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암생각없이 둘이 함뜨했으면 좋겠어서 쓴 글입니다...
설정이나 캐릭터가 조금 망가질수 있습니다.
※ 벽고물
“..뭐야. 여긴 어디야?”
던전에 첫 발을 디디고 난 후, 랜서는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미궁 입구에 첫발을 디디자 마자 바닥과 벽이 모두 돌로 만들어진 외딴 장소에 홀로 떨어지다니, 어지간히 방심했구나 싶어 랜서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래도 진입과 동시에 미궁 안의 랜덤한 장소에 공략자들을 흩어지게 만드는 시스템인 모양이었다.
공략자들의 수준이 미궁보다 높다면 여러 루트를 통해 단번에 미궁을 돌파할 수 있는 구조지만 비전투원이 끼어있는 파티라면-마스터라든가, 혹은 마스터라든가- 이런 류의 트랩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쪽 지역의 토지신이 만든 미궁이라더니 과연 성질 한번 고약하다.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고 체내의 마력을 확인했다. 마스터로부터 전해지는 마력의 양은 정상, 령주의 기척도 느껴지지만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전투 시에 유용하게 쓰는 사념전달은 활성화되지 않는다.
“이 미궁은 얼마나 넓으려나?”
미궁에 진입한 인원은 총 다섯이었다. 마스터와 마슈, 캐스터인 나와 붉은 궁병.
서번트들이야 알아서 제 한 몸 건사하겠지만 마스터는 조금 걱정이 된다. 이 미궁의 적성개체들이 그렇게 수준이 높진 않다고 들었지만 최악의 상황이라는 건 어떻게 일어날 지 모르는 거니까.
“일단은 미궁 안쪽을 향해야겠군.”
무릇 미궁이란, 제일 안쪽에 보물 상자나 그걸 지키는 파수꾼이 있곤 했다. 즉 안쪽으로 향하다 보면 똑같이 안쪽을 향하는 다른 일행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거다.
일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전투를 최대한 피해 마력을 아끼고 다른 서번트나 마스터와 합류하는걸 목표로 움직여야겠다.
일행과 헤어진 지 딱 3분만에 랜서는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미궁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어림잡아 한 시간 정도는 걸어다닌 것 같은데, 밋밋한 돌벽과 흐릿한 조명은 처음 출발했을 때 그대로였다. 랜서는 짜증스레 한숨을 내쉬며 창을 휘둘러 오른쪽 벽에 크게 자국을 남겼다.
지금까지 자신이 남긴 흔적이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는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의 미궁이다.
그리고 뭣보다 지루했다. 똑같은이 생긴 장소만 걸어가고 있자니 시간감각도 집중력도 완전히 망가진 것 같다. 차라리 군데군데 함정이 있거나 적이라도 등장하는 편이 더 나았을 텐데.
“나 참. 귀찮구만..”
다른 쪽도 이렇게 적도 함정도 없이 밋밋한 상태려나? 혀를 쯧 차고는 성의없이 주변을 슥 둘러보는데 문득 뭔가가 눈에 밟힌다.
어두운 곳에서도 노랗게 빛나는 납작한 금화였다. 여기 금화가 있다는 건, 보물상자- 즉 미궁의 끝이 코앞이라는 뜻이다.
이 지루한 상황을 타개할만한 단서의 등장에 한달음에 금화 앞으로 달려간 랜서는 육안으로 주변을 확인하고 붉은 창끝으로 금화 주변의 땅을 톡톡 쳐 보았다. 지금까지와 별다를 것 없는 돌바닥의 감촉이었다. 아래에 빈 공간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천장이나 다른 벽도 이상이 없다.
그 뒤로도 금화를 발로 밟아 꾹 눌러보거나, 금화를 창끝으로 밀어 다른 타일로 이동시켜보는 등 랜서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인 뒤에야 허리를 숙여 금화에 손을 뻗었다.
아마 랜서가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지 안다면 아무도 그에게 그러게 조심하지 그랬어! 따위의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그 결과가 얼마나 처참했는가는 둘째치고서라도 말이다.
*
‘말도 안 돼..’
랜서는 가쁜 숨을 내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전성기때의 힘을 거의 다 찾으면서 왠만한 전투에서는 땀도 안 났었지만 지금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배어 있었다.
‘말도 안 돼!’
너무 혈압이 올라서 시야가 어질어질하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두어번, 빠르게 호흡을 진정시킨 랜서는 다시 한번 주먹을 벽에 내리쳤다. 그러나 자신의 허리를 단단히 조이고 있는 벽은 마력을 담은 주먹에도 돌가루 하나 흘리지 않고 멀쩡했다.
이 상황은 그가 약 십분 전, 금화를 발견하고 그걸 주워들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동전이 안전함을 확인한 뒤에 허리를 숙여 금화를 주웠는데 그것을 쥐고 허리를 필 때가 되서야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제대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벽에 끼었다.
정확히 말하면 어느새 바닥과 천장에서 벽이 솟아나 랜서의 상체와 하체를 분리시키기라도 한 듯한 모양이었다. 벽에 난 구멍에 랜서의 상체만 쏙 꽂아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 어라?”
랜서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허리춤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벽이 생겼다고? 내 허리에 딱 맞는 구멍이 생긴 채로? 있는 힘껏 앞으로 몸을 당기면 약간 몸이 빠져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거 잘하면 빠져나갈 수 있겠다 싶어 앞으로 밀거나 발로 벽을 디디고 엉덩이를 뒤로 최대한 빼거나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가 얻은 것은 피로감과 자괴감 뿐이었다.
한참을 끙끙대던 랜서는 효과가 없자 공략법을 바꿨다.
차라리 부수자!
문제는 이 돌벽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는 거다. 발로 차고 손으로 두들기는건 물론이고 마창으로 찔러보기까지 했는데 돌가루 하나 떨어지지 않는다. 벽 대신 랜서의 자존심을 상처내는데 충분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이런 웃기는 자세로 벽에 처박힌 걸 발견당할 일부터 뒤쪽으로 적성개체가 접근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까지 온통 생각하기도 싫은 일 뿐이다.
단단히 낀 벽에서 탈출하기가 요원하다는 것을 깨달은 랜서는 온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배가 눌리듯 아팠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이 너무 커서 신경쓰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이 던전을 통과한 마스터와 일행이 나중에 자신을 구하러 와 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건가. 아~ 진짜 최악이다.
한참동안 멍하니 벽에 매달려 있는데 어디선가 저벅, 하는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시야에 보이는 인영은 없다. 그렇다면 뒤쪽인가? 제발 캐스터인 자기 자신이길, 아니면 적어도 마스터가 자신을 발견했기를 기도하며 랜서는 어이! 하고 크게 상대를 불렀다.
얇은 벽 너머로 충분히 목소리가 전달되었을만한 성량이었다.
다행히 목소리를 들었는지 멀리서 희미하던 인기척이 점점 가까워졌으나 그에 비례하듯 랜서의 안색은 점점 창백해졌다. 가까워지는 기척은 사람의 것이 아닌 영령의 것이었으나 무거운 방패를 든 소녀나 맨발의 캐스터와는 다른 발자국 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오.. 이건 또.”
“아아! 하필 너냐!”
새삼 자신의 행운치를 자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건 너무하다. 사분의 일의 확률이었는데 하필 이런 꼴을 발견하는 게 이 붉은 궁병 녀석이라니!
벽에 박혀 궁댕이만 내밀고 있는 꼴이 어지간히도 웃겼는지 목소리를 낮춰 큭큭 웃던 그 녀석이 빈정대듯 입을 열었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군. 설마 얼굴 대신 엉덩이로 맞이해줄 줄은 몰랐지만 말야.”
“빌어먹을.. 웃자고 이러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사정을 안다고 해도 순순히 도와줄 것 같지도 않은 녀석이지만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다. 장난삼아 이러고 있다는게 아니라 빠져나가고 싶어도 못 빠져나가는 상태라는걸 설명하기 위해 랜서는 다시 한번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아처는 갑자기 엉덩이를 씰룩거리기 시작하는 랜서를 어이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보시다시피 완전히 갖혔어. 좀 도와 주라.”
“...개구멍이라도 발견한 건가. 왜 그런 자세로 벽에 박힌 건지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알 수가 없군.”
“네 상상력이 비루한 게 내 탓이냐?”
차마 금화를 줍다가 이 꼴이 되었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투덜대자 녀석이 무기를 투영했는지 벽을 뭔가로 툭툭 치는 감각이 느껴졌다.
“뭐, 좋다. 웃긴 꼴을 구경시켜주었으니 답례로 벽을 부숴주지.”
“제기랄..”
녀석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도 잔뜩 이죽거리고 있을 얼굴이 눈에 선했다. 랜서는 수치심과 분노에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좋아, 분노는 자유의 몸이 된 뒤에 터뜨려도 늦지 않다. 후우후우! 하고 심호흡을 하는 사이 뒤쪽에서 쩌엉!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벽이 깨질듯 진동했다.
드디어! 라고 생각하며 허리를 들어올리는데 어째 감촉이 이상했다. 방금 전 벽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칠 때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꽉 끼어 있다.
랜서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야? 못 부쉈냐.”
“흥, 생각보다 단단한 벽이군.”
“역시 궁병의 근력으로는 무리였던 건가? 이거 괜한 부탁을 했구만~”
“...기다려라.”
사소한 복수를 성공한 랜서가 만족스레 웃는 사이 아처의 기척은 멀어졌다.
공간을 확보하려는걸로 봐서 활을 쓰려는 모양이다. 궁병 치고 근접전을 선호하는 이상한 녀석이지만 클래스가 클래스이니만큼 역시 제대로 된 한방은 활로 쏘아 보내는 것이겠지. 이번에야말로 벽에서 탈출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피어오르며 저절로 표정이 밝아졌다.
어째 활을 쏘러 갔다기엔 조금 멀리 간 게 아닌가 싶은 시간이 흐른 후, 랜서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담긴 화살의 기척을 느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랜서가 화살의 존재를 인지한 순간 이미 화살은 벽에 도달해있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충격에 대비하자 방금 전과 비교도 되지 않은 폭음과 함께 벽이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콰앙-!!
문제는, 그렇게 쏘아보낸 저 궁병의 필살의 일격조차 벽을 부수지 못했다는 것이다. 랜서는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처가 오기 전에 자신이 벽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것은 자세가 나빠 제대로 된 힘이 안 나와서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영령의 제대로 된 일격을 무시하는 벽이라니? 이 내구도는 비정상적이다. 방어력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것이 아니면 아예 모든 종류의 타격에 면역이 걸려있는 희귀한 경우일지도 모른다.
“어이, 아처!”
“어지간히도 단단한 벽이군.”
이를 악물었는지 뭉개진 목소리만 들어도 지금 저 녀석이 얼마나 빡이 돌아 있는지가 느껴진다. 자존심이 어지간히도 상한 모양이다. 랜서는 그 얼굴을 구경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생각하며 아처를 다시 불렀다.
“아처, 잠깐만 이거 혹시-”
“I'm the bone of-”
랜서는 순간 자신이 무슨 소릴 들었나 싶은 얼굴로 멍하니 눈을 끔뻑이다가, 등 뒤에서 요동치는 마력의 파도에 기겁하며 발을 굴렀다.
꺄악 살려줘! 여기 미친 궁병이 대군보구를 쏘아보내려고 해요!
몸이 꼼짝없이 고정된 대신 정신만 저 멀리 도피해버린 랜서는 어떻게든 저 미친놈의 피격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다.
아무리 자존심이 상해도 그렇지, 고작해야 지름이 5미터밖에 안 되는 벽에 대고 보구를 쏘아대다니 멘탈이 너무 심약한 거 아닌가!? 뼈는 검이어도 마음은 유리라든가 그런 거냐!?
“Unlimited Blade Works!”
페이지수가 괜찮으면 오락관에 가져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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