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미님(@icefly) 님과 같은 세계관+캐릭터 능력을 공유해서 쓴 능력자물+군대물입니다!
※ 날조 주위
※ 다른 시간대의 보쿠로가 있는 탐미님의 멋진 글 주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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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의 능력으로 보쿠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옴과 동시에 쿠로오는 머리 위로 손을 올리고 엎드렸다. 곧 등 뒤로 화끈한 열기가 폭발했다.
“크으.. 화끈하구만.”
“아야야, 수류탄을 터뜨릴꺼면 미리 말을 하라구요!”
땅 아래에서 뒤따라 솟구친 야쿠가 투덜거렸다. 켄마와는 다른 타입의 이동능력자였다. 이동거리가 길지 않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장애물을 무시하는 그의 능력은 네코마의 특급 암살대원답게 은밀했다.
쿠로오는 미리 말할 여유가 없었다는 대답 대신 천으로 자신의 팔을 동여맸다.
“그런데 저거, 죽지는 않겠죠?”
“설마.”
이어커프 안에서 기대하던 기계음은 들리지 않았다. 1K를 버는건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설마 기절조차 안 할 줄이야.
그럼 저걸 잡으려면 USAS-12라도 갈겨야 하나. 아니면 박격포? 아쉽게도 현재 네코마 부대에는 저걸 무력화시킬 정도로 공격적인 능력자가 없었다. 쿠로오는 그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리에프에게 1년, 아니 반년만 더 시간이 있었어도..
쿠로오가 다친 팔을 천천히 쥐었다 펴자 야쿠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곧 시야가 어두워지며 몸이 둥실 뜨는 감각과 함께 근처의 작은 바위로 이동했다. 수류탄의 연기가 여기까지 맡아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지만 더 멀리 갈수 없었던 이유는 은색의 서류가방을 껴안고 있던 리에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장! 야쿠 선배!”
“조용. 곧 여기로 후쿠로 부대들이 몰려올꺼야. 무사히 도망치는 것만 생각해.”
방금 전 창백했던 얼굴과 달리 멀쩡하게 걷고 있지만 더이상의 출력은 힘들 것이다. 쿠로오는 멀쩡한 팔로 리에프에게서 가방을 건네받았다.
[남은 인원은?]
[대략 열셋입니다.]
쿠로오는 통신기로 들려오는 카이의 목소리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전력 차이가 너무 나잖아.
“일단 무사히 도망쳐 베이스캠프로 모이는 것만 생각하자고?”
[야쿠, 수고했다.]
[대장, 몸은 괜찮은가요?]
그때였다. 고오오- 하고 맹수의 으르렁거림과도 닮은 낮은 주파수의 울림이 숲을 울렸다. 뒷목 서늘해지는 그 감각에 쿠로오가 반사적으로 시선을 뒤로 돌려 위를 쳐다보았다. 왜 위인지는 모르겠는데, 그저 반사적으로 무언가에 이끌리듯 쳐다본 하늘은 수류탄 때문에 거뭇하게 올라오는 연기로 더럽혀져 있었고-
“미친..”
보쿠토 코타로가 자신을 사냥하기 위해 날고 있었다.
*
수류탄을 맨몸으로 받아낸 보쿠토의 입에서 쿨럭, 하고 검은 연기가 튀어올랐다.
공기를 자글자글 태우는 열기에 보쿠토의 방어복이 군데군데 부서져 흩어졌다.
코노하의 목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제 목에서 흘러나오는 분노를 닮은 으르렁거림이 자신의 것 같지 않아 입을 다물었지만 곧 그 판단을 내릴 이성이 허물어내렸다. 보쿠토는 다시 이빨을 드러냈다. 금색 눈동자가 그의 두 손을 내려보았다.
“잡았는데에-”
내 양 손에 그 팔을 분명 잡았는데, 다 잡은 사냥감이었는데..
엄마 젖이라도 더 빨고 와, 체리보이?
그렇게 웃으며 엄지를 바닥으로 척 내린 쿠로오의 모습이 보쿠토의 머릿속을 채웠다. 빙글빙글 웃는 모습 진짜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보쿠토의 숨이 거칠어진다. 그의 눈동자의 홍채가 일렁이더니 동공이 세로꼴로 열렸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난다고-!!!!!!
“쿠로오 테츠로오오-!!!!!!!!!!!!!”
둥글게 굽힌 등에서 피륙이 찢기는 소리가 나더니 한 쌍의 날개가 솟구쳤다. 갈색과 회색이 섞인 깃털이 달린 날개가 홰를 치자 겉에 묻었던 핏물이 튀었다.
“미친! 보쿠토 대장!! 침착해요!!!”
[아카아시 부대장! 대장이..!!]
[훈련을 중지해야 합니다!!]
쿠로오 테츠로. 어디야. 어디 있어.
보쿠토의 발이 땅을 박차고 그대로 날아올랐다. 그 등에 솟아난 날개는 단단하고 날카로워 공기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그저 위로 솟구쳐 올라 아래를 샅샅히 흩었다. 킁, 하고 코를 움직였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나무 타는 냄새, 그리고 그 사이로 섞인 그 고양이의 냄새.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움직인 보쿠토의 눈에 마침내 은색의 무언가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그, 은색 케이스.
공중에서 날개를 움직여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쿠로오 테츠로와 눈이 마주친다. 그 여느때보다 광기에 젖은 보쿠토는 쿠로오의 눈에 얼핏 떠오른 공포를 날카롭게 알아차렸다. 반사적으로 웃는다.
[..입니다! 훈련이 중지래요!]
[-네코마 부대 및 후쿠로다니 부대는 지금 즉시 훈련을 종료하고 훈련소로 집합해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네코마 부대 및-]
쿠로오는 하늘 위로 고개를 들어올린 채로 제 귀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통신기를 빼내 부츠로 밟아 부쉈다. 방해된다.
야쿠의 품에 서류가방을 밀어놓고 장갑을 벗었다.
“야쿠, 리에프를 데리고 훈련소로 복귀해.”
“뭐? 대장, 설마 저걸 상대하게요?”
“쿠로오 대장!!”
“지금 등을 보이고 도망치면 진짜 죽어.”
보쿠토의 등 뒤로 비치는 햇살때문에 눈이 시려 뜨고 있기 어려웠지만 보쿠토가 지금 제게 덤비지 않는 이유가 아직 눈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부러져 부어오른 팔이 욱신거려 해피르핀 생각이 간절해졌다. 젠장, 하나쯤 삥땅쳐둘껄.
그 순간, 위로 살짝 상승한 보쿠토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아래로 활강해왔다.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똑바로 이쪽을 향하는 움직임에 쿠로오가 멀쩡한 왼팔을 들어올리고, 리에프가 그런 쿠로오의 앞을 막아서듯 나서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대장, 피해여!!”
쿠웅!!
보쿠토의 신형이 나무 아래로 쳐박혔다. 수령이 백년은 될법한 나무가 기울어지고 가지가 우지끈 꺾였다. 리에프의 코에서 코피가 주륵 흘렀는데 리에프는 그것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목에 핏줄을 세웠다. 땅이 내려앉았지만 보쿠토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것처럼 몸을 일으킨다. 날개가 푸득, 가볍게 홰를 쳤다. 고작 머리카락만이 아래로 가라앉아 그가 리에프의 중압 안에 갖혀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탁한 색의 머리카락 사이로 비치는 금색 홍채는 평소와 달랐다. 가느스름하게 좁혀진 그 눈꺼풀이 크게 치켜떠진 것과 동시에 쿠로오는 제 방어막을 최대로 전개했다.
희뿌옇게 변한 배리어가 쿠로오를 중심으로 둥글게 피어올랐다.
쩌엉-!
사람의 육체에서 나올 리 없는 충격음이 쿠로오의 손바닥 위에서 쨍하니 울려퍼졌다.
“가!!!”
보쿠토의 눈동자는 자신을 거슬리게 만든 게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손등으로 거칠게 코피를 문질러 닦은 리에프를 향해 보쿠토가 다시 한번 팔을- 아니 손톱을 휘둘렀다.
야쿠가 리에프의 뒷덜미를 잡고 땅으로 쑥 꺼져내린 공간이 날카롭게 찢겼다.
“어라라. 신체 강화가 아니었던 거야..?”
“.......”
“오싹오싹한데.”
쿠로오는 떨리는 입꼬리를 간신히 치켜올렸다.
신체변형 사이커였나. 어쩐지 단순 신체강화 능력자 치고 너무 강하다 했어.
아직 능력자들의 존재가 밝혀지지 않았을 무렵 고대 이집트와 남미에서는 신체변형의 능력자들을 신이라고 불렀다. 그 정도로 강력한 사이커다. 쿠로오는 SPCT가 어째서 제 능력도 컨트롤하지 못하는 능력자를 기어이 부대의 대장에까지 앉힌건지 알만하다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쿠로오 테츠로..”
“오빠 불렀냐?”
보쿠토의 발이 땅을 파헤치듯 박차고 손을 휘둘렀다. 쩌엉! 순도 높은 광석을 내리칠때처럼 맑은 소리가 났다. 쿠로오의 워커가 흙바닥에 밀려 발자욱을 길게 남기고 뒤로 밀렸다. 폐가 짜부러지는 느낌에 쿠로오의 잇새로 신음이 튀어나왔다.
“쿠로오오!!!!”
그 순간 위로 솟구친 보쿠토가 그대로 신형을 반전해 아래로 내리꽂혔다. 쾅! 둔중한 해머로 땅을 내려친듯한 충격파에 옆으로 데굴데굴 구른 쿠로오의 주변으로 배리어가 깜박거렸다.
채 중심을 잡기도 전에 흙먼지를 가르고 보쿠토의 날개가 쿠로오의 신형을 그대로 갈겼다. 배리어 채로 뒤로 날아간 쿠로오가 나무에 등을 부딪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제기랄!”
보쿠토의 목울음에 쿠로오는 손등 위로 진공을 두어개 더 피어올렸다. 그러나 지금의 보쿠토는 그 배리어를 마치 진짜 비눗방울이라도 된 것처럼 취급하며 그대로 몸으로 터뜨려 돌진해왔다.
*
쿠로오 테츠로가 처음 자신의 능력을 각성한 것은 그가 딱 열살이 되던 해였다. 그의 소꿉친구였던 켄마는 그보다 한달 늦게 자신의 능력을 깨달았다.
“내 능력, 멋 없어. 켄마 넌 좋겠다.”
“별로.. 난 잘 모르겠는걸.”
“멋지잖아! 슈슉! 슈슉 하고!”
켄마의 동그란 눈이 비스듬히 쿠로오를 올려다보았다. 천천히 깜박여 말을 고르듯 눈꺼풀을 움직였다.
“나는 도망치기밖엔 할 수 없어.”
“어...”
“남들을 지키는 쿠로오의 능력 쪽이 더 멋져.”
처음엔 손바닥 위에 비누방울처럼 작게 피어오른 막이었다. 그것은 배리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여리고 약해서, 작은 충격에도 금새 소리없이 부서졌다.
‘연습하면, 어른이 될 때쯤엔 쓸만한 능력이 될꺼야.’
어느덧 그 작은 면적의 막을 몸 전체에 두를 수 있게 되었다. 쿠로오의 키가 자랄수록 그 막은 점점 더 견고해졌다. 투명한 비눗방울이라고 놀림받던 쿠로오의 배리어는 이제 가볍게 탄환을 막았다. 쿠로오가 제 몸이 아닌 다른 곳에 배리어를 생성할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SPCT에 들어와 2년째가 되던 해의 여름이었다.
일반 군인이라면 소년병이었을 나이였지만 여기선 SPCT의 어엿한 정식 대원이었다.
쿠로오가 그 배리어를 움직이는 법을 터득했을 때, 네코마 부대에 발령받았다. 켄마가 말한대로 쿠로오의 능력은 지킬 수 있는 능력이었다.
부대원의 몸뚱이를, 자신의 생명을, 그리고 알량한 자신의 양심을.
내 능력은 남을 해치기 위한 게 아니니까. 그저 우리 부대를 지키고 싶었을 뿐인데. 라이트 키퍼로써 전장의 후방을 지키다가 처음 총을 들었을 때, 그리고 지키기 위한 배리어로 공격기를 개발했을 때 그 사실을 들은 켄마의 눈동자가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게 있어 다행이다. 왜냐하면.. 저 건방진 부엉이 새끼를 때려줄 방법이 이것뿐이니까!
*
“무지하게 단단한 몸뚱이네!!”
쿠로오는 진공이 보쿠토에게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략을 바꿨다.
안개처럼 뿌연 배리어의 면적이 줄었다. 쿠로오의 손바닥과 상체만을 가릴 정도로 압축된 배리어는 견고한 방패처럼 보쿠토의 발톱을 막았다.
정신력이 고갈되어 진공을 피워올리자 뇌가 비명을 질렀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이마 뒤를 쪼갤듯이 움켜쥐었다.
주먹만한, 혹은 사람 머리통만한 진공이 보쿠토의 발밑에서 폭발해 도움닫기하는 움직임을 묶었다. 나무를 부숴 보쿠토의 시야를 가렸다.
나무 뒤로 뛰어 보쿠토의 시야에서 사라지면 어김없이 나무가 잘려나갔다. 장애물의 의미가 없다. 나무 파편을 막을 여유가 없어 제 얼굴로 쏟아져내린 파편에 눈을 질끈 감고는 왼팔을 쭉 뻗었다. 텅!
부연 안개처럼 진해진 배리어 너머로 보쿠토의 얼굴이 섬뜩하게 일그러졌다. 헉, 하고 쿠로오의 입에서 단내가 났다. 이렇게 오랫동안 뛰어본 게 얼마만이더라..?
그때 아래에서 위로 후려치는 날개를 미쳐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나뒹굴었다. 쿠로오가 반사적으로 두른 배리어가 두어차례 깨져나갔다. 그새 바닥에 박힌 돌에 얼굴을 부딪혀 관자놀이가 피투성이가 되었다.
“위험해, 진짜..”
웅크리고 버티다 보면 반격의 기회는 온다.
늘 그렇게 말했지만 이렇게 무력하게 웅크리기만 한 적은 없었는데. 쿠로오는 보쿠토에게 잡혀 으스러진 오른팔이 아닌 그저 막아내기만 했을 왼팔에도 시큼한 통증이 내달리는 감각에 흐릿하게 웃었다.
진짜로 죽을지도 모르겠다.
“쿠로오 대장, 물러나세요!!!”
그 목소리가 아니었으면, 쿠로오는 보쿠토의 손에 그대로 제 목줄기를 내어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퍼뜩 옆으로 몸을 굴린 쿠로오의 뒤쪽으로 나무는 뿌리뽑히고 바위는 부서졌다. 제가 만들어낸 진공이 터지는 소리와 보쿠토가 부수는 숲이 우는 소리가 고막을 겅겅 울려 이제 작은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위에서 아래로, 쿠로오를 반쪽내듯 흉포하게 할퀴어진 손톱을 배리어로 간신히 막아내고 뒤로 튕겨나가듯 주저앉았다. 곧장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쿠로오의 몸은 무력하게 다시 주저앉았다.
까아아아-!!!
인간의 감청영역을 아득하게 뛰어넘은 초음파가 보쿠토의 등을 때렸다. 처음으로 보쿠토가 인상을 찡그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배리어를 발동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쿠로오 쪽의 데미지가 훨씬 컸을 것이다.
곧이어 빛의 탄환과 총알이 보쿠토의 등에 쏘아졌다. 보쿠토는 귀찮은듯 날갯바람으로 총알을 튕겨내고 목구멍을 울려 언짢은 심기를 드러냈다.
숲 안쪽에서 중무장을 한 대원들이 총구를 보쿠토에게 겨누었다. 그 안에 든 것은 실탄이 아닌 마취제였지만, 탄환과 나이프로도 뚫을 수 없는 보쿠토의 질긴 피부를 고작 주사바늘로 뚫을 수는 없었다.
쿠로오는 주저앉은 제 다리 사이로 푹 박힌 주사기를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 배리어를 유지할 기력도 없다. 이대로 보쿠토가 다시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면.. 죽나?
그때 자신의 사냥을 방해받는다 생각한건지 보쿠토가 날개를 위협하듯 크게 펼쳤다. 그 그림자에 완전히 먹혀든 것처럼 쿠로오는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주위를 완전히 이쪽으로 돌려!”
“진짜, 손이 많이 가는 대장이라니까!!”
지끈지끈 골을 울리는 통증이 숫제 머리를 빠개어버릴 것처럼 골 안을 두들겼다.
차라리 죽는게 나을 정도의 통증이다. 이대로 죽으면 산재처리는 제대로 되려나? 쿠로오는 작년 이맘때쯤 쓰고 갱신하지 않은 자신의 유언장 내용을 곱씹으며 두 팔을 땅 위로 무기력하게 떨어뜨렸다.
“쿠로오.”
그때 분명 아무더 없던 등 뒤에서 익숙한 손이 쿠로오의 어깨를 살짝 감싸안았다. 피가 굳고 거센 압력에 짓눌려 멍해진 볼 위로 머리카락이 살랑 닿았다.
“수고했어. 이제 쉬어.”
켄마.
쿠로오의 눈동자 안으로 울컥 하고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깜빡 눈을 뜨자 보쿠토의 날개가 일으켜낸 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처음 본 순간인 것처럼 쿠로오의 눈동자와 보쿠토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리고 곧 형형한 눈빛이 쿠로오의 목줄기를 뜯어낼 것처럼 보쿠토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쿠로오오-!!!!!!!”
그리고 보쿠토의 손톱이 켄마와 쿠로오에게 닿기 전에 공간이 잘렸다. 텅 비어버린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던 보쿠토의 등 뒤로 그물이 하늘을 뒤엎었다.
*
몽롱한 기분으로 쿠로오는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이 해피르핀을 투여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금새 깨달았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두통 하나 없이 눈을 뜰 수 있을리 없다.
눈꺼풀 위로 눈곱이 잔뜩 낀 것처럼 시야가 답답했다. 아아. 시야가 답답한 이유는 따로 있었나? 쿠로오는 멍한 머리로 자신의 왼쪽 눈 위로 덮인 안대를 깨닫고는 천천히 팔을 들어올렸다. 아니, 들어올리려고 했다.
“.......”
양 팔 깁스... 씨발.. 누워있다가도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아 쿠로오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치유계 사이커가 상주하는 곳이니만큼 깁스를 할 기간이 길지는 않을 테지만, 어깨에서 손가락 끝까지 석고로 사람레고를 만들어 둔 꼴을 보니 억울함이 솟구쳤다.
“그 미친 부엉이 새끼 때문에..”
“멀쩡한가보네.”
드륵, 하고 문이 열리며 켄마가 성큼 발을 내딛었다. 왔어? 멀쩡히 대답했지만 쿠로오의 눈매는 약에 취한듯 흐리멍텅해서, 켄마는 더 묻지 않고 침대 옆의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바이탈 사인도 뇌파도 심전도도 모두 안정적이었다.
“쿠로오.”
낮게 깔린 켄마의 목소리에 쿠로오가 시선을 돌려 응? 하고 웃었다. 그 입매도 평소와 달리 느슨했다. 웃는 게 아니라 그저 입을 걸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켄마가 무어라 말하기 위해 길게 쿠로오의 이름을 베어문 뒤, 켄마가 들어왔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저와 똑같이 의무실 환자복은 입은 보쿠토가 깁스 하나 하지 않은 쾌적한 몸뚱아리로 쿠로오의 안정을 와장장 깨부쉈다.
“여어! 쿠로오!”
“......”
살짝 고개숙인 켄마가 짜증난다는 눈빛으로 보쿠토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번 싸악 흩었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도 보쿠토는 개의치 않고 쿠로오의 침대로 성큼성큼 걸어와 섰다.
“뭐야! 아직 누워있는거냐!”
“이건 해피씨로도 구원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인데.. 켄마. 어떻게 생각해애? 응?”
“너 대단하더라! 지금까지 너처럼 오래 버틴 사람이 없었다고? 간만에 속 시원히 싸워서,”
“쿠로오. 치워줄까?”
“응.”
켄마가 보쿠토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얹자 순식간에 둘의 신형이 사라졌다.
곧 다시 쿠로오의 침대 옆으로 가볍게 나타난 켄마가 쿠로오의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어주자, 병원 밖에서 쿠로오!! 하고 금수 짖는 소리와 함께 콰장창 하고 창문이나 출입구 비슷한 것이 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쿠로오의 눈꺼풀이 경련하자 켄마가 변명하듯 덧붙였다.
“..미안. 섬 밖으로는 갖다 둘 수가 없어서.”
“이거 설마 신종 이지메일까나..”
약에 취한 쿠로오의 말꼬리가 제멋대로 늘어나더니 이내 쿠로오의 눈이 까무룩 감겼다.
곧 쿠로오의 병실로 다시 들이닥친 보쿠토는 쿠로오가 다시 잠들었으며, 그가 몇주간 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라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저 녀석 회복이 너무 느린 거 아냐!?”
“쿠로오씨는 인간 평균 이상입니다.”
그는 훈련기간이 끝나기 전에 쿠로오와 친분을 다지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것처럼 의무실의 의사와 치료계 사이커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사이커 본인의 자체 면역력때문에 사이킥 능력으로 완벽하게 치료할 수 없는 부상이란게 있다는 사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보쿠토는 고집불통이었다.
그의 기분이 지나치게 하이해진 것은 폭주 후 늘 몸을 짓누르는 앙금같은 잔열 대신 모든 걸 죄다 시원하게 뿜어낸 듯한 컨디션 때문이었다. 자신을 막아서는 자가 있다는 것이, 아무리 공격해도 쓰러지지 않는 적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짜릿할 줄이야!
“그래서 외간남자의 방에 제멋대로 쳐들어오고 말이지, 보쿠토 대장?”
“하하, 대장은 무슨! 그냥 보쿠토라고 불러!”
일정과 달리 길어진 훕련일정-이라고 쓰고 쿠로오의 회복기간이라고 읽는다.- 마지막 날, 쿠로오는 허락도 동의도 없이 제멋대로 제 방 문을 열고 들어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보쿠토를 흰눈으로 쳐다보았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여긴 완벽한 내 사적인 공간일 텐데?”
“하하, 뭐 그런 걸 다 신경쓰고 그래! 우리 사이에!”
무슨 사이..? 쿠로오는 후쿠로다니의 대장이 저와 나를 한데 엮어 우리라고 부르는 이 상황이 못내 어색했다.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우리 피터지게 싸우고 상호간에 나란히 입원한 사이 아닙니까? 물론 쿠로오 본인이 받은 데미지가 훨씬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보쿠토가 입원한 것은 고작 폭주 후유증 검사와 혈중 마취제 잔여량검사 때문이었고 자신은 양 팔이 수수깡처럼 또각 부러지고 갈비뼈와 쇄골뼈에 금이 가고 옆구리에 내출혈이 생기고 왼눈 흰자 실핏줄이 터진... 아 제기랄. 생각하다 보니 점점 화가 난다. 참고로 갈비는 아직도 욱씬거린다.
쿠로오는 간편히 꾸린 자신의 짐가방을 한번 책상 위에 쾅, 올리고 생긋 웃었다.
큰 소리에 보쿠토의 고개가 쿠로오를 향하더니 그 미소에 바보처럼 벙긋 따라 웃었다.
“그, 네 웃음 말이야.”
“흐응?”
보쿠토 본인이 열받는 웃음이라 친히 평가했던 그 눈웃음질이었다. 쿠로오는 지금와서 보쿠토가 새삼 다시 열받아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처음 볼땐 엄청나게 짜증났는데-”
“오야, 지금은요?”
보쿠토의 눈이 쿠로오가 한번도 본적 없는 모양새로 반짝였다. 새삼 그 큰 눈동자가 빛을 받으면 얼마나 밝게 빛나는지 깨닫게 된 때이기도 했다.
“무지 이쁘네.”
“..하?”
뇌에 부끄러움이란 걸 느끼는 기관이 괴사하기라도 한 건가. 쿠로오는 겁도 없이 눈을 마주치며 도발하던 제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급히 눈을 피했다.
지금 저 부엉이 대장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해석좀 해 줄 사람? 잠시 시선을 피했던 쿠로오가 정면으로 보기 어려운 것을 간신히 쳐다보는 것처럼 보쿠토를 흘긋 쳐다보았다.
“음.. 혹시 상대와 죽일 듯이 싸우고 나서야 우정이 샘솟는 타입?”
“그런데 그렇게 웃는거, 진짜로 싸우는 상대한테만 그렇게 웃는거야?”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다기엔 맥락도 앞뒤도 맞지 않는 소리였다. 쿠로오는 보쿠토가 제 말을 듣는 대신 자신의 질문을 연달아 퍼붓고 있었다는걸 눈치챘다. 아무래도 거기에 대해 대답을 들을 때까지는 귀머거리 흉내를 낼 모양이지.
“뭐~ 그렇죠. 상대방이 열받아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거든.”
“그럼 다행이다!”
“뭐가요?”
“그 웃음을 보고 살아있는건 내가 유일한거지?”
아 들어봐-! 너랑 싸울때 진짜 재밌었어!! 방어 능력자라고 들었는데, 꽤 아프게 때리더라!?
고개를 잔뜩 기웃거리며 흥분한 손으로 책상을 내려치는데, 그 텐션 높은 공기를 마주하는 와중에도 쿠로오의 뒷목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자신과 싸운 상대는 다 죽여버렸다는 식의 간접적인 고백인 건가. 나 정말로 요단강에 한 발 걸치고 있었구나.
시끄러운 녀석. 재수없는 녀석. 그리고 조금 무서운 녀석. 보쿠토와의 첫만남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껄쩍지근했다.
둘의 첫만남이었던 제 파트가 끝났습니다 !!! 탐미따따님이 이후 보쿠로 이야기를 써주셨어요ㅠㅠ!!
도비는 행복한 집요정이에요!!! 도비는 이제 승천할 수 있어여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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