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 기념 보쿠로 아니 보쿠로츠키입니다..!
제3체 카피페 참고했습니다!!!! (@NekoFukuro_CPP)
“아, 아카아시..”
“네?”
“나 사실 요즘 고민이 있는데..”
아카아시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반쯤 먹은 도시락의 뚜껑을 탁 덮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라기보단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아카아시가 도시락을 덮자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맞은편에 앉아, 빵 봉지를 손으로 꾸욱 쥐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할 말을 고르는 듯하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악력에 무참히 뭉개지는 야키소바빵의 안위에 잠시 묵념한 뒤, 가볍게 보쿠토를 재촉했다.
“무슨 고민이 있으신데요?”
“그게, 그..”
보쿠토는 한참동안이나 로딩바가 버벅이듯 같은 소리를 입밖으로 더듬더듬 내보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다시한번 재촉하는 대신 도시락 뚜껑에 시선을 고정했다.
먹으면서 듣는다고 할 껄 그랬나. 어쩌면 저 도시락을 마저 먹기 전에 점심시간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쿠로오가 말야.”
“네코마의 쿠로오씨 말이죠.”
“응! 그래, 그러니까 쿠로오한테.. 애인이 생긴 것 같아.”
컵라면에 물을 붓고 먹을만하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지난 뒤, 드디어 보쿠토의 입에서 본론이 튀어나왔다. 아카아시는 그렇군요. 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 움직였다.
핸섬한 얼굴이라고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못생긴 얼굴은 아닌데다, 운동부 주장에 키도 크고 성격도 모나지 않은 남자였다. 인기가 없을 리가 없었고, 한창 배구에 집중할 줄 알았던 그가 애인을 만들었다는 것이 조금 놀라울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보쿠토 씨가 이렇게 고민이 있다는 말까지 쓰지 않겠지.
“그리고요?”
“음, 그리고. 이건 추측인데, 아, 하지만 거의 맞을꺼야..”
보쿠토는 뭔가 하기 어려운 말을 하듯 뒷머리를 거칠게 긁적이다,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돼! 너니까 믿고 말하는거야! 하고 아카아시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아카아시가 당연합니다.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자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닥거렸다.
“그런데 쿠로오의 애인, 남자인것 같아.”
이건 좀 예상치못한 말이긴 했다. 아카아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 그렇군요. 라고 작게 대답했다. 그리고 보쿠토의 입에서 더이상 아무말도 나오지 않자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그게 끝입니까?”
“어..? 남자랑 사귄다니까, 안 놀래?”
“요즘 세상에 그럴 수도 있지요. 사귀는 대상이 유부남이나 살인자만 아니라면야.”
아카아시는 그렇게 쿨하게 답하곤 도시락 뚜껑을 다시 달칵 열었다.
뭐, 친한 친구가 게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랄수도 있겠죠. 아카아시는 며칠간 영 집중하지 못하던 보쿠토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보쿠토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은 채였다.
“그렇지만! 쿠로오, 내가 고백했을 땐 남자라서 안된다고 거절했다고!”
“....네?”
오늘 보쿠토가 내뱉은 문장 중에 제일 놀라운 것이었다. 기어코 보쿠토의 주먹에 야키소바 빵이 제 형체를 잃고 처참하게 뭉개지는 것을 확인한 아카아시는 살짝 말을 더듬고 말았다.
“웃으면서, 연애대상으로 못 봐줘서 미안하다고, 친구로 지내자고 했단 말야!”
“그, 그랬군요.”
“그래서 참았다고! 좋아하지만 억지로 날 좋아해달라고 강요할 순 없는 거잖아!!”
“그렇지요.”
보쿠토는 입술을 깨물며 그렇게 외쳤고,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박력에 밀려 반사적으로 단답형의 대답만 내뱉었다. 아니 뭐, 나중에 저도 몰랐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될 수도 있고, 우연히 다른 남자에게 반하게 될 수도 있죠. 보쿠토씨의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된 건 안타깝지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틀려! 나랑 약속했다고, 남자를 연애대상으로 볼 수 있게 되면! 나랑 연해하기로!”
“그런 말도 안돼는 약속을..”
그렇게 말한 아카아시는 중간에 입을 다물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고백하시면서 우셨어요?”
“......!?”
벌침보다 날카로운 아카아시의 목소리에 보쿠토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떠올랐다. 보쿠토는 빵봉지를 툭 떨구고는 손을 마구 흔들며 부정했다.
“아, 안울었어! 처음엔 안 울었다고!”
“거절당하고 우셨군요.”
“그, 그건..!”
보쿠토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아카아시는 어떻게 된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젓고 말았다. 하지만 쿠로오씨는 그냥 우는 보쿠토씨를 달래려고 그런식으로 말한 거에요. 라는 잔인한 말을 내뱉기에 아카아시는 자신의 에이스이자 후쿠로다니의 주장인 보쿠토를 꽤 아끼는 편이었다.
“방금 전에..”
“으, 응?”
“쿠로오씨가 남자랑 사귀는게 확실한 건 아니라고 그러셨죠.”
“맞아!! 확실한건 아냐! 그냥 내 추측이니까 어쩌면 내가 잘못 알았을 수도 있고!”
보쿠토는 바뀐 주제가 마음에 드는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아시는 시계를 힐끔 곁눈질로 살폈다. 이야기는 길어질 예감이고 점심시간은 야속하게도 줄어들기만 하고 만다.
“그럼, 어떻게 알았는지부터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그건 말이지..”
* * *
카라스노 알지?
응, 거기. 이번 골든위크 합숙때 온 네코마의 숙적이라는 그 학교 있잖아. 쓰레기장의 결전이랬던가. 그 중에 있는 거 같아.. 쿠로오 남자친구.
그리고! 음, 아마도 후배일껄? 그러니까 1학년이나 2학년!
“정확한데요 어째.. 휴대폰이라도 훔쳐보신겁니까?”
“아니, 그, 쿠로오가 잠깐 맡아달라고 한 거니까!”
보쿠토씨의 주장에 의하면 화면이 켜진채로 내밀었기에 얼결에 대화 내용을 보게 되었을 뿐이며 대화 내용이 궁금해 화면을 위로 살짝 올린 것은 불가항력이라는 것이다. 그걸 훔쳐봤다고 하는 겁니다. 아카아시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는 물었다.
“그래서.. 목격해버린 대화 내용이 어땠는데요?”
아카아시의 물음에 보쿠토는 눈에 띌 정도로 안색이 흐려졌다. 마치 스파이크를 세번 연속으로 블락당해 좌절할 때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그냥, 내용은 평범했어.. 연습 끝나고 뭐 케이크였나 간식 먹을거라고.. 그리고 블로킹에대해서 조금 얘기하다가 여름방학 합숙 기대되지 않냐는 얘기 조금.”
“내용은 그게 다에요?”
말하지 않는 내용이 있는 것 같은데요. 아카아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깍지를 꼈다. 말을 잇는 보쿠토의 상태가 데친 시금치처럼 축 처지기 시작하는게, 이어 나올 내용이 꽤나 중요한 모앙이었다.
“내용은 그게 다였는데.. 그 녀석 말이야.”
“그 녀석?”
“쿠로오랑 문자 하던 녀석!! 발신인 이름에 이모티콘만 들어있었다고!”
오. 이름이 아니라 뭐 하트라도 달아놓은 걸까.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이렇게 풀죽어 있을만한 이유를 알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번호부에 이름이 아닌 이모티콘을 달아놓을 정도면 애인이 아니더라도, 보통 친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녀석이 말끝마다 하트를 붙이는데.. 쿠로오는 또 엄청나게 귀여운 말투로! 답장하고!”
누가 하트를 붙여요? 누가 귀여운 말투를 쓴다고요? 아카아시는 새끼손가락으로 시원하게 귀를 파고싶은 마음을 억눌러야했다. 잘못 들었나.
“나랑 문자할때도 정말 기분 좋을때 가끔만 그런 말투로 보내주는데..”
보쿠토의 말에 따르면 그 자(?)와 대화하는 쿠로오는 시종일관 우와아앙~ 이러던가 잘시간 지나버렸네☆ 잘자아아(′3') 하는 식으로 귀엽기 그지없었다고 하는데,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조금만 더 제정신이 아니었다면 꿈을 꾼거겠죠, 하고 단답해버렸을지도 몰랐다.
그 쿠로오씨가 문자로 여고생 말투를 쓰고 있다고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젠장, 부러워! 안경 이모티콘 자식..!”
“..안경.”
..저기 보쿠토씨. 카라스노에 안경을 낀 사람은 한명뿐입니다.
* * *
“안녕하십니까! 올해 여름합숙에 참가하게 된 카라스노입니다!”
아아. 쳐다보고 있어. 쳐다보고 있잖아.
공을 벽에 던지며 워밍업을 하던 보쿠토의 눈이 카라스노의 1학년에게 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카아시는 반복해서 당부한 문장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명심하세요 보쿠토씨.’
‘뭔데?’
‘애인이란건 모두 저희의 추측일 뿐이고, 그저 엄청 친한 후배일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그렇지만..!’
‘안 그래도 눈치빠른 쿠로오씨인데, 보쿠토씨가 그 안경군에게 묘하게 반응하면 뭔가 눈치채버릴수도 있잖습니까.’
‘확실히.. 알았어! 모른 채 하고 있을테니까.’
보쿠토씨 차라리 눈을 감고 계세요. 보쿠토의 이글이글한 시선을 알아차린 안경군이 신경쓰이는지 보쿠토를 슬쩍 바라보았다. 아카아시가 속으로 조마조마한 사이 체육관 입구에서 쿠로오가 웃으며 나타났고, 다행히 보쿠토의 시선은 곧장 그리로 쏠렸다.
“소개 다 했으면 워밍업부터 하라고?”
“아아. 고마워.”
쿠로오씨의 도움으로 카라스노는 빠르게 주변을 정리하고 다른 학교와 섞여 워밍업을 하기 시작했다. 쿠로오씨는 카라스노의 주장 옆에서 계속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대화하면서 작게 웃거나 혹은 보쿠토씨와 눈을 마주치곤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거나 했다.
아직도 쳐다보고 계신겁니까..
“하아..”
아카아시는 자신이 보쿠토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보쿠토는 아주 놀랍게도, 안경군의 첫 등장을 제외하고는 전혀 신경을 쓰고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이랄지 당연하달지 보쿠토씨는 연습시합에도 최선을 다했고, 배구 외엔 단 한가지에만 주의를 할애했다.
별 것 아니었다. 보쿠토씨가 스파이크를 성공시키고 크게 외치면, 옆 코트에서 쿠로오씨가 한마디씩 하고 보쿠토씨는 그런 쿠로오씨에게 눈을 마주치고 한번 씨익 웃어주는 정도였다. 연습이라고는 하지만 시합 중간에 보쿠토씨의 주의가 코트 밖으로 빠져나간다는 것 자체가 아카아시에겐 신기한 일이었다.
보쿠토씨가 쿠로오씨를 좋아해서, 그래서 최대한의 신경을 쏟고 있구나. 미리 듣지 않았더라면 영영 모르고 지나쳤을 정도로 보쿠토 코타로의 짝사랑은 의외로 조용하고 조심스러웠다.
보쿠토 씨라면 무조건 좋아한다고 들이대어버릴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아카아시는 곧 짝사랑의 상대인 쿠로오씨를 떠올리고는 묘한 감상에 사로잡혔다. 이런 짝사랑의 방식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쿠로오씨이기 때문인 것 같다는, 어떤 근거도 없는 확신이 생겼다.
보쿠토는 쿠로오를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은 그걸 알고 있다. 아카아시의 안에서 보쿠토의 사랑을 어떻게든 응원해주고 결실에 도움을 주고싶다는 의무감 비슷한것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해버리는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 * *
“뭔가 카라스노~ 힘이 넘치네!”
“그러게 말야. 저 꼬마 녀석, 그렇게 플라잉을 하고도 아직도 점프력이..”
정규 연습시합 일정이 끝나면, 남은 것은 나머지 연습을 하는 선수들 뿐이다. 쿠로오는 유독 체력이 약한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츠키시마를 발견하곤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 나 자연스럽게 버림받았어..? 타올로 땀을 채 닦기도 전에 쿠로오 곁으로 걸어왔던 보쿠토가 충격 받은 얼굴로 그런 쿠로오의 등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카아시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스파팟 움직였다.
곧 아카아시가 내린 선택은, 자신도 슬쩍 츠키시마의 곁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었다.
“여, 체력 좀 더 길러야겠는데, 츳키 군?”
“하아, 하아..”
“저 꼬맹이는 아직도 팔팔하잖아?”
“저 녀석과는 비교하지 말아주시죠..”
쿠로오는 자연스레 자신이 마시고 있던 물병을 내밀었고, 츠키시마는 그것을 받아들이려 손을 내밀었다.
보쿠토 씨,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 같네요. 아카아시는 그리 생각하며 불쑥 자신이 들고 있던 병을 내밀었다.
“피곤하시면, 저희 팀 프로틴 드셔보시겠습니까. 안 마신 새것입니다만.”
“어라어라? 아카아시 네가 왠일로?”
“아.. 하지만 이거.”
“받아둬~ 후쿠로다니가 먹는 프로틴 비싸고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그냥 드세요. 사실 속이 안 좋아서 지금 먹으면 체할 것 같거든요.”
“감사합니다.”
예의바르게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츠키시마는 병뚜껑을 열어 천천히 프로틴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보통 텁텁하거나 요상한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미숫가루 맛과 비슷한 것이 맛도 괜찮았다.
금새 한통을 비워낸 그가 병을 되돌려주며 인사를 하고 먼저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보쿠토는 그제서야 스스슥 쿠로오 옆으로 다가와 쿠로오에게 물었다.
“카라스노의 1학년 MB맞지?”
“아아. 맞아.”
“키 크네~ 얼굴은 아직 소년인데!”
푸핫, 쿠로오는 보쿠토의 말에 바람 빠지는듯한 웃음소리를 터뜨리고 말았다. 소년이라, 말끝마다 하트를 붙이는 소년!
제 웃음을 보쿠토가 이상하게 쳐다보자 쿠로오는 얼른 변명을 덧붙였다.
“츳키, 그 녀석은 소년이 아니라 청년이지, 청년.”
“청년? 그럼 난!? 역시 어른인가!”
쿠로오는 대뜸 그렇게 물어오는 보쿠토의 얼굴에 씨익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흠, 보쿠토 넌.. 어린이?”
“뭐! 내가 어린이면 쿠로오 넌!”
“나는 어른이지요~”
여느때와 같은 느물느물한 말에도, 보쿠토는 어쩐지 정말 기분이 상한 기색이었다. 쿠로오가 어라, 하고 눈을 깜빡이는 사이 보쿠토의 얼굴엔 평소와 같은 장난기가 담겨, 방심한 쿠로오의 배에 바디어택을 먹였다.
“크어억!!”
“봐라! 이것이 어린이의 힘이다!!”
“오옷..! 저렇게 깔끔한 인사이드태클이라니!!”
“토라..”
보쿠토와 쿠로오는 낄낄 웃으며 체육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쿠로오의 대퇴부와 어깨를 손으로 꽉 짓누른 보쿠토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헤이헤이헤이! 하고 일어나려는 쿠로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어른이라면 힘으로 빠져나가보시지~”
“우와아.. 힘만 센 어린이입니까, 보쿠토 군?”
“이의있소! 적어도 청년으로 랭크업 시켜달라고!”
주장 둘의 체통도 체면도 없는 장난질에 체육관의 다른 학교들은 그러려니 하는 모양새였다. 카라스노의 몇몇만이 익숙하지 않다는 얼굴로 하하.. 어색하게 웃을 뿐이다.
한참동안 보쿠토의 태클에서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쓰던 쿠로오가 이내 추욱 늘어지고, 그래 너 청년 해. 라는 쿠로오의 말에 보쿠토가 양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이겼다!!”
쿠로오는 흐늘흐늘 손을 들어올렸고, 보쿠토는 쿠로오의 손을 잡아당겨 일으켜세웠다.
“보쿠토 청년, 힘이 아주 좋은데..?”
“헤이헤이헤이!! 나는 에이스니까 당연하지!!”
아뇨.. 아무리 봐도 보쿠토 상 방금 츠키시마군에게 졌어요. 졌다구요. 아카아시는 그렇게 말이 튀어나가려는 자신의 입을 꾹 닫았다.
* * *대망의 진실편* * *
‘아악..! 보쿠토 그 자식이 여고생 말투놀이 따위를 하는 바람에!!’
쿠로오 테츠로는 소리없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침대에 놓인 휴대폰에서 반짝반짝 답장이 왔다는 표시가 나고 있었지만, 잠시 본인 내면의 괴로움에 심취한 쿠로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절망과 수치의 몸짓으로 감정을 조금 털어낸 쿠로오가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휴대폰에 슬쩍 손을 가져갔다.
졸려서 몽롱한 때에 둘과 한꺼번에 문자를 하면 안 되었다.
보쿠토에게 보낼 문장을 츳키시마에게, 그리고 츳키시마에게 보낼 문자를 보쿠토에게 각각 바꾸어 보내버렸는데, 내용은 둘 다 이만 잘 자라는 내용이었지만 문자의 온도가 확연하게 달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상대방의 반응도..
츠키시마 [잠들기 전엔 성격이 바뀌시는 타입이신가요.]
보쿠토 [뭐야 테츠 싸늘해 너! 일단 잘 자!! >ω</]
“크어억...”
부끄러워!! 지금 당장 폭발해라 지구!!
절망은 짧았다. 쿠로오는 심호흡을 하고는 이 어색하고 민망한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쿠로오의 손가락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츳키 너 문자 너무 차갑다고? 그 대신 쿠로오씨가 힘낸 거랍니다?]
[그동안 별 이야기 없으셨잖아요.]
[기다렸답니다.. 얼른 겨울이 가고 봄이 오기를..(´;ω;`)ウゥゥ]
[그 말은 제가 문자보내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계속 이런 식으로 문자를 하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어라 들켜버렸다냥(´ ▽`).。o♪ ♥✿ ♪.]
[그만둬주세요.. 자꾸 현실의 쿠로오씨가 떠올라서 괴롭네요.]
“큭..”
쿠로오는 청산가리를 삼키는 심정으로 휴대폰을 부여잡았다. 나도 힘들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온 이상 쿠로오는 민망함을 무릅써야만 했다. 한껏 귀여움을 뽐낸 여고생 이모티콘을 팍팍 써가며 문자하는 것에서 묘한 희열이 느껴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하다냐!(*` Д´)/ 그거 차별이라구요!]
[하아.. 알겠습니다. 어떤 문자를 원하시는지 말해보시면 최대한 수용해볼께요.]
쿠로오는 뜨거운 눈물을 주륵 흘렸다.
드디어..! 쿠로오가 원하는 대답을 끌어냈다.
의외로 순순히 이렇게 말해오는게, 정말 쿠로오 자신의 저 이모티콘을 보기가 얼마나 괴로우면 저러나 싶었다.
쿠로오는 한껏 귀여운 말투로 적당히 오타내기, 이모티콘쓰기, 가끔 어미를 냐로 바꾸기 따위의 규칙을 열거했다. 츳키시마는 해당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했고 결국 타협한 것이,
[이제 만족하시나요♡]
온점과 반점을 모두 하트로 바꾸는 것이었다.
쿠로오는 츠키시마의 문자를 확인하고는 풉, 하고 터져나온 웃음에 입가를 가려야만 했다.
쿠로오는 낄낄 웃으며 답장을 보냈고, 스스로도 민망한지 츠키시마의 답장은 꽤나 기다려야 했다.
[만족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발전했쟝!?(`・ω・´)b]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됬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무시했어!? 츳키군 히돗..( ノД`)シクシク…]
아마 더이상 문자가 오지는 않을 것이다. 쿠로오는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아 침대옆에 내려두고, 시간을 확인했다. 어느새 새벽 한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쿠로오는 입가에 피식 웃음을 걸고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처음 실수했을 땐 드래곤볼을 모아 지구멸망을 시켜달라고 하고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어째 괜찮게 해결된 것 같았다. 쿠로오는 내일 어떤 문자를 보낼지 미리 생각해두며 눈을 감았다.
츠키시마도 하도 웃어 약간 저린 입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막 전등불을 끈 참이었다.
* * *
그 둘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문자를 주고받았다. 쿠로오는 이 귀여운 말투가 꽤나 중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츳키뿐만 아니라 보쿠토와 문자할때도 가끔 저장해둔 이모티콘이 튀어나가는 바람에 수습에 애를 써야만 했다.
[그런데 정말 꾸준하시네요 그 말투♡]
[호에에에~?(⋈◍>◡<◍)。✧♡]
[귀여운건 이모티콘이지 쿠로오씨가 아니라구요♡]
탈의실에서 휴대폰을 확인하던 쿠로오의 입가에 푸흡, 웃겨 죽겠다는 표정이 떠올랐다가 금새 사라졌다. 츳키녀석과 문자할 때마다 웃겨서 실실 웃고 있고 있는 것을 부원들에게 들킨지도 꽤나 되었다. 여자친구가 생겼나봐! 하고 수근거리던 부원들은 이내 츳키의 하트범벅 문자를 보고는 배를 부여잡고 웃다가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다음날 토라의 문자는
[주장, 저희 프로틴 조금만 더 맛있는걸로 바꿔주세요(´;ω;`)]
였고 쿠로오는 수업 중에 웃다가 교실에서 쫓겨날뻔 했다.
* * *
그리하여 상황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친한 후배의 하트붙은 문자를 보고 귀엽다고 생각해버린 쿠로오가 남자를 연애대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보쿠토는 과연 남자로써 쿠로오의 첫 연애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카라스노 최연소 청년은 과연 쿠로오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아카아시가 보쿠토의 연애사업을 도우며 현자타임을 맞을 때는 언제일 것인가..
또 제멋대로 길어지려고해서 어설프게 잘랐습니다 흑흑 나름대로 보쿠로데이 연성..! 그렇지만 썸은 츳키랑 타는 쿠로오...!!
'2차 > 하이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쿠로] 붱냥1/2 !!!!! -5- (0) | 2018.01.24 |
---|---|
[보쿠로] 붱냥 1/2 !!!! ~ 4 ~ (0) | 2018.01.11 |
[보쿠로] 붱냥 1/2 !!! ~ 3 ~ (0) | 2017.12.17 |
[보쿠로] 붱냥 1/2 !! -2- (0) | 2017.12.03 |
[보쿠로] 붱냥 1/2 ! -1- (0) | 2017.11.12 |