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국으로 돌아온 쿠로오는 리에프를 호출해 아주 그냥 불판 위의 오징어가 되도록 자글자글 태웠다. 차트 좀 제대로 확인해. 이 약은 무슨 생각으로 처방했어? 혈액 검사를 했으면 피드백을 해야 할 것 아니냐. 오야, 이 환자분 폐렴끼 있다는 말을 어제도 들었는데 아직도 x-ray 처방을 안냈습니까? 무슨 배짱이야 응? 당직이 뭘 하는게 있어야 의국을 맡길 거 아니겠냐. 그렇지?
영혼의 탈곡기에 털린 것처럼 초췌해진 리에프가 비틀거리며 의국을 나서자 그와 교대하듯 보쿠토가 파일을 들고 쿠로오에게 다가왔다. 고갤 돌려 리에프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보쿠토가 짖궂은 얼굴로 이죽거리며 말했다.
“와- 리에프 장난 아닌 표정인데?”
“뭐가 말입니까아..”
“유서에 쿠로오 네 이름 쓰고 자살하러 갈 얼굴이야.”
“헛소리 하지 마..”
“진짜 피곤한가보다? 말꼬리를 다 늘리고.”
보쿠토는 의자 등받이를 앞으로 해 팔꿈치를 괴었다. 그대로 쿠로오의 얼굴로 손을 뻗는다.
듀오백 위에 몸을 길게 늘리고 고개를 뒤로 넘겨 흐물흐물해진 쿠로오의 눈꺼풀 위로 보쿠토의 손가락이 따스하게 닿았다. 피곤한 눈에 온기가 닿자 어쩐지 눈이 풀리는 느낌에 쿠로오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그 환자 조금 대하기 어려워서.”
“화풀이야? 너무한 선배네!”
“새벽 두시에 수술끝난 환자 진통제를 새벽 다섯시에 처방냈더라고.”
“아아. 그건 어떻게 쉴드쳐줄 수가 없다! 잠시나마 너의 인성을 의심한 내가 나빴어!”
“미안하면 눈 더 만져줘.”
“아. 응.”
쿠로오는 눈꺼풀 위를 떠난 체온에 짐짓 투정을 부리듯 그렇게 말했고, 보쿠토는 평소처럼 깐죽대지 않고 얼른 쿠로오의 눈 위를 손으로 덮었다.
보쿠토의 손은 큰 편이었고, 언제나 활력이 넘치는 것을 증명하듯 체온도 높은 편이었다. 보쿠토는 쿠로오가 앉은 의자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의자 바퀴가 끼릭, 하고 울면서 용케 움직인다. 보쿠토는 손을 그대로 쿠로오의 눈 위를 덮은 채 그의 어깨에 턱을 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12층 그 환자 말하는거 맞지?”
이제 입을 여는것도 귀찮아진 쿠로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감기니 저절로 졸려진다. 원래 레지던트라는 것이 눈 감을 시간만 있다면 고꾸라져 자는 직종이라지만 지금은 자면 안 되는데..
“방금 수술 동의서 받아왔는데, 직종에 비해 어.. 점잖은 사람인것 같던데. 많이 피곤하게 해? 어차피 OS수술도 있는데 전과시킬래?”
간손상 환자를 OS로 전과시키라니 제정신이냐. 게다가 넌 속고 있어. 그 남자는 점잖은 게 아니라 점잖은 척 하는게 몸에 배인 것 뿐이랍니다. 이 쿠로오님의 촉은 틀린 적이 없어요.. 그 말을 하려고 막 입을 여는 순간 보쿠토가 사실은 그 환자 따위 상관없다는 듯 곧장 다시 물어왔다.
“근데 쿠로오. 나 졸린데 우리 알람 맞춰놓고 한시간만 자자.”
쿠로오는 하. 눈을 뜨고 심각한 표정으로 보쿠토를 쳐다보았다.
“그거 완전 좋은 생각이야.”
*
쿠로오는 자신이 위태로움을 즐기는 성격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이 남자와의 대화는 몇 번 나눠보지도 않았는데 아슬아슬했다.
7호실의 마츠카와 환자는 늘 교수님의 회진을 거절하고, 인턴들이 순회하는 상처부위 드레싱도 거절하기로 유명했다. 물론 그가 진짜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지만(직업이라든가 직업이라든가 직업이라든가) 오직 점심시간 이후 주치의인 쿠로오 테츠로에게만 드레싱을 맡기는데, 다른 환자라면 특별취급이라며 말이 많을만도 하건만 환자 주변을 호위하듯 포진한 험악한 남자들 덕분에 쿠로오만 병원 내의 불쌍하단 시선을 한몸에 모으게 됐다.
“그런데 선생.”
“에?”
“왜 엑스레이를 매일 꼭두새벽에 찍으러 가게 하는건가 해서. 혹시 내 관심 끌고 싶어서 못되게 구는거야?”
쿠로오는 한쪽 볼에 밀어넣었던 아이스크림을 빼고 보란 듯이 피식 비웃었다. 이러나 저러나 근 일주일을 입원한 환자라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젠 환자가 권하지 않아도 소독을 마치면 냉동실 문을 열고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 다 먹을 때까지 환자의 말상대를 했다. 물론 소독 시간이 되면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문 밖으로 몽땅 나가버리는 어깨들이 없어 편히 풀어진 이유도 있었다.
“저기요 환자분. 나를 지나치게 깜찍하게 보고 있는데.. 아홉시부터는 외래환자때문에 영상실이 붐벼요. 게다가 일찍 사진을 찍어야 교수님 회진때 사진을 보고 판독을 할 거 아닙니까.”
“흐응.”
“흐응은 무슨. 살다살다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환자 처음 보고요?”
“이렇게 잘생긴 환자가 처음이라고?”
마츠카와는 그렇게 말하며 쿠로오가 물고 있던 아이스크림의 손잡이를 잡고 쓱 빼내버렸다. 타블렛을 확인하던 쿠로오의 입밖으로 반쯤 씹힌 아이스크림이 투둑 떨어지자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는 얼굴에 보란 듯 쿠로오가 먹던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는다.
당황해 말문이 막힌 쿠로오의 얼굴에 대고 놀리듯 피식 웃으며 자신을 빤히 보는 눈길.
이제 어쩌려고? 쿠로오는 가끔 이런 식으로 자신의 반응을 즐기듯 돌발행동을 하는 환자의 모습에 늘 오기가 치미는 것이었다.
눈가를 가늘게 접은 쿠로오는 입술을 달싹이며 잠시 말을 골랐다.
그쪽이 원하는게 뭔지는 알겠는데, 그걸 내가 꼭 기대에 부응해 줄 필요는 없잖아?
“먹던 걸 뺏는게 제일 치사한 짓이라 하던데.”
“이제 막 금식이 풀린 참이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싶은걸 참고 있다고.”
남자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마치 담배연기처럼, 분명 해로우나 중독되어 끊을 수 없는 종류의 매혹이 쿠로오를 감쌌다. 흡연자도 아니면서 무슨 비유냐 물으면, 학창시절 담배를 끊은 뒤 그와 이야기할 때처럼 담배가 절실한 적이 없다 대답해야겠다. 애초에 군것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가 꼬박꼬박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어 허전한 입을 달래는 이유가 그것이었던 바에야.
쿠로오는 손을 천천히 남자의 옆구리 위에 올렸다. 피주머니를 제거한지 얼마 안 되어 이대로 꾹 누르면 다시 상처가 터지고 핏물이 고일 것이다. 짐짓 위협하듯 살짝 체중을 실어 상체를 남자 위로 기울였다. 남자의 입에 물린 막대기에 겨우 한입이 될까 말까 하는 아이스크림 조각이 매달려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어치우려는 것처럼 쿠로오의 입이 마츠카와 얼굴 앞에서 살짝 열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knock, knock.
그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분명 둘은 키스했을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어라, 쿠로오 선생님?”
“오야오야. 보쿠토 선생이 여긴 왠일이야?”
쿠로오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자연스레 상체를 일으켜 세워 보쿠토를 맞았다. 보쿠토의 시선이 침대 옆 선반에 놓인 디셋에 가 머물렀다가 다시 쿠로오의 얼굴로 이동했다. 쿠로오는 싱긋 웃으며 가운에 두 손을 쑥 집어넣고 보쿠토에게로 몇걸음 옮겼다.
“수술실에서 뵙고 다시 뵙네요. 왼팔 수술을 집도한 보쿠토 코타로라고,”
“쿠로오.”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하던 보쿠토의 목소리를 끊고 남자의 목소리가 쿠로오의 어깨를 잡아챘다. 쿠로오는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미묘하게 들어올렸다. 아니 둘이 있을 땐 선생소릴 잘만 하더니 갑자기 왠 이름?
“이거.”
그리고는 자신의 입에 매달려 있던 아이스크림의 막대를 내민다. 가져가서 먹으라는 건지 버리라는 건지, 일단 그의 손에서 그걸 받아든 뒤 휴지로 감사 쓰레기통에 던지자 기껏 양보했는데 너무하는군. 따위의 소리가 들려온다.
“마츠카와 환자분 너무하시네~ 설마 먹던 걸 주려고?”
“......”
남자는 대답 없이 목을 울려 웃었고, 쿠로오는 시선을 다시 보쿠토에게 던졌다. 그 눈에 응답하듯 보쿠토는 xray 사진을 들어 왼팔 상태에 관해 간단히 설명하고 팔을 고정한 철심을 6개월 뒤 제거해야 하니 퇴원 전에 수술날짜를 미리 확정짓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쪽도 적어도 한달에 한번씩은 f/u와야 하는데. 그럼 우리 교수님 일정하고 같이 맞추지? ”
“아아. 사실 네코마타 교수님께는 말씀 드리고 온거야. 네가 여기 있을줄은 몰랐지만.”
“입원 해야겠지?”
“당연, 아. 철심제거 수술도 꽤 큰일이라 이틀은 입원해야 할 겁니다.”
“쿠로오 네가 알아서 해줘.”
마츠카와는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는 얼굴로 비스듬히 세워진 침대에 상체를 기대어버렸다.
진짜 알아서 해? 징검다리 스케쥴로 병원에 들락거리게 해 버릴까보다. 쿠로오는 네네 그러지요, 하고 쌈박하게 대답하곤 병실을 나섰다.
함께 병실을 나온 보쿠토의 시선이 볼에 끈덕지게 매달려온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기웃거리며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꼴이 분명 제가 먼저 무슨 일이냐 물어오길 바라는 눈이라 쿠로오는 한숨을 꾹 참고 또 뭔데? 하고 보쿠토에게 말을 텄다.
“저 환자랑 많이 친해졌나봐?”
“뭐 내 환자니까. 라포 형성은 해야지.”
사실 직업적 라포형성이라기엔 조금 많이 친해졌나..? 적어도 매일 먹을 걸 받아먹었던 환자는 저 사람이 처음이다. 그건 확실했다.
“그치만! 환자가 널 이름으로 불렀다고?”
“몰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선생이라고 불렀는데 무슨 심경의 변화신지.”
네가 들어오니까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고 난리.. 어라. 쿠로오가 묘한 얼굴로 보쿠토에게 힐끔 시선을 돌렸다.
있잖아. 내가 방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데.. 차마 그렇게 말을 내뱉지 못하고 쿠로오가 입 안에서 혀를 굴리는 사이 보쿠토가 푸핫 웃으며 작게 외쳤다.
“저 환자 은근히 귀엽네?”
“저 사람이 귀엽다고? 안과 협진 넣어줄테니까 가봐라.”
“걱정 마. 네가 더 귀여워.”
“진짜 눈 나빠 너..”
쿠로오와 보쿠토는 그렇게 한참을 투닥거리며 의국으로 돌아왔다. 슬슬 내일 처방을 내 둬야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가운을 벗어 의자에 거는데 문득 떠오른 것처럼 보쿠토가 물었다.
“그런데 그거 진짜야?”
“뭐가.”
“저 환자 드레싱 네가 다 한다며?”
“아아. 그거? 걱정 마. OS드레싱은 너 하는거 주구장창 봐서 그럭저럭 하니까.”
“물론! 그건 걱정없지!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엉?”
“너 이번주에 워크샵 있잖아.”
너 가면 누가 드레싱 해? 혹시 까먹고 있었어? 라고 묻는 보쿠토의 말에 쿠로오는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 위에 주먹을 내리쳤다. 완전 잊고 있었다.
*
“산책은 좀 하고 계신가요.”
“응? 움직여도 되는 건가?”
“그저께 이제 움직여도 되니까 슬슬 걸어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불성실한 환자분이네~”
디셋 뚜껑을 탁 덮으며 쿠로오가 입꼬리를 비죽 들어올려 웃었다. 분명 능력 좋은 의사인데 다른 환자로 하여금 조금 위험한 어둠의 의사같은 건가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드는 미소였다.
마츠카와는 그럼 쿠로오의 웃음보다 스무배쯤 위험해보이는 얼굴로 슥 웃으며 능청스레 대꾸했다.
“선생 얼굴 쳐다보느라 못 들었나보네.”
“어라? 오늘은 또 선생이네. 이름으로는 안 불러주시나?”
쿠로오의 웃음기 서린 대꾸에 마츠카와의 기색이 묘하게 들떴다. 당황.. 했나? 쿠로오가 악어 입에 맨손을 집어넣은 것과 비슷한 강도의 긴장감을 느끼며 그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자 마츠카와가 손을 들어 입가를 매만졌다. 웃음이나, 그런 걸 숨기려는 의도로 보였다.
“이거 참..”
“네?”
“기분이 괜찮은데.”
“엥?”
마츠카와는 입가를 매만지던 손을 뻗어 쿠로오의 손목을 잡고 자신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배에 빵꾸가 났던 환자라곤 생각되지 않는 힘에 침대 위로 털썩 주저앉자 서늘하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 안에 쿠로오의 옅은 빛 동공이 겹쳐진다.
“원한다면 잇세이라고 불러도 좋아. 테츠로.”
“무, 요비스테 하자는게 아니거든요!?”
“새삼 학창시절이 떠오르는군. 환자복 두번째 단추라도 줄까..”
“저는 환자분이 무사히 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이 더 놀랍습니다!”
쿠로오는 손목을 털어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뒷목을 거칠게 쓸었다. 민망함과 당황함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묘한 패배감만 덩그러니 남았다. 당황한 자신을 보며 목 안으로 키들거리는 마츠카와를 보자 그 억울함이 배가 되었다.
담에 보지. 웃음기 섞인 인사를 뒤로하고 쿠로오는 병실 밖으로 나섰다. 밖에서 기다리던 험상궂은 남자들이 쿠로오를 보고 어이구 선생님. 하고 깍듯하게 90도 인사를 한다.
언젠가 밖의 남자들이 너무 위협적이지 않냐며 지나가듯 마츠카와에게 말한 이후 갑자기 인사성이 함양된 야쿠자들에 대하여 서술하시오.(서술형, 10점)
답안지 : 병원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이 한층 더 묘해졌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쿠로오는 어색하게 아 예. 라고 대답해주곤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이마에서 눈썹으로 이어지는 긴 흉터가 있는 남자가(저건 둔기열상이 분명해.) 조심스레 쿠로오에게 말을 걸었다.
“저.. 혹시 대장님 경과가 어떻습니까? 퇴원은 언제쯤..”
“대장? 아. 마츠카와 환자분 말인가요.”
“예, 맞습니다! 저희 행동대 대장님이요!”
자신의 대장님에 대한 뿌듯함이 넘치는 남자 덕분에 쿠로오는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 하나를 습득했다. 와.. 대장님이셨구나.. 행동대.. 하하. 처음 응급실에서부터 몸이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근육이 꾸준한 운동과 헬스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됐다.
“일단 헤모박을 제거한지 얼마 안된데다가 현재 들어가는 약이 좀 독한거라.. 솔직히 이런 부상이면 두달은 입원해야 합니다.”
“두달.. 끄응.. 알겠습니다.”
“그럼 더 궁금하신 건 없으신가요?”
그린 듯한 미소를 베어물고 웃으며 그렇게 묻자 남자는 괜찮다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병실 안으로 냉큼 들어간다. 행동대장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며 쿠로오가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우르르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다른 선량한 환자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광경이었다.
*
다음날, 회진을 마치고 CT를 찍은 환자의 검사결과를 체크하는 리에프의 옆으로 쿠로오의 늘씬한 그림자가 기울어졌다. 키도 덩치도 보통이 아닌데 이상하게 쿠로오의 발자국은 소리가 옅었다. 리에프가 입밖으로 심장을 토할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이유도 바로 그 소리없는 접근 뒤의 날벼락 같은 호통 때문일 것이다.
“리에프. 너 워크샵 갈래?”
“에..엣.. 왜여..?”
쿠로오의 상냥한 미소를 마주한 리에프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으로 주춤 물러났다. 꼬박 이틀동안 하드한 병원생활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렇다고 냉큼 물기엔 리에프는 찔리는 구석이 너무 많았다. 일단 가려면 내 환자들을 쿠로상에게 인계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무진장 혼날 테고..
“왜. 간 김에 교육좀 받고 좀 쉬다 오지?”
“너무 갑작스럽네여!?”
“흐응. 평소라면 좋다구나 하고 달려들 녀석이.. 너 숨기는거 있냐? 타블렛 내놔.”
숨기는게 아니라 요새 쿠로상 너무 무섭다구여!! 리에프는 그렇게 울먹이면서 기어코 타블렛을 빼앗겨 담당 환자들의 차트를 낱낱히 공개하는 수밖에 없었다.
리에프는 억울했다. 일주일 전 ER환자를 쿠로오상 담당으로 올린 뒤 선배에게 불합리하고 무자비하게 태워지고 있었다. 다이치 선배에게 살려달라며 하소연했지만 그는 그저 웃으며 덕분에 실수가 줄었잖아~ 하고 넘어가버린다.. 이 병원 어디에도 제 편은 없어여!
쿠로오가 리에프의 실수를 발견할 때마다 사정없이 쥐어박는 통에 회진시간에 교수님께 정강이를 걷어차이는 횟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지만, 대신에 리에프는 쿠로오의 그림자만 보아도 심부전증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리에프. 이 환자 pre OP처방을 이따위로 내면 어쩌라는 거야.”
“엣..”
“chemo port제거는 따로 협진 받을것도 없잖아. OR확보가 먼저야. 스케쥴 잡히자 마자 확인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시, 시작했다..! 리에프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하는데 타이밍 좋게도 다이치가 뒤에서 턱 하고 쿠로오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쿠로오, 12층에서 콜왔어. 리에프 처방은 내가 봐주고 있을께.”
“아. 땡큐. 지금 전화 아직 살아있어?”
“아니. 그냥 네가 간다고 말해뒀고.. 그리고.”
“응?”
“이번 워크샵, 네코마타 교수님이 특별히 너 지명한거 아냐? 전문의 과정 밟을꺼잖아?”
다 듣고 있었냐. 쿠로오가 머쓱한 얼굴로 뒷머리를 쓸었다. 역시 다이치 선배! 짱 쎄여..! 리에프의 눈동자에 선망의 빛이 울망울망 들어찬다. 다이치는 40대 이상 중년 여성에게 유독 강력하게 어필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쿠로오의 등을 다시 한번 가볍게 쳤다.
“그 환자 때문에 그래?”
“응?”
“까다로운 환자라며? 지금도 그 환자때문에 콜 온거 같던데. 드레싱은 내가 맡을테니까 너무 걱정말고 다녀와.”
다이치의 호의어린 토닥임에도 쿠로오는 내심 마음 한구석이 껄쩍지근했다. 내가 이런 말 하면 진짜 웃길 거 같은데.. 그 환자 나랑.. 그.. 썸을 타는 것 같거든..?
ER3편..
멀리멀리 나라가 쩌 구름뒤로오.. 아마 한참 뒤에나 나올것 같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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