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윽~ 너무 좋아..!”
어두운 방 안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광원은 커다란 26인지 모니터였다. 키가 훤칠한 한 남자는 헤드셋을 낀 채 모니터에 전체화면으로 동영상을 띄워놓고 몸부림을 치며 손수건을 입으로 쥐어뜯고 있었다. 하악하악. 숨소리가 제법 거칠다.
저런 반응을 보면 화면 안에는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영상 따위가 재생되고 있어야 하지만 막상 모니터 안에선 어두운 무대 위에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었다.
“쿠로상.. 최고..”
지나친 흥분감에 들뜬 남자의 목소리가 곧 나직해졌다. 화면 속의 남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대 직캠이라 관객들의 웅성거림도 섞이고 음질이 좋지는 않았지만 남자는 자신의 숨소리마저 죽이며 귀에 들리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잔잔한 통기타소리. 평소 NEKOMA의 노래 스타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발라드에 더 가까운 멜로디였다. 흡! 가슴 속 깊이 차오르는 감동의 물결에 남자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감동의 물결에 허우적거렸다.
좋아여..! 발라드도 x나게 좋아여..!!
3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노래가 끝나고 아무렇게나 뻗친 검은 머리를 가진 남자가 흠,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그리고 영상이 끊겼다.
“....! 뭐야! 장난해!? 왜 여기서 끊는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잡아 마구 다른 동영상을 클릭한 리에프는 다음 동영상을 열었고, 무대 위엔 드럼과 키보드, 그리고 다른 NEKOMA의 전 멤버들이 올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같은 날 같은 무대 동영상이었지만 지금 리에프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쿠로상이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다음에 뭐라고 말했을까!? 감사합니다? 으으 농담하면서 작게 웃었을까 웃는 목소리도 진짜 대박인데.. 하.. 내가 진짜 여기가 러시아만 아니었어도..
리에프는 축 처진 어깨를 추스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힘없는 손짓으로 다음 영상을 재생했다.
경쾌한 드럼소리를 이어 밴드의 기타를 맡은 쿠로오의 솔로 뒤로 메인보컬 켄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느새 책상에 침까지 흘릴 기세로 화면 속의 쿠로오를 멍하니 쳐다보던 리에프는 갑자기 벌컥 열린 방문에 상체를 벌뜩 일으켰다.
“어휴! 너 또 불끄고 컴퓨터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방의 형광등을 켜버린 건 남자와 꼭 닮은 여자였다.
불이 환하게 켜진 방안은 연예인을 좋아한다면 응당 이정도는 해야 한다-는 식의 모범이 될법한 인테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벽 한쪽을 가득 채운 포스터, 30,000$를 호가하는 최고급 앰프와 연결된 오디오, 그리고 그 옆의 앨범진열장은 유리로 만들어져 몇 없는 NEKOMA의 앨범을 아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물론 진열장 안에 있는 것 말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음반 세장씩은 기본으로 킾해두고 있었다. 그중 리에프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방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걸어둔 2m크기의 세로현수막이었다. 아직 밴드가 뜨기 전 팬미팅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간소한 행사에서 한 팬이 만들어왔다는 이 전설의 등신대는 랜선의 소문을 타고 흘러흘러 리에프가 카드를 긁음으로써 진정한 창조경제를 실현하게 되었다. 판매자의 통장은 유례없는 대풍년이었고 리에프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나가여! 아직 나 무대 다 못봤단 말이야!”
“어라~ 진짜 나가?”
그렇게 말하며 방으로 한발 들어온 여자는 양 손을 뒤로 숨기고 있었다. 리에프가 뭐에여.. 라고 미심쩍은 눈으로 중얼거리자 활짝 웃으며 손을 앞으로 내민다. 짠! 하는 목소리와 함께 그 손에 쥐어진 것은 바로,
“헐!”
황색의 서류파일이었다.
리에프는 그 와중에도 동영상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합격, 합격이야!?”
“축하해~ 이제 당당하게 일본에 갈 수 있게 됐네.”
“....~~~!!!!!!”
소리없이 허공에 주먹질을 하며 미친듯한 환희의 몸부림을 치던 리에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쿠로오의 등신대 앞으로 몸을 날리며 무릎을 꿇었다.
“드디어 우리 만날 수 있어여!”
“......”
“쿠로상.. 조금만 기다려주세여.. 제가 쿠로상 있는 대학 가려고 얼마나..”
“너 답지 않게 상향지원하던게 그 이유였어!?”
이틀 뒤, 하네다 국제공항에 한 남자가 발간 볼을 가지고 육지에 발을 내딛었다. 선글라스를 낀 채 정장 위로 검은색의 롱코트를 걸친 모습이 상당히 근사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시선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남들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습 하고 가볍게 숨을 들이마쉬고는 변태처럼 헉헉거리며 중얼거렸다.
“쿠로오씨가 늘 마시는 공기..!”
“미친다 진짜..”
사업으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리에프의 보호자격으로 함께 온 누나 아리사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내 동생이 사생이라니.. 사생이라니..
제대로 공부를 해보겠다며 일본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하겠다 그렇게 고집을 부리던 이유가 고작 가수 때문이라니..
“일단 예약해둔 숙소로 가자. 집은 학교 근처가 좋겠지?”
“대충 알아봐둔 곳이 있어!”
정말 유학을 오고 싶었던건지 평소 준비성과는 태양과 지구 만큼의 거리만큼이나 떨어져 있던 리에프가 그렇게 외쳤다. 어머나. 아리사는 내심 놀랐다.
아무리 가수 때문이라지만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다니?
“학교에서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는 맨션인데, 바로 옆에 편의점이랑 버스정류장도 있고 신축한 건물이라 깔끔하다고 해여.”
어머어머. 정말로 다 알아놓았잖아? 자신의 남동생은 더이상 철없는 어린애가 아닌 것이다. 한 사람의 든든한 성인이었던 것이다.. 누나인 아리사는 내심 차오르는 뿌듯함에 몰래 눈물을 훔쳤다.
시내의 호텔에 간단히 짐을 풀고 둘은 지하철을 이용했다. 둘 다 일본의 지하철은 처음이었지만 역무원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표를 끊을 수 있었다. 누나와 달리 리에프는 꾸준히 일본어를 공부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었다.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맨션까지 갈 수 있을 정도야?”
“검색해보니까 걸어서 10분정도라고 하는데..”
그럼 교통도 나쁘지 않은 편인가? 리에프가 여기에여! 라고 보여준 건물은 정말로 괜찮았기 때문에 두 남매는 무작정 근처의 부동산 사무소로 쳐들어가 남은 방을 알아보았다.
“방이 없다고여!?”
“아니 그렇게 말하셔도..”
물론 남는 방은 없었다. 둘은 도쿄의 부동산 사정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아리사가 어쩔 수 없네. 라고 체념하며 다른 방을 알아보자며 리에프의 옷을 잡아당겼으나 리에프는 성난 사자처럼 으르렁거렸다.
“절.대. 안되여! 이 맨션이 아니면 안된다고여!”
“더 좋은 방을 찾을 수 있을꺼야. 이러면 이분이 곤란해하시잖니..”
“빈 방 있다는거 알고 있다고여! 분명 윗집이 빈집이라.. 헙.”
윗집이.. 빈집..?
아리사의 고개가 끼긱 소리를 나며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부동산업자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그 맨션에 지금 나가지 않은 방은 맨 위층의 3LDK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혼자 지내기엔 지나치게 넓은 방이고..”
“그거에여! 그걸로 할께여!”
“리에프! 혼자서 방 세개를 뭐 어쩌려구!?”
설마 아닐꺼야. 아리사가 리에프의 등짝을 팡 치며 말렸으나 이미 리에프의 눈동자는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하나는 손님방이고 하나는 내방이고 하나는 드레스룸 겸 창고로 쓰면 되잖아여?”
틀렸어. 이미 아무런 말도 닿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대체 왜 ‘내’ 방보다 ‘손님’방이 먼저 입에서 튀어나오는건지 아리사는 정말 동생의 머릿속이 알고싶지 않았다.
어딘가로 연락한 부동산업자는 맨션 주인에게 열쇠를 받아오겠다며 한시간 뒤 맨션 앞에서 보자는 말과 함께 잠시 외출했고, 리에프는 잔뜩 들뜬 얼굴로 자신의 누나를 이끌고 맨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탐색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렇게 충동적으로 집을 구해도 되겠어? 그래도 2년 넘게 살 곳인데?”
“괜찮아여. 분명 완벽한 곳일테니까.”
근거 없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물론 맨션의 위치나 겉모습은 깔끔했지만, 내부를 보기도 전에 이렇게 계약을 확정지어버리는 것이 아리사로써는 못내 불만이었다.
“아.”
그때 문득 리에프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작은 화원이었다. 때는 5월. 제철을 맞아 화려하게 핀 붉은 장미가 유독 시선을 사로잡았다.
리에프는 경쾌하게 걸어가검은 레이스리본으로 장식한 큼직한 장미꽃다발을 구매했다.
“흐음.. 향기 좋다.”
“어머나 예뻐라! 집에 꽂아두려구?”
“그건..”
업자가 약속한 시간은 거의 다 되었고, 둘은 꽃향기를 맡으며 맨션까지 느긋하게 걸었다.
리에프가 감정로봇 흉내를 내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
아리사는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기타케이스를 어깨에 매고 나가는 것을 별다른 의식 없이 슬쩍 쳐다보았다.
“저, 저기여!!”
그때 갑자기 리에프가 쌩하니 앞으로 달려나가며 꽃다발을 남자에게 덥썩 내밀었다. 처음 보는 남자에게 꽃을 받아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지도 못한 쿠로오가 반사적으로 리에프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저, 죄송한데 이건..”
“그, 저는..!”
쿠로오씨! 진짜 팬이에여! 2년 전에 우연히 유튜브 영상 보고 완전히 반해버렸어여! 완전 사랑해여! 앨범도 다 샀어여! 이번 무대에서 부른 발라드도 완전 짱이었어여! 솔로앨범 내실 생각은 없으신가여!? 저 인터넷 팬사이트 활동도 엄청 열심히 하는데여! 예전에 쿠로오씨가 리플 달아주신 것도 있는데! 닉네임은 리에프에여! 혹시 기억나시나여!? 뒤에 ^^ 웃는 이모티콘도 붙여주셨잖아여! 허윽 그런데 목소리 진짜 좋으세여! 노래하는 목소리도 좋은데 말하는 목소리도 진짜 좋으신거 같아여! 저 진짜 쿠로오씨 팬인데..! 순식간에 리에프의 머리에 복잡한 문장이 뒤엉키고 쪼그라들었다. 어버버 바보처럼 말을 더듬은 리에프가 양 손으로 쿠로오의 어깨를 덥썩 붙잡았다.
허억! 어깨에 손 올렸어! 더, 더 만지고 싶다...! 슬슬 쿠로오의 표정이 굳어갈 때쯤 리에프는 간신히 가슴 속의 한마디를 외칠 수 있었다.
“사랑해여!!”
“엑.”
“옛날부터 완전 팬, 컥!”
아리사의 날카로운 수도가 리에프의 갈비뼈 밑에 작렬했다. 옆구리를 움켜쥐고 비명을 지른 리에프를 밀친 아리사에겐 동생의 방 문을 열때마다 수없이 눈을 마주쳤던 그 남자를 실물로 보곤 제정신이 아닌 동생을 수습할 의무가 있었다.
“Sorry. He couldn't speak japenese well.”
“아.. 괜찮, 아니지, I'm Okay..?”
“Tomorrow, we'll gonna come moved here. Do you live here, right?”
“yes.. um.. wellcome?”
“Thank you. how kindness!”
“나, 나도.. 쿠로오상이랑 이야기 할꺼에여...!”
쿠로오는 처음 보는 남자의 입에서 나온 자신의 이름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허리가 구부정해서 몰랐는데 남자의 키는 쿠로오의 시선 위에 있었다. 187이라는, 일반인 사이에선 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키가 큰 쿠로오로써는 난생 처음 겪는 눈높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실버블론드를 단정하게 넘긴 남자는 자신의 가방을 주섬주섬 뒤적이더니 NEKOMA의 1집 앨범을 꺼내들었다.
“어라?”
“싸, 인해주세여..!”
앨범을 든 남자의 손은 발발 떨리고 있었다. 쿠로오는 그제서야 남자의 눈이 무대 아래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다른 사람들의 눈과 비슷할 정도로 이글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쿠로오는 씩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진짜 제 팬이셨구나. 죄송합니다. 무대 아래에선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저는 한눈에 알아봤어여!”
쿠로오는 영업용 미소를 싱긋 지어보이며 리에프가 꺼낸 팬으로 앨범자켓에 멋드러지게 싸인을 해주었다.
“이름 써드릴까요?”
“네, 네!! 하이바 리에프라고..!”
“음.. 스펠링이..?”
“그냥 일본어로 써주세여!!”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은 쿠로오가 팔을 움직이자 몇장의 장미꽃잎이 바닥으로 나풀나풀 떨어졌다.
향긋한 냄새는 여기까지 진동하는데 아리사의 편두통은 심해져만 갔다.
좋아하는 가수 따라 대학도 옮기고 집도 옮기고.. 아주 잘 한다.
아리사는 탄식했다. 저 인상 사나운 일본인의 어디가 그리 좋은지 볼을 발그레하게 붉히고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몹시 꼴사나웠다. 예전에 짝사랑하던 성가대 누나한테도 하지 않던 짓을.. 순간 아리사의 머릿속에 어떤 가정이 떠올랐다가, 구체화되었다가, 확신으로 굳어졌다.
저 멀리로 부동산업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장미가 주제인데.. 비중 1도없고요.. ㅋㅋㅋㅋㅋㅋ
심지어 리에프랑 쿠로오가 대화도 거의 안하는...ㅋㅋㅋ..ㅋ.ㅋ.ㅋㅋ....전력 이걸로 되는건가 인정 안될수도있나여???((
+) 리에프 누나 이름하고 생김새밖에 몰라서ㅜㅜㅜ말투도 네 고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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