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끝으로, 보쿠토는 그에게 더 몸을 밀착한 채 멍하니 벌려진 쿠로오의 입 안으로 다짜고짜 자신의 혀를 집어 넣었다.
헉! 하고 당황한 쿠로오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무는 것을, 오른손으로 쿠로오의 턱을 붙잡아 막았다. 얼결에 벌어진 입 안을 혀로 쓸고, 약간 거친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완전히 포개어 겹쳤다. 쿠로오의 눈꺼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파르르 떨린다. 아. 왠지 기분 좋아. 언제나 여유로운 쿠로오가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내보이는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속눈썹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에서 보쿠토는 눈을 감지 않고 그 눈동자에 자신의 눈을 빤히 겨눈다.
당황해 잔뜩 웅크려든 쿠로오의 혀를 자신의 혀로 잡아채 쭈욱 빨아올렸다.
벤치에서 덜컹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쿠로오가 화들짝 몸을 튕겨올려 보쿠토의 어깨를 밀치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느꼈다기보단 그제서야 상황을 깨달았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보쿠,”
보쿠토는 간신히 고개를 뒤로 빼내어 혀를 움직일만한 공간을 만들어낸 쿠로오의 간격을 먹어치웠다. 남은 한 손으로 쿠로오의 뒷목을 콱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고, 오른쪽으로 기울었던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며 쿠로오의 아랫입술을 질척하게 빨아올렸다.
당황해 제대로 호흡조차 가누지 못하고 얕은 숨만 내뱉는 그 입김마저 먹어치울 기세로 물고 빨고 햩아 거칠게 키스했다. 쿠로오의 숨소리에 섞인 끓는 듯한 신음에 보쿠토의 눈이 위험하게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키스해서, 쿠로오, 이렇게 헐떡거리고..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양 귓가에 불이라도 붙은 것마냥 홧홧해졌다.
마무리로 쿠로오의 혀를 자신의 혀로 감싸고 약하게 깨문 뒤, 입술을 오므려 멍하니 벌려진 쿠로오의 입술 위로 쪼옥, 깊게 뽀뽀했다. 발버둥치는 쿠로오를 제압하느라 완전히 겹쳐진 상체는 벤치 위에 쿠로오의 몸을 완전히 가두고 있었다.
기분 좋아. 보쿠토는 벌건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 했으면.. 권총 치워.”
“응?”
키스 후, 사랑의 속삭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소릴 들을 줄 몰랐던 보쿠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사적으로 품에 손을 집어넣자 텅 빈 홀스터만 잡힌다. 아차. 집에서 정신없이 나오느라 총도 안 챙겼었다.
“나 권총 안가져왔는데?”
“뭐?”
어느 순간 얌전하더니, 내가 쿠로오한테 함부로 총을 겨눌거라고 생각했단 말야? 보쿠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힘으로 쿠로오를 짓눌러 다짜고짜 입을 맞춘 제 생각은 하지 못하고 보쿠토가 무어라 투덜대려던 찰나, 쿠로오는 굳은 얼굴로 시선을 내렸다.
“그럼, 지금 내 배에..”
“아.”
“......”
아, 는 무슨 얼어죽을 아. 냐! 이 미친 부엉이 새끼야!
쿠로오는 제 배를 찌르고 있던 것이 보쿠토의 그 권총이 아니라 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장전된 네오 암스트롱 싸이클론 제트 암스트롱 포라는 사실은 깨달은 후 눈을 질끈 감았다. 바지를 찢어버릴 듯 팽팽히 일어선 보쿠토의 다리 사이를 더이상 눈에 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갑자기 왜 세우.. 아니, 아니다.”
“에, 그게, 그러니까..!”
보쿠토는 완전히 시뻘개진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허둥지둥 벤치에서 일어나 몇걸음 뒤로 물러났다. 사람이, 키스하다보면 조금 설 수도 있지! 라고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기엔 찔리는게 너무 많았다.
“쿠로오, 그러니까 이게 뭐냐면!”
“닥쳐. 설명하지 마. 변명도 하지 말고 그냥 꺼져.”
보쿠토는 흐윽, 하고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입을 꾸욱 다물고 쿠로오의 눈치만 살폈다. 그야 화 났겠지. 한창 좋은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데려와서 키스해버리고..
보쿠토의 주먹에 질끈 힘이 들어갔다.
그 여자랑도 키스했을까? 도청기로 들었던 쿠로오의 신음이 떠올랐다. 했겠지. 그리고 그보다 더한 걸 하려던 거 아냐. 쿠로오가 다른 사람과 섹스한다는 사실을 안게 오늘이 처음도 아닌데, 그 생각을 하자 마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속이 뒤집혔다.
“쿠로오.”
“부른 용건이 끝났으면, 난 간다. 또 방해하면 죽여버릴테니까 알아서 해.”
쿠로오는 제 말만 내뱉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여자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보쿠토는 서슬 퍼렇게 튀어나온 쿠로오의 목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고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쿠로오를 잡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달려가서 쿠로오를 잡을 수가 없었다. 염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대로 거기로 가지 말라고 마트에서 땡깡부리는 어린애처럼 누워 팔다리를 바둥거리는 것은 보쿠토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
아래가 땡길 정도로 단단히 솟아오른 그의 주니어가 이제 그만 해방시켜 달라며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기 때문이다.
변태도 아니고 아래를 벌떡 세운 채로 운전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보쿠토는 근처 공중화장실에 들어가 해결을 할 수밖에 없었다. 휴지를 뜯어 손에 감고 몇 번 흔들어주지도 않았는데 어이없을 정도로 빨리 사정해버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보쿠토는 충격에 빠졌다. 본인의 지속시간 증감률 따위의 고민이 아니라, 여자의 젖가슴이나 탱글한 엉덩이가 아닌 제 밑에서 헐떡거리던 쿠로오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쉽게 절정에 이르렀다는게 충격이었다.
야.. 했어. 쿠로오 원래 생긴게 좀 야하긴 하잖아. 응. 신음소리도 섹시하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반한 건가?
♢
다음날, 평소보다 퀭한 상태의 보쿠토는 마찬가지로 상태가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 쿠로오의 안색을 보고 속이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돌아가서 둘이 섹스 했나보네. 완전 잡아 먹힌 얼굴이잖아.
딱딱하게 굳은 보쿠토의 표정을 본 쿠로오는 보쿠토의 얼굴에서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마찬가지로 슬쩍 쿠로오에서 시선을 돌려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보쿠토를 바라본 사무실 사람들은 의아한 눈으로 둘을 쳐다보았다.
늘 출근해서 서로를 발견하면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사무실을 요란하게 만들던 둘이었기에 둘의 변화는 금새 눈에 띄었다.
“두 분 싸우셨어요?”
“......아니이..”
말로는 아니라고 해도, 표정은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아카아시는 제 사수였던, 그리고 직속 선배인 보쿠토의 책상 위에 파일을 올려두고는 흐음 목을 울렸다.
“그렇군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줘!”
“하아.. 무슨 일이십니까.”
아카아시는 책상에 널부러진 보쿠토가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리는것을 보고 약하게 한숨을 쉬었다. 이 묘하게 멘탈 불안정한 자신의 선배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죽고 못살던 단짝인 쿠로오 요원마저 상태가 좋지 않은걸 보면 분명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긴 했을텐데, 아카아시는 유력한 용의자로 눈 앞의 제 선배를 꼽았다.
일단 사고를 쳤다면 이 사람이 쳤겠지.
아카아시는 책상 위에 엉덩이를 걸쳐앉고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보쿠토를 내려보았다. 무슨 일이신데요. 한번 더 재촉하자 어렵사리 그 입이 열린다.
“말 못해.”
“저기요.”
진짜 짜증난다.
아카아시는 저도 모르게 험한 소릴 내뱉을 뻔한 자신의 입매를 추슬렀다. 참자.. 이래도 선배니까.. 참자, 참아. 일 이야기나 하자.
“쿠로오씨가 요청한 파일입니다. 저번 마약상이 접촉한 마약 카르텔에 대한 자료에요.”
“응? 쿠로오가?”
“예. 이번에 모자장수가 보석금으로 풀려났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죠.”
보쿠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모자장수는 보쿠토와 쿠로오가 직접 체포에 감방에 집어넣은 마약상의 별명이었다. 그의 별명이 모자장수인 이유는 그가 팔던 마약을 앨리스라고 불렀기 때문이고.. 아무튼 그 정보는 예전에 쿠로오가 정보부에게서 들은 정보라며 말해준 적이 있었다.
“선이 어떻게 닿은 건지 남미쪽의 과격파 카르텔과 접촉했던데요. 조사해보니 당분간 몸 좀 사리고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쿠로오한테 얘기해줘야겠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보던 아카아시는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쿠로오 선배님과 싸웠다면 지금은 쿠로오가 그랬던가.. 하며 꿍얼거리는 반응을 보여야 맞을 텐데?
싸운게 아니라면 둘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부산스레 쿠로오를 찾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박차고 나간 보쿠토의 뒷모습을 보던 아카아시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일이 있든 이 둘 사이에 끼면 고래 싸움에 등쌀 터지는 새우에게 빙의합체하는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 거진 십년간의 경험으로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던 아카아시는 그만 이 일에서 발을 빼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무작정 사무실을 나와 복도를 두리번거리던 보쿠토는 이내 그 낡은 커피 자판기 앞에서 쿠로오를 발견했다.
“쿠로오!”
“어? 음.. 커피 마실래?”
눈이 마주치고, 어색하게 시선을 돌린 쿠로오가 자판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렇게 물었다. 보쿠토는 반사적으로 응, 하고 대답하고는 쿠로오의 손가락이 밀크 커피의 버튼을 누르는 것을 눈으로 따랐다.
커피 받고, 마시다가, 쿠로오랑 눈 마주치면 이야기해야지.
쿠로오가 건네주는 커피를 쥔 손가락에 괜히 시선이 갔다. 종이컵을 받아들고는 슬쩍 스친 그 손가락에 왠지 진정이 되지 않아 커피를 확 들이켰다가, 보쿠토는 크헣허거! 하고 폐부에서 쥐어짠듯한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원샷한 대가였다.
“하, 뜨, 뜨-!”
“푸핫, 뭐하는거야!”
자판기에 손을 넣어 블랙커피를 꺼내든 쿠로오가 펄펄 뛰는 보쿠토를 보며 낄낄댔다.
오늘따라 커피가 더 뜨겁기라도 했답니까?
빙글빙글 웃으며 그렇게 말한 쿠로오는 어느새 평소처럼 보쿠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후- 하- 후- 하-!
시뻘겋게 데인 입안을 식히려 크게 숨을 몰아쉬면서, 보쿠토는 짐짓 억울한듯 눈썹을 추욱 늘어뜨렸다.
“진짜 뜨거워어..!”
“대체 일주일에 입을 몇번이나 데이는 거야.”
키득 웃으며 커피잔에 입김을 불어 여유롭게 커피를 식힌다. 보쿠토는 동그랗게 모아진 쿠로오의 입술을 빤히 쳐다보다 손에 쥐고 있던 빈 종이컵을 우그러뜨렸다.
키스 하고 싶은데,
“괜찮냐?”
“아니이..”
쿠로오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쁘게 웃는지 모르겠다. 보쿠토는 하려던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거리며 쿠로오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
보쿠토는 자신이 쿠로오를 생각 이상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그게 어느정도의 범위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쿠로오랑 하는 키스 엄청 기분 좋았지. 그리고 지금도..
[읏, 하아..]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보쿠토가 이를 악물자 턱이 불끈 움직였다. 제 아랫도리를 흔드는 오른팔에 힘이 들어갔다.
눈을 질끈 감고 스피커에 집중하자, 쿠로오가 하아.. 하고 낮게 숨을 내쉬는 소리와 함께 쪽쪽거리는 소리가 어두운 방 안을 메웠다.
바로 며칠 전 여자의 집에서 도청했던 그 녹음 파일이었다. 사실은 쿠로오가 여자에게 입맞추는 그런 소리였지만, 보쿠토의 감긴 눈꺼풀 안에선 보쿠토 제가 쿠로오의 목덜이와 가슴에 입술을 부딪히고 있었다.
그럼, 쿠로오는, 억지로 키스당했던 그 날처럼 당황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어서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겠지.
쿠로오의 반듯한 쇄골을 깨무는 상상을 하며 보쿠토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검붉게 달아오는 자신의 성기에서 쿠퍼액이 찔끔 세어나온다.
쿠로오가 기술이 나름 괜찮기는 해도 악력은 제가 위니까, 아프다고 밀어도 순순히 밀려 주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남자치곤 얄상하게 빠진 허리를 잡고 밀어붙이면 그때처럼 당황해서 눈꺼풀을 파르르 떨까. 그리고는 간신히 고개를 뒤로 빼내선 제 침으로 번들번들 젖은 입술을 벌려서-
‘보쿠, ’
귓가에 쿠로오의 신음과, 그날 쿠로오가 내뱉었던 자신의 이름이 동시에 들렸다.
“하아, 하아..”
보쿠토는 멍하니 제 손을 더럽힌 액체를 바라보다가, 이내 휴지로 그것을 깨끗하게 닦아냈다.
확실히, 요즘 자위할 때도 쿠로오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쿠로오를 생각하면 발정이 오는 건가? 나 진짜 아카아시랑 쿠로오 말처럼 진화가 덜 됬나?
쿠로오랑 섹스할 때도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쿠로오와의 섹스라는 단어를 떠올린 순간 보쿠토의 목덜미가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그리곤 누가 제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양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정해 축 늘어졌던 아들내미가 섹스! 하고 외치면서 다시 기립하는데 보쿠토는 얼굴을 제 양손에 파묻고 앓는 신음을 흘렸다.
‘보쿠토 코타로! 정신 차려!’
키스정도야 친구사이에 조금 흥분해서 그렇다 하더라도, 차마 그 쿠로오에게 섹스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렇잖아! 섹스는 좀 그렇지!
쿠로오가 남자를 성불구자로 만드는 일흔여덟가지 방법에 통달한 인재여서가 아니라, 쿠로오는, 보쿠토 코타로의 제일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물풍선에 물을 넣으면 동그랗게 부푼다. 네모진 통에 물풍선을 넣고 물을 넣으면, 네모진 칸 위로 볼록하게 튀어나오게 된다. 네모진 틀 안에 갇힌 것은 일부분이고 어디로든지 부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이 차니까.
그러니까 보쿠토 코타로가 쿠로오의 집에 도청기를 설치하기 시작한 것은 비단 그가 이상성욕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쿠로오에게 품기 시작한 욕구를 어떻게든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렇게 변명하고 있지만 보쿠토가 하는 짓이 인간 쓰레기나 다름이 없다는 사실은 본인도 아카아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쿠로오 있잖아..’
‘네?’
‘자위는 어디서 할까? 욕실? 역시 욕실인가? 아니면 침실?’
‘..그게 선배랑 무슨 상관입니까?’
‘어! 그러니까, 쿠로오가 아무래도 가장 무방비 할때가! 그때가 아닐까 싶어서!’
안하니만 못한 변명이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자신을 세슘 137보듯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으나 입이 열 두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쿠로오는 정규 요원이었고, 저의 어설픈 솜씨로 설치한 도청기는 반나절도 되지 않아 싹 수거되고 말 테니까.
쿠로오가 출장을 간 사이 그 빈 집에서 아카아시는 똥 씹은 표정으로 도청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보쿠토의 요청에 의해 침대, 소파, 욕실 주변에 특히 많은 수의 도청기를 숨기면서, 마피아 카르텔이 쿠로오의 집에 못된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저 어설픈 변명에 넘어간 자신을 욕하고 있었을 것이다.
보쿠토는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헤드셋을 뒤집어썼다. 샤워중인지 쏴아아 하고 물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별 특이할 것도 없는 사운드였지만 보쿠토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몸을 배배 꼬기 시작했다.
찰박찰박 샤워타올로 몸을 문지르는 소리와 자잘한 소음에 보쿠토는 침을 꿀꺽 삼키고 숨을 죽였다. 곧 헤드셋 안에서 흥흐응~ 하고 나직한 쿠로오의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우와아, 샤워하면서 콧노래 부르는 타입이었어? 귀엽잖아!
그와 알고 지낸 시간이 10년이 넘어가는데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보쿠토는 괜히 파닥파닥 얼굴을 부채질하며 손을 올려 헤드셋을 꽉 쥐었다.
스피커가 아니라 헤드셋을 끼니까, 귀 바로 옆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진짜 옆에서 샤워하는걸 훔쳐듣는 느낌이 든다.
물을 맞으며 샤워하고 있을 쿠로오의 알몸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어쩐지 성감이 곧추서서, 보쿠토는 바지 사이로 자신의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나, 어쩐지.. 쿠로오랑 섹스 해도 제대로 흥분 할수 있을 것 같은데. 남자랑 섹스하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임무 때문에 남자를 꼬신 적은 있어도 호텔 방에 얌전히 기절시켜두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쿠로오가 만약 자신 앞에서 다리를 벌려준다면.. 윽.. 보쿠토는 자신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햩았다.
그저 어떨까 상상해본 것 뿐인데 일년 전 임무 때문에 빅코리아 시크릿 모델과 침대 위에서 헤어졌을 때보다 더 아쉬워졌다. 보쿠토는 휴지를 뜯어 손에 묻은 자신의 것을 닦아내고 헤드셋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쿠로오의 숨소리가 일정해져 잠에 들 때까지.
♢
“어라? 쿠로오는?”
“오늘 오전까지 출장달아놓으셨어요.”
“그래?”
보쿠토는 제 앞의 깨끗한 책상을 바라보곤 아쉽게 혀를 찼다. 쿠로오 보고 싶다.
보쿠토는 쿠로오가 오늘이 아닌 어젯밤 이미 일을 다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팀장님이 오늘까지 하라고 한 일을 어제 다 끝마쳐서 좀 쉬겠다는데, 그걸로 깐깐하게 굴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쿠로오가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도 떳떳하게 안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쿠로오가 자리를 비운 동안 보쿠토는 나름대로 열심히 업무를 처리했다. 요 며칠 정신이 콩밭에 가 있느라 밀린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윽, 저번 출장 보고서 어제까지였잖아! 부산스레 종이를 끌어다 앞에 놓고 쓰다 만 파일을 켜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러면서도 머리 한 구석은, 어제 그 짜릿했던 도청의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역시 자동차에도 설치해야겠지.’
그 여자, 드라이브 좋아하니까. 예전 쿠로오가 뻐기듯 자동차 수납함에 콘돔은 기본이라고 했던 것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낮게 신음하는 쿠로오의 신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어쩐지 안절부절 못하게 되었다.
점심으로는 건물 밖 핫도그 트럭에서 핫도그를 세개 사왔다. 두 개는 오는길에 먹어치우고 남은 하나를 종이봉투에 넣어 달랑달랑 들고 오자 사무실 맞은편 책상에 쿠로오의 노트북이 올려져 있었다.
어, 쿠로오 돌아왔나?
눈을 반짝 빛내며 종이 봉투를 책상위에 올려두고 쿠로오의 자리를 기웃거렸으나 곧장 점심을 먹으러 간건지 짐을 푼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쳇. 조금만 더 기다렸다 갈껄. 그럼 같이 점심 먹을 수 있었을텐데.
어쩐지 아쉬워져 보쿠토는 사무실 밖 복도 자판기에서 콜라 한캔을 뽑았다. 한번에 반정도를 비우고 책상에 앉아 남은 핫도그를 우물거리는데, 사무실 문이 열리며 쿠로오가 들어오더니 보쿠토와 눈이 마주쳤다. 보쿠토는 입 안에 든 음식을 생각치도 못하고 버럭 외쳤다.
“쿠뤄!!”
“윽, 더러우니까 먹던 건 삼키고 말해.”
흥. 꼭 정보 3팀 츠키시마처럼 이야기하네. 보쿠토는 쿠로오와 친한 그 요원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제대로 씹지 않은 음식을 목으로 꿀떡 넘기고 콜라를 마저 마시자 쿠로오가 아 죽겠다 소릴 내며 자켓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셔츠 손목 단추를 플어 소매를 접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점심을 먹으러 간게 아니라 팀장님에게 보고를 하러 간 모양이었다.
“이번 일, 많이 힘들었어?”
“응? 아아, 일 자체는 일찍 끝났는데 어제 잠을 거의 못잤거든.”
보쿠토는 쿠로오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분명 어제 삼십분 이상 숨소리가 균일해진걸 확인하고 나도 잤는데? 쿠로오는 보쿠토의 얼굴을 보며 그 특유의 성질 나빠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 한쪽으로 치켜 올라간, 그 악당 웃음. 보쿠토의 머릿속에서 붉은 색의 경종이 울렸다. 살고 싶으면 도망쳐! 하고 본능이 버튼을 연타하는 느낌이었다. 보쿠토는 애써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받았다.
“잠, 잠자리가 안 좋았나봐..?”
“내가 원체 예민하잖냐.”
쿠로오는 씩 웃으며 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들고 보쿠토의 책상으로 걸어왔다. 보쿠토의 목울대가 긴장으로 꿀꺽 움직였다. 설마, 아니, 아니겠지. 안 들켰을꺼야. 아카아시가 제대로 숨겨 준건데!
“아카아시랑 이야기는 끝냈고.”
아, 아카아시이-!!!! 이 배신자!!
보쿠토의 얼굴이 헬쓱해졌다. 손에 들고 있던 핫도그를 툭 떨어뜨린 것과 동시에, 쿠로오의 가방에서 그의 집에 설치했던 도청기가 와르르 쏟아졌다.
“이야기 좀 할까, 부엉이씨..?”
눈꼬리를 곱게 접어 웃는 그 얼굴은, 평소에 비하면 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순해 보였으나 그 얼굴을 바라본 보쿠토의 목덜미엔 소름이 돋았다. 으아, 쿠로오 진짜 화 났어!
“그, 쿠로오! 마피아가, 너 방심할 때 튀어나오면 내가 지켜줘야 하니까,”
“네, 네. 진정하고 사람 말을 하세요.”
“잘못했어요..”
쿠로오는 두 눈을 점으로 만들고는 텅 빈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보쿠토를 내려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요 며칠 멀쩡히 길을 가다 넘어지질 않나 대화를 하면 핀트가 나간 대답을 하질 않나 머릿속 나사 어딘가가 풀려있다 싶더니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쿠로오는 뒷목을 쓸며 볼 안쪽을 살짝 깨물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보쿠토가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나사빠진 얼간이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는지, 모르면 바보 아닌가.
그녀와 한창 분위기 좋을 때 들이닥쳐선 억지로 키스하고 흥분한 성기를 감출 생각도 없이 제 배에 비벼대던 그 때 이후부터였다.
혹시 날 보고 꼴리나? 하고 잠시나마 자아도취에 빠지기엔 쿠로오는 보쿠토와 지낸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다. 보쿠토는 13번가에서 제일 잘나가는 남창이 마음먹고 꼬시려고 해도 무의식중에 철벽을 칠 정도로 극성 헤테로였다. 그러니까- 쿠로오가 알기로는.
쿠로오는 숨을 들이마쉬고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쿠토가 어깨를 움찔 떨며 눈치를 슬슬 보기 시작하는게 꼭 얼굴을 덤불에 파묻으려는 타조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 얼간이 부엉이 같으니.
“일어나, 나가자.”
“어, 어디 가는데?”
“펍에.”
엥? 아직 근무시간인데?
보쿠토는 먹던 핫도그와 봉지를 휴지통에 밀어넣고 어벙하게 되물었다.
“그럼 맨정신으로 왜 이러는지 얘기해주려고?”
“.......”
입을 합죽이처럼 다문 보쿠토는 또 자리를 옮기자는 말엔 순순히 응하며 주섬주섬 휴대폰과 지갑을 챙기기 시작했다. 쿠로오는 제 생각에 빠져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는 부엉이를 뒤에 달고 사무실을 빠져나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안에는 저 보쿠토를 정상화시켜놓으라는 엄명을 내린 팀장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에어컨이 빵빵했던 건물의 문을 열고 나가자 오존층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마냥 자비없는 직사광선이 쨍하니 내리쬐고 있었다. 쿠로오는 보쿠토에게 술을 먹여 거나하게 취하게 만든 뒤 숨기고 있던 것을 모두 토해내게 만들 예정이었으므로 주머니를 뒤져 자신의 차 키를 꺼냈다.
“내 차 타고가자.”
“어, 어.”
아직도 도청기를 싸그리 반납당한 충격에서 못 벗어난 건가? 쿠로오는 제 차로 가자는 말에 뭐가 떠오른건지 갑자기 부산스러워지는 보쿠토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오늘은 맘껏 취하셔. 끝까지 책임져줄 테니까.”
“책임져준다고?”
“아아. 그러니까 머리 풀고 마셔도 된다고.”
쿠로오는 그렇게 말하며 운전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옆좌석에 앉아 조용히 안전벨트를 매는 보쿠토의 얼굴은 왠지 또 시뻘겋게 상기된 채였다. 나 또 무슨 말을 잘못한건데.
♢
대낮부터 문을 여는 주점을 찾기란 힘든 일이었다. 쿠로오는 그들이 자주 가는 주점이 적어도 다섯시는 지나야 문을 여는 곳이란걸 알고 있었고, 도시 외곽을 거의 돌다시피 해서야 맥주를 파는 낡은 펍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쿠로오는 슬슬 차를 운전하는 동안 한마디도 않고 있던 보쿠토를 의아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평소라면 차 안에서 심심하다고 귀찮도록 말을 글 녀석이, 오늘은 조수석의 콘솔박스를 슬쩍 열어보며
“여기 콘돔 있어?”
라고 물어보곤 잠잠 무소식이었다.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는데, 충격 먹은 얼굴로 입술을 파르르 떠는 게 꼭 저는 아닌 것 같은 반응이었다.
얼씨구. 지는 콘솔박스에 뭐 안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자기는 박스에 콘돔이며 젤이며 잔뜩 넣어가지고 다닌다고 뻐기던 보쿠토를 기억하는 쿠로오로썬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왜 네가 내 도덕적 해이에 대해 비난하는 눈으로 날 쳐다보는지 설명해줄 부엉이?
“자, 마시자.”
쿠로오는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잔을 들어 보쿠토의 잔에 툭 부딪히곤 잔을 들어올렸다. 보쿠토가 마지 못해 잔을 들어올리고는, 주저하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꿀꺽꿀꺽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보는 사람이 다 갈증이 날 정도로 시원하게 마시는 소리에 쿠로오는 목을 축이곤 서비스로 놓여진 팝콘을 입에 물었다. 오늘은 취해선 안되는 날이었다.
“한잔 더 마실래?”
“어엉..”
쿠로오는 손을 들어 보쿠토 대신 주문을 넣고는, 메뉴판 제일 위에 쓰인 과카몰레 나쵸를 함께 주문했다.
보쿠토는 두번째 맥주잔이 제 앞에 놓일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고, 쿠로오는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며 보쿠토를 재촉하지 않았다. 한 세잔쯤 들어가면 알아서 입이 열리겠지. 쿠로오는 요즘 근황이나 예전에 봤던 영화 이야기 따위를 늘어놓으며 보쿠토의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정확히 보쿠토가 맥주 두 잔과 마가리따 한 병을 비운 뒤에 스톨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 보쿠토에게 시선을 힐끔 던졌다.
적당히 술기운이 오르는지 양 볼이 슬쩍 벌게진 채였다.
“그래서, 요즘 뭐가 문제야?”
“으음..”
보쿠토는 손으로 요란하게 세워올린 머리를 한번 스윽 쓸고는, 눈가를 좁혔다. 입은 아직도 꾹 다물린 채였다.
“조금 서운하네.”
“응, 뭐? 왜, 너는 왜??”
“나름대로 너랑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고민도 털어놓지 못할 정도로 내가 형편없는 녀석인가 싶어서.”
그런 거 아냐!
보쿠토는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며 쿠로오의 말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음. 좋아. 적당히 횡설수설하군. 쿠로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짐짓 우울한 표정으로 맥주를 꼴깍 삼켰다. 아직도 한 잔째인 맥주는 이제 김이 거의 다 빠져나가 밍밍한 맛이었다.
“그런 게 아니라.. 조금 민감한 그런, 문제라서.”
“심각한 문제인가봐.”“아니, 응, 그게..”
진짜 무슨 일이지? 쿠로오는 보쿠토가 이렇게 뭔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CIA견습으로 들어왔을 시절 호기심에 전기총을 집에 들고 갔다가 박살을 내 돌아온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알던 것들을 좀 모르는 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응, 그리고?”
“아- 진짜 말하기 조금 그래! 미안 쿠로오! 얼른 정리할 테니까!”
보쿠토는 두 눈을 질끈 감은채 스톨 위를 주먹으로 약하레 내리쳤다. 제법 비장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누구 맘대로? 쿠로오는 눈썹을 누그려 웃으며 점원을 불렀다.
데킬라, 한병 주시고 잔은 두 개 주세요.
“너무 급하게 얘기하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정리해서 말해봐.”
레몬조각과 소금, 그리고 작은 잔 두개가 엎어져 나온 것은 금방이었다.
쿠로오는 보쿠토 앞에 한 잔, 제 앞에 한 잔을 따라놓고서는 먼저 데킬라를 한 잔 들이키고 레몬 조각을 입에 물었다. 시큼한 레몬즙이 입에 화악 퍼지자 손등 위에 소금을 톡톡 뿌려 혀로 햩는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보쿠토와 눈이 마주쳤다. 씩 웃어주자 이내 데킬라를 쭉 들이키곤 소금도 먹지 않고 물부터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솔직히 너도, 네가 요즘 제정신이 아닌 건 알지?”
“그건-”
“아니, 네가 우리 집에 도청기를 깐 걸로 갔다가 비난하려고 하는건 아니야.”
쿠로오는 그렇게 말하고는 최대한 상냥한 표정으로 싱긋 웃어보였다. 보쿠토가 술이 깬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망할 새끼..
“나는 네 파트너잖아. 네가 이런 식으로 방황하면 나도 신경을 쓰지 않을수가 없고..”
“으응...”
“그리고 넌 내 제일 소중한 친구니까.”
훗, 석양이 지는 배경을 등으로 맞으며 할 법한 느끼한 소리에 크게 뜨인 보쿠토의 눈동자가 너울거렸다. 크윽, 쿠로오..! 그래, 마셔 마셔.
쿠로오는 독한 데킬라를 두 잔 더 보쿠토에게 먹였다. 보쿠토의 얼굴은 이제 누가 봐도 주정뱅이라고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술기운에 푹 절어 있었다.
푸하, 하고 술냄새 푹푹 나는 숨을 내뱉는 보쿠토의 등을 툭툭 두들겨주며 고개를 기울였다. 말 해 말 하라고. 네가 왜 이 따위로 얼간이처럼 구는지 알아야 이 형님이 어떻게든 해줄 거 아니냐. 쿠로오는 보쿠토가 이렇게 심각하게 방황할 정도로 고민에 빠진 것을 보는게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끔 보면 생각없이 사는 녀석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보쿠토는 고민이 없는 녀석이 아니라 고민에 잠겼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것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른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런 녀석이 일주일이 넘도록 골골대고 있다는 건,
‘진짜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거라면 왠만하면 다 들어줘야겠다. 그렇게 결심한지 채 일분도 지나지 않아서, 보쿠토는 쿠로오의 다정한 토닥거림에 감동이라도 받은 것처럼 입술을 우물거렸다.
“쿠로오, 있잖아 나 사실.”
“오야, 천천히 얘기해봐.”
“나 요즘 네 생각하면서 자위해!”
저기.
탱그랑, 하고 카운터 안쪽에서 얼음 집게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 하나 없이 대낮부터 들이닥친 손님의 수치를 모르는 외침에 가게 주인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사실, 어제도! 너 샤워할 때 흥분해서 한 번, 읍!”
“그렇게 자세하게 얘기할 필요는 없어!”
쿠로오는 기겁하며 보쿠토의 입을 틀어막았다. 보쿠토는 제 입술 위를 덮은 쿠로오의 손바닥을 낼름 햩고는, 기겁해서 손을 떼어내는 쿠로오의 손목을 제 손으로 꽈악 잡아챘다. 술김에 벌갰던 방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새빨개진 얼굴의 보쿠토가 눈을 부릅뜬 채 쿠로오의 눈을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쿠로오, 나랑 섹스 한번만 해 보자.”
데엥- 하고 종말의 BGM비슷한 것이 하고 쿠로오 내면에서 귓가로 울려퍼졌다. 20톤 트럭이 고가도로에서 전복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소음이었다. 당황해 뻣뻣하게 굳은 입술을 억지로 달싹거렸다.
“...뭐?”
“나랑, 해..”
보쿠토는 말없이 쿠로오의 손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대로 잡아당겨 쿠로오의 어깨에 제 얼굴을 묻고, 등 뒤를 단단하게 껴안았다.
“.....뭐?”
쿠로오의 황망한 목소리가 애처롭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