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과 5편 사이에 19금부분이 있으나(편집하다가 뒷부분에 있던게 앞부분으로 이동함) 웹공개하지 않습니다.
냥온에서 나오는 신간에서 완전판(?)을 읽어주세요.ㅠㅠ
보쿠토의 느닷없는 방문은 그로부터 몇번이나 더 이어졌다.
2학년때 이후 거의 하지 않던 섹스도 보쿠토가 갑자기 달려드는 바람에 얼결에 몇번이나 해치웠다.
엊그제는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무단침입을 해가지고는, 아침에 이상하게 머리가 뜨끈해서 봤더니 머리맡 베개에 엎어져서 자고 있었다. 여름이라 창문을 살짝 열어두긴 했는데 방충망은 대체 어떻게 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심심해서 이러는 건가?’
처음 한두번은 대체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했는데 꾸준히 이러는걸 보니 그냥 귀염받는게 좋아서 이러나 싶기도 했다.
보쿠토의 어리광을 이대로 받아줘도 되는 건가, 아니면 이 버릇없는 부엉이를 정신 차리게 만들어야 하나.
쿠로오는 모니터에 틀어진 액션영화에 흠뻑 빠진 부엉이, 아니 보쿠토의 뒷모습을 빤히 보다가 날개 아래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올렸다.
깃털로 부풀어 있다지만 사이즈가 사이즈라서 꽤나 묵직하다.
“얌마.”
“호우!?”
무릎에 이 버릇없는 솜뭉치를 턱하니 기대어놓고 일부러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보쿠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려다 심상찾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퍼덕이던 날개를 바로하고 눈을 느리게 끔벅거렸다.
문제는 저 반질반질한 유리구슬같은 눈동자가 빤히 쿠로오를 쳐다보면 그는 도저히 표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는 거였다.
‘핫!’
잠시 이성을 잃은 사이 저도 모르게 부엉이의 포근포근한 몸뚱이를 잔뜩 쓰다듬어 버리고 만 쿠로오가 퍼뜩 눈을 치켜떴다. 팔자 좋게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날개를 슬쩍슬쩍 파닥거리는게 얄밉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깃털 보송한 부엉이의 귀여움을 쿠로오는 그 누구보다 더 뼈저리게 알아버렸으니까!
*
“보면.. 쿠로오는 사람일 때 나보다 부엉이일때 나를 훨씬 귀여워하는 것 같아.”
보쿠토는 카페에 앉아 에이드의 빨대를 입에 물며 불쑥 그렇게 중얼거렸다.
보기로 한 영화가 매진이라 쇼핑이나 할까 하던 참에 불쑥 호텔에 가자길래 단칼에 거절했더니 저런 얼굴이다.
“? 객관적으로 부엉이인 쪽이 훨씬 귀엽잖아?”
“너무해!”
쿠로오의 말에 보쿠토는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충격먹은 얼굴로 양 뺨을 감싸쥔다.
보쿠토 본인도 부엉이일때의 자기가 귀여운거 알고 엄청 써먹고 다니지 않나? 새삼스레 왜 이런 반응인가 싶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쿠로오 너는 사람일때의 내가 더 귀엽다고 해 줘야지!”
“내가? 왜?”
“힘세고 오래가는 코타로가 귀엽다고 했잖아!”
“다 닥쳐...”
보쿠토의 말에 쿠로오는 민망한 얼굴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요즘 너무 자주 보쿠토랑 잤나..? 횟수나 빈도를 좀 줄여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는 순간 보쿠토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쿠로오 뭔가 안 좋은 생각 하는 거 같은데?’ 하고 중얼거렸다. 귀신같은 자식.
“힘세고 오래가는 코타로여도 오늘은 안 돼.”
“치이. 쿠로오는 안 쌓였어?”
“쌓이기도 전에 네가 달려들어서 말이지.. 솔직히 피곤해.”
쿠로오가 단호하게 보쿠토의 말을 자르자 이번에야말로 축 처져서는 책상에 엎드린다. 이쪽은 누구처럼 체력이 남아도는 사람이 아니거든?
“으.. 대신 나중에 하고 싶으면..”
“응?”
“꼭 나한테 연락해야 돼.. 다른 사람이랑 하면 안 돼..?”
울먹이는 눈동자로 올려다보는 보쿠토의 얼굴은 퍽 귀여웠다. 쿠로오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는 성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단 쇼핑이나 좀 할까? 테이핑용 플라스타가 다 떨어졌거든.”
“쇼핑 하고 우리집 갈래?”
“오늘은 안 된다고 했다.”
“칫.”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드는 보쿠토의 말을 간단하게 블록한 쿠로오는 얼음만 남은 플라스틱 컵을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합적인 의미로, 쿠로오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우선순위라는게 있었다.
***
기말고사가 끝난 직후의 주말합숙이었다. 본격적인 여름방학 합숙 전의 워밍업 같은 느낌이었는데, 기말고사 낙제는 보충수업 때문에 합숙에 참가하지 못했으므로 다들 시험지 답을 맞춰보며 자신의 성적을 한탄하기 바빴다.
“영어가.. 영어가 아슬아슬해요!”
“우와 리에프 너, 외국어 달인처럼 생겨서는.”
“제 영어 실력은 워킹데드에 나오는 좀비 수준인걸요..”
“심각하잖아!?”
금요일 오후부터 시작된 합숙은 토요일 친선경기를 마치고 끝나는 일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합숙에 참가한 것은 후쿠로다니와 네코마, 그리고 신젠이었는데 우부가와는 기말고사 일정이 늦춰져 여름방학합숙부터 참가하게 되었다.
단 이틀뿐인 합숙이었지만 쿠로오의 가방은 상당히 묵직했다. 속옷과 양말을 네 장 챙기고 갈아입을 옷을 세 벌 챙기면 아무리 여름옷이라도 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찬물에 빠지면 고양이가 되는 주천향의 저주는 쿠로오의 생각보다 범위가 넓었는데, 아무래도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는 상황에 더 자주 처하는 것까지 포함되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최근 일 년간 실수로 찬물에 맞은 횟수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길바닥에서 넘어진 횟수를 훌쩍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사람으로 등교해 고양이가 되어 하교하는 일이 생기니 배구부는 물론이고 같은 반 같은 학년 중에 쿠로오가 이런 특이체질을 가졌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차라리 보쿠토처럼 날아다닐 수 있는 동물로 변하면 좋을 텐데. 집까지 날아가서 다시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가지러 오면 되니까. 고양이로 변할 때마다 켄마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미안할 지경이었다.
“....먀아.(젠장.)”
쿠로오의 예상은 거의 맞아 떨어졌다.
첫째 날은 보쿠토와 장난치다가 미끄러져서 한 번, 그리고 저녁 먹고 식당에서 정수기 컵이 무너지는 바람에 두 번. 둘째날에는 지나가다 개수대 수도꼭지가 튀어나가서 한 번에 학교가 빈 줄 알고 3층에서 화분 물을 그냥 내다버린 원예부의 테러에 두 번.. 단 이틀만에 네 번이나 고양이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젠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젖은 옷 위에 그대로 주저앉아 물에 젖은 앞발을 할짝이는 쿠로오의 귀가 아래로 축 처졌다.
위에선 죄송해요!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하고 성의없이 외치곤 교실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고.. 옆에서 시바야마가 어쩔 줄을 모르고 있길래 슬쩍 일어나 옷 위에서 비키자 얼른 젖은 유니폼을 들어올렸다. 물기를 짠 뒤 비닐에 넣어서 가방 안에 넣어주는 것은 네코마의 배구부원이라면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젖은 털을 푸르르 털고 힘없이 체육관으로 네 발을 옮겼다. 합숙 마무리를 하는 시간이니까 다들 모여있을테고 말없이 땡땡이를 칠 수는 없으니 가서 변한 모습이라도 보여야 했다.
“어라? 왜 또 변했어?”
벤치 위에 올라가있던 시야가 갑자기 쑤욱 높아지며 보쿠토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쿠로오의 목덜미를 잡고 번쩍 들어올린 보쿠토는 헝겊인형처럼 축 처진 고양이를 약하게 탈탈 흔들었다. 아직 축축한 검은 고양이는 자신을 들어올린 손이 불편한지 짜증스러운듯 올려다보며 목을 울린다.
“2층에서 화분 물 버리다가 쿠로오 머리 위로 쏟았대.”
“또? 어쩐지 자주 당하네 쿠로오는.”
“먀앜.(남말하네.)”
자신이 목격한 것만 해도 보쿠토는 이번 합숙에서 세번이나 부엉이로 변했다. 차이점이라면 보쿠토는 스스로 찬물에 기어들어갔다는 것 정도일까. 어쩌면 이거, 피하면 피할수록 더 집요하게 찬물에 맞게 되는건 아니겠지..?
어쩐지 신빙성 있는 추측에 몸을 부르르 떨자 보쿠토가 쿠로오를 품에 끌어안았다.
“추워?”
“냐-(아니.)”
“여분 옷은 있고?”
“냐아-!(없어!)”
옷은 커녕 속옷도 없어서 노팬티 차림으로 마르다 만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하악질하자 보쿠토는 고양이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주며 쿠로오를 달래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짜증났구나? 그럼 우리집 가면 되잖아. 네 속옷도 있고.”
“왜오옹?(지금?)”
“이렇게, 나랑 같이 전철타면 되지. 오늘저녁에 약속 있어?”
합숙 끝나는 날에는 왠만하면 약속은 잡지 않으니까 상관 없지만..
인상 더러운 검은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보쿠토는 쿠로오를 으쌰 들어올려 져지 안에 넣고 지퍼를 올렸다. 보쿠토의 가슴 즈음에 얼굴만 비죽 내놓은 쿠로오가 낼름대며 혀로 코를 햩고는 왜옹왜옹 하고 소리를 냈다.
“웅냥웅앵..!(가방 챙겨야 하는데.)”
“알았어. 쿠로오 네 가방이 이거야?”
쿠로오의 속옷이 왜 댁에 계세요? 라고 차마 묻지 못하는 켄마가 소태를 씹은 표정으로 쿠로오의 가방을 건네자 보쿠토는 그것을 자신의 빈 어깨에 걸쳐매고 히죽히죽 웃으며 고양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긁었다.
아주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이다.
지하철에서 온갖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보쿠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폴짝 뛰어내린 쿠로오를 보며 퍽 아쉬운 티를 냈다. 기왕 귀엽게 변한거 예전처럼 좀 더 오래 고양이로 있어도 좋을텐데.
핫초코에 퐁당 들어간 마쉬멜로우처럼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쓰다듬어 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애우웅..”
“알았어, 앞에다가 속옷이랑 놔둘 테니까 샤워하고 와.”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욕실 앞에 간 쿠로오가 보쿠토를 뒤돌아보자 보쿠토는 쿠로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것처럼 대답했다.
욕실 문을 뒷발로 밀어 닫은 쿠로오는 욕조 턱 위로 폴짝 뛰어올라 앞발로 온수 레버를 움직였다. 의외로 뻑뻑해서 한참동안이나 레버를 밀고 샤워기를 켜자 차가운 물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
반사적으로 털을 세우고 펄쩍 뛰어올랐다가 욕조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 온수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문 밖에서 보쿠토가 ‘속옷이랑 갈아입을 옷이랑 놔뒀어!’ 하고 외치기도 전에 쿠로오는 이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확실히 보쿠토가 편하기는 해.’
하루에 몇 번이나 물을 맞아 비린내가 나는 듯한 머리카락 위에 샴푸를 잔뜩 펌핑해 문질렀다. 따뜻한 온수에 우리집도 아닌데 익숙해진 욕실, 무엇보다 샤워를 마치면 보송보송한 새 옷이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을 평화롭게 했다.
부엉이일 때가 아니라 사람일 때인데도 내가 뭐라고 말하는지 딱딱 알아듣다니, 보쿠토는 어쩌면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에도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부엉이가 할 말이 있다는듯 눈을 또랑또랑 마주보며 호우호우 울거나 답답한듯 날개를 퍼덕거려도 시끄럽거나 귀여울 뿐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못 알아듣겠던데 말이지.
‘...아니, 사람이 동물 말을 못 알아듣는 건 당연한 건데.’
생각해 보면 내가 동물의 말을 알아듣는 건 찬물을 뒤집어썼을 때 뿐이잖아? 그럼 보쿠토도 고양이일때의 내 말을 못 알아들어야 하는게 맞지 않나? 샤워타올을 정리하고 몸을 깨끗이 헹군 쿠로오는 수건을 머리위에 올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굴렸다.
‘보쿠토는 대체 언제부터 고양이인 내 말을 알아들은 거지?’
*
보쿠토가 준비한 옷을 입고(어쩐지 익숙한 속옷이었다.) 빠른 걸음으로 보쿠토의 방에 도착해 문을 벌컥 열었다.
깜짝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보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보쿠토 눈이 노랬나 싶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가 보쿠토의 양 볼을 손으로 잡고 눈을 자세히 살폈다. 당황한 듯 깜빡거리는 눈동자가 꼭 부엉이일 때의 그 독특한 눈동자를 닮은 것처럼 보였다.
“왜, 왜 그래?”
“조용히 좀 해봐.”
보쿠토 이 녀석, 원래 눈동자 색이 노랗기는 했는데 예전과는 좀 변한 것 같기도 하고? 당황하던 보쿠토는 설레는 표정으로 눈을 살포시 감고 입술을 주욱 내밀었다. 그제서야 쿠로오는 미간의 주름을 풀고 피식 웃으며 보쿠토의 얼굴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장난하는거 아니거든요?”
“뽀뽀하려는거 아니었어!?”
“뭐가 예쁘다고 뽀뽀를 해 줘.”
이 정도면 이쁘지 않냐고 투덜대는 보쿠토를 두고 쿠로오는 침대 아래 방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보쿠토 너 평소에 부엉이로 얼마나 변해있어?”
“응?”
“언제부터 고양이인 내 말을 사람일 때부터 알아듣게 된거야?”
“잘 모르겠는데.. 그런 건 갑자기 왜 물어봐?”
“얼른 대답해봐.”
단호한 쿠로오의 말에 보쿠토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가로젓다가도 퍽 성실하게 대답을 했다. 눈동자를 데구르르 위로 굴려서 뭔가를 가늠하더니 느릿하게 입을 연다.
“어.. 일주일에 네, 다섯번쯤..”
“등하교 할때만?”
“주말에는 하루 종일 변해있을 때도 있고..”
“하루 종일!?”
“연습 없는 날만이야! 나 요즘 기록 갱신중이거든.”
“무슨 기록을..”
“수리부엉이가 시속 2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길래, 그만큼 속도는 내고 싶어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지!”
연습이 없는 날에도 연습을 만들어서 하고 있다니.. 쿠로오가 얼빠진 표정으로 보쿠토를 내려다보자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겐 비밀이야! 라고 속삭이며 뿌듯한 얼굴로 코끝을 슥 문질렀다.
“대체 왜?”
“그야, 너희 집에 갈 때 빨리 날아가고 싶으니까!”
“하아?”
쿠로오가 뜨악한 눈으로 보쿠토를 돌아보자 양팔로 쿠로오의 어깨를 덥썩 안고는 어리광을 부리듯 이마를 어깨에 문질렀다. 반사적으로 그런 보쿠토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던 쿠로오는 아차 하는 얼굴로 손을 내려다보았다.
‘보쿠토가 언제부터 이렇게 스킨십이 많아졌지?’
보쿠토와 꽤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기는 했다. 그렇지만 언제부터 이렇게 하루종일 찰싹 붙어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냐고 물으면 그건 둘이 주천향에 빠진 다음일 것이다. 아니 왜, 귀여운 동물한테는 프라이빗한 거리감이라는게 거의 사라지니까 말이지.. 부엉이일때 하도 자연스레 쓰다듬고 만졌더니 그게 사람일때도 크게 어색해지지 않은 느낌이었다.
자연스레 보쿠토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쓰다듬는 본인 생각은 하지 못한 쿠로오가 얼떨떨한 눈으로 자신의 옆에 찰싹 붙어앉은 보쿠토를 복잡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이건 단순히 섹스를 하는 것과는 약간 다른 종류의 스킨십이다.
그렇고 그런 의도가 담겼다기 보다는 주인님에게 치대는 애완견 같은 느낌..? 지금은 두 팔 두 다리 다 있는 사람인데도 거의 부엉이일때와 다를 바 없을 정도의 치근덕거림이었다. 무의식중에 쓰다듬을때는 몰라도 깨닫고 보면 친구사이, 아니지 동년배의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라기엔 좀 과했다.
‘이거 혹시.. 저주가 점점 강해지는건 아니겠지?’
문득 어떤 가정을 떠올린 쿠로오의 손길이 느릿해졌다.
지금은 뜨거운 물에 닿아 겉모양은 사람으로 변했지만 ‘머리’쪽은 완전히 사람이 되지 않은 거라면? 주천향의 저주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져서 언젠가는 사람이 되지 않고 영영 동물로 변해버리는건 아닐까?
자신은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보쿠토만 이렇게 애교가 넘치는 성격으로 변한걸 보면 평소에 얼마나 동물로 변해있느냐에 따라 저주의 강도가 달라지는 걸지도 모른다. 만약 어느 순간 보쿠토가 사람이 되기 위해 뜨거운 물에 들어갔는데 사람으로 두 번 다시 변하지 않는다면..
쿠로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싸악 빠졌다.
“보쿠토!”
“응?”
쿠로오는 보쿠토의 양 어깨를 단단히 잡고 비장하게 외쳤다.
“너 이제 되도록이면 부엉이로 변하지 마!”
“엥? 갑자기 왜 그래, 쿠로오..?”
“그..”
심각성이라고는 쌀 한톨 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보쿠토의 목소리에 쿠로오는 언성을 높이려다 말을 꿀꺽 삼켰다. 보쿠토가 점점 부엉이처럼 단순해진다는 건 아직 가정일 뿐 확실한 것도 아니다. 괜히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다가 보쿠토 이 녀석, 잠도 못자고 안절부절하거나 그때처럼 펑펑 울면 대신 달래줄 사람도 없고.. 뭣보다 사서 걱정을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쿠로오는 자신을 말똥하게 쳐다보는 보쿠토를 보며 내뱉으려던 말을 꿀꺽 삼키고 대신 외쳤다.
“보쿠토. 우리 꼭 저주를 풀자.”
“뭐어...”
“그것만큼은 내가 책임질테니까!”
쿠로오의 비장한 저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건지, 보쿠토는 응! 하고 민들레처럼 환하게 웃으며 쿠로오의 어깨에 얼굴을 치댔다.
주먹을 불끈 쥔 쿠로오는 결연한 얼굴로 시선을 위로 향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맑거나 흐린 하늘이 아니라 보쿠토 방 천장에 매달린 전등뿐이었지만 나름대로 진지했다.
옛말에 결자해지라고 했었지.. 보쿠토를 이런 웃기는 체질로 만든 책임을 방기할 생각은 없었다. 본인이 이렇게 부엉이로써의 삶을 즐기느라 원래대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면 보쿠토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일단은 부엉이로 있는 시간을 줄여야 해.’
쿠로오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마침 적당한 조력자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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