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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0ㅠ AT탄 쿠로오 넘나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오만번째 햩는중..
앞내용? 과는 딱히 이어지지 않습니다.
귀찮다며 오기 싫어하는 켄마를 살살 달래어 데려오다보니 살짝 늦고 말았다.
건설사의 도산으로 짓다 말아 철골이 드러난 빌딩과 버려진 건축장비가 남은 공사터가 바로 후쿠로다니의 에어리어다. 그 맞은편의 12층건물 옥상이 바로 배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당터였는데, 네코마의 팀원들 사이 자연스레 서있던 아카아시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에게 뭔가를 물어볼 틈도 없이 배틀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날카롭게 울렸다.
동시에 가벼운 가스를 넣은 벌룬이 허공 위로 둥실 떠올랐고, 보쿠토는 어떤 도발에 걸려들었는지 몰라도 잔뜩 열이 받은 상태였다.
“너흰 나설 필요 없어! 나 혼자 나간다!”
그렇게 외친 보쿠토는 팀원들의 말을 듣지도 않고 배틀 에어리어로 뛰쳐나갔다. 엄청난 자신감이네. 아무리 무명이라지만 B클래스에서 3번 이상의 승리를 거머쥔 팀인데.
혹자는 근거 없는 오만함이라 생각할만한 행동일지라도 그 주체가 굉음의 왕, 오버로드를 가는 보쿠토라면 정당성을 가진다. 실제로 5:1이라는 유리한 상황이 닥쳤음에도 상대팀은 보쿠토의 흉흉한 기세에 당황하기 시작했으니까.
공사장의 사나운 기류를 타고 벌룬은 이미 까마득한 하늘 위로 솟구친 상태였다. 쿠로오는 검지손가락에 침을 묻혀 얼굴 옆으로 들어올리고 바람을 가늠했다. 네코마의 에어리어만큼은 아니라도 나름 익숙한 후쿠로다니 팀의 배틀 에어리어인만큼 어느정도 벌룬의 움직임이 예상되었다.
“벌룬이 다시 밑으로 내려오기까지는 약 삼십분.. 정도인가.”
“그 안에 결판을 내려다보네.”
풍선을 먼저 잡거나 팬서를, 혹은 팬서로 의심되는 라이더를 전투불능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보쿠토가 선택한 전략은 후자인 모양으로, 발밑에서부터 사나운 섀도우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런 보쿠토를 바라본 쿠로오의 기색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뭐야 저거.”
“뭐가 말입니까?”
“누굴 바보로 알아?”
그 말과 함께 쿠로오는 하,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볼 것도 없다는 투였다.
“왠일로 우릴 배틀에 초대했나 했더니, 저런 런을 보여주려고 했단 말이지.”
쿠로오는 짜증스럽게 이를 악물었다. 프리러닝을 가자는 말에도 우물쭈물하며 자리를 피한 지 벌써 2주일 째였다. 처음 일주일째엔 그러려니 했으나, 그 일수가 열흘이 지나가자 슬슬 쿠로오도 보쿠토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다리에 가시가 돋힌다고 하는 저 AT바보가 왠일인가 싶었더랬다.
물론 쿠로오 본인에게 오지 않고 혼자 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 재미없잖아?’
물론 하늘을 나는 건 즐겁다. 하지만 그건 적어도 보쿠토와 쿠로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트릭을, 노력을, 시간을 쌓아 팀원들과 함께 눈앞의 벽을 부수고 한단계 더 성장하고- 그리고 함께 나는 그 짜릿한 감각을.. 보쿠토와 자신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녀석도 나도, 혼자 나는게 좋다면 팀따위 만들지 않고 혼자 달리고 있었겠지.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잔뜩 걱정한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적어도 두 다리 멀쩡하게 잘 있는거 보니 됐어, 난 또 무슨 일이라도 생겼는줄 알았지 뭡니까~”
리에프, 저런 런은 보고 있어봤자 도움도 안 되니까 가서 트릭 연습이나 하자.
손을 절레절레 흔든 쿠로오는 바닥에 AT를 가볍게 스쳐 칙, 하는 소음을 만들어 내고는 빙글 뒤로 돌았다. 아카아시의 입이 열린건 쿠로오의 등이 여지없이 돌아선 순간이었다.
“쿠로오 씨는 저게 멀쩡한 상태로 보입니까?”
“.....”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보쿠토의 두 팔 두 다리는 멀쩡했다. 보쿠토의 퇴화는 그의 런이 얼마나 호쾌한지, 패도적인지 아는 사람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변화였다. 적어도 보쿠토 하나를 두고 셋이 덤벼 간신히 버티는 저 팀이 납득할 수 있는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평소의 보쿠토의 런이 맹금의 날갯짓처럼 파워풀했다면 지금은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볼품이 없었다. 점프의 비거리도 눈에 띄일만큼 줄어 마치 날지 못하는 새가 바닥에서 홰를 치는 것 같다. 그 꼴을 보던 쿠로오가 말꼬리를 길게 잡아끌며 물었다.
“달리기 전에 술이라도 마셨어?”
“설마요. 보쿠토 씨가 막나가긴 해도 원칙은 지키는 사람이니까요.”
그럼 술대신 약이라도 했다는 건가?
쿠로오는 눈살을 찌푸리며 안력을 돋궈 보쿠토의 AT를 확인했다. 심지어 보쿠토는 연습용 AT도 아니고 제대로 그의 레갈리아를 착용한 상태였다. 착지 엉망, 런의 완급도 엉망, 점프할때 지나치게 무릎에 무리를 주고 있고.. 저런 식으로 하다간 AT에 무리는 물론이고 몸이 먼저 망가져버릴 것이다.
“..그럼 대체 왜 저렇게 달리는 건데?”
보쿠토의 AT가 난간과 벽을 디딜때마다 얼핏 보이는 작은 스파크를 보며 쿠로오가 낮게 물었다. 켄마는 이미 배틀에 흥미를 잃은 듯 난간에 앉아 폰을 보며 다리를 흔들거리고 있었다.
“알고 계시잖습니까? 이미 이야기가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무슨 이야기?”
“툴 토웉 투에서 조율자를 내어주지 않은지 3주째입니다.”
아카아시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쿠로오를 빤히 바라보는 눈길엔 얼핏 책망의 기색이 옅게 내려앉아 있었다. 조율자가 없다고? 쿠로오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레갈리아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무슨 소리야 그게?”
“조율 건, 거절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
그날은 프리러닝이 아닌 트릭의 연습을 위해 모인 날이었다.
AT를 타고 제대로 트릭을 쓰기 위해선 먼저 AT를 신지 않은 채 몸에 트릭을 익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완벽한 자세를 익힌 뒤에야 AT를 신고 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타는 법을 모르는 AT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까지 위협하는 흉기가 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AT만 벗겨놓으면 집중력을 극도로 상실해버리는 리에프를 제외하곤 네코마의 팀원들은 이런 기본 연습을 꾸준하게 하는 편이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트릭을 전개하는 것이 장점인 팀이었으니까.
네코마 팀의 주된 연습장소는 하천 다리 밑의 방둑이었다. 공간이 넓었지만 주민들의 산책로로 쓰기엔 음침하고 지저분해 인적도 드문 곳이다. 수건을 어깨에 걸고 발을 사선으로 기울어진 방둑에 걸어 허벅지 안쪽을 쭈욱 늘리던 쿠로오는 뒤에서 슬금 다가와 말을 거는 보쿠토를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쿠로오, 있잖아..”
“싫어.”
“에엑!? 듣지도 않고!?”
“조율해달라는 거잖냐.”
쿠로오의 말에 보쿠토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고개를 끄덕 위아래로 한번 움직였다.
몇주 전 리에프에게 조율해주던 장면을 목격하고 나선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그리 물어왔으므로 쿠로오가 보쿠토의 용건을 넘겨짚은건 그닥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왜 맨날 거절해? 쿠로오 넌 내가 싫어?”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애초에 내가 하는 조율은 그냥, 그.. 임시방편이라고. 넌 제대로 된 조율자도 있는게 그러냐.”
심드렁하게 말하며 방둑 한켠에 놓인 아이스박스에 다가가자 그 옆에 주저앉아 있던 야쿠가 드링크병을 하나 가볍게 던진다. 그걸 받아들고 한모금 마실 때까지 쫓아온 보쿠토는 필사적으로 변명거릴 떠올리는지 끙끙대다 번쩍 외쳤다.
“조율자가 없어질수도 있지!”
“조율자가 야생동물이냐? 그리고 난 레갈리아를 타는 사람의 몸은 몰라.”
“어라.. 그말 좀 야하다.”
“어쨌든 힘들어~ 자꾸 조르지 마.”
쿠로오는 거의 빈 드링크 통을 가볍게 흔들어보곤 그리 말을 뱉었다. 리에프의 경우야 워낙에 초보인데다 이쪽이 가르치는 입장이다 보니 런의 스타일이 비슷해서 그럭저럭 조율하는거지, 이미 완성된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데다 그 무시무시한 굉음의 레갈리아를 자유자재로 쓰는 보쿠토의 몸을 아마추어인 자신이 어떻게 조율한다는건가.
이쪽이 편하니 자꾸 부탁해온다는건 알겠는데, 슬슬 쿠로오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묘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다. 자신을 동등한 라이더로 보고 있다면 저리 쉽게 조율해달라는 부탁이 나오지도 않겠지.. 싶은.
“어떻게 해도 안되겠어?”
“절대 안됩니다.”
보쿠토의 말에 쿠로오는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평소보다 더 나긋나긋한 대답이었지만 역시 대장 부엉이, 뭔가 촉이 오는지 움찔 어깨를 떨고는 고개를 푹 숙인다.
그리곤 알았어.. 라곤 시무룩하게 대답하고는 이내 아카아시가 연습하는 쪽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어라어라. 부엉이 풀죽음 모드? 쿠로오는 그 뒷모습을 잠시간 바라보다 수건을 내려놓고는 다시 연습용 AT를 신고 벽을 박차올랐다.
그 뒤로 열흘째, 달리러 가자는 쿠로오의 문자에도 보쿠토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
“자세히 말해봐. 조율자를 안 내어주다니!? 완전 중립을 표방하는 팀이잖아, 거긴!”
“최근 도쿄 서부에서 급성장하는 슬리핑 포레스트라는 팀 들어보셨습니까?”
“.. 소문만 들었어. ‘왕’급의 라이더가 몇명씩이나 모여있다고. 과장이 심한 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팀이 ‘툴 토웉 투’를 흡수해버렸습니다. 현재 계약의 왕은 슬리핑 포레스트의 팀원이죠.”
아카아시의 말에 쿠로오 뿐만 아니라 야쿠와 켄마마저 얼빠진 표정으로 아카아시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만큼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심각하게 내려앉은 분위기 속에서 리에프가 고개를 갸웃하며 불쑥 물었다.
“계약의 왕이 누군데여?”
“궁금하면 좀 찾아봐! ‘툴 토울 투’의 리더야!”
쿠로오보다 야쿠가 한박자 빨리 리에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입안으로 툴톨투..? 라고 중얼거리는걸 보니 그새 기억에서 지워버린 것 같았다. 학교 성적이 괜찮은걸 보면 머리는 나쁘지 않을텐데, 리에프는 유독 저가 신경쓰지 않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그래서 슬리핑 포레스트 외의 다른 팀에겐 조율을 제공하지 않겠다?”
“일반 AT에대한 수리와 개조 등은 예전과 같이 제공됩니다. 다만,”
레갈리아를 쓰는 자는 직접 그 힘을 증명하러 오라- 고.
건방지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왕이라는 이름을 단지 2년이 되어가는 보쿠토 앞에 찾아오지 못할 망정 스스로 심사대에 오르라고? AT가 저꼴이 되도록 버티는 이유는 충분히 알만했다. 다만..
“저 녀석, 왜 나한테는 이런 얘기를 입도 벙긋 안한건데!?”
“그건 모르겠네요.”
담담한 아카아시의 목소리에 쿠로오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 때, 원래 정해진 조율자가 없어졌으니 도와달라고 그렇게만 얘기했어도 보쿠토의 말을 농담처럼 들어넘기진 않았을텐데.
그러고 보니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자꾸 귀찮게 하지 말라며 보쿠토를 쫓아낸 뒤였다. 보쿠토가 런을 거절하기 시작한 것이.
쿠로오는 진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바닥과 난간을 박차고 그대로 위로 점프했다. 맞은편 건물옥상의 DJ가 깜짝 놀라 나동그라진 의자 옆에 가볍게 착지해 후쿠로다니의 리더 대신 타임아웃을 요청하는데, 명백히 다른 팀원의 개입인데도 팀 후쿠로다니의 라이더들은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막 받아들여지던 타임아웃에 반발한 것은 상대팀이었다.
“우리가 왜 그 타임아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뭐?”
“애초에 D클래스 이상의 배틀에선 타임아웃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실례 아냐?”
“무슨! 5대 1로 붙어놓고 양심도 없네!?”
그들의 말마따나 배틀 중간에 타임아웃을 요청하는 전례가 없긴 하지만 애초에 5:1로 배틀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저쪽이 한발 신세를 지고 들어가는 건데, 뻔뻔하게도 정론은 내세운다. 쿠로오가 왈칵 섀도우를 피워올리자 가로등 위에서 쿠로오를 내려다보던 보쿠토가 외쳤다.
“끼어들지 마, 쿠로오!”
“네 상태를 봐! 고집부릴 때야!?”
“그러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쿠로오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고갤 올리자 보쿠토가 그 시선을 피하듯 눈을 정면에 고정했다. 삐졌냐? 삐졌어?
필사적으로 제쪽을 쳐다보지 않으려 하는걸 보니 저 서운하다고 저러고 있는게 맞다.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그런 보쿠토를 쳐다보던 쿠로오가 아카아시! 하고 그를 소리내어 불렀다. 혼자서 가능하겠어?
그 한마디로 쿠로오의 의도를 알아챈 그는 상대팀을 빤히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아뇨, 셋은 몰라도 다섯은 힘들어요.”
“켄마, 도와줘.”
“귀찮고..”
“평소 신세진게 있잖냐. 그냥 아카아시 보조 정도만.”
쿠로오의 말에 켄마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타임아웃이 안 된다면, 원래 멤버가 배틀에 참여하는것 정도는 괜찮겠지?
팬서를 제외한 나머지 포지션의 뱃지들을 살피지도 않고 아무거나 낚아챈 쿠로오가 고개를 좌우로 우득 움직여 몸을 풀었다.
[네코마&후쿠로다니 연합이 배틀에 참전! 전 송곳니의 왕! 도쿄의 대장 고양이! 지지부진하던 배틀을 단번에 끝내버릴 수 있을 것인가..!]
상대팀에선 그제서야 타임아웃을 받아들이겠다고 외쳤으나 이미 늦었다. 아카아시의 AT에서 서서히 끓어오르는 열기가 상승기류를 만들어 그의 코트가 살아있는 것처럼 펄럭이기 시작했다. 보쿠토는 제멋대로 배틀에 난입한 셋을 보며 방방 뛰었다.
“뭐야! 내가 혼자 처리한다고 했잖아! 쿠로오 넌 우리 팀도 아닌데!”
“네네~ 네코마&후쿠로다니 연합입니다~”
“갑니다, 켄마 씨.”
가타부타 별 말도 없이 아카아시는 AT를 회전력으로 인한 상승기류를 타고 곧장 상대팀에게 도약해갔다. 그 뒤로 켄마가 말없이 송곳니를 쏘아보내자 아카아시의 트릭 뒤로 뜨거워진 공기가 송곳니에 휘감겼다. 점프한 아카아시의 발밑으로 날카롭게 쏘아진 송곳니에 팀의 대형이 뿔뿔히 흩어지고, 올빼미의 발톱이 날카롭게 허공을 할퀴었다. 대인공격력으로 따지면 상위권인 플레임 로드와 블러디 로드의 실력자가 본격적으로 사냥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둘을 보던 쿠로오는 무얼 하고 있었는가 하면은..
“왜 쫓아오는데!”
“넌 왜 도망가는데!?”
저를 보고 도망치기 시작하는 보쿠토의 뒤를 쫓고 있었다.
물론 평소라면 모를까 상태가 엉망인 보쿠토가 쿠로오를 뿌리치는건 요원한 일이었다. 벽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라 보쿠토의 앞길에 사뿐히 착지한 쿠로오를 피해 보쿠토가 옆으로 진로를 틀었다. 하지만 착지와 동시에 자세를 낮춰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덮쳐오는 쿠로오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함께 나동그라졌다.
평소라면 자세가 흐트러지지도 않았을 보쿠토는 쿠로오가 태클한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쿠로오를 껴안고 바닥을 굴렀다.
“잡았, 다!!”
“으아악!”
데굴데굴 구르다 기세를 줄여 멈추자 보쿠토의 위로 올라탄 쿠로오가 어질어질한지 머리를 좌우로 털었다. 간신히 옆으로 눈을 굴려 지척의 헐거운 난간을 발견한 보쿠토가 저도 모르게 와락 상체를 일으키는데, 어느새 보쿠토의 배 위로 올라탄 쿠로오가 보쿠토의 머리 위로 무언가를 덥썩 씌워버렸다.
“....?”
보쿠토가 제 눈을 가린 천을 손으로 내려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이거, 아까 쿠로오가 입고 있던 티셔츠 같다..?
“쿠, 쿠로오!!”
“왜?”
슬며시 티셔츠 사이로 눈을 빼내니 상의를 시원하게 벗어버린 쿠로오가 씩 웃으며 장갑을 벗어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 있었다.
쿠, 쿠로오가 벗고, 내 위에 올라탔어..! 눈알이 핑핑 돌 정도로 머리에 열이 올랐다. 보쿠토가 양손을 들어올려 티셔츠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고 버럭 외쳤다.
“하, 하지 마!”
“오야? 이거 신선한 기분인데. 걱정 마. 기분 좋게 해줄께~”
그렇게 조율해달라 노래를 불러댄 주제에 막상 실전에 돌입하니 겁탈당하기 직전의 여자애처럼 벌벌 떠는게 웃겨 쿠로오가 피식 웃었다. 이미 관중의 관심은 일방적으로 아카아시와 켄마가 리드하는 배틀이 아니라 둘에게 모여진 상태였다.
게, 게이 섹스다! 조율이거든 병신아! 큰소리로 외치지 마!
보쿠토는 양 손으로 쥐어진 티셔츠 안에서도 뻐끔거렸다. 쿠로오 냄새 나잖아 제기랄! 보쿠토는 혹여나 티셔츠가 찢어지기라도 할까봐 손에 힘을 빼버릴 수밖에 없었다. 대신 제 옷을 벗기기 시작하는 쿠로오의 손목을 턱 잡아 꾹 눌렀다. 조율을 못 받았다 한들 그 힘이 어딜 가는건 아니라 쿠로오도 인상을 쓰며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니까 조율하지 마!”
“억지 쓰지 마시죠~ 아무리 너라도 그 몸상태로 레갈리아는 못 써.”
“네가, 싫어하는데 억지로 조율받을 생각 없다고..!”
“어라? 내가 싫어하는걸 어떻게 알았지? 대장 부엉이 독심술도 쓴답니까?”
쿠로오의 짖궂은 말에 보쿠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정말로 조율자가 없어졌다는걸 알면 쿠로오는 분명 저를 그냥 두고보지 못할테지. 그 사실을 말했다면 좀 더 일찍 쿠로오에게 조율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쓸데없는 제 자존심이지만 보쿠토는 쿠로오에게 동정받고 싶지 않았다. 그냥 무릎 작살나서 죽고 말래. 차라리 몸이 망가질 때까지 달릴지언정 쿠로오에게 구차하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쿠로오는 상냥하니까. 지나치게.
***
“난 진짜 괜찮아. 하지 마.”
축 처진 목소리로 그리 말해봤자 별로 설득력은 없지만, 쿠로오는 꽤나 고집스레 조율을 거부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내가 못미더워?”
“그건 절대 아냐!”
“그럼 왜? 먼저 조율 이야기를 꺼냈던건 너잖냐.”
쿠로오의 말에 보쿠토는 쿠로오의 손목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쭉 빼버렸다. 티셔츠로도 채 가려지지 않는 새빨간 귓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고집스레 얼굴을 가린 채였다.
“..네가 좋아서 조율해줬으면 싶어서.”
“뭐?”
“억지로 해주는게 아니라, 네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줬으면 싶어서..”
“으음.. 그럼 지금 집중해줄테니까 일단 옷부터,”
“싫다고 했잖아..”
보쿠토가 입으로 웅얼거리며 그렇게 말하는데, 목소리가 먹먹한 것이 꼭 우는 것 같았다. 너 울어!? 쿠로오가 어이없는 말투로 물으며 보쿠토의 얼굴을 들어올리는데, 보쿠토가 양 손으로 쿠로오의 티셔츠를 제 얼굴에 묻고 고집스럽게 떼어내지 않았다. 손에 닿는 티셔츠가 축축해진걸 보니 진짜로 우는것 같아 쿠로오는 어이가 없었다.
“왜 울고 난리야!?”
“쿠로오 네가 싫다며! 나도 너 억지로 이러는거 싫거든!!”
“그건 네가..!”
쿠로오의 목소리가 커지자 보쿠토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더니 이내 훌쩍훌쩍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한다. 관중석의 열기는 그 어느때보다 뜨거워진 채로 팝콘을 들고 둘을 쳐다보는 시선이 열렬했다. 헐 왕이 운다. 헐 대박. 오버로드가 울어! 미친 진짜야?
맞은편 건물에서 평소보다 격하게 트릭을 쓰던 아카아시가 가만히 고개를 돌려 이곳을 쳐다보기까지 하니 유큐브 조회수가 와르르 올라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것만 같다.
와 씨. 이녀석 우니까 진짜 내가 못된 짓 하는것 같잖아.
쿠로오의 볼에 식은땀 한방울이 맺힌다. 쿠로오는 한숨을 푹 내쉬곤 조심스레 보쿠토의 볼을 톡톡 두들겼다.
보쿠토가 자기를 동등한 라이더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저 저 혼자 그에 비하면 격이 떨어진다고 못난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보쿠토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사실 제 열등감이 쿡쿡 찔렸기 때문이다. 보쿠토의 숙여진 얼굴을 제 정면으로 바로 들어올린 쿠로오는 조용조용 속삭였다.
“그럼 다시 부탁해. 조율해줬으면 좋겠어?”
그런 쿠로오의 목소리에 보쿠토가 고개를 저을 수 있을리 없다. 천천히 고개가 끄덕이자 쿠로오는 씩 웃으며 보쿠토의 손에서 제 티셔츠를 살살 빼냈다.
“왜?”
보쿠토의 옆으로 눈물에 엉망으로 젖은 티셔츠를 툭 던지자 보쿠토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바닥에 구멍이라도 낼 기세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눈물은 멎은것 같지만 눈가는 아직 벌건 채였다.
“내 런을.. 가장 잘 아는건 쿠로오 너잖아..”
“응 그래서?”
“그러니까 네가 조율해줘.”
“정답.”
쿠로오는 고갤 숙여 보쿠토의 호흡을 빨아들였다. 입술은 아주 천천히 겹쳐졌다.
***
쿠로오는 눈을 감았다. 존재하는 모든 감각을 눈 앞의 보쿠토에게 쏟아부어야 했다.
“걸리적거리니까 옷 벗어.”
“으, 으응!!”
이마를 맞댄 채 보쿠토가 부산스레 상의를 벗어던지는 동안 그의 소리를 들었다. 쿠로오의 손이 보쿠토의 볼에서부터 목, 쇄골, 등과 가슴 위로 천천히 미끄러져내렸다. 탄탄하게 짜인 근육 아래에서 혈관이 맥박치는 감각, 관절이 움직이며 내는 진동, 소리, 귀가 아닌 전신으로 진동을 자각해 받아들이는 쿠로오에게 그 손끝은 일개 단말이 아닌 감각기관과도 같았다.
‘심장이 빨리 뛰네.’
전투의 영향 탓인지 보쿠토의 박자가 빠르다. 쿠로오는 거슬릴 정도로 거세게 뛰는 심장 덕분에 다른 잡스러운 소리가 먹히자 인상을 쓰고 몸을 내렸다. 보쿠토의 가슴을 뒤로 밀어 눕히곤 보쿠토의 가슴 위로 귀를 대고 가만히 소리에 집중했다.
“헉..!”
갑자기 뒤로 밀리자 놀랐는지 보쿠토의 입에서 숨이 터져나온다. 이내 쿠로오는 바깥으로 분산되는 집중력마저 모두 보쿠토의 내면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엉망으로 엉킨 리듬을 하나씩 풀어가야 한단 말이지. 한숨부터 터져나올 것 같은 몸상태였다. 쿠로오는 천천히 손가락을 올려 보쿠토의 삼각근 아랫부분을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뼈와 근육 사이의 지점을 정확히 자극하자 흐름이 원활하지 않던 곳의 소리가 달라졌다. 쿠로오는 상체를 아예 보쿠토에게 붙이다시피 밀착했다. 보쿠토의 어깨와 목 사이로 얼굴을 묻고 벗은 가슴이 맞닿았다. 쿵쿵 뛰는 박동에 화답하듯 쿠로오의 리듬이 보쿠토에게 녹아든다.
겨드랑이부터 팔꿈치까지의 어느 부분을 꾸욱 눌러 미끄러지자 보쿠토가 앓는 소리를 내며 작게 쿠로오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주춤 손을 들어올려 쿠로오의 등을 꼬옥 껴안았다.
등 뒤에서까지 보쿠토의 소리에 먹혀들어가, 마치 온 몸이 물에 잠긴 것처럼 보쿠토의 기색에 녹아드는 것 같다.
보쿠토의 가슴 위로 양 손을 올린 쿠로오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치워. 방해돼.”
“엇, 그래? 이러면 내 소리가 더 잘 들리지 않아?”
“.....”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물으려던 쿠로오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저 녀석, 제대로 된 전속 조율사가 있었지 참.
순간적으로 얼굴도 모르는 조율사를 꼬옥 껴안고 있었을 보쿠토를 상상하자 기분이 요상해졌다. 쿠로오는 상체를 들어올려 얼빠진 보쿠토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따콩 때려 딱밤을 먹이고는 으르렁거렸다.
“잡담하지 말고 집중해.”
“나 엄청 집중하고 있어.”
말이나 못하면. 쿠로오는 속으로 혀를 차며 보쿠토의 무릎 아래를 꾸욱 눌렀다. 몸을 뒤로 옮겨 허벅지에 귀를 대고 숙여진 쿠로오의 마른 등을 보쿠토의 눈이 햩듯이 담았다.
지금의 조율은 그저 임시방편일 뿐이지만, 배틀하는 도중 잠시 응급처치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건 알지만.
두 눈을 형형하게 뜨고는 그 등위로 자신의 손바닥을 미끄러뜨려 끌어안는다.
곧,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할꺼야. 네 전신의 맥박이 나와 함께 뛰도록.
보쿠토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 무슨일인가 싶던 와중에 팀 후쿠로다니와 다른 팀의 앰블럼 배틀이 열린다는 사실을 파츠워우 홈페이지에서 접한 쿠로오.
그리고 끙끙 앓는 보쿠토를 보다 못해 쿠로오를 비롯한 네코마팀을 배틀 특등석에 초대한건 아카아시.
왕의 배틀을 보고 싶다고 광광 울어서 어쩔 수 없이 쿠로오가 후쿠로다니의 에어리어오 오게 만든 건 리에프.
쿠로오한테 조율을 거절당하고 나서 쿠로오가 내 망가진 몸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살짝 궁금했던 보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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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토는 두툼한 양모 담요를 얻어 작은 불이 타는 화덕 옆자리에 잠자리를 잡았다.
그동안의 여독이 풀릴 만큼 단잠을 자고 일어나자 어느새 몸단장까지 마친 쿠로오가 보쿠토를 깨웠다.
“집 뒤켠으로 가면 개울이 있어. 씻고 오지 그래, 기사님?”
“흐아암.. 보쿠토로 됐다니까.”
늘어지게 하품을 한 보쿠토는 쿠로오가 말한 대로 집 뒤켠으로 이동했다.
“호오.. 이건 또.”
아침의 숲은 밤의 숲과는 달리 굉장히 낭만적이었다. 풀잎에 맺힌 이슬은 요정처럼 빛났고 산새들의 지저귐과 작은 개울 흐르는 소리, 그리고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작은 오두막. 확실히 이런 곳이라면 마을에서 떨어져 살만 하겠어. 세수를 하고 머리까지 감았는데 그제서야 제가 수건이며 뭐며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쩔 수 없이 물을 뚝뚝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자 쿠로오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수건을 던졌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네.”
“하하! 그런 소리는 자주 듣지!”
“칭찬이 아닐텐데?”
식탁엔 어제 먹다 남은 스튜에 물을 더 넣고 끓여 스프처럼 묽어진 것과 흰빵, 그리고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가 차려져 있었다.
고기잖아! 스프는 밋밋했지만 염장한 고기와 함께 먹으니 맛이 좋았다. 보쿠토는 간만에 먹는 부드러운 흰 빵을 우물우물 씹어삼키며 남자의 얼굴을 힐끔 눈에 담았다. 조용조용 빵을 뜯어먹는 자세는 귀족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절도와 기품이 넘쳤다.
“뭔가 할 말이라도?”
눈을 음식에 고정하고 있던 것 같은데, 시선을 알아차렸나? 보쿠토는 당황해서 괜히 입술을 우물거렸다.
“아, 아니. 그냥 오늘 가는 길이 걱정돼어서.”
“그거라면 걱정 마. 길은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오오. 그거 믿음직스럽네!”
식사를 마치고 쿠로오가 그릇을 정리하고 짐을 챙기는 동안 보쿠토는 가지고 다니는 손칼로 대충 면도를 했다. 손가락으로 턱을 쓸자 매끈한 감촉에 괜히 전의가 불탄다. 좋아! 이쪽은 준비 만반이라고!
갑옷을 챙겨입고 망토를 걸치자 쿠로오는 붉은 외투를 걸치고 등에 비스듬히 가죽가방을 매었다.
“그거, 숲에 입고 가도 괜찮겠어?”
“응?”
“그 외투 말이야. 비싸보이는데..”
“아아. 걱정 마. 어차피 하나뿐인 외투고, 이럴 때 입지 않으면 언제 입겠어.”
쿠로오는 그렇게 말하며 슬리퍼를 벗고 갈색의 가죽 부츠를 신었다. 문단속도 하지 않고 대충 집의 문을 닫아두고 나오는데, 보쿠토는 그걸 보고 괜찮을까 싶었지만 이런 깊은 숲속까지 사람이 올 일이 있을까 싶어 그냥 놔두었다.
“갈까?”
“오옷! 좋아!”
보쿠토의 예상대로 점점 흐릿해지던 오솔길은, 그들이 집을 출발한지 한시간쯤 되자 완전히 흔적이 끊겼다. 길이 나있지 않은 곳을 걷자 몇배로 힘이 드는 느낌이었다.
‘덤불이라도 좀 치면서 걸으면..’
보쿠토가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빼들었다. 스릉하고 날카로운 소리에 쿠로오의 귀가 쫑긋 움직이며 날카롭게 뒤를 돌았다.
“무슨 짓...!?”
“응? 나는 그냥 덤불을 좀 치려고..”
쿠로오는 눈썹을 와락 찌푸리며 비웃듯이 입을 열었다. 괜히 그 얼굴에 보쿠토의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그래서 내 뒤에서 휙휙 칼질을 하겠다?”
“아.. 헉! 미안해! 절대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그럼 내가 앞에 가서 덤불을 칠테니까..!”
확실히 이건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 생각해보니 행군을 할때도 덤불을 치는 건 맨 앞의 녀석이 하는 일이었던가! 보쿠토가 허둥거리며 그렇게 말하자 쿠로오는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올리며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됐네요. 도련님. 그냥 내가 가는 길로만 잘 따라와. 그러고 그런 장검으로 풀 치는거 아냐. 금새 녹슬어 버릴껄?”
또 이름을 부르지 않네. 보쿠토의 볼이 불퉁해졌으나 지은 죄가 있어 뭐라 말도 못했다.
작은 소란 끝에 쿠로오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주의 깊게 쿠로오가 발을 디딘 곳으로 움직이자 신기하게 몸이 별로 힘들지 않았다. 봄은 모든 식물들이 기지개를 편다. 이것은 숲속의 식물들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뿌리를 아래로 둔 식물들이 위로 줄기를 활짝 뻗으면 잘못해서 뿌리를 밞거나 해서 걷는데 상당히 어려운게 숲길이었는데. 쿠로오는 마치 두서없이 자란 이 덤불들의 안쪽까지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굉장하네. 아까보다 훨씬 편해졌어.”
“흐응.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해결하지 못할 일도 있답니다.”
“확실히 그렇군..”
쿠로오 덕분에 걸음걸이에 훨씬 여유가 생긴 덕분에 보쿠토는 그에게 이것 저것 대화를 시도했다. 얼핏 상냥한 성격인데 그는 절대로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대답은 꽤나 상냥해서 대화하기에 나쁜 상대는 아니었다.
“나이가 어떻게 돼?”
“도련님은?”
“보쿠토라고 부르라니까. 나는 스물 세살이야.”
“엑. 그렇게 어리.. 어려 보이는데?”
보쿠토는 내심 쿠로오의 나이가 자신과 비슷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는 상당히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면도를 해서 그런가? 동안이란 소리에 헤벌쭉 벌어진 얼굴로 보쿠토가 되물었다.
“헤이, 나 진짜 어려 보여?”
“어.. 음.. 다시 보니 제 나이 같아 보이기도 하네.”
“쿠로오는? 나랑 동갑? 아니면 위?”
“동갑.. 이라고 해둘까나.”
“엑. 그게 뭐야?”
“하하. 농담이야. 방년 스물 셋이랍니다.”
그들은 대화를 하다가, 말거리가 끊기면 입을 다물고 묵묵히 걸었다. 어느새 해가 중천으로 떠올랐고, 보쿠토가 허리에 매단 물주머니를 세번정도 열어 목을 축였을 때 쿠로오가 살짝 지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흠. 그럼 여기서 잠깐 쉬었다가 갈까?”
“좋아. 성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이제 금방이야.”
고개를 드니 확실히 성의 지붕이 굉장히 가까워져 있었다. 이 정도라면 수도 외곽성벽에서 광장 중앙의 시계탑까지 거리 정도일까. 허나 그 사이에 놓인 것이 탁 트이고 정리된 도로가 아니라 빽빽한 수해였던 고로 그 둘은 적당한 곳에 주섬주섬 자리를 폈다. 저리 가까워 보이지만 아마 한시간은 더 걸어야 할 것이다.
쿠로오는 가방을 열어 기름종이에 싼 차가운 햄과 겉이 단단한 흰 빵, 그리고 치즈 한덩어리를 꺼냈다. 빵을 반으로 쪼개 햄과 치즈를 끼워넣자 훌륭한 샌드위치가 되었다. 보쿠토는 와구와구 빵을 먹어치우고 입가에 남은 고소한 치즈를 삭 햩았다. 쫄깃하고 선명한 상아색 치즈는 끝맛까지 환상적이었다. 분명 이것도 어느정도 가격이 나가는 식재료일 것이 틀림없다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좋은 것만 먹어온 귀족자제인 보쿠토는 생각했다.
“조금만 마셔.”
쿠로오가 건낸 손바닥보다 작은 가죽 물병을 받아 기울이자 알싸한 알콜향이 풍겼다. 달콤하면서 쌉쓰름한 향기에 슬쩍 병을 기울여 한모금 마시자 목줄기가 짜르르 울릴 정도로 독했지만 맛이 좋았다.
“오! 이거 좋은데!”
“독한 녀석이니까 입가심만 해.”
쿠로오는 이런 곳에서 취하면 버리고 갈꺼에요~ 라고 이죽거렸고 제 주량을 아는 보쿠토는 입맛을 다시며 술병을 다시 쿠로오에게 내밀었다.
그는 두모금 정도 술을 삼킨 뒤 술병을 다시 품에 넣고, 보쿠토가 건네주는 물을 마셨다.
묵직하게 어깨를 짓누르는 갑옷의 무게는 익숙했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보쿠토는 어깨와 목을 움직여 대충 스트레칭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갈까나?”
툭툭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쿠로오는 붉은 외투에 나뭇잎 몇장이 붙었다. 보쿠토는 그 나뭇잎을 정리해 주다가 제 망토나 잘 챙기라는 핀잔을 들었다.
“이제 금방이야.”
“아아. 알고 있어.”
보쿠토는 긴장하며 검의 손잡이를 한번 꽉 쥐었다가 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장막처럼 펼쳐져 있던 숲이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낡은 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까악- 까악-
성의 첨탑은 까마귀들의 차지가 된 건지 검은 깃털이 지저분하게 바닥을 더럽히고 있었다. 구름 한점 없는 날씨인데도 울려 퍼지는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괜히 음산했다.
“일단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여기까지 도움을 받았지만 마법사를 무찌르는 데까지 데리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보쿠토는 쿠로오를 두고 성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무가 아닌 쇠로 만들어진 문은 보쿠토의 키를 훌쩍 넘는 크기였고 녹이 슬었지만 아직 단단했다. 건틀렛을 낀 손으로 문을 두드리자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멈추었다.
쾅쾅쾅!
“문을 열어라!”
쾅쾅!
“이 봐! 안에 있는거 다 알고 왔어!!”
“그래봤자 잠긴 문이 풀리진 않을 텐데..?”
한참 뒤에서 보쿠토가 뭘 하려는지 보고 있던 쿠로오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물었다. 보쿠토는 그렇지만.. 하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 순순히 문을 열어주진 않겠지?”
“아니, 내 말은 안에 아무도 없으니까 문을 열어줄 수 없다는 뜻이었어.”
“안에 아무도 없다고!?”
쿠로오의 말에 보쿠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럼 마법사는!? 난 마을 사람들의 부탁을 받고 온건데!?
보쿠토의 옆으로 걸어온 쿠로오는 품 안에서 커다란 놋쇠 열쇠를 꺼냈다. 그 열쇠를 문의 열쇠구멍에 넣고 가볍게 돌리자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열렸다.
“에..?”
“자. 이제 말 해도 돼.”
쿠로오는 두 팔로 문을 활짝 열었다. 보쿠토는 정말 아무도 없는지 생활의 흔적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성 안을 쳐다보다 퍼뜩 고개를 들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쿠로오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살랑살랑 움직였다.
“이 성에서 마법사에게 할 말이란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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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넘죠아ㅠ0ㅠ
뒷내용은 201609냥온, 201701 대운동회때 가져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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