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x대위
..이땐 단테 대사 없어서 신비로운 이미지였음 ㅠ
열 일곱살 생일선물로 아버지가 개 한마리를 길러보라고 하셨다.
-너도 이제 고등학생 아니냐.
지금까지 길러왔던 개와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아 거절했으나 아버지는 그저 빙그레 웃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데려온 개를 보고 왜 아버지가 그리 웃었는지 알 수 있었다.
-몸이 늘씬하게 빠졌네요.
말로 따지자면 서러브레드다. 내 발로 기어도 하늘을 보겠다는 듯이 고개를 뻣뻣히 세운 것이 꽤나 자존심이 강한 녀석인것 같았다. 딱 내 취향이다.
-어디서 데려오신 겁니까?
아버지가 건네준 목줄을 잡고 잡아당기자 새로운 녀석은 주인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듯 몸에 힘을 주고 버티는게 아닌가. 그 반응에 흥미를 보이자 아버지가 작게 대답했다.
-파란 대문이었다고요?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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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데려온 개는 꽤나 속 썩이는 녀석이었다.
머리는 제법 좋고 눈치도 빨라 가르치기는 쉬울 것 같지만 지나치게 반항적이었다. 가만 보니 아직 전 주인을 잊지 못한 모양이다. 아버지께 이 개의 전 주인에 대해 물어볼까 하다가 관둔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내가 이 개를 얼마만에 길들일 수 있나 기대하던 아버지의 모습 말이다.
때문에 나름대로 벌을 줘가며 억지로 교육을 시켰는데, 역시 신뢰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폭력이 맘에 안 든건지 개의 태도가 지나치게 사나워져 버렸다.
난 결국 일주일만에 개를 데리고 아버지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개가 맘에 드는 모양이구나. 한시도 곁에서 떼어놓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나는 말없이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가락 끝에 간신히 감기는 짧은 털이지만 제법 보들보들한 편이었다. 내 손길이 닿자 머리를 털어내는 개를 보니 쓴웃음이 나온다.
개란 동물이 서열에 민감하다더니 자신을 데려온 이버지를 나보다 상위 서열로 인식한 모양이다.
겁도 없이 주인님의 손을 털어낸 개의 목덜미를 잡아 바닥에 짓눌러 고정시켰다.
개에게 서열을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선 주인도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는 법이다.
-네가 직접 교육하고 있던 거냐?
아버지가 놀랐다는 듯 물었기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맘에 든 모양이구나.
-이 개... 정말 맘에 드는 녀석이지만, 제가 주는 밥을 먹지 않아요.
나는 일주일째 야위어 살가죽 밑으로 살짝 드러난 개의 갈비뼈를 손바닥으로 흝었다. 흠칫 놀라며 경계하는 꼴이 야생동물이 따로 없었다.
-하긴, 개보단 늑대에 가까운 녀석이지.
절대 내 손에 입을 대고 음식을 받아먹지 않으려 해서 벌도 많이 줬었다. 그러나 그 정도야 당연하다는 듯한 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개든 늑대든 저는 이 녀석을 제 개로 길들이고 싶은 겁니다.
그 말이 끝나자 개가 화난 듯이 짖기 시작했다.
꼭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듯이 행동한다니까. 함부로 주인 앞에서 짖은 벌로 개의 가슴에 달린 피어싱을 잡아당기자 낑낑대며 몸을 마구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흐음.. 그럼 이 녀석의 동료를 몇마리 더 잡아다주랴?
그 순간 밑에서 발버둥치던 개의 몸이 딱 멈추었다. 나는 건방진 개의 태도에 화가 나 여분의 꼬리 중에서 제일 길고 흉칙한 것을 집어들었다.
개의 뱃속에 토정한 뒤 이걸 끼워버릴 셈이었다.
-늑대는 의리가 강한 동물이지. 인질을 이용하는 것도 때론 현명한 방법이란다.
-그런가요.
어쨌든 아버지와의 짧은 면담 이후 개는 정말로 고분고분해졌다.
이런 저런 훈련을 시켜도 다쳐도 금방 회복하고 또 가르친 것에도 금방 숙달되었다.
나는 금새 기분이 좋아져 개에게 이것저것 가르치는 일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개에게 이름은 지어주지 않는 거니?
어느 날 갑자기 방문한 아버지의 말이었다.
-이름이 필요합니까? 제개 개는 이 녀석 한마리 뿐인걸요.
그 녀석은 요즘 한창 순해진 상태였다. 바닥에 앉아 턱을 내 무릎 위에 올리고 머리를 쓰다듬는 내 손길에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그냥, 이번에 이 개의 전 주인을 만났지 뭐냐.
그 순간 개의 눈이 번뜩 뜨이며 몸이 바짝 긴장하는게 느껴졌다.
-어찌나 이 녀석을 돌려달라 성화던지, 이제 이 녀석은 없다고 했단 말이지. 일단 내 체면에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이 녀석에게 새 이름을 주긴 해야 할텐데..
-...그럼 제가 알아서 이름을 지어보죠.
-그러도록 해라.
용건을 마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는 개를 데리고 욕실로 들어가 관장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주인이 바뀐지 한달이 되었는데도 옛 주인 이야기가 나오자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이 기분 나빴기 때문이다.
새 이름을 뭘로 해야할지 모르겠군.
-흐음.. 혹시 네가 전 주인을 잊지 못하는 건 새로운 이름이 없기 때문인가?
개가 다시 짖기 시작했지만 나는 개의 엉덩이를 두들겨 입을 다물게 했다. 젖은 욕조 바닥에 몸을 웅크리는걸 보자니 조금 심하게 했나 싶지만 경험상 이럴 때일수록 엄격하게 나가야 한다.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라 주도권을 잡아 완전히 뭉개지 않으면 순순해지지가 않는다,
-네 옛날 이름은 너무 군인같아. 어감은 나쁘지 않지만 맘에 드는것도 아니었으니 새 이름을 지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