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게이오브 하이스쿨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나? 난 한대위인데..”
[한대위님 반갑습니다! 이 게임은 갓오브하이스쿨 웹툰의 2차 bl게임으로 원작과는 관련없는..]
자고 일어났더니 눈 앞에 이상한 창이 생겨있었다.
이건 누군가의 차력인가? 한대위는 손가락을 들어올려 손바닥만한 사이즈로 자신의 주변을 포르르 날아다니는 그것을 쿡 찔렀다. 솜인형을 만진 것처럼 말랑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머리가 크고 몸은 작아 정상적인 생명체로는 보이지 않는 그것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자유롭게 둥둥 날아다녔다. 갈색 머리카락하며 그 이목구비가 자신이 아는 사람을 꼭 닮아 그 이름을 부르니 그것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미라?”
[게임 도우미 미라미라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니,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어제와 같은 내 방의 모습이 확실했다. 심지어 이틀 전 내놓은 얇은 여름이불의 오래된 음료수 자국이나, 누나가 기르는 시들시들한 선인장의 모습까지도 변한 것이 없었다. 변한 것이라고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반투명한 이상한 창과 자신의 주변을 날아다니는 이 미라미라라는 이름의 생명체 뿐이었다.
“누나 이거 보여?”
“?”
아침을 먹던 누나는 허공을 가르킨 내 손가락에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내 이마에 손을 대고 열을 쟀다. 시력을 잃은 한쪽 눈은 괜찮냐며 붕대를 풀어보기까지 했다. 걱정스러운 누나를 뒤로 하고 평소처럼 학교를 나서는 그때까지도 미라미라는-이때쯤 한대위는 두통을 느꼈다-플레이어 외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며 재잘대고 있었다.
[본 스토리에 앞서 간단히 게임방법을 알려드릴 꺼에요~ 공략 캐릭터들을 한번이라도 만나면 제가 호감도 수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되구요, 일정 호감도를 넘기면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이벤트를 수집하면..]
작은 새가 재잘대는 것처럼 뺙뺙대는 미라미라를 무시하며 등교하는데 앞서 길을 걷는 학생들 와중 유독 등이 빛나는 녀석이 있었다. 한대위는 오른 손으로 눈을 한번 비볐다.
꼭 저 사람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것처럼 묘하게 밝다. 한대위의 시선이 어딘가에 박히자 미라미라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꺄아! 하고 비명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플레이 1일차에 벌써 공략 캐릭터를 만났네요! 어서 가서 말을 걸어보세요!”
공략... 뭐라고? 그때가 되어서야 한대위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이름표와 같은 창이 떠있는 것을 발견했다.
[휘모리]
휘모리? 물론 익숙한 뒷모습이긴 한데.. 네가 왜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데?
머리 위에 떠있는 이름보다 그 사실이 궁금해져서 한대위는 휘모리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뒤를 돌아보곤 자신을 발견한 휘모리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대위군?”
“휘모리. 네가 왜 우리학교..”
순간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휘모리의 눈동자에서 별이 쏟아진다고 생각해버렸을 정도로 초롱초롱한 눈빛이었다.
[호감도가 5상승하였습니다.]
[호감도가 10상승하였습니다.]
[상대방이 당신을 친근하게 생각합니다.]
[호감도가 7상승하였습니다.]
[호감도가 9상승하였습니다]
.
.
.
.
[상대방이 당신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호감도 MAX!]
그 순간 띠롱띠롱하는 소리가 정신없이 울려퍼지더니 휘모리의 앞에 떠있는 반투명한 창에 반복되는 메세지가 두다다다 출력되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뭔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 갑자기 파앗 하는 효과음과 함께 빵파레가 울렸다. 뭐야, 갑자기 어디서 나는 소리야!? 주변을 미쳐 둘러볼 새도 없이 휘모리의 머리 위에서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더니 꽃잎이 마구 휘날렸다. 이리저리 시끄럽고 화려해서 하나도 정신이 없어 그저 사방을 두리번거리기만 하는데 불쑥 휘모리의 손이 튀어나와 자신의 허리를 휘어감았다. 그리고 한대위가 미처 그것에 반응하기 전에 강하게 끌어당겨졌다.
“흡!?”
턱을 잡고 부딪혀오는 입술을 막은 것은 순전히 평소 수련하던 반사신경 덕이었다. 한대위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식은땀이 포롱 솟아나는걸 느꼈다. 미라미라인지 임모텝인지 시끄럽게 꺄아거리며 제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에 신경을 팔 틈도 없이, 한대위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휘모리의 눈빛에 숨이 턱 막혔다.
“오늘따라 대위군이 너무 사랑스럽소..”
“너.. 어디 아픈 거 아냐? 머리라든가.”
“대위군과 함께할수 있다면 이 몸이 아픈것 따위 중요치 않소.”
아니 중요하지. 너 지금 되게 이상한 사람 같단 말야.
한대위는 한참을 낑낑대고 나서야 간신히 자신의 허리를 감싸안은 휘모리의 품에서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고 바둥대자 휘모리가 왜 그러시오? 라고 물었고 한대위가 불편하다 대답하자 휘모리가 그제서야 손에 힘을 풀었다.
휘모리 얘가 진짜 왜 이러지? 한대위는 잠시 착잡한 얼굴로 휘모리를 쳐다보다가 슬쩍 그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열은 없었다. 하지만 한대위의 손길에 휘모리의 볼이 금새 발갛게 달아올랐기 때문에 손이 뜨거워졌다.
한대위는 말없이 그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대위군은 내가 불편해진 것이오?”
“그런건 아닌데.. 너 우리 학교엔 언제 전학온거야?”
“전학이라니 무슨 소리요?”
한대위는 오히려 그렇게 반문하는 휘모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금 되게 당연한 듯 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데 이녀석이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너 교복이..”
[정말 대단해요, 한대위님! 호감도를 이렇게 빨리 올리다니!]
우리 학교 교복을 입고는 왜 시치미를 떼냐며 물어보려는 찰나였다. 눈앞으로 불쑥 미라미라가 얼굴을 들이대며 난리를 피우는 통에 말이 잠시 끊겼는데, 휘모리가 아.. 하며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교복 자켓을 손바닥으로 슥 눌렀다.
“제 교복이 아니라 진모리의 교복인걸 어찌 알았소?”
“그래, .....뭐?”
“체육복 입고 아침 일찍 나가길래 교복을 빌려입었는데.. 역시 대위군의 눈썰미는 속일 수가 없소.”
미라미라인지 뭔지가 옆에서 또다른 공략 캐릭터의 힌트에요! 라고 재잘대기 시작하는 것을 손을 흔들어 치우고 한대위는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휘모리의 눈이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진모리가.. 있다고?”
“그렇소. 아마 지금 체육관에,”
“미안. 나 먼저 간다.”
휘모리의 말을 다 듣지 않고 한대위는 학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오래국에 가 있어야 할 진모리가 어째서? 같은 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 휘모리도 갑자기 내 눈에만 보이는 반투명한 창들도 모두가 이상했다. 아니, 따지고 보면 길 한복판에서 폭죽이 터지고 난리가 났는데도 이쪽으로 시선 하나 주지 않던 사람들마저도.
학교 근처 으슥한 골목까지 쉬지 않고 뛰어온 한대위는 아직도 무어라 쨍알대는 미라미라를 붙잡아 얼굴 앞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뭐야, 너.”
[한대위님? 갑자기 무슨 일이신가요? 궁금하신 점이라도 있으세요?]
“어떻게 된거야. 진모리, 진모리가 진짜 여기에 있어?”
[그야 당연하죠. 공략 캐릭터중 한명인걸요?]
“그게 뭔데. 대체 진모리는 언제 오래국에서 돌아온..!”
[공략 캐릭터는 플레이어 한대위님이 사랑의 포로로 만들어야 하는 대상이에요. 지정된 캐릭터들을 모두 공략하는 것이 게임의 클리어 조건입니다!]
방긋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는 미라미라는 귀여운 얼굴로 또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하고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한대위는 멍한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게임이라고..?”
[네 그럼요.]
그 순간 한대위는 확신했다. 꿈이거나, 아니면 질 나쁜 차력에 당한게 분명했다. 죽은 사람까지 살리는 차력이 있는 마당에 이런 환상을 보여주는 차력 정도야 놀랍지도 않다. 한대위는 금새 침착함을 되찾고 한숨을 깊게 후우 들이마셨다.
“이걸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드디어 게임을 제대로 하실 마음이 드셨군요! 저 게임 도우미 미라미라, 힘낼께요!]
“포로로 만들면 된다고 했던가.. 죽이지 말고 제압하면 되는 거겠지.”
[제압이라니.. 꺄아! 한대위님 취향 은근히 하드하셔! 일단 힌트를 얻었으니 체육관으로 가서 진모리부터 공략해봐여!]
“환상이라 해도 빡세군..”
살기등등한 눈으로 등교하는 한대위의 눈엔 결연한 빛이 가득 차 있었다. 아마도 이때는 미처 깨닫지 못한 까닭이었다. 게임의 장르가 대전격투가 아니라는 사실을..
등교 시간은 이미 지나 길가엔 돌아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한대위는 1교시가 체육인 듯한 녀석들의 의아한 시선을 무시하며 체육관으로 향했다. 익숙한 낡은 철문을 밀자 전구가 한쪽 나간 어둑한 실내가 한대위를 반겼다.
파앙-
샌드백이 휘청 밀려나가며 경쾌한 타격음이 귀를 때린다. 한대위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곧장 소리의 근원지로 걸어나갔다. 뒷모습은.. 익숙했다. 지나칠 정도로.
“진모리.”
“어? 대위야..? 우와! 왠일이야!”[호감도가 5상승하였습니다.]
[호감도가 10상승하였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친밀감을 느낍니다.]
띠롱 띠롱하는 알림음과 머리 위의 진모리라는 글자가 아니었더라면 한대위는 지금 이 순간을 그 누구보다 기꺼워 했을 것이다.
진모리는, 휘모리와 달랐다. 이렇게 환상을 보기 전에 휘모리와 진모리를 구분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고 고민했던 것이 바보같을 정도로. 심지어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그 얼굴마저 같아서, 한대위는 진모리의 손이 자신의 얼굴에 올라올 때까지도 하염없이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거야? 오늘 왠지 평소보다 더 멍한데?”
“아..”
잠에서 깨어나듯 퍼뜩 그 손을 피해 한걸음 뒤로 물러나자 진모리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에 팔을 둘렀다.
“혹시 나랑 대련이라도 하러 온건 아닐테고~”
“하자.”
“혹시 미라가.. 응?”
“대련 하자고.”
담담하고 쉽게 내뱉어진 그 말에 진모리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흥미진진한 얼굴로 송곳니를 보이며 씩 웃는 진모리의 모습은 익숙했다. 물론 그 위로 [호감도가 15상승하였습니다.] 따위의 창이 몇개씩이나 지나가지만 않았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오래국으로 가기 전의 진모리는 강했다. 바로 몇달 전 자신과 상하를 겨루던 녀석이라고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속도로 성장해서 결국 신인지 뭔지로 밝혀졌는데.. 그때의 진모리였다면 함부로 대련을 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이 진모리는 ‘할만 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 환상 속의 진모리는 자신의 옛 기억을 토대로 구성된 것, 그러니까 예전의 진모리를 구현해낸 모양이었다.
진모리는 기대에 찬 눈으로 매고 있던 가방을 체육관 구석에 툭 떨구고 무표정한 얼굴로 손목의 아대를 만지작거리는 한대위를 바라보며 몸을 풀었다. 그 맞은편에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던 한대위가 먼저 링에 오르자 자갈처럼 가볍게 진모리가 링에 올랐다.
“아침이니까 가볍게 하자. 딱 한판. 엉덩이가 바닥에 닿으면 지는거 어때?”
“좋아.”
“내기할까?”
“흠.”
내기라. 갑작스런 진모리의 말에 한대위가 말해 보라는 듯 눈을 깜박거렸다. 물론 옆에서 미라미라가 빙글빙글 돌며 ‘내기라니! 플래그 예감이에요! 얼른 승낙하세요!’라고 지껄이느라 좀 산만해지긴 했지만.
진모리는 헤헤,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기면, 내일 내 도시락 싸와줘! 대위 네가 직접 만든걸로.”
그 정도라면 만일 진다고 해도 나쁜 조건은 아니다. 한대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답했다.
“그럼 내가 이기면 너, 포로가 되라.”
“...뭐?”
진모리의 반응은 정말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묻는게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한건지, 자신이 지금 농담을 들은건지 헷갈려하는 기색이었다. 갑자기 포로라니 의아하기도 하겠지. 한대위는 그리 생각하며 친절하게 부연 설명을 했다.
“포로가 되어줘.”
별로 효과적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게도 호감도는 계속해서 올랐다.
[당신의 의외의 일면에 상대방의 호감도가 10 상승하였습니다.]
[호감도가 8상승하였습니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성욕을 느낍니다.]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한대위님 정말 대단해요! 또 이벤트가 발생했어요! 어머! 호감도가 벌써 이렇게!”]
그것과 비례해 미라미라의 쨍알대는 소리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대위가 잠시 귀머거리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생각하는 사이 진모리는 멍하니 한대위를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하룻동안 네 말을 잘 들으면 되는건가?”
“비슷해.”
“조오아써!”
다행히 진모리는 한대위의 말을 대충 자기식으로 해석해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진모리는 곧 진지한 얼굴로 자세를 잡았고, 한대위도 양 손을 몸 쪽으로 잡아당겨 파이트 포즈를 취했다.
파앙!
바람을 가르는 위협적인 소리와 함께 진모리의 선공이 한대위의 팔에 막혔다. 충격에 저릿해진 팔을 주무를 틈도 없이 순식간에 2격, 3격이 날아들었다. 한 팔로 막고 한 팔로는 발차기를 흘려보내며 한대위는 시작부터 쏟아지는 난타의 빈틈을 찾아 주먹을 휘둘렀다.
“큭!”
“합!”
순간 난타전은 나도 자신있거든? 하는 목소리가 들린것도 같았다. 진모리는 약간 필사적이다 싶을 정도로 성급하게 한대위를 공격해왔다. 침착하게 방어하며 카운터를 날리면서도 한대위는 그것이 약간 의아했다.
퍽, 하고 주먹이 어깨와 가슴 사이를 파고들었다. 알싸한 통증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한대위는 진모리의 팔을 붙잡았다. 순간 진모리의 호흡이 코끝에 닿았다.
“..왜 이리 서둘러?”
“..도시락이 걸렸는데 필사적일 수 밖에.”
그런가. 여기의 진모리도 먹을걸 밝히는건 똑같은 건가. 순간 팔을 사이에 두고 잠깐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거기서 한 발 물러난건 한대위 자신이었다.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로 미끄러지듯 물러나 자신이 팔을 튕겨낸 반동으로 생긴 빈틈을 노린다. 허리를 뒤틀어 상중하단의 페이크를 섞은 브라질리언 킥을 막 내려꽂으려던 찰나였다.
순간적으로 텅 빈 한대위의 하단으로 진모리의 몸통 박치기가 먹혔다.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한 진모리의 어택은 박치기라기보단 그냥 끌어안고 눕힌다 정도의 기술도 뭣도 아니었지만, 한발로 몸을 지탱하던 한대위는 진모리를 떼어낼 새도 없이 그대로 함께 중심을 잃고 엎어졌다. 그 와중에도 한대위 자신의 엉덩이를 먼저 바닥에 닿게 할 셈인지 자신의 위로 올라가려는진모리의 행동에 한대위가 작게 혀를 찼다. 미안하지만 이쪽도 필사적인 이유가 있다.
진모리의 옷자락을 쥐고 확 끌어당겨 몸을 뒤집었다. 설마 자신이 이런 몸싸움을 걸어올줄은 몰랐는지 살짝 당황한 진모리의 표정에 웃음을 지어줄 틈도 없었다.
“이익!!”
“네가 먼저 잡아 끌었잖아!”
“도시라악!”
체구에선 위였지만 진모리는 그 마른 몸 어디에서 그런 괴력이 나오는지 순간 자신을 거의 허공에 띄었다. 깜짝 놀라 잠깐 손에서 힘이 빠진 사이 진모리의 팔이 억세게 자신을 링 바닥에 처박았다. 미처 바둥거릴 틈도 없이 진모리의 무릎과 팔이 자신의 팔다리를 단단히 잡아 고정했다. 고개를 쓱 빼 올리며 진모리가 입가를 활짝 펼치며 웃었다. 정말 그렇게 해맑을 수가 없다.
“이겼다!”
“하아..”
진모리의 이겼다는 목소리에 한대위가 그제서야 패배를 시인한 것처럼 뒷통수를 바닥에 툭 떨궜다. 아무리 할 만 하다 해도 상대가 진모리란걸 잊고 있었다.
이게 두번째 패배인가? 환상 속의 진모리에게 패배해 환상 밖으로 나갈일이 요원해지다니 이런 말장난같은 일이..
“오늘 진짜 무슨 일 있어?”
한대위의 상념을 부순 것은 눈앞으로 불쑥 튀어나온 진모리의 얼굴이었다.
한대위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진모리를 가만히 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진모리의 긴 앞머리가 코에 닿아 간지러웠다.
문득. 한대위는 진모리와 자신의 얼굴 간격이 지나치게 가까운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진모리가 자꾸만 얼굴을 한대위에게 가까이 가져다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모리?”
“어. 왜?”
“얼굴이 가까워.”
“너한테 맛있는 냄새 나..”
동문서답이다. 코를 킁킁대며 셔츠 깃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기 시작하는 진모리를 내려보며 한대위는 오늘 아침 자신이 먹은 아침밥 메뉴를 떠올렸다.
이렇게 심하게 냄새가 배일 만한게.. 있던가..?
“배고프면 매점 가. 이제 비켜.”
“...으응.”
어째 대답이 시원치않다?
한대위가 살짝 인상을 쓰며 진모리를 밀어내려는 행동과, 진모리의 입술이 덥썩 한대위의 입술을 잡아먹은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대위는 누운 자리에서 펄쩍 튀어오를 만큼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나 진모리의 입술에 먹힌 입에선 으읍! 하는 답답한 신음만 튀어나올 뿐이었다. 야! 진모리 미쳤어! 라는 외침도 내뱉지 못하고 한대위는 불쑥 혀를 집어넣는 진모리의 행동에 눈만 동그랗게 치켜떴다. 이미 진작에 팔다리는 제압당한 상태였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고개를 움직이고 턱에 힘을 줘서 진모리의 혀를 좀 아프게 만드는 것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턱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흐으읏..!”
정확히 말하자면, 진모리의 입술이 닿은 순간부터 몸에 힘이 흐물흐물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살짝 물었다가, 또 부드럽게 빨아당기고 혀로 자신의 혀를 문질러 자극하는 진모리의 능수능란한 딥키스에 한대위의 몸이 저절로 움찔움찔 떨려왔다.
진모리가 한대위의 혀를 자신의 입 속으로 끌어오려는 듯 빨아당기며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났다. 한대위는 그 순간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지금 내 침을.. 삼켰어!?
복잡한 한대위의 머릿속을 모르는지 진모리는 정성껏 한대위의 입술과 혀를 애무했다. 입술을 통째로 삼킬 듯 게걸스러운 프렌치 키스에 한대위는 혼이 빠져나갈 지경이었다.
“음. 맛있다.”
일분인지 한시간인지 모를 시간이 흘러 진모리가 한대위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을 떼어내며 담백하게 말했다. 침으로 젖은 입술과 엉망으로 붉어진 얼굴을 숨기지도 못하는 대위의 얼굴이 만족스러운지 진모리는 상큼하게 웃었다.
“대위야. 너 오늘 진짜 이쁘다.”
[호감도가 20 상승하였습니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호감도 MAX!]
그 순간 아까와 같은 이펙트가 반복되었다. 한대위는 막 진모리의 안면에 핵주먹을 날려주러던 순간 진모리의 머리 뒤에서 피어나는 화사한 꽃에 그만 정신이 팔렸다. 한대위가 멍하니 자신을 올려보는 것을 무슨 시선으로 해석한 것인지, 진모리가 또다시 고개를 숙여 입술을 겹치려 들었다.
“비켜!”
그 순간 한대위는 그 어느때보다 절박한 움직임으로 진모리를 밀쳐내고 체육관을 뛰쳐나갔다. 뒤에서 진모리가 한대위! 하고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한대위는 정신없이 내달렸다.
그렇게 도착한곳이 겨우 학교 뒤의 공터였지만 한대위는 아무도 없는 빈 공터에서 정신없이 혼잣말을 지껄였다. 물론 그 혼잣말에 답하는 것은 도우미 미라미라였다.
“야. 어떻게 된거야. 진모리 왜저래.”
[먼저 축하드려요! 첫번째 이벤트를 수집했어요.]
“진모리 갑자기 왜 나한테.. 으아악!!”
한대위는 기겁했다. 포로롱 날아온 미라미라가 품 안을 뒤적뒤적 뒤지는 시늉을 하더니 커다란 사진을 펼쳐들었기 때문이다. 그 사진을 보고 한대위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진속에 찍힌 것이 진모리와 자신이었던 탓이다.
배경으로 보나 입고 있던 옷으로 보나 방금 찍힌것이 분명했는데, 자신의 각도가 지나치게.. 이건 지나치게..
“이 사진은 대체 언제 찍었어!?”
[제가 찍은게 아니라 저절로 수집된 거에요. 이렇게 이벤트를 모두 수집하면 게임을 클리어하게 된답니다~]
링 바닥에서 흐트러진 옷차림에 달아오른 얼굴을 한 것은 자신이 맞았다. 방금까지 엎치락 뒤치락 싸워댔으니 그정도는 당연하다. 하지만 진모리가 자신을 위에서 덮듯이 다가와 입을 맞추는 것이 - 심지어 사진에는 혀가 오가는 것까지 찍혀 있었다.- 이런 각도로 찍힌 것을 보니 민망해서 딱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대위는 미라미라의 말을 허투루 들어 넘기지 않았다.
“이벤트를 수집한다는 건 무슨 뜻이야? 다른 사람들하고도 대련을 하라 그건가?”
[대련~? 대련도 좋지만 역시 정석은 데이트나 집에 놀러가기죠. 방과후의 학교도 좋구요.]
“장소를 고르는 기준이 뭔데?”
[플레이어의 취향?]
“좋아. 그건 그렇다 쳐도.. 왜 하필 이런 사진이야? 나랑 모리가 멀쩡하게 대련하는 걸 찍었어도 됐잖아?”
씹어뱉듯 내뱉는 한대위의 얼굴에 미라미라는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대위의 코앞으로 떠올랐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뭐?”
[그야 이벤트 수집인걸요. 물론 키스하는 것 뿐만 아니라 체육관에서 섹스까지 해버렸으면 한번에 이벤트 두개를 달성할 수 있었겠지만 처음부터 과욕을 부리면 안되잖아요?]
“세.. 잠깐만, 뭐라고?”
[섹스요! 하지만 역시 한대위님도 첫경험은 링 위보다 침대위가 좋으시죠?]
“자, 잠깐만. 내가 왜 진모리나 다른 사람하고 세.. 그거 해야 하는데!?”
마지막엔 숫제 비명처럼 들리는 물음이었다. 제발 자신이 잘못 들었기를. 그렇게 애절하게 미라미라를 쳐다보던 한대위는 이내 눈앞이 깜깜해지고 말았다.
미라미라는 그 여느 때보다 해맑게 웃었다.
[진모리 뿐만 아니라 모든 공략 캐릭터와 섹스를 해야 해요! 캐릭터에 따라서는 장소와 기구에 따라 이벤트가 달라지는 경우도 많으니 주의해주세요?]
“이 게임.. 이름이 뭐라고 했지..?”
헌대위의 떨리는 목소리와 달리 미라미라는 힘차게 대답했다.
[두근두근 게이오브 하이스쿨입니다!]
후에엥 한대위 야망가나 야겜속에 처넣고싶당 후에에엥 엄청 괴롭힘당하고 멘붕하는데 아랫입은 솔직해져라 ㅠ0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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