당한 옷을 찾아 욕실 앞에 놔두러 왔더니 어느새 샤워를 끝낸 보쿠토가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고 있었다.
“어? 내 팬티 가지고 있었어?”“뿐만 아니라 깨끗히 빨아 말려서 고이 간직하고 있었답니다?”
“나도 잘 보관하고 있어!”
태연히 튀어나온 보쿠토의 대답에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이던 쿠로오는 슬그머니 치솟는 위화감에 눈썹을 약하게 찌푸렸다. 보쿠토야 워낙에 자유로운 영혼이니까 그렇다 치고.. 내 속옷이 보쿠토의 서랍에 잠들어있을 이유가 뭔데!?
“내 속옷이 너한테 있다고?”
“응. 전에 비에 젖은 체육복 우리집에서 세탁했었잖아.”
“돌려받았는데?”
“속옷 따로 빨아두고 전해주는걸 깜빡 잊었어!”
흠, 그랬던가? 몇달 전 일이라 사실 건네받은 쇼핑백 안에 팬티가 포함되어있었는지 여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비용으로 하나쯤 둬도 나쁘지 않겠지 싶어 쿠로오는 별 말 없이 어깨를 으쓱 올리고 말았다.
보쿠토는 욕실 문을 닫지도 않고 쿠로오 앞에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사실 서로의 알몸에 익숙해진지는 꽤 됐지.. 아니 이렇게 말하니까 조금 어감이 이상한데.
순식간에 기분이 미묘해진 쿠로오를 아는지 모르는지 보쿠토는 수건을 목에 걸고는 활짝 웃었다.
“쿠로오 네 샴푸냄새다~”
“오야, 집착하는 남자친구는 싫은데~”
“푸하하핫!!”
내 샴푸 냄새를 기억하는건 둘째치고 저런 소리를 자각 없이 태연하게 하는 것도 정말 능력이다. 쿠로오는 보쿠토를 제 방에 밀어넣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자자, 그럼 쿠로오 씨의 샴푸냄새를 음미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씻고 나올 테니까.”
“알았어!”
느긋하게 씻고 방으로 돌아온 쿠로오는 순간 자신이 방을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자기 방인 것처럼 태연하게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던 보쿠토 때문이다. 얼굴만 돌려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보쿠토 옆에 주저앉자 보쿠토는 자연스레 수건을 들어 쿠로오의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쿠로오, 배 고프지 않아?”
“그러게. 슬슬 뭣 좀 먹어야 하는데.”
“배달시킬까? 전단지 있어?”
“함부로 배달음식 시켜먹으면 어머니가 싫어해. 으음.. 라면으로 타협하자.”
아침도 못 먹은 참이라 둘은 라면 다섯개를 끓여서 배가 터지도록 먹어치웠다. 큼직한 국냄비에 계란도 네개나 풀었다.
잠도 재우고 씻겨주고 밥까지 먹였으니 슬슬 요즘 어떤 고민이 있는지 말할 차례다. 아직까지 말을 꺼낼 기미가 보이지 않는걸 보면 꽤 심각한 이야기인가 본데.. 하고 슬쩍 운을 띄우던 쿠로오는 저녁이 되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벌떡 일어나는 보쿠토를 보며 속으로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 진짜 가게?”
“나도 자고 가고 싶은데.. 교복을 안 가져왔어.”
진심으로 아쉬운 얼굴로 그리 말하는 보쿠토에게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가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이대로 가려는게 맞냐는 소리였는데.
보쿠토는 욕실 앞에 입고 있던 옷을 차곡차곡 잘 개어두고 샤워기를 켰다.
순식간에 물에 젖은 수리부엉이로 변한 보쿠토가 축축해진 몸뚱이에 달라붙은 물방울을 푸르르르 털어내자 쿠로오가 수건을 들고 욕실 밖에서 기다리다 부엉이를 주물주물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호우우우-!”
“야, 야. 스카프 매고 가.”
다행히 계절이 계절이라 부엉이 깃털은 금새 말랐다. 으쌰, 무릎 위에 있던 녀석을 책상 위에 올리자 다각하는 소리와 함께 부엉이의 꽤 위협적인 발톱이 책상에 닿아 약하게 스크래치가 생겼다. 아 맞다. 부엉이는 발톱을 못 넣지. 발톱을 빤히 쳐다보다 자신의 발과 스크래치가 생긴 책상을 번갈아 쳐다보던 보쿠토는 변명하듯 몌엫... 울고는 쿠로오의 눈치를 슬금 살피기 시작했다.
“괜찮아, 어차피 1년만 쓰고 갖다 버릴 책상이라.”
“호, 호우!”
침대 어딘가에 널부러져 있던 스카프를 목에 둘러주고는 고양이로 따지면 귀가 있을 자리에 불쑥 솟은 깃털을 슥슥 매만져 세웠다. 눈을 끔뻑이며 단장이 끝내길 기다리던 보쿠토는 슬쩍 옆을 돌아 거울 안의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부리를 달각거렸다.
“뭐.. 잘 가라.”
창문을 열어주자 보쿠토는 날렵하게 허공을 날아 순식간에 멀어졌다. 솔직히 보쿠토가 하늘을 나는 감각을 이야기 할 때마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긴 했다. 지하철로 10분은 걸리는 거리를 순식간에 주파할 만큼 빠르고 높게 나는 그 감각 말이다.
“그나저나.. 결국 여긴 왜 온거야?”
실컷 어리광만 부리다가 가고 말이야, 저 녀석.
마침 이쪽이 약속이 없어서 망정이지 내가 아침 일찍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릴없이 창 밖에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을 텐데.
쿠로오는 휴대폰을 들어 아카아시에게 메일을 보냈다. 보쿠토에게 요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냐는 요지의 글이었다.
큽.. 대운 마감에 실패해서 아마 냥온에 신간으로 나올 것 같아요...(머리팍팍
붱냥 진짜 유전자에 새겨진 레벨로 너무 좋아해서 큰일이에요 이종교배를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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